파출소 쉬는 날 우리도 쉽니다. 대답이 익살스럽다. 음식 나르는 아주머니에게 언제 쉬느냐고 묻자 곧장 돌아온 대답이다. 파출소가 쉬는 날은 없을 테니 연중무휴란 뜻일 터. 게다가 하루 24시간 영업한다. 이 집 한 집만 그런 게 아니라 건너편 가게들도 마찬가지다. 가게마다 내놓은 유리진열장에는 초벌구이 통닭이 적게는 서너 마리에서 많게는 열 몇 마리씩 보인다.
서면시장 통닭집 거리. 골목이라 하기엔 너른 길 양편 전통을 내세우는 맛집들이 성업 중이다. 칼국수 코너 모서리를 돌면 나온다. 70년대도 있었고 80년대도 있었던 상호에는 통닭 기름기가 잔뜩 배어 있다. 뚱보할매집, 부산통닭, 진로통닭, 양산꼬꼬. 영어로 된 상호가 판치는 세상에 언뜻 보면 어수룩한 상호지만 하나같이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맛집들이다. 지갑은 헐거워도 마음은 두툼했던 청춘의 맛집들이다.
메뉴판은 통닭집답게 온통 닭 요리. 백숙에서 닭발까지 닭 요리가 무려 열 가까이 된다. 메뉴들이다. 백숙, 통닭, 마늘통닭, 똥집후라이드, 콩나물찜닭, 똥집볶음, 닭찜, 닭발. 가격은 대중소로 나눠 1만5천 원에서 2만 원 선이니 크게 부담스럽진 않다. 반 마리도 판다. 그러니 지금도 학생풍 젊은 사람이 많이 찾는다. 밤늦은 시각에서 새벽까지는 그들 차지란다.
추억을 자극하는 메뉴도 보인다. 켄터키치킨! 참 오랜만에 대하는 이름이다. 통닭 하면 켄터키치킨이 저절로 이어지던 그 때가 언제였나. 가물거린다. 어른들 눈을 피해 숨어서 술 마시던 고교시절일 수도 있겠고 MT 가면 빠지지 않는 메뉴였던 대학시절일 수도 있겠다. 그 때나 저 때나 한결같이 없던 시절. 지갑은 헐거워도 배짱만은 두둑하던 내 인생 가장 빛나던 시기였다.
켄터키치킨은 가격도 마음에 쏙 든다. 대 1만8천 원, 중 1만5천 원이다. 중을 시키자 네 명이 먹어도 될 만큼 수북하게 나온다. 맛만 내세우는 맛집이 아니라 양을 함께 내세우는 맛집인 셈이다. 맛은 뜨끈하고 달달하다. 뜨끈하고 달달했던 젊은 날이여. 한 점 베어 먹고선 입김 한번 불고 한 점 베어 먹고선 추억 한번 분다. 입김은 이내 사그라지지만 추억은 길고 질겨 기름기처럼 통닭집에 밴다.
AI 관계없이 손님은 꾸준히 있어요. 뚱보할매집 탁자는 네댓. 닭을 튀기는 아주머니 뒤로 보이는 게 그렇단 얘기고 방도 있고 40명 정도 받아내는 2층 다락방도 있다. 다락방 단골 모임은 추억을 되새기려는 사오십대 초등학교 동창회다. 오리를 무더기로 땅에 묻고 닭을 무더기로 땅에 묻는 흉흉한 요즘이지만 조류 인플루엔자 영향은 별로 받지 않는 편이라고 아주머니는 말한다. 여기 통닭집들이 워낙에 맛과 추억으로 이름난 집들이라서 그러리라. 1월부터 기세등등했던 AI는 날이 풀리면 말끔하게 물러날 듯. 그간 몇 달을 마음 고생한 오리에게 닭에게, 그리고 닭집에게 위로를….
파출소 쉬는 날 어쩌고 했던 아주머니는 대답이 선선하다. 대답마다 웃음기가 섞인다. 상호가 할매집이라서 할매는 잘 있으시냐고 너스레를 떨자 돌연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목욕하다가 미끄러져서 뼈를 다치는 바람에 한 달째 입원하고 있단다. 이 자리에서 오십 년 넘게 장사했다는 할머니 연세는 올해 여든하나. 내 학창시절 통닭을 내주던 그 때 그분이 틀림없다. 할머니 역시 내 추억의 한 부분. 얼굴을 보면 기억날 것도 같다. 어떤 인상이었을까. 추억은 이렇게 가물거리며 그러면서 두터워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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