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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천태산에서 암릉 산행을 즐기다
1. 일자 : 2011. 8. 4 (목)
2. 장소 : 천태산(715m)
3. 행로 및 시간
[누교리 주차장(10:40, 180m) -> 삼신할멈바위(10:50) -> 삼단폭포(10:53) -> 매표소(10:58) -> 영국사(11:02) -> 암릉1(11:20) -> 암릉2(11:29) -> 암릉3/직벽(11:34) -> 전망바위(11:52, 정상 500m) -> D코스 갈림(12:11) -> 정상(12:19) -> (중식) -> D코스 갈림(12:46) -> 헬기장(13:02) -> 전망석(13:25, 영국사/정상 1350m) -> 남고개(13:42) -> 늪(13:56) -> 영국사 부도(14:02) -> 영국사(14:09) -> (탁족) -> 삼신할멈바위(14:31) -> 주차장(14:40)]
4. 동행 : 홀로
5. 산행궤적
t,d,36.160030,127.610012,07-04-2011,11:09:04,329,3 등산지도 보관함
t,d,36.160452,127.607603,07-04-2011,11:16:51,381,0 암릉 1
t,d,36.159668,127.606092,07-04-2011,11:29:07,420,4 암릉 2
t,d,36.159609,127.605771,07-04-2011,11:31:20,437,0 영국사 조망 바위
t,d,36.159747,127.605588,07-04-2011,11:33:52,464,1 암릉 3(직벽)
t,d,36.160103,127.604227,07-04-2011,11:45:56,528,1 너른 전망바위
t,d,36.160026,127.604036,07-04-2011,11:52:28,557,0 정상 500m 전망바위
t,d,36.158545,127.602507,07-04-2011,12:10:04,655,1 D코스 갈림
t,d,36.158816,127.600749,07-04-2011,12:19:24,701,0 천태산 정상
t,d,36.159160,127.600259,07-04-2011,12:47:15,736,0 D코스 갈림
t,d,36.158318,127.601637,07-04-2011,12:50:02,720,3 입석
t,d,36.156575,127.602890,07-04-2011,13:02:29,654,0 헬기장
t,d,36.155822,127.603525,07-04-2011,13:05:44,630,1 7지점
t,d,36.154953,127.604992,07-04-2011,13:09:10,607,6 고사목
t,d,36.153455,127.605405,07-04-2011,13:14:03,572,2 먼 무덤 조망 터
t,d,36.151542,127.606133,07-04-2011,13:25:26,516,5 전망석
t,d,36.150841,127.608386,07-04-2011,13:42:00,407,0 남고개
t,d,36.155488,127.610509,07-04-2011,13:56:18,338,3 늪
t,d,36.156668,127.610450,07-04-2011,13:59:24,331,2 원각국사비
t,d,36.156759,127.609722,07-04-2011,14:03:05,326,2 영국사 부도
t,d,36.156932,127.610060,07-04-2011,14:09:30,326,3 영국사
t,d,36.158431,127.610545,07-04-2011,14:13:32,316,7 은행나무
t,d,36.157603,127.614240,07-04-2011,14:31:45,273,3 삼신할멈바위
t,d,36.157335,127.614486,07-04-2011,14:38:44,272,0 천태동천 입구석
t,d,36.156850,127.616279,07-04-2011,14:40:58,239,3 천태산 주차장
< 천태산 산행을 준비하여 >
천태산은 충북 영동과 충남 금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천년 고찰 영국사를 품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영국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천태종의 창시자인 고려 왕자 출신의 대각국사 의천이 이곳에서 도를 닦은 곳이고 그것이 유래가 되어 산 이름이 명명되었다 한다. 천태산이 100대 명산 반열에 오른 이유는 ‘충북의 설악산으로 불려질 만큼 경관이 아름다운 점과 영국사와 수령이 약 500년 된 은행나무 (혹자는 1300년이라고도 한다), 3층 석탑(보물), 원각국사비(보물) 등 유명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점이 고려되었다 한다.
