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익률 35% 노바티스의 지메네즈 CEO "나홀로 연구는 한계… 네트워크형 R&D로 신약 출시 세계 1위"
매년 세계 인구의 15%꼴인 11억명이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한다. 2011년 585억달러(약 65조원) 매출을 달성한 글로벌 기업인데도 영업이익률은 35%나 된다. 전 세계 기업을 통틀어 두 번째로 많은 연구개발(R&D) 투자비를 지출한다….
2011년과 지난해 2년 연속으로 '포천'지(誌)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제약회사 1위'에 오른 노바티스(Novartis) 얘기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한 종류의 신약(新藥)을 내놓기 위해 평균 13년에 걸쳐 10억달러(약 1조 600억원) 정도를 쏟아붓는다. 그런데도 성공률은 5% 남짓하다. 신약에 대한 특허 기간(통상 10~15년)이 만료되면 복제약이 쏟아져 살벌한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최근에는 재정이 악화된 선진국 정부가 건강보험 지출을 대폭 줄여 약값이 낮아지고, 경기 침체 영향으로 약품 소비까지 줄고 있다.
노바티스는 이런 삼중고(三重苦)를 뚫고 2007년부터 지난해 1분기까지 미국·유럽·일본 등에 43개의 신약을 출시해 화이자(33개)·머크(29개) 등을 압도하며 이 분야 세계 1위가 됐다. 글로벌 업계 순위도 2009년 6위에서 2위(2011년)로 상승했다. 포브스지는 최근 "노바티스가 만년 세계 1위인 화이자를 제치고 2014년부터 업계 1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바젤=이신영 기자
기자는 지난달 초 스위스 북부 프랑스와 독일 접경지인 바젤에 있는 노바티스 본사 Forum1 2층 집무실에서 조셉 지메네즈(Joseph Jimenez·54) CEO와 마주 앉았다. 성공의 비결을 묻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바로 답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하고 믿을 만한 성장 무기(武器)는 전방위 R&D입니다. 우리는 2011년에 총매출액의 16.4%, 순이익의 98% 수준을 R&D에 쏟아부었습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와중에 오히려 R&D에 올인하는 역발상으로 치고 나갔다는 것이다. 2009년 74억달러였던 노바티스의 R&D 투자는 2011년 96억달러로 30% 늘었다. 노바티스는 도요타에 이은 세계 R&D 랭킹 2위 기업이다. 차별화된 R&D 전략에 대해서 말할 땐 더욱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우리의 비결은 문어발 같은 '네트워크형(型) 모델'이에요. 회사 자체 연구소와 바깥의 병원·대학·연구소·벤처기업은 물론 환자와 경쟁사까지 모두 협력 파트너로 삼고 있어요. 이들과의 협력 프로젝트만 매년 500여개입니다. 모든 이해 당사자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수백 개의 '바이오 네트워크'가 힘의 원천이지요." 구체적으로 미국 보스턴과 영국·중국 등 세계 15곳에 자체 R&D센터를 가동 중인데, 전문 연구 인력만 7000여명이다. 120개 바이오·제약기업, 하버드대·MIT 등 280개 명문 대학·연구소·병원 등도 '외부 R&D 친구'들이다.
노바티스 모델의 정수(精髓)는 글로벌 제약사 가운데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는 '노바티스 바이오벤처펀드'이다. 1996년 만들어 세계 최대 규모(7억달러)인 이 펀드는 암·유전적 질환·전염병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일류 바이오 벤처기업 150개를 엄선해 기업당 1500만~2000만달러를 투자해왔다. 벤처기업의 독자 기술과 100% 독립 경영을 보장하는 대신 노바티스 과학자들이 젊고 창의적인 벤처기업가들의 연구방식을 옆에서 관찰하며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대기업에서 놓친 틈새시장과 R&D를 파고든다. 그는 "미(未)정복 희귀 질병을 앓는 전 세계 환자들을 매월 한 차례씩 초대해 환자 입장에서 연구한다. 또 경쟁사가 연구를 포기한 초기 임상 단계의 신약 후보물질을 사들여 정식 치료제로 개발하는 데도 공을 쏟는데, 이렇게 해서 내놓은 신제품이 전체 완성 신약의 30%를 차지한다"고 했다.
