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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대원스님이 운영하는 '야크죤'(http://www.trek.pe.kr/)이라는 사이트를 들르게 되었는데, 이곳은 히말라야 트레킹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여기 방명록에 어떤분이 랑탕 여행기를 남긴 '산지니'님에게 문의할게 있는데 연락처를 알 수 없냐는 글을 남긴 것을 보고 혹시, 우리 대장님이 아닐까 해서, 지난 번 정기산행때 물어보니 맞다고 하십니다.(~역쉬~) 그런데, 문제는 그 사이트에서 랑탕 여행기를 찾을 수가 없어서 여쭤 본다는게 어쩌다보니 잊고 지내다가 오늘, 야크죤에 들어가 살펴보니 우측 상단의 메인으로 들어가보니 거기에 랑탕 할람부 지역에 대장님의 글이 올려 있었습니다.
이 랑탕 트레킹을 한 시점은 2001년 4월이고 기록은 9월로 보이는데, 이 글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기록의 소중함을 느낌니다. 산행보다 산행기 쓰기가 더 어려울 때가 많은데 귀찮고 피곤해도 이렇게 기록을 남겨놓으니 후답자들에겐 천금같은 정보제공이고 뜻하지 않게 지인에게는 반가움이고 자랑입니다.
'지반 다칼'이라는 포터와 11일 간의 트레킹의 기록이므로 그 분량이 만만하지 않습니다만, 기록이 하루하루 나뉘어 있으니 시간이 될 때마다 정독을 하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대장님, 글쓴이의 허락없이 옮겨왔다고 저를 미워하시진 않겠지요? 용서하세용 ㅠㅠ
구름에 가린 왼쪽 하단이 사브루베시. 여기서 오른쪽으로 활처럼 휜 계곡이 Langtang Khola이고 그 위로 랑탕리룽이 보인다. 오른쪽 상부는 티베트에 위치한 시샤팡마이다. 그 아래로 보이는 봉은 강첸포, 도르찌락파 등이다. source : NASA
랑탕계곡이 확대된 장면으로 랑탕2봉, 랑탕리룽, 체르코리, 얄라피크, 모리모토피크, 랑시샤리 등이 보인다. 랑탕리룽 아래로는 구름에 가린 고사인쿤드이다. source : NASA
이 글은 2001년 4월 네팔 랑탕트레킹을 다녀오신 <산지니>님의 트레킹기입니다. 2001년 9월부터 <네팔사랑>에 올린 글을 저자의 허락을 얻어 여기에 다시 싣습니다. 랑탕트레킹에 대한 좋은 정보를 주신 산지니님께 감사드립니다.(200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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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에 랑탕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습니다.
이제서야 그기록을 조금 펼쳐 보겠습니다.
특별히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고 도움이 될만한 내용도 별로 없겠지만...
제1일 : 카투만두에서 샤브르벤지까지
샤브르벤지라는 지명은 출발하기 직전에 알았다. 랑탕은 오직 둔체에서 시작하는 줄 알았다. 아침 여섯시에 택시타고 버스터미널에 가니 넓은 벌판에 사람도 많고 차도 많다. 도대체 어느 차를 타야 하는지 감도 못 잡겠다. 어제 이번 트레킹에 동행하는 포터 지번이 표를 예매해와서 좌석에 앉아 갈 수 있었다. 행선지도 붙어있지 않은 버스를 어떻게 알고 타느냐고 물어보니 루트번호를 보고 탄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버스 차체에 작은 글씨로 루트8이라고 씌어있다.
여섯시 사십분 샤부르벤지행 버스는 출발했다 샤브르벤지행은 아침 여섯시 반과 일곱시 반 두 차례밖에 없다. 큰배낭은 지붕에 싣고 작은 배낭은 내가 안고 탔다. 버스는 초만원이다. 버스 바닥에 짐이 잔뜩 실려있어 다니기도 불편하다. 나중에 보니 그 차에는 사람만 탄 게 아니고 염소와 닭도 타고 있었다. 물론 지붕에도 많은 사람이 탔다.
여덟시경 카가니라는 고개를 넘었다 별로 올라간 것 같지 않았는데도 카가니는 높이가 2000미터나 된다. 고개를 넘자 내가 앉은 오른쪽으로 전망이 확 트인다. 까마득한 아래 골짜기가 내려다보이고 예의 그 계단식 경작지가 빠꼼한 틈도 없는데 계단식 밭에는 누렇게 밀이 익어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바퀴를 이용해서 밀을 탈곡하는 주민도 보인다.