이 산의 주요 등산로는 배상우 라는 분이 사재를 털어 개척했다. 오늘의 오름 길 A코스는 ‘미륵길’로 영국사 우측으로 진행하여 천태산 최북단에서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최단거리로 이어지는 코스로 밧줄을 타고 오르면 정상까지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내림길 D코스는 ‘남고개’ 길로 하산코스로 많이 이용되며, 절반쯤 내려오면 경사가 완만하고 아름다운 주변 경관이 한눈에 펼쳐지고, 일단 남고개로 내려오다가 '영국사방면'이라는 팻말이 가리키는 대로 하산하면 된다. 천태산에서 가장 일반적 코스는 최북단의 능선을 타고 올라 정상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A코스에서 D코스를 꼽고 있다.
가야 할 길을 대강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누교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태동천 계곡을 따라 다채로운 바위와 폭포를 감상하며 영국사까지 오르는데 30분. 이후 암릉구간을 따라 ‘다리는 힘이 드나 눈은 호강하는 코스를 1시간여 오르면 정상에 서게 된다. 하산 길은 왔던 길을 잠시 다시 내려 와 바위능선을 타다가 남고개에서 영국사 방면으로 내려오면 된다. 순수 산행 시간은 3시간 남짓이고 휴식과 한여름 무더위를 고려하여 여유를 가지면 4시간여가 소요될 것이다.
< 희망사항 >
여름 휴가다. 지난 주 토요일 실질적인 휴가가 시작되며 이번 휴가에는 100대 명산 2곳을 올라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대상으로 덕숭산과 황악산을 염두에 두었다. 그 중간에 북한산과 홍천 백우산도 가 보아야지 하고 마음먹었었다. 휴가의 중간 시점에 계획을 점검해 보니 북한산은 바라산/우담산으로 변했고 백우산은 산악회 사정으로 취소되었고 주말 황악산도 어려울 것 같다. 결국 덕숭산만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목요산행으로 천태산을 급히 선택한다.
천태산은 영동의 산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천태산에 오르면 속리산, 민주지산, 덕유산, 가야산, 서대산 등 주변에 너울거린다. 한 여름, 천년 고찰을 품은 산은 어떠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까? 바위 능선에서 굽어보는 영국사와 푸르른 산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날씨가 맑아 연무를 몰아 내고 멋진 풍광이 펼쳐지기를 희망한다. 오늘의 산행이 한여름을 건강하게 날 힘과 휴식을 내게 선물해 줄 것을 기대하며 아침을 맞는다.
< 영동 가는 길에 >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이 깬다. 커피가 먹고 싶어 맥도날드에 들린다. 세트 메뉴를 주문 하고 15분여를 기다려도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매장 안을 살핀다. 학원가에 위치해 아침 손님들이 몰려드는데 일하는 종업원은 몇 명 안 된다. 손 놀림도 느리다. 내가 주문은 제대로 한 것인지 조바심이 난다. 나보다 늦게 주문한 손님은 음식을 싸 가지고 간다. 화가 난다. 이곳이 패스트푸드점 맞는가? 이러려면 무예 24시간 영업을 한다고 자량하는가? 브랜드 명성에 먹칠을 하는 짓이다. 인건비를 줄이려는지 종업원의 절대수가 부족하다.‘무리한 영업’이란 말이 떠오른다. 좋은 아침에 기분이 상해 버렸다.
‘영국사’를 목적지로 네비를 세팅하니 거리가 180km,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 20분. 너무 먼 곳을 산행지로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소통 원활이다. 차라는 나만의 아늑한 공간에서 여행을 떠나는 재미에 젖어 든다. 언제부턴가 차를 몰고 멀리 떠나는 산행이 즐겁다. 천안을 지나 한참을 더 가 옥천IC에서 나와 국도로 접어든다. 성하(盛夏)의 가로수 국도를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윤정마을’이라는 곳에서 접한 짙은 음영의 가로수 길이 특히 인상 깊었다. 오늘은 길에도 내 마음에도 여유가 묻어 있어 좋다.