"'혁신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Innovate or Die!)'가우리의 생존 철학입니다. 내부 자만심을 버리고 어떤 외부 자원이든 연결해 혁신 아이디어를 긁어모으고 있습니다." 글로벌 식품기업인 하인즈(Heinz)의 북미·유럽지역 CEO 출신으로 약학박사·의사들이 CEO를 맡는 세계 제약업계 관행을 깬 그는 "승리를 향한 강한 열망으로 나를 계속 밀어붙이는 게 즐겁다"고 했다. "병원과 의사 중심 기업에서 환자 등 최종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종합 건강관리' 기업으로 변신해야 살아남습니다."
Weekly BIZ는 인터뷰 추진 1년여 만에 지메네즈 CEO를 만나 '세계 최고 R&D 생산기지'이자 '혁신 주도형 기업'인 노바티스의 성공방식을 추적했다. 총인구 19만명의 소도시인 바젤에 자리 잡은 노바티스 본사는 R&D센터와 업무동 등 20개 건물이 투명한 유리창과 기하학적 형태의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20만㎡(약 6만평)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데 프랭크 게리(Gehry) 등 세계 최고 건축가들이 친환경 건축을 표방하며 설계해 '노바티스 캠퍼스'로 불린다. 캠퍼스 곳곳에는 흰색 가운을 입고 거니는 수백여명의 연구원들의 활기찬 표정에서 '혁신'과 '연구' 분위기가 넘쳐났다. 바젤에는 1만명의 노바티스 직원과 가족을 포함해 노바티스 관련 인구만 3만여명이 살고 있다.
하지만 지메네즈 CEO가 부임한 2010년 2월 노바티스의 '혁신 엔진'은 멈춰 있었다. 신약 2종이 미국 식약청(FDA)의 승인을 받지 못해 수십억달러의 손실이 났고 매년 50억달러 이상 팔리며 총매출의 10% 이상을 맡던 효자 제품(고혈압 치료제인 디오반·Diovan)의 특허가 2011년부터 소멸해 '특허 절벽'(patent cliff)이 예고되는 상황이었다. 지메네즈 CEO는 하인즈 근무 시절 세계적 히트 상품인 녹색 케첩(green ketchup)을 개발한 소매유통 전문가이다. 노바티스 내부에서는 '물정 모르는 외부 초보자가 어떻게 우리를 이끄느냐'는 회의적 눈총이 많았다.
"저에 대한 시선이 참 따가웠어요. 제약업계가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었거든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특허 만료로 1060억달러 정도 제약 시장이 줄어드는데 각국 정부의 신약 심사와 제약 규제는 크게 강화돼 더 이상 호황을 기대하기 어려웠어요. 주력 수출 대상인 유럽 국가들에서는 약품 가격이 20% 정도 떨어졌어요."
◇"세계 2위 제약사이지만 우리는 '을(乙)'이다"
―지독한 위기 상황에서 첫걸음은 무엇이었나? "의사도 과학자도 아닌 나를 증명해 보여 부하 직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내는 게 중요했다. 전체 일정의 30%는 세계 140개국에 진출한 노바티스 지사와 R&D센터를 방문하고, 30%는 인재 개발에 쏟고, 나머지 30% 동안 회사의 미래 예산과 전략을 짰다. 연속 이틀 똑같은 스케줄로 채우지 않고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해 발로 뛰었다. 1년 동안 매일 아침 7~8시까지 생명과학에 정통한 실무 직원으로부터 질병과 약에 대해 '과외 수업'을 받았다."
