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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새를 모시는 날, 추석은 거북을 모시는날,
거북신화를 일본인이 욕설 ' 빠가야로(馬鹿 )' 사슴신화로 한민족 저주교육!!
태인허씨 허기장군 굴신화 나뭇군과 선녀 거북이였다 참고기사http://blog.daum.net/nongaak/7090578
조선 이성계 건원릉 제사날이 추석으로 이를 모방한 개인제사로 변질...,
한국의 비석은 머리는 천신 새, 이래는 지신 거북으로 남아있다
http://blog.daum.net/nongaak/6884377
한국토탬신화는 백제 비들기, 고구려 꾀꼬리 , 신라는 닭. 말. 까치, 가야국은 거북이 토탬신이였다
가야허씨족이 청도 산청에서 정읍 부안으로 망명 그러나 백제마저 망하자 당나라 포로에서 서부 사천성 감숙성 청해지역의 돌궐족 방어군 흑치상지
군속으로 지내다가안록산이 반란 으로 도망온 당현종을 가야족 허기ㅣ장군이 구출하여 동방예의지국 왕 성왕이되고 이름을 이씨 '이기'라는 이름으로 당현종의 15번째 수양아들이 되어 신라국 대사로 왔다
그 허씨는 완도를 '청해'라는 당나라 사천성 청해라는 이름으로 정착 장보고장군에 이르다가 정읍 칠보 태산군으로 정착 최치원에 이르러 태산군에 로마ㅏ교육제도로 군사 음악 의학 웅변 4과목 필수교육하는 율수학당이 세워 진다
이곳에는 허기장군 신당 '허왕두굴'이 있고 ' 나뭇군과 선녀' 전설이 있는데 토탬 주인공이 사슴이 아니라 거북이다
그리고 한글로 된 허장군 성경책으로 무속신앙책에서 거북과 매미를 하늘 신으로 부르고있다
이곳의 허씨는 고려현 종이 나주로 피난가다가 이곳에서 허씨 세력이 고려현종 왕비 둘을 허씨 외손녀로 바꾸어 고려말에서 조선말까지 이어왔다
그런데 일본인이 이 거북을 없애고 인본인이 저주하는 '빠가야로 (馬鹿) ' 즉 사슴으로 고처서 엉뚱한 금강산신화로 만들어 총독부 에서 교과서로 만든것을
여과없이 영문도 모르고 일본인의 저주하는 욕설 '빠가야로' 사슴을 우리의 토탬신으로 여기고 있다
朝鮮の羽衣物語(선녀와 나무꾼)」「高橋享,『朝鮮の物語集附諺』,
「滋賀の中の朝鮮」によると、天女の羽衣伝説は朝鮮の名勝地にたくさんあり、とくに「金剛山の八仙女」伝説は有名で余呉湖の伝説と良く似ているそうである。朝鮮から海を渡って日本に入り、北陸の敦賀から飛鳥や奈良の都を目指すなら、当時の余呉は、琵琶湖の東岸を経由するか西岸を経由するかの街道の分岐点で、宿場もあったろうから、朝鮮の伝説が定着してもおかしくはない
한민족 명절 추석은 신라시대 가배(嘉俳)라고 했다
가배(嘉俳)는 가야국 김수로왕 토탬신 거북을 말한다
그리고 그 제사는 차(茶)를 올리는 차례상이 제사상이였다
한국의 차는 허황후가 중국 사천성에서 가저와 김해에 심고 그리고 태산태수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가져와서 지리산에 심었다고 전한다
토번국 정벌군 허기장군이 당나라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여 죽음에서 살아난 당현종이
‘신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친필 극찬하는 찬양시를 하사하고 수양아들 이씨 성을 하사하여 당나라 성왕(盛王)이라는 직위를 받았다
그러다가 당현종 태자 숙종이 황제가 되어 신라로 귀국하여 가야 국토회복의 꿈을 키운다
그허기 장군 후손 태산태수 허사문이 장보고 후손과 최치원을 규합하여 후백제 견훤 이씨 성으로 정복하려다가 고려에게 실패하였다
그러나 태산태수 허사문의 둘째아들 허겸 후손이 이허겸으로 성을 바꾸어 고려 현종때
부터 이자의 이자겸 왕궁세력을 장악하여 무신정권 이의방으로 이어진다
고려의 충열왕은 꿈에 추석에 만월대에서 역대 왕들이 노는 것을 보앗다고 하여