한적한 길을 지나다 길가에 저수지가 보인다. 차창으로 보이는 물가의 전경이 하도 멋져 잠시 하차한다. 누교 저수지다. 숲과 물과 산과 하늘이 만들어내는 경치가 연한 파란색 톤으로 넓게 펼쳐진다. 한 여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짙은 정취다.
이어지는 길, 네비를 따라 영국사 부근으로 가는데, 어느 곳에서 좌회전을 하니 도로가 좁아지더니 영국동 마을이 안내판이 나타난다. 영국사 부근이긴 하지만 엉뚱한 곳이다. 뭣 번을 헤매다가 다시 큰 길로 나온다. 아직 네비 지도는 더 개선되어야겠다. 잠시 후 무척 너른 천태산 주차장에 도착한다. 한 낮의 볕이 무서울 정도로 강하다. 나무 그늘로 이동하여 신발끈을 조이고 행장을 꾸린다.
< 천태동천에서 정상 >
10시 40분. 주차장에서 산의 마루금에 눈 길을 한 번 주고는 숲으로 들어선다. 주차장과는 금방 온도 차가 느껴진다. 길가에 도열한 줄기는 플라타너스를 닮았고 잎은 5각형 모양을 한 멋진 이 나무의 이름은 무엇일까? 머리 속을 검색해 보아도 답은 안 떠오른다. 몇 주 전 나름 공부한 나무의 이름들이 한꺼번에 공중에 달아가 버리는 느낌이다. 얕은 지식의 한계다.
인공의 가로수 길과 작은 공터를 지나자 계곡이 시작된다. ‘천태동천’이다. 계곡의 물이 만들어 내는 서늘한 공기가 상쾌하다. 오늘의 키워드 중 하나는 ‘상쾌’이다.
< 누교 저수지 / 영국사 가는 길 >
계곡 주변 바위들이 예사롭지 않다. 암릉이 멋지다는 이 산의 계곡에서도 그 예후를 가름할 수 있다. 푸른 이끼가 핀 고목 뒤편으로 커다란 바위 사이로 계곡 물이 세차가 흐른다. 멋지고 또 멋지다. 감탄하고 걷는데 길 가에 커다란 ‘책’바위가 나타난다. ‘삼신함멈바위’다. 산행기에서 읽어 이름이 낯익다. 내려 올 때 이곳에서 탁족을 해야겠다. 이어지는 길, 곧이어 웅장한 기세의 삼단폭포가 발 길을 멈추게 한다. 영국사 가는 길은 잠시도 눈을 가만히 놓아 두지 않는다. 초반부터 소위 대박이다.
작은 오르막을 오르자 길가 펜스에 수 많은 산악회 표지기가 붙어 있는 매표소가 나타난다. 매표소 뒤편으로 천태산의 도도한 산 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 이제 입산이다.
< 삼단폭포 앞 / 매표소 전경 >
영국사 입구에 커다란 은행나무 고목이 서 있다. 푸른 잎이 무성하다. 나무가 하도 커서 전신 컷을 잡으니 카메라 빛이 부족하다. 수령이 천 년이라 되어 있다. 고목의 나이는 고무줄인가 보다. 자료마다 수령이 다르다. 은행나무 뒤 편으로 영국사가 우람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망설이다 절은 하산 길을 볼 요량으로 우측 편 산 길로 먼저 달라 붙는다.
< 은행나무 고목 / 영국사 입구 >
이내 가파른 산 길이 나타난다. 초입 길가에 웬 스테인리스 박스가 보인다. 등산안내도 보관함이라 쓰여 있다. 혹시나 하여 뚜껑을 열어 보니 ‘천태산 등산 안내도’가 들어 있다. 지도는 영동군에서 제공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천태산의 등산로를 사비를 들여 정비한 ‘배상우’란 분의 산 사랑과 배려와 정성이 느껴진다. 작년 이 맘 때 마주친 공작산 입구 펜션의 몰지각한 인간(그 인간은 사유지라는 이름으로 등산로에 전기 펜스까지 치고 등산인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 10여분 고빗사위가 이어진다. 무더위가 심상치 않다. 자꾸 물병에 손이 간다. 작은 쉼터에 앉는다. 위로는 바위 틈으로 긴 밧줄이 보인다. 본격 암릉 길이 시작되려나 보다.
