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시즌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 만남과 이별의 간이역이란 졸업식.
태어나 기억할때부터 지금 중년의 아줌마로 살아온 내내
일년에 한번 보여지는 간이역 같은 졸업식.
오늘은 막내 딸, 고등학교 졸업식이다.
오빠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키로 인해 늘 조바심 태우고
아직도 업고 다녀야 할 애기로 보일 때가 종종 있어서
등을 대고 어부바~~할 때도 있는 딸, 그 딸이 대학을 간다고
고등학교를 졸업 한댄다.
하늘은 햇살 한줌 뿜어주지 못하고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마암관에 도착하니 벌써 꽃다발을 손에 들고 있는 부모님들
그리고 학생들이 꽉 들어찼다.
상을 주는 순서가 한창 진행 되고 있었는데
울 딸은 공부는 별로였으니 받을 상이나 있을까 하고 명단을 보았는데
역시나 예능 상에 이름이 올라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를 거쳐 마지막 고등학교까지
예능상은 늘 빠지지 않고 받았던 것 같다.
그림그리기......라는 재주로.....
오랜 옛날
나 졸업하던 날이 생각난다.
울 엄마, 6년 내내 담임선생님 한번 찾아뵈지 않으셨다.
그때는 새로 담임을 맡으면 새 학기에 가정방문이란 명목으로
선생님이 가정을 방문하곤 했었는데
난, 그 일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누추한 집에 오시는 것이 싫었던 것 같기도 했고
그로 인해 창피함이 들기도 했고.
그래도 우리집을 아는 친구을 앞세워서 선생님이 다녀가시곤 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안든 엄마와 선생님의 상견례가 이루어졌었다.
가정통신란에 무엇이라고 써야 하는 과제를 그렇게 해결했는지도 모르겠다.
경제적 수준에서..상 중 하....부모님 두분 계시고
직업은 농업이시고...기타 등등..기타등등....
참 별 이상한 것까지 게재해야 했었던 통지표.
엄마가 졸업하던 날
오시긴 했었는데
교실 뒷문으로 들어오시지도 못하고 운동장 건너 편
밭두렁에서 우리들 졸업식이 끝나길 기다리셨다.
내가 누추한 울 집에 선생님 오시는 것이 싫었듯이
초라한 모습으로 딸 교실에 당당히 들어오실 수 없으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졸업장 하나 달랑 받은 친구들에 비하면
난,
이것저것 자랑해도 될 수 있을 정도의 상도 받았는데
무엇이 엄마를 밀어냈는지 의문이다.
호명된 아이들이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는 뒷모습에
나의 어릴 적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얼마나 자랑스러웠던가?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마냥 내버려 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밟히고 밟힌 질경이처럼
그렇게 자라온 환경에서 온실 속에서 고이 자란 친구들을 이기고
단상에 올라 상을 받았었는데
그때부터 나의 오기는 발동이 걸렸는지도 모른다.
비빌 언덕 없어도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고........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울 딸은,
그런 엄마 뱃속에서 싹 틔우더니
못 받았던 한과 사랑을 딸에게 쏟아 부은 듯
완전 고이 고이 온실 속 화초로 커 가는데 익숙해졌다.
내 어릴 때 마음속에 어떻게든 이겨야 했었던 친구들 모습으로
나의 딸이 자라고 있었다.
역시나,
질경이처럼 살아 온 친구들에게 우등상은 넘겨주고
겨우 예능상만 달랑 하나 받은 체로.....
졸업식 노래를 부른다고 일어선 아이들
슬픔도 없고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다.
어깨까지 흔들어가며 석별의 정을 씩씩하게 군가 부르듯
노래를 하고 있다.
하긴 요즘 아이들이 예전 아이들처럼 뒤를 보며 울고 있을 아이들은 아니다.
미래가 찬란한데 왜 뒤를 보며 바보처럼 질질 짜겠는가?
시대를 잘 만난 덕에 석별의 정이 슬픈지도 모르는 듯하다.
낙천적으로 바뀐 것도 환경에 비례하는지도 모르겠다.
군청색 교복들 사이 사이로 예쁜 꽃다발이 한 아름씩
여기저기 셔터 눌러대는 소리가 들리고
함빡 웃는 아이들 얼굴이 활짝 핀 해바라기 꽃 같다.
늦게 낳아 놓은 딸 덕에 학교에 찾은 남편도 싱글 벙글
오빠도 싱글 벙글......모처럼 활짝 웃어보는 가족들이다.
유난히도 크지 않은 키.
딸을 찾느라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찾았다.
이렇게도 한번 찍고 저렇게도 한번 찍고.
친구 언니가 이미 갖다 준 꽃다발을 보이며 너무도 좋아하고 있다.
욕심도 없는 딸,
더 많은 가족들이 와서 축하해주는 모습 부러워도 할만도 하련만
울 가족만으로도 즐거운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면 스스로 잘 키웠단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으로 키워 놓았으면 불평 불만이 많았었을텐데
참 다행이다.
이글을 쓰는 중간에
두 개의 꽃다발을 들고 와서 어떻게 처리할지
물어본다.
너무도 아름다운데 말리기엔 아깝고
꽃병에 꽂아 두자니 며칠 가지 않아 썪어 버릴 테고.
묻는 그 모습이 앙증맞다.
아직도 크지 않아서 일까?
애기모습 그대로다.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하더니 식탁에다
유치원 때 자기가 만들어 놓은 화병에 아름답게 꽂아 놓고 이불속에 들어갔다.
쟤 때문이라도 난 이 삶의 줄을 놓을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잘 데리고 살라고 무사히 넘겨주고 어떻게 사라져도 사라져야 할 것처럼.
딸은 내게 살아가야 할 이유를 충분히 주고도 남는 존재 인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