옆자리에 앉은 포터는 이름이 지반 다칼이고 나이는 30세. 그는 타멜에 있는 한국음식점 김치하우스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자기말로는 정식 직원이 아니란다. 그냥 거기서 무보수로 일하면서 포터일이 나오면 포터일도 하고 또 사람을 많이 알아두어서 가이드 쪽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는 모양이다. 검은 피부에 눈이 쑥 들어간 아리안계이다(브라만 계급이라고).
다칼이라... 내가 93년도에 페리체까지 가는 쿰부히말 트레킹에서 그 팀의 가이드의 이름이 pc 다칼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얼굴이 닮은 것 같다. 그래서 그 얘기를 했더니 세상에 이런 우연이...... 그들은 친형제였다. pc다칼은 현재 일본에 있다고 한다. 그때 그친구가 일본을 몹시 가고 싶어했었다.
10시반경에 트리슐리에 도착했다. 이곳은 래프팅으로 유명한 큰 마을이다. 트리슐리에서 운전사와 차장과 같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8년만에 네팔음식을 먹어본다. 낯선 음식을 낯설어 하는 체질이라 카투만두에선 한국식당에만 다녔다. 오랜만에 달밧을 먹는것이 어색하지만 먹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밥은 더 주지만 더 먹지는 못하겠고 반찬은 더 주기에 받아먹었다. 밥값은 35루피로 카투만두 한국식당의 8분의 1에서 4분의1수준이다.
트리슐리는 해발이 650m로 1400m의 카투만두에 비하여 고도가 낮으니 무지하게 덥다. 당연히 버스안도 한증막이다. 차가 달리면 바람이 들어와 시원하지만 바짝 마른 땅에서 먼지가 얼마나 많이 나는지 문을 자주 열었다 닫았다 해야한다.
트리슐리까지는 일차선이고 상태가 엉망일망정 포장도로였으나(고속도로라고 부른다) 트리슐리 지나면서는 비포장도로이다. 먼지가 엄청나게 난다. 길은 마치 지리산 칠선계곡 산비탈 중간에 도로를 낸거 같다. 차가 비껴 지나가려면 마주오던 한 대는 공간이 있는 곳까지 후진해야한다. 커브길은 각도가 180도 되는곳이 예사로 많다.
내가 앉은 쪽은 절벽의 반대쪽이라 산자락의 벽만 보이지만 그 반대쪽은 차창 밖으로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라서(골짜기까지 1000여미터) 거기서 내려다보는 것만 해도 웬만한 놀이기구 타는 것 못지 않겠다. 그 낭떠러지를 달리는 차에서도 차장은 지붕 위로 차비 받으러 오르락내리락 한다 정말 강심장이다. 운전석 위는 붉은색을 위주로 오색실로 치장해서 낡은 차내와 대조를 이루고 운전사는 어떻게 음악을 크게 트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기온이 갑자기 썰렁해진다. 창 밖에서 찬바람이 들어온다. 웬일인가 했더니 지금 차가 가는 곳이 해발 2000미터나 된다. 차가 정차하더니 사람이 모두 내린다. 그리고 지붕의 배낭도 내려서 웬일인가 했더니 랑탕 국립공원 입구이다. 외국인은 여기서 인적사항 적고 국립공원 입장료 1000루피 내고 소지품검사까지 한다. 배낭을 샅샅이 뒤지는건 아니고 꾹꾹 눌러보고 대충 열어보고 통과시킨다. 네팔사람은 그냥 내려서 바리케이트만 통과해서 다시 탄다.
3시 30분 둔체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이 내리고 탄다. 같이 탔던 서양 트레커들이 한명만 남고 모두 내린다. 내가 랑탕 트레킹의 시작점으로 알고 있었던 둔체이다. 둔체에서 조금 떨어진 바르쿠에서 바닥에 쌓여있던 물건을 모두 내린다. 알고 보니 그건 시멘트였다. 버스에서 화물 운송까지 해주는 모양이다. 시멘트 부대에서 먼지가 엄청나게 나서 밖에 나가 서있었다.
여기는 기온이 썰렁하다. 눈발이 날리기 까지 한다. 저 아래 골짜기에 밀이 새파랗게 자라고 있는데 멀리 구름 사이로 하얗게 빛나는 설산이 보인다.