만월대에서 제사를 지냇다
이의방의 동생 이한의 후손 이성계가 조선태조가 되었다
그래서 조선태조를 조선의 국가신으로 모시고 음력 8. 15 보름날 추석날에 왕능제사를 올리는 날이였다
신라시대 허기장군이 당나라 최고의 고급품 차를 올리는 제레였다
그런데 왕족만의 제사 지내 차례 (茶禮)를 양반귀족이 모방하여 추석날에 산으로 가서 묘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 양반의 상징이였다
그런데 조선 중종의 모화정책으로 공자제사 형식으로 차례가 아닌 대 종묘제례형식 그대로
산능에서 거행하였다
그 제례를 시시비비로 대신이 싸워 당파싸움으로 특히 노론파들이 망해버린 중국 명나라의 원수를 갚고 명나라를 맹종하는 행위로 한민족 거북 토탬신앙 차례를 버리고 말았다
일제 통치로 모두가 양반이 된후 누구나 제사를 왕족의 규모로 산에서 올리는 것이 양반의 품위가 되었다
그 사치성 제사경쟁대회가 된 결과 지금 추석에 고향에 가서 거대한 제사문제로 이혼 분쟁이 되는 가정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은 저 출산 세계 1위국 겨우 태어난 남자 총각은 모두 독자와 장남뿐이다
여자는 독자 장남이 질색이다
그래서 저소득 후진국 아시아 에서도 제사를 잘 지내는 배트남 여자를 가문제사를 위하여
일방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한국인과 피부가 똑같은 몽고. 중국 처녀는 제사상 차림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려 와 조선초기의 찻잔을 올리는 간소한 '차례'를 당파 특히 노론파 들의 행동으로
한국이 세계경제 10위 선진국이 되어도 추석 설 축제에 가장 설래야 할 날이 고통의 날로 되기도 한다
추석은 '가배' 거북 발음소리이다 김수로왕이 거북으로 나타나라고 온 국민이 마구 뛰고 춤추는
환희용약(歡喜勇躍)의 날이였다
추석에 올리는 차 (茶)는 가야국 건국시 부터 사용했고
한민족이 당나라를 구출한 감사표로 허기장군에게 동방예의지국과 차를 보내어서
허기장군이 정착한 전북 정읍시 산내면 용장사의 풍경은 차병(茶甁) 모양으로 만들어 거북과 부처님에 차 (茶)
를 올린다 하였다 (고려 김극기 시)
태산군 제사터 야생 차나무가 태산태수 군청 성황산에 살아있었고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 태인현 에서도 차. 대추. 석류. 감. 생강. 인삼의 생산지로 되어.있다
설날과 추석날 엄청난 재물을 소비하는 데 추석과 설이 무엇인지 어떤 역사인지도 모른체
조상 제사날로 여기고 있다
경기도 충청도 거북놀이,
안동의 놋다리굿(銅橋),
임실필봉 농악의 노디굿,
정읍농악의 기와밟기, 놋다리굿과 같다
거북이 올라와 다리를 놓았다 는 신화
조선 삼신산은 거북섬 셋이라고 산해경에 기록했다
추석에는 태초 조선의 종교신 가배 거북을 생각도 없다
대전시 대별동은 못 속에 큰 자라가 놋다리를 이어준 전설 대. 별(大鱉)이라 불리던 것이 대별(大別)로 되었다
농악에서 놋다리 노디 굿은 이런 종교신 자라 거북을 모시는 명절날 필수 풍속이다
노(能)는 일본 탈춤 노가꾸(能樂) 능이 비내리는 수신의 뜻 놋다리 노디 노들 노량등 물가의 거북 자라신을 찬송하는 뜻이다
모든 비석 머리 모자는 천신(天神)의 새를, 밑 받침돌은 거북 지신(地神)을 의미한다
천신은 새 그 하늘새가 나리는 날을 설날이라고 하여 ‘까치까치 설날’ 그 이름이 있고 삼족오 그리고 절건물 입구 이름이 대웅전(大雄殿) 하늘새집이라는 뜻이다
통일신라시대 허기장군이 당나라 현종의 세력으로 사실상 신라를 제압한 경덕왕 시대부터
추석을 가배날이라고 햇다
가배날은 길쌈 베짜기 대회를 하여 그옷감을 천신으로 모시는 솟대(蘇塗짐대)를 빙빙돌면서