입구에 노약자나 어린이는 위험하니 우회하라 한다. 망설인다. 바위 중간에 소나무가 멋져 보인다. 허나 굵은 밧줄이 길게 이어진 길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길다. 지난 화요일 덕숭산의 악몽이 떠올라 오늘은‘약자(弱者)’가 되기로 한다. 우회로로 접어 드는데 위를 보니 이곳에도 밧줄이 길게 메어져 있다. 우회로 맞아? 하는 생각이 든다. 첫 암릉을 낑낑거리며 오른다. 한 고비를 넘겼다. 우측으로 조금 전 ‘위험한 길’로 오른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힘겨워하는 소리도 들린다. 속으로 ‘이 길도 만만치 않아요’라고 해 준다.
암릉을 넘어 시야가 탁 트인 봉우리에 올라 산등성을 바라보는 기분은 낯설고도 새롭다. 모든 것이 내 발 밑에서 아득해지고 수굿해진다. 멀리 영국마을과 영국사의 절 집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산과 들과 마을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풍광. 우리내에게 산은 일상의 공간인 셈이다. 우리의 산은 높이 솟은 것만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겹쳐 있음이 특이하다. 산이 깊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 첫 능선 전망대 / 직벽의 위용 >
곧 두 번 째 암릉이 나타난다. 역시 만만치 않다. 그래도 중간지점에 소나무가 보인다. 어서 가 보고 싶어진다. 햇살이 버겁다. 바위 봉우리에 오르자 영국사가 좀 더 가까워 보인다. 모퉁이를 돌아 작은 안부에 선다. 머리 위로 커다란 직벽이 서 있다. 위압적이다. 바위의 기울기도 겁나지만 햇살을 피할 길이 없겠다. 우측으로 돌아 선다. 잠시 내리막으로 내려서더니 짙은 숲 길이 이어진다. 우회로 라지만 이곳도 곳곳에 밧줄이 메어져 있는 험로임에는 매 일반이다. 햇살을 피하랴, 밧줄 잡고 오르랴 전신이 피곤하다. 금방 목이 말라온다. 아! 무엇 하러 이 짓을 하나!
들머리 출발 1시간이
지났다. 11시40분. 암릉의
고비는 넘긴 것 같다. 주위를 돌아 본다. 상어를 닮은 바위가
난간을 이룬다. 그 뒤편으로 산들이 파노라마 치고 있다. 집에
돌아 와 장호 선행의 백명산기 천태산 편을 살피니 그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천태산을 가운데
놓고 그 언저리 산줄기를 살펴 보면, 충남 최고봉 서대산을 저만치 두고, 장룡산에서부터 치 내리는 줄기는 매봉 다음 이 산을 일군다. 그
뒤 금강을 넘어 성주산으로 올라 붙은 후 덕유산으로 들어선다. 천태산은 어여쁜 산이다. 높이로는 언감생심 큰 산이라고는 말 못할 이 산의 경관만은 비길 데가 흔하지 않다.’ 고수의 손이 닿으면 글에서 빛이 난다. 늘 존경스럽고 부럽다.
< 천태산 암릉 1 / 바위 전망대에서 >
너른 바위 전망대에서 지나는 이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하고는 퍼질러 앉는다. 여름 산행을 참 힘겹다. 그래도 흘러 가는 구름, 맑디 맑은 하늘, 푸르른 숲, 알맞게 힘겨운 바위 길 이 모두가 나를 산으로 부르는 동인이다.
< 천태산에서 본 산 너울 >
커다란 바위 앞에 정상이 500미터 남았다는 이정표가 붙어 있다. 파란 아크릴 판에 새겨진 반듯한 글씨에서 만든 이의 정성이 느껴진다. 그 정성이 힘이 되어 가파른 비탈을 무리 없이 오른다. 내려다 보는 풍경에 숨이 막힌다. 아! 참 멋지다.