아!!!! 드디어 히말라야로구나.....
바르쿠를 지나면서 저 아래 까마득히 마을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샤브르 벤지였다. 도저히 차가 내려 갈 수 없을 것 같은 계곡으로 차가 내려간다. 만약에 다음에 랑탕을 갈 기회가 있다면 버스 지붕에 타보고 싶다. 버스 지붕에서 그어마어마한 낭떠러지를 보면서 가는 기분은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내가 앉은자리는 계곡의 반대쪽이어서 별로 스릴을 느끼지 못했다.
5시25분, 오늘의 목적지이자 종점인 샤브르벤지에 도착했다. 바르쿠에서 샤브르벤지까지 빤히 보이는 곳을 30분이 걸렸다. 카투만두에서 부터는 10시간 45분이 걸렸다. 배낭을 내리니 완전히 흙속에서 꺼낸 것 같은데 사람들이 깔고 앉아서 납작하게 되었다.
버스가 섰던 바로 앞의 가네시히말 게스트하우스에 들었다. 샤워는 물 한양동이 데워줘서 대충하고 오늘 입었던 남방을 빨았는데 먼지를 얼마나 맞았는지 대야의 물이 흙탕물이 된다. 저녁은 달걀볶음밥과 마늘스프이다(고산병에 마늘이 좋다나 어쨌다나). 볶음밥은 반찬이 아무 것도 없으니 먹기 힘들다. 마늘스프는 한참 먼저 나와 이미 먹어버렸다. 한국에서처럼 국으로 먹어야 되는 건데.
침대 두 개 짜리 더불 룸에서 혼자 잔다. 포터는 자는 곳이 따로 있고 식사는 트레커와 함께 가면 무료제공이란다. 포터들은 빈방이 있으면 빈방에서 자고 방이 없으면 식당이나 마루등 아무 곳에서나 자게 된다.
제 2일 : 샤브르벤지 - 라마호텔
5시 반에 일어나다. 한국과는 시차가 세시간 십오분이니까 한국시간으로 여덟시 경이다. 거의 한국에서의 생활리듬과 같이 생활하게 된다.
두텁게 구운 티베탄 브레드에 꿀과 잼을 발라먹는 bread with hony로 아침을 먹다. 빵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밀가루 빵이고 꿀인지 설탕 녹인 건지 애매한 것을 발라먹었다. 뻑뻑하기는 하지만 어제의 볶음밥보다 오히려 먹기는 편하다.
여덟시에 출발하다. 날씨는 쾌청하다. 큰길에서 곧바로 계곡으로 떨어지니 거기에 체크포스트가 있다. 샤브르벤지는 Y자 계곡 합수점에 위치하고 있고 우리가 가야할 랑탕계곡은 오른쪽 계곡이다. 현수교를 두 개 건넌다. 현수교는 쇠로 튼튼하게 새로 지어졌다. 나무로 되어있어 삐걱대던 옛날과는 다르다.
계곡입구에서 하얀 산이 보인다. 지반이 가네시히말이라고 하는데 지도를 보니 가네시히말은 반대쪽이고 지금 보이는 곳은 수랴피크(5144)이다. 계곡 입구는 넓은 개활지라서 뜨거운 햇살이 그대로 내려꽂혀 매우 덥다. 지반에게 내일부터는 아침 일찍 햇볕이 뜨겁기 전에 운행을 시작하자고 하니 지반이의 반응이 시원치 않다.
랑탕계곡 시작점은 좌우벽이 설악산 구곡담과 지리산 칠선골을 합쳐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다 웬일인지 4월의 랑탕계곡에는 군데군데 나뭇잎이 붉게 물들고 풀들도 누렇게 말라서 완연히 가을 분위기를 풍긴다.
얼마쯤 가자 이제 길은 숲이 울창한 그늘이다 햇볕을 직접 받지 않으니 아주 시원하고 길마저 평탄하니 소풍이라도 나온 듯 발걸음이 가볍다. 이런 숲길은 해발3000미터의 고라타벨라 부근까지 이어져서 운행을 조금이나마 쉽게 해준다.