기도하는 농악놀이 였다
가배놀이에서 회소곡(會蘇曲)이 솟대를 돌며 노래하는 강강술래 지금의 소리이다
그 소리가 백제가요 정읍 신라가요 동동소리와 같은데 조선중종이 중국 아악형식으로 느리게 낮게 조작하여 맥빠진소리로 되어있다
그 노래소리가 '쾌지나칭칭나네' 소리이고 전라도 '강강술래' 역시 김수로왕 구지가 '구야구야수구현아' (龜也龜也首龜顯아 ) 지금의 노래와 변함이 없다
추석에 강강술래야 하고 외치는 것은 거북신에게 복을 비는 온마을의 종교행사였다
추석에 고향에 가서 고향종교행사를 함께 하는것이지 지금처럼 개인이 개인 제사를 지내는 일은 없다
자기 조상은 그 조상의 제삿날 가족이 지내는것이 엿는데 양반의 자격을 제사상 차리는 사치품으로 전락하여 버렸다
일본이나 유럽의 축제를 보라
성탄절에 개인 가족이 성당에가서 종교행사를 하듯이 우리도 신라시대 당산 솟대를 가배놀이에서 회소곡(會蘇曲)이 솟대를 돌며 노래하는 고향이 없다
추석명절에도 정치인의 투쟁소리를 주로보도하고 우리 종교도 아닌 중국에도 없는 거판한 공자제사법을 민족전통으로 거짓 보도한다
선거당선으로 왕이 되는 한국은 학문적 전통문화 까지 선거운동 공로자로 특채되어 전혀모르는 엉터리 내용으로 보도되어 국민이 역사문화 문맹이 되어간다
설과 추석을 부모님 제삿날로 절 만하고 세배돈을 버는 날로 안다
유교적 가문자랑으로 여기던 우리나라 가장 큰 욕설이 “잡것” 또는 “잡놈(雜)” 이였는데 이제는 잘못된 교육과 보도로 옛날 조상이 보면 기절을 할 현실에 와 있다
조선정치 노론파들이 자기 득세만을 위해 민족을 망치고 만든 추석과 설날 가배날 새날이 그가문에 시집오는 처녀가 없어서 변질되어 간단한
차례 (茶禮)사라지고 이유도 모른채 교통지옥에서 고생으로 마친다
지금이라도 추석과 설의 올바른 역사문화 교정교육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것은 없고 정치적 자기 이익 투쟁으로 교육 문화는 없다
새머리에 세발거북의 발 같이 생긴 상고시대 은나라 종교신앙체
고구려 삼족오(三足烏)는 거북과 비들기를 결합한 원시 토탬종교 신앙이였다
원시 농경시대는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기우제 제사의 기능이 우수한 무당이 왕이였다
그래서 요.순시대 또는 은나라 탕왕시대 궁중정원에[ 숲을 만들어 비들기가 내려 앉아 우는소리가 하늘님의 소리로 알고 비들기 소리를 불교법당의 ‘나미아미타불’같은 기도소리로 반복하여 외치며 우는소리가 기우제 그시대 종교 음악이였다
비들기의 깃털 모양이 가슴에 그대로 새겨저 있다
발도 자라나 거북이 모양과 유사하다
세발 까마귀로 유교적 불교적 과학적 해석은 틀린다
음악도 도레미파나 궁상각치우가 아닌 새소리 그대로 내는노래가 찬송가이고 천자문외우기 자장가 정읍사 동동이 새소리이다
제사용 술잔니나 향불피우는 향로에 왜 새가 있고 세발다리를 장식하는 그 이유를 지금까지 말하는 자가 없다
여기 술잔에 세발과 위에 한쌍의 신앙 종교새가
고구려는 꾀꼬리 백제는 비들기로 지정된다
그 이유는 비들기새는 하늘에서 가장 슬픈 소리로 비를 내려 달라고 애원한다고 믿었다
서양의 창세기 신화 성경에서도 지구 여호수아에 비를 내려 홍수에서 비들기가 비를 관리하여 서양의 사원에서 비들기를 교회마다 보호하여 신성시 한다
비들기가 비를 관리 하는 천신으로 땅에서는 물에서 자라(거북)이 살고 있어서 물을 관리하는 수신(용왕)으로 믿고 기우제에서 기도했다
요순시대 비들기 신앙이 우임금시대에는 물속에 사는 자라 (거북)를 기우제 종교신으로 기도했다
우임금은 아버지는 다리 하나가 없다
우임금시대에 우임금은 아버지 능(能)이 죽어서 제사를 지내는데 아버지 능(能)이 자라가 되어서 걸어가는데 발자욱 마다 세곳에서 물을 품어 나온다 했다
중국의 하은주시대 제사 지내는 향로에는 세발 달린 솟을 사용하여 우임금아버지 능(能)을