길은 다시 숲을 만난다. D코스 갈림이다. 정상까지는 200미터가 남았다. 마지막 힘을 내어 오르막을 오른다. 천태산 정상은 숲에 쌓여 풍광은 볼 것이 없다. 그래도 커다란 정상석이 매력적이다. 안내산악회를 따라 왔으면 서로 정상 사진을 찍으려고 난리일 텐데 오늘은 너무 한가하다. 평일 산행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여유’ 말이다.
< 천태산 정상에서 >
출발 1시간 40분만에 정상에 올랐다. 그늘을 찾아 앉아 도시락을 편다. 오늘은 샌드위치가 주 메뉴다. 늘 먹던 김밥이 아니라 색다르다. 울울한 나뭇잎 사이로도 햇살이란 놈은 틈을 비집고 내게 다가온다. 자리를 옮겨도 소용없다. 이 역시 등산의 일부분이다. 그냥 퍼질러 앉아 있자.
< 정상에서 천태동천 >
배선생표 등산 안내도에 의하면 A코스 미륵길 기준으로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오름 길은 2.6km, D코스 하산 길은 3.9km라 한다. 주위를 잘 살피고 왔던 길로 내려 간다. 잠시 후 다시 D코스 갈림이 나온다. 우측으로 길을 튼다. 길이 널찍하다. 너른 평탄 길을 걸으니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좌측으로 내 애마가 서 있는 천태산 주차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간간이 기묘한 형상을 한 바위들이 나타나 시선을 끈다. 이런 ‘꽃 길’이 계속되지는 않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한 동안 평탄하고 경치가 그만인 길들이 이어진다.
1시를 막 지나 헬기장을 만난다. 헬기장 뒤 편 뭉게구름이 피어 있다. 수도권에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다. 얼마 만에 보는 푸른 하늘이라 말인가? 유독 큰 비가 많았던 올 여름이기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더욱 소중히 느껴진다.
< 내려다 본 영국사 / 길가의 고사목 >
관음길이라 명명되었던 B코스 갈림을 지난다. 길은 폐쇄되어 있다. 수 년 전 무속인의 촛불이 원인이 되어 산 불이 났고 그 바람에 숲이 손상되어 지금은 보호 차원에서 출입을 금한다 한다. 하산 길 곳곳에서 올려다 보는 산 중턱에 유독 고사목이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남고개를 향해서 전진이다. 암릉이 여전하나 길은 걷기에 그만이다. 장호 선생에 의하면 ‘천태산 최고의 경치 중 하나는 남고개 위 남릉에서 바라보는 영국사 둘레의 풍경으로 한 폭의 몽유도라 이를 만하다.’라고 했다. (나머지 하나는 망탑봉과 삼층석탑인데 찾지 못하여 보지
못했다.)
< 산 너울과 먼 무덤 / 전망석 쉼터 >
매양 좌측 영국사 방향만 보고 걷다가 무심코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뾰족이 솟은 마니산 앞 산 중턱에 한 눈에 보아도 명당인 위치에 잘 정리된 묘가 보이고 그 뒤편으로 산들이 너울치고 있다. 눈이 끝 간 데 없이 멀리를 향해 간다.
남고개가 어드메뇨 하는 의문이 들 무렵 소나무와 암릉이 어우러진 작은 쉼터가 나타난다. 결코 작은 곳이 아닌데 표지판에는 ‘전망석(작은쉼터), 영국사/정상 1350m’ 표기되어 있다. 만든 이의 착하고 소박한 마음이 내게 전달되는 듯 했다.
쉼터를 지나 10여분은 가파른 내리막이다. 위험해 보였지만 천천히 내려서니 그마저 재미나다. 남고개를 지난다. 산행기에서의 명성에는 많이 못 미치게 초라하고 작은 고개다. 입간판마저 쓰러져 더 을씨년스럽다.