랑탕을 소개 할 때에 언제나 나오는 전나무 숲은 보이지 않는다. 여긴 오직 활엽수다. 울창한 숲에는 원숭이도 보인다. 카투만두 시내에서 보는 원숭이처럼 꼬질꼬질하지 않고 깨끗하며 꼬리가 길고 얼굴 주위에 흰털이 나있어서 보기에 매우 멋진 모습이다.
11시55분 밤부롯지에 도착.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롯지 주인여자는 샤브르벤지에서부터 우리와 동행이었던 여자이다. 어제 샤브르벤지 오는 버스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반과는 아는 사이였고 올라오는 길에 둘이서 다정스레 친구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이제는 주인과 손님사이가 되었다.
밤부롯지는 위치가 매우 좋았다. 여태까지 숲속에 있던 랑탕콜라와 직접 부닥치는 위치에 있어서 계곡 위와 아래가 모두 보이고 또 그 전망이 매우 좋다. 계곡은 얼마 전에 산사태와 홍수로 위쪽에서 많은 돌이 굴러 내려와 거의 새로 형성되다시피 하고 있다.
화장실이 매우 고약하다. 계곡가에 있는 화장실을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계곡 물이 그대로 흐르고 있다. 계곡 물을 한줄기 끌어들여 천연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까 사람이 거기서 볼일을 보면 그대로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이번에 와서 여러 가지 바뀐 것을 보았지만 그 중에 하나가 화장실이다. 93년 쿰부에서 보았던 낙엽 화장실은 이번에는 보지못했다.
93년 쿰부히말라야에 갔을 때 팍딩과 탕보체에서 화장실 앞에 낙엽이나 대팻밥이 수북히 쌓여있어 낙엽을 왜 여기에 쌓아 놓았을까하고 의아해 했는데 화장실을 들어가면 출입문과 벽만 있고 아래는 그냥 경사진 산비탈이다 거기에 볼일을 보고 나서 낙엽을 한웅큼 집어다가 덮어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장실이 위쪽만 있고 아래쪽은 없는 형태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곳이나 수세식이다. 제법 높은 곳도 간이 수세식 화장실인데 천연수세식화장실은 이곳에서만 보았다.
1시가 채 못되어서 출발했다. 개활지와 그늘길이 교대로 나타나는데 개활지는 덥고 그늘길은 춥다. 라마호텔 도착하기 조금 전에 길가에 있는 풀을 무심코 만져보았다 그풀은 가시가 빼곡이 나있는데 가시가 있는 줄 알면서도 우리 나라의 엉겅퀴 정도로 생각하고 만져본 것이다.
"아이쿠", 깜짝 놀랐다. 벌이나 쐐기에 쏘인 느낌이다. 그리고 매우 아프다. 그 아픔은 저녁에 잠 잘 때까지 계속되었다. 직접 찔리지않고 스치기만한 부위도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통증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없어졌다.
3시55분 라마호텔에 도착했다. 거의 8시간이 걸렸다. 자주 쉬면서 천천히 올라왔다. 라마호텔은 원조 라마호텔이 한집 있고 그 외에는 전부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 나라처럼 원조경쟁은 없었다. 라마게스트하우스라는 마을 맨 위의 롯지에 들었다 위층은 먼저 도착한 洋夷들이 다 차지해서 나는 아래층에 묵게 되었다.
처음 들어간 곳은 조용 할거라고 해서 들어갔으나 너무 어두운 뒤쪽이라 전망이 조금이라도 있는 앞쪽의 방으로 옮겼다. 여기는 전기가 없다. 그래도 태양열을 이용해서 더운물 샤워는 할 수 있었다.
비록 아래층이라서 전망이 그다지 좋지 않음에도 작은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경치는 매우 좋았다. 라마호텔이라는 마을은 그 자리가 아주 안성맞춤이다. 샤브르벤지에서 하루 길에 맞게 위치하고 앞쪽으로 능선이 막고있어 바람도 피할 수 있다. 밤부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는 이 정도의 마을이 들어설 만한 터가 없었던 것같다.
랑탕콜라 건너편에 수량은 많지않아도 길다란 폭포가 있고 그 위에 만년설이 보인다. 계곡에 내려가보니 랑탕계곡 상류쪽에 눈부시게 하얀산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랑탕(6581m)과 랑탕리룽(7241m)이었다. 너무나도 눈부신 자태에 넋을 잃고 처다 보았다. 하얀산을 이렇게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는 건 처음이다. 거기에다 랑탕계곡의 짙푸른 숲사이로 보이는 설산은 너무나도 눈부셨다.