상징하는 신체가 되었다
술잔도 3족 제사 그릇도 3족으로 비를 내리는 주술적인 의미로 본다
이런 능(能)은 일본 말로 노(能)라고 하고 가면극이 노가꾸(能樂)이다
일본이우리의 고취 나레 풍물로 불리는 굿을 ‘농악(노가꾸)’으로 부르게 명한 것도 그런 노(能) 즉 우임금의 아버지 홍수관리 종교신을 의미 한다
한자 고문사전에서 세발자라, 내 능할능,으로 우임금아버지 이름으로 되어있다
태인허씨 이자겸의 후손 공예태후가 살았던 전남고흥 백련사 사적비. 비석은 고려숙종 때의 것, 돌거북과 머릿돌은 고려시대의 것이다.
머릿돌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백련사에서 제일 오래된 유물이다. 백련사는 고려 후기에 8국사를 배출하였고 고려 고종19년(1232)에 일어난 참회와 정토를 강조한 백련 결사운동은 송광사의 정혜결사운동과 함께 고려 후기 불교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것이어서 그 당시 백련사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고 고려시대 비들기머리 거북다리 상징 비석을 본다.
고려시대 비석에는 비석 머리는 기와집 모양 즉 비들기 상징이고 아래는 가야 거북이를 상징하였다
노래라는 말이 놀이라고 하지만 노례(能禮)라는 기우제 비나리 같은 비를 내리게 비는 비들기 우는 소리 노래로 생각도 된다
우리의 물밭(水田) 논(沓), 놋다리밟기 노디굿 등이 모두 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최초 한문 배우기 천자문 학어집에 비들기는 비를 부른다고 교육시켰다
비를 내리는 하늘의 비들기새와 물 속에사는 자라(거북)이 한몸으로 통합된 천지일신(天地一身) 종교신으로 삼족오(三足烏)가 만들어 진다
기와집의 모양은 새의 날개를 개고앉아 있는모양이다
그런 뜻으로 대웅전( 大雄殿 ;큰새집) 으로 명찰을 붙였다
그(三足烏)를 고증하는 유물이 삼발솟(三鼎) 삼족향로(三足香盧) 삼족잔 으로 중국 은나라에서 전해오다
기자조선이 망명하여 한반도에 정착하여 가야토기 같은 굽이긴 그릇으로 제사를 지낸다
찰흙으로 삼족토기를 만들면 쭈그러들기 때문에 개선책으로 3이라는 의미로 삼각형 구멍을
뜷어서 가야토기 긴굽다리 그릇이 전국에서 출토되고 있다
아마 마한 진한 백제 신라가 이후에 기자자조선 땅을 점령하여 은나라족 기자조선이 비슷한이름 가야국으로 남아있게 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야 김수로왕 거북이의 그시대 조각상 거북모양 자연석 고인돌
가야국은 시조 김수로왕이 거북이라는 종교신으로
‘거북아 거북아 어서 나와라
안 나오면 구워 먹을란다’
라는 최초의 노래가 생긴다
가야망국 후에 가야족이 이곳으로 망명 남원 정읍 부안 서해안 남해안 해상세력 태인허씨로 독립운동 하였다
고려말기 정몽주의 제자 권근의 시에서 부안 변산이 변한 땅이라 변산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안록산의 난에 참전 평정후에 인천이씨 이의방 이자겸 세력으로 이의방 동생 이 조선태조 이성계의 조상이된다
그래서 가야족 전통 가야토기 긴굽그릇이 한국의 제사용 목기로서 남원에서 주로 생산 된다
한국의 제사용 목기는 삼족오(三足烏) 형태로 위는 비들기새 아래는 거북의 3다리를 의미한 그릇이다
가야인 김해김씨 김유신의 동생은 남편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죽자 거북의 등에 비석을 세운다
그리고 비석머리를 비들기 모양으로 아래는 거북이모양으로 한국고유 비석이 생성되었다
한국의 기와집은 비들기색 흑청색으로 만들기도 타국 빨간 기와보다 힘들다