< 천태산 암릉 2 / 영국사 부도 >
남고개를 지나자 길은 급격히 순해진다. 이제 남은 볼 것은 망탑봉과 석탑이다. 부지런히 영국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길가에 작은 늪이 형성되어 있다. 한라산 ‘썩은 물통’보다 더 탁한 늪지대다. 예전에 늪은 음흉함의 상징이었는지 왠지 모르게 이제는 보존해야 할 숲의 보고로 다가온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부지불식간에 영국사 절 집 지붕이 보인다. ‘망탑봉은 어디에’라는 생각에 옆 길로 새어 본다. 원각국사비가 보이고 더 오르니 영국사 보도가 보인다. 두 곳 다 보물급 문화재다. 망탑봉은 찾을 수 없다. 포기하고 영국사로 향한다.
오전에 입구에만 눈 길을 주고 지나친 영국사 경내에 들어선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극락보전이다. 아미타불이 화려한 모습을 한 체 앉아 계시다. 그 옆에는 대웅전이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곳이다. 이상하다. 한 절에 그것도 바로 곁에 극락보전과 대웅전을 나란히 배치한 절 집은 이곳이 처음인 것 같다. 왠지 ‘보여 주기 위한 욕심’이 느껴진다. 그 생각은 살집이 있는 스님 한 분이 신도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며 걷고 있는데 내가 인사를 해도 못 본 체 하는 모습에서 더욱 확신이 간다.
말 없이 서 있는 대웅전 앞 3층 석탑의 소박한 모습에 다시 절 집에 대한 관심이 돌아 온다. 대웅전과 극락전 그리고 그 뒤 푸른 숲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는 절 집을 나선다.
< 영국사 전경 / 할멈바위 앞 계곡 >
입구 은행나무 고목은 꿋꿋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표소 앞 공터에는 햇살이 쏟아진다. 좌측으로 작은 연못이 보인다. 물 위를 덮은 푸른 이끼 속으로 연 잎이 푸르르다. 문뜩 ‘연못’의 ‘연’자는 연꽃의 ‘연’자와 같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더러운 물에 서는 어여쁜 꽃을 피운다는 연꽃이 위대해 보인다.
길가에 스테인리스로 만든 수도가 보인다. 지나는 이에게 ‘이왕 편의를 베풀 것이면 그늘진 곳에 만들어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에 ‘벌겋게’ 익은 스테인리스가 흉물스럽게 느껴진다.
< 에필로그 >
매표소를 지나 다시 그늘진 천태동천 속으로 들어왔다. 삼신할멈바위(내 생각에는 삼신할매바위가 더 나은 명명 법이 아닐까 한다.)에서 오전에 계획했던 탁족(濯足)을 했다. 물 빛이 생각만큼 맑지 않다 그리고 차지도 않았다. 굴원이라는 옛 사람은 ‘어부사’라는 글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내 발을 씻으리라.”고 했다. 물론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물이 맑았다면 흙 뭍은 내 발을 씻는 행위가 미안했을 것이다.
오늘 지나온 길을 복기 해 본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청명한 날씨에 흰 암릉을 온 몸으로 오르며 왠지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생각 해 보니 맑은 날 능선엔 늘 외로움이 함께 했다. 깊은 외로움은 나를 다시 깨어 나게 했고 사랑을 북돋아 주었다.
천태산은 높지 않은 산치고는 꽤나 깊고 그윽한 산 정기가 괴어 있었다. 후미진 벽지에 이만한 매력을 지닌 산도 드물다 할 것이다. 오늘도 산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많은 생각을 하고 오른 산이지만 내려 가는 마음은 가볍다.
귀경 길 배고픔에 저수지 부근 매운탕 집에 들렸다. 음식점 벽에 붙은 박정희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보며, 이곳이 육영수 여사의 고향임을 알게 되었다. 매기 매운탕은 유원지 길가 음식점은 형편 없다는 내 고정관념을 깰 만큼 맛이 있었다. 어느 곳에서나 숨은 진주는 있게 마련이다.
휴가를 맞아 떠난 한 여름의 산행에서 다시 삶을 건강하게 살 힘을 얻고 간다.
서정윤 시인의
< 사랑한다는 것으로 > 라는 시로 산행기를 마무리 할까 한다.
<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