카메라에 들어있는 필름이 다되어서 숙소에 들어가 새 필름을 넣어가지고 나와서 사진을 찍으려니 이미 날이 저물어 노출이 부족하다. 그러나 어두워도 하얀산을 찍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너무 시간을 많이 끌어서인가? 숙소에 돌아가보니 내가 안돌아와서 지반이가 나를 찾아서 계곡으로 나갔다네.
제3일 : 라마호텔 - 랑탕 아랫마을
아침에 일어나 다시 계곡에 내려가서 랑탕리룽을 보고 왔다. 계곡의 푸른 숲 사이로 보이는 랑탕이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롯지에서 식당 일을 돕는 11살 짜리 소년이 아주 명민하다. 소년은 얼굴이 마주 칠 때마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 아주 좋다. 대개 고산족들이 외부인들을 볼 때마다 밝게 웃는 얼굴이다. 그야말로 천진무구한 모습이다. 이곳 롯지 주인들은 모두가 우리 이웃처럼 아주 친근한 모습이다. 나와 그들은 얼굴모습으로는 도저히 구분이 안가지만 옷차림이나 행색이 이방인이라는 걸 알게 된다.
8시 14분 출발했다. 어제는 덥기 전에 일찍 출발하자고 했었지만 워낙 길 자체가 숲속으로 이어져서 굳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일찍 출발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침엽수도 보인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다. 아름드리 침엽수지대를 지나자니 설악산 수렴동 계곡을 지나는 느낌이다. 계곡가에는 두터운 이끼가 덮여 있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라마호텔 지나면서부터 고라타벨라(3000m) 까지는 온통 꽃밭이다. 네팔의 나라꽃인 랄리구라스(roderdendron)가 활짝 피었다. 빨간색에서 분홍색과 흰색까지 있다. 한국에도 이 꽃이 있다. 한국에서의 이름은 만병초인데 상록활엽관목으로 강원도 북부지방에 해발 1000미터 부근에 자생한다 십수년전에 설악산 귀때기청봉 부근에서 이꽃을 딱 한번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6월에 피는데 네팔에서는 4월에 핀다. 한국에서 피는 건 흰색 밖에 안보인다.
고라타벨라에서 레몬티를 마셨다. 93년에 트레킹 때 지겨워하며 마시던 레몬티였다. 신맛을 싫어하던 나는 가이드가 고산병에 좋다고 하는 바람에 억지로 마시곤 했는데 당시 포터들이 마시던게 알고보니 밀크티였다. 나도 레몬티가 싫다 밀크티를 마시고 싶다 하니까 가이드가 우리에겐 안 맞는다면서 못 마시게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마셔보는 레몬티는 괜찮았다. 먹을만하다고 생각했다(많이 마시니까 나중에는 다시 지겨워졌지만). 그때는 음식도 거의 그 친구가 지정해주는 것만 먹었다. 그는 한국에서 오래 생활해서 한국인의 심성과 식습관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체크포스트를 통과하니 여기서부터는 초원지대이다. 그동안 전형적인 계곡 숲길이더니 이제는 넓은 고원이 펼쳐지고 나무도 관목지대이다.
12시10분 당샵(3200m)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점심을 기다리는데 여기는 바람도 심하게 불고 날씨도 춥다. 밖으로 나가 볕을 쬐다가 바람이 너무 차서 롯지 안에 들어가보니 거기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점심먹고 2시에 출발하다. 물한병 샀더니 무려 90루피이다. 당샵에서 20분을가니 참키라는 동네이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황량한 고산지대이다. 3시 5분 랑탕 조금 못 미쳐 언덕 위에 있는 곰파롯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잠깐 쉬고 차만 마시고 가는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곰파롯지는 마을 첫집과 같은 식구들이 운영한다. 밥은 주로 아랫집에서 팔고 여긴 고개 마루이기에 모든 사람이 쉬고 가니까 차와 음료 과자등을 파는 곳인데 거기에는 작은 숙소와 거실 같은 곳이 있다. 엄마는 아래 식당을 지키고 두딸이 매점을 지키나본데 이름이 파상(15)과 부티(12)인 자매는 장난이 심한 소녀들이다.