이것은 삼족오형태의 향로에서 고려와 조선시대 비석문화 성행시대 삼족오 모양의 변형이되었다
가야인 백제망명족 태인허씨 독립군이 안록산의 난에 지원군으로 참전하여 그공으로
노획한 당나라 도공이 가야토기를 당나라식으로 거대하게 만든 부안 출토 토기와 가야토기 비교사진
그리고 백제에서 독립운동을 한 친백제계 태인허씨 허이기와 김유신의 후손 전주도독 김원웅이 연이어 당나라 안록산의 난 참전으로 승리 그 세력은 당나라 도공을 대거 노획하여 고려청자기를 고려시대 부안, 강진 그들 터에서 만든다
이순신장군의 거북선도 해양세력 가야족의 종교신앙 거북신앙선박의 계승일뿐 이순신의 발명은 아니다
지금까지 삼족오(三足烏)를 학계에서나 백과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평하고 있다
그 시대는 토탬 종교신앙 요순우 하은주시대이다
유교 도교로 풀어서는 오답이 된다
삼족오의 다리는 비들기몸에 자라의 3 다리를 으미한다
삼족오(三足烏) 또는 세 발 까마귀는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의 신으로 널리 숭배를 받은 전설의 새이다. 일부에서는 삼족오의 '오'가 까마귀가 아닌 단순히 '검은 새'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삼족오는 3개의 다리가 달려있는 까마귀를 의미한다. 그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는데, 태양이 양(陽)이고, 3이 양수(陽數)이므로 자연스레 태양에 사는 까마귀의 발도 3개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삼신일체사상(三神一體思想), 즉 천(天)·지(地)·인(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또 고조선 시대의 제기로 사용된 삼족정(三足鼎)과 연관시켜 ‘세 발’이 천계의 사자(使者), 군주, 천제(天帝)를 상징하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삼족오의 발은 조류의 발톱이 아니라 낙타나 말 같은 포유류의 발굽 형태를 보이고 있다.
제사 목기는 가야인 이자겸 이의방 친족 조선 태조이성계 의 풍속으로 가야토기모양그릇에 지금까지
가야식 종교기구 고배목기를 사용한다
http://blog.daum.net/nongaak/7090689
첫댓글 허기 조상님이 신라의 사신으로 당나라 안록산의 난때 당태종을 구하면서 이씨성을 하사받아 여기서 인천이씨가 나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 연구한 글에 보면 가야가 패망하며 정읍일대로 간 허씨족이 백제가 멸망하며 일부가 당에서
안록산의 난때 현종종을 구하면서 성왕칭호와 이씨성을 하사 받고 당현종이 죽자 신라의 사신으로 오고
정읍 태인의 옛 지명 시산을 근거지로 삼으신 허기 장군님의 후손 허사문 시조님께서 태인허씨의 시조가 됨
그후 둘째 아들 허겸 조상님께서 인천 이씨의 시조가 되시고 후에 인천이씨 세력 이자겸,이의방이 고려 무신 정권창출, 이의방의 동생 이한의 후손 이성계가 조선 개국-먼친척됨^^
그런데 연대가 조금 안맞는게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문 조상님은 고려건국시에 견훤 공격한 왕건에게 군량미를 제공하여 양천허씨 시조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허사문 시조님은 고려때 시산군으로 봉해진 것이면.... 시기상으로 허사문시조님께서 허선문 조상님의 동생이 되는건지요?
허사문 시조 님은 왕건의 부마 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