―그런 노력 끝에 내린 판단은? "이제는 의사들을 상대로 영업하면 매출이 늘어나는 '갑(甲)'의 시대가 끝나고 시장에 신약을 출시한 후에 환자가 약의 효과를 봐야지만 대가를 지급받는 '을(乙)'의 시대라는 것이었다. 실제 정부나 병원은 환자의 치료 성과가 날 때에만 보험료를 지급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래서 약품 투여 후 환자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의사조차 신약 영업 담당자 면담을 꺼린다. '약의 효능'만 장황하게 설명한 두꺼운 보고서나 안내 책자는 무용지물이었다. 자만심을 버리고 외부 흐름에 기업을 활짝 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대표적으로 우리의 핵심 역량을 의사는 물론 최종고객인 환자에게 쏟는다.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한 'B2B'적 행태를 버리고 진정한 'B2C'기업으로 변신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환자가 우리 약품에 효과를 볼 수 있게 '성과 중심(performance oriented) 접근법'을 실행한다. 예컨대 얼마 전 영국 보건 당국이 루센티스(Lucentis)란 약이 비싸다며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겠다고 연락해 왔다. 보통 때라면 자존심을 내세우며 계약을 끊지만 우리는 '14회까지 투여해도 효과가 없으면 추가 투여량에 대해 돈을 안 받겠다'고 대응해 계약을 유지했다. 회사에 '진단과(診斷課)'를 만들어 환자가 노바티스 약을 처방받았을 때 테스트를 거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한 후 병원에 납품한다. 병원과 협조해 의사 진료도 돕는다. 예컨대 환자를 원격 모니터하며 지속적으로 약 복용 패턴과 효과 등을 추적·관리하는 팀을 운영한다."
―150년 역사의 대기업으로서 변신에 대한 저항이 많았을 것 같은데. "끊임없이 다독이고 설득했다. 제약 기업은 최종 고객인 환자가 약을 계속 복용하고 '1등 브랜드'로 알아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 5년 전 우리는 러시아의 야로슬라블(Yaroslavl)시에 혈압관리센터를 열었다. 이 지역은 고혈압약 복용 중단으로 합병증을 앓는 환자들이 많아 시 당국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우리는 센터에서 환자 대상으로 고혈압 위험성 교육과 훈련을 실시해 약 복용 비율과 안정적인 혈압 유지 비율 등을 2배 높였다. 제약사가 병원이나 정부가 하지 못하는 틈새를 찾아 대신 해결해준 것이다. 이를 통해 시 정부는 재정 지출을 절약했고, 우리(제약사)는 제약 판매와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었다."
▲ 그래픽=정인성 기자
◇환자·병원·약국·경쟁사 등 전방위 거미줄 R&D
―노바티스가 경쟁사보다 신약을 훨씬 많이 내놓는데 비결이 있나? "우리도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대다수 제약업계의 생존 방식은 시장에서 히트하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 신약을 내놓고 10~15년 동안 거기에 매출을 의존하는 것이다. 노바티스도 그랬다. 2007년 당시 의약품 매출액에서 최근 5년간 출시한 신약 비중은 고작 10%였다, 나머지 90%는 최소한 6년 전에 만든 약품 판매로 채우고 있었다. 경쟁사와의 차별점이 전무(全無)했다. 그래서 혁신으로 돈을 버는 구조로 탈바꿈에 착수했다."
―당신의 R&D 철학이 궁금하다. "어떤 기업도 최고의 R&D 인력을 확보하고 그들에게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세계 최고 대학은 물론 작은 벤처회사와도 손잡는 등 파트너를 다각화해야 한다. R&D 비용은 기업 내 숨어 있는 비용 절감 요소들을 찾거나 아이디어로 마련할 수 있다. 나는 역경매(reverse auction·판매자가 구매자에게 낮은 단가로 제품을 큰 묶음으로 파는 것) 같은 유통 기법 혁신으로 CEO 취임 후 연간 10억달러씩 절감해 R&D 투자를 더 늘렸다. 성과가 저조한 R&D 과제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 약품 개발을 중도 포기하는 바람에 관련 기업에 1억달러를 물어주기도 했다."