사람 좋아보이는 프랑스팀의 포터를 짓굳게 놀려대고 짐을 지고 출발하려는 그를 잡아당겨 출발을 못하게 하더니 그 포터가 들고 다니던 대나무 지팡이를 빼앗아서 포터아저씨가 되찾으려고 한참 실갱이 하다 찾지못하고 그냥 가버린다.(다음날 그대나무는 내가 들고 다니게 됐다)
지반의 말이 랑탕까지는 가깝고 강진곰파도 금방 도착 할 수 있으니 여기서 자고 가자는 거다. 랑탕 가봐야 사람이 많아서 자리가 안 좋대나..... 비러머글.. 어제는 굳이 洋夷들이 많은 롯지에서 묵어놓고 오늘은 사람 많아 자리가 안좋으니 가지 말자고 하네.
그래 날 배려해준다는데 좋다 어디 보자 하고 숙소를 보니 여기는 룸과 도미토리의 중간형태이다. 숙직실 같이 생긴 한간 방에 스펀지 매트를 깔고 거기에 커튼을 쳐서 잠 자리를 딱 세 개 마련해뒀는데 거기에 나를 혼자 자게 하겠다는 것이다.
오르내리는 사람이 거의 가까운 랑탕에서 자고 가니까 이집은 숙박은 별로 신경 안쓰고 주로 차와 음식을 파는 것을 위주로 하는 집이었다. 네시까지 기다려봐서 묵어가는 사람이 없으면 여기서 자고 가자고 했지만 지반의 말은 항시 왔다갔다하니 믿을 수 없다.
네시가 되기 직전에 랑탕에서 한쌍의 남녀 트레커가 내려와서 배낭을 내려놓는다. 쉽게 출발하지 않는게 이상타 했더니 그들도 거기서 자고가려고 알아보고 있다. 그러면 지반은 당연히 나와 랑탕마을로 올라가야 하는 것인데 이 친구 아까 했던 말을 슬그머니 깔아뭉갠다. (이곳은 숙소로는 아주 젬병이다 화장실도 없고 씻을 곳도 없다).
결국은 그들과 같이 요상한 방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불편하면 지들이 불편하지 내가 불편하냐. 그커플은 동서양의 만남이다. 남자는 스킨헤드족처럼 머리를 박박 밀었는데 정수리에만 조금 길게 남겨서 요상하게 틀어올린 스웨덴 작대기이고(그런 머리는 브라만들의 머리라고 한다) 여자는 네팔 산 숄인 패쉬미나를 머리에 둘러친 대만 처자이다. 포카라에서 만나서 같이 오게 되었단다.
파상과 부티와 기념 사진 찍고 짐을 들여놓고 하다보니 해가 넘어간다. 기온이 많이 내려가 매우 춥다. 식당으로 내려갈 때는 이곳 숙소에 사람이 없어서 건물 전체에 자물통을 잠그고 내려간다. 식당에 가니 瑞,臺 커플은 저녁을 먹고있다. 내가 추워하니까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식당 주인여자가 주방에 들어와서 불쬐라고 하면서 의자까지 내어준다.
나무로 불때서 요리하는 이곳 부엌은 아궁이 하나에 보통 세 개나 네 개의 조리기구를 올려놓을 수 있게 길게 만들어져 있어서 그 중 하나는 항상 물을 끓이고 있기에 차나 끓인 물을 언제라도 트레커에게 제공 할 수 있다.
롯지의 주인 아들이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콧물을 줄줄 흘린다. 지반이 내게 물었다.
"아지씨(아저씨 아님) 감기 나오는 약 있어요?"
"뭣이? 감기 나오는 약? 감기 낳는 약은 있는데"
그 친구는 한국말을 매우 잘한다고 생각하고 아주 빠르게 발음하지만 내가 알아듣는 말은 그 중 극히 일부이다 단어야 알아듣지만 연결이 안되어서 무슨 뜻인지는 한참을 되새겨 유추해야 알 수 있다. 주인 아들에게 한국에서 가지고 간 종합감기약을 나누어주었다.
저녁 먹고 올라간 동숙자들이 새로운 제안을 했나보다. 지반이 와서 뭐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어서 직접 올라가보니 그들이 아무래도 같은 방이다시피 한 그곳에서 셋이 자는게 쉽지 않은가 보다.