―노바티스는 원래 신중하고 오랜 시간 걸리는 R&D로 유명했는데 어떻게 체질을 바꿨나? "먼저 '5%룰'을 만들었다. 매출이 5% 늘면 R&D 비용도 최소 5% 증가시키되 매출이 그대로여도 올린 R&D 비용은 줄이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둘째는 외부 협력 프로젝트에 R&D 예산의 30% 이상을 투입해 개방형 네트워크에 주력했다. 셋째는 해당 신약에 꼭 맞는 유전자를 가진 환자로 대상을 좁혀 임상시험의 적중률과 효과를 높였다. 통상 10년간 3단계로 진행되는 항암약물 임상을 2단계로 압축해 1~2년 만에 신약을 완성하기도 한다. 스피드를 크게 높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일 신약 연구로 단일 질병 치료'란 목표 대신 '단일 신약 연구로 3~4가지 질병 치료'로 목표를 바꿨다."
노바티스는 개방형 네트워크의 하나로 업계 최초로 미국에 8000여개 약국 체인점을 둔 월그린(Walgreen)과 제휴해 약국 고객들을 상대로 실시간 약물 임상도 진행한다.
지메네즈 CEO는 "시장에 약을 내놓은 뒤에도 추가연구를 통해 새로운 시장 발견에 힘썼다"며 "환자가 세계 6000명 남짓한 희귀병 치료제인 일라리스(Ilaris)란 약에 대해 추가 연구를 한 끝에 300만명의 환자가 있는 통풍(痛風)이나 소아 관절염에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시장에 다시 내놓기로 했다"고 했다.
2011년 노바티스에서 최근 5년간 신약의 매출액 대비 비중은 28%로 2007년 대비 3배 정도 올랐다.
◇"최하위 직원들의 입을 열어 경청하라"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어떻게 쇄신했나? "취임 후 저명한 행동경제학자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더니 '조직의 모든 단계에서 진실을 말하도록 하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를 위해 젊은 직원들을 만나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주기로 했다. 나는 매월 한 차례씩 20·30대 최말단 직원들과 미팅을 한다. 나는 이들에게 '상관을 설득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할 비법'을 알려주고, 그들로부터는 현장에서 느끼는 아이디어를 수혈받는다. 나는 이를 '스피크업(speak-up)'문화라고 부른다."
―활발한 소통으로 얻은 성과가 있는가? "일례로 한 30대 중반의 직원이 '특허 절벽'을 돌파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아이디어를 냈다. '아피니토(Afinitor)'라는 신장암 치료제를 개발 중이던 직원이 나를 만난 자리에서 '이 치료제는 뇌종양·유방암 등 다양한 질병에 동시 적용이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지금 예산으로 도저히 임상시험을 감당할 수 없으니 추가 예산을 배정해달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예산을 늘렸더니 성과는 경이적이었다. 이 치료제만으로 2017년까지 22억달러 이상 추가 매출이 예상된다."
―신흥시장 공략은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미국과 스위스에서 향후 5년 동안 2000명을 감원하지만 중국·인도·러시아에선 2015년까지 5000명을 증원할 계획이다. 브라질·중국 등 신흥국 지사에서 유망 임원 25명을 뽑아 매년 두 차례 본사 이사회 멤버들과 함께 워크숍을 열고 '브라질에 연 신규 R&D공장에 어떤 인재를 배치할까'와 같은 실전형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글로벌 감각과 경영 역량을 높여 차세대 리더로 키우는 동시에 신흥시장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당신이 꼽는 CEO로서 핵심 자질은? "성과에 대한 강한 열망과 실행력이다. 스탠퍼드대 재학 시절 대학 수영팀에 있었다. 1학년 때 미국 대학 수영대회에서 20위를 했지만 내가 주장을 맡고 3년 후 3위까지 올라갔다. 단 한 번도 경쟁적이고 승부사적인 자세를 잃지 않은 게 나의 강점이다. 인재를 뽑을 때 내가 항상 물어보는 질문은 '성과를 이루지 못했을 때 잠이 오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