같은 실내에 나무벽과 커튼으로 칸을 나눈 거실 비슷한 곳에 침대가 하나있다. 지들은 둘이고 나는 혼자니까 날보고 거기에서 자 줄 수 있느냐는 거다 이거야말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는다는 경우지만 주인여자가 정말로 미안해하고 또 그결과 내게는 숙박비를 안받고 음식값도 깎아주겠단다. -그거 좋은 얘기...
결국은 돈에 눈이 멀어 먼저 자리 잡은 내가 밖으로 밀려나는 결과가 되었는데 그쪽이나 이쪽이나 오십보 백보로 굳이 밖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오히려 넓은 공간을 혼자 차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들에게 감기약 주었다고 차 한잔을 서비스 해준다. 삶은 감자도 얻어 먹었다. 감자는 작지만 맛있다. 그런데 나는 뜨거워서 껍질을 못벗기는데 아직 어린 파상이 그걸 보더니 내것을 뺏어가서 슬쩍슬쩍 문질러서 금방 벗겨준다. 이 사람들은 뜨거운 그릇도 맨손으로 아주 잘 만진다. 그런데 아직 어린 파상까지도 부엌일을 많이 해서인지 뜨거운 감자껍질을 순식간에 벗겨낸다.
주방의 부뚜막 앞에서 저녁으로 달밧을 먹었다. 반찬은 감자를 위주로 되어있다. 감자는 분이 많고 파삭해서 그냥 먹을 때는 맛있지만 반찬으로는 너무 팍팍해서 먹기에 매우 힘들다. 고도가 3400이 되니 춥고 약간의 언덕이라도 숨이 찬다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으니 일단 안심이다.
제4일 : 랑탕 -갱진곰파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린다. 많은 양은 아니고 가랑비 정도이다.
랑탕계곡 상류 쪽에 운무가 장관이다. 9시가 지나니 날이 개어서 출발했다.
20분만에 오리지날 랑탕에 도착했다. 넓은 초원지대이고 물이 고여 습지를 이룬 곳도 있다. 마치 제주도처럼 집이나 밭에 돌담을 둘러쌓았다. 그러고 보니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과 양이 많이 있다.
흐린 날이라고 자외선 차단크림을 안 발랐더니 갑자기 햇볕이 강하게 내려 쬔다. 그래도 주위 높은 산은 구름에 덮여있다. 얼마 뒤에 갑자기 흐려지고 기온이 떨어지더니 우박이 내리기 시작한다 비도 같이 내린다. 비와 우박은 곧 그쳤지만 날씨는 춥다 기온은 영상 8도였다.
랑탕마을을 지나 일본팀의 가이드를 만났다. 어제 고라타벨라에서 만났던 일본인들은 5~6십대로 보이는 장년팀인데 헬기로 고라타벨라까지 날아와서 얄라피크(5500m)를 등반한다고 한다. (헬기 비용은 1800달러라고)
얄라피크라...... 출발하기 전 국내에서부터 나도 얄라피크에 관심이 많았었다. 굳이 인터넷에서 지도를 구해보려고 했던 것도 얄라피크를 알아보고 싶어서였고 비박 장비를 챙겨서 짐이 많아진 것도 얄라피크 때문이다. 그런데 출발하기 직전에 얄라피크는 단순히 트레킹으로 오르기는 불가능 할 것이란 걸 알아서 정작 비박 장비를 가져오고서도 네팔에 와서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트레킹 도중 틈틈이 지도를 들여다 보니까 지반이 옆에서 지도를 보다가 얄라피크를 발견하고는 지가 얄라피크를 올라갔다 왔다는 거다. 귀가 번쩍 띄여서 꼬치꼬치 캐어 물어보지만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 저는 갔다왔다고 우기지만 도대체 강진곰파에서 고도차이가 1600미터나 있는데 세시간이면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런 젠장" 더 이상 말할 흥미가 없다. 내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하니까 갔다왔음을 강력히 주장하는데 거기에다 대고 말싸움 할 생각은 없다. 우리 옛말에 시골사람들이 서울 남대문의 문지방이 대추나무냐 밤나무냐 시비가 벌어지면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고 나도 지번의 주장을 공박할 수는 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가보면 알겠지.
혹시 얄라피크 가기 전에 체르코리(4984m)봉을 얄라피크라고 알고있는가 해서 물어보았지만 체르코리는 모르는 눈치이다. 그러나 절대로 모른다고 하지는 않는다. (지반은 가이드가 아니고 포터니까)
마침 잘되었다 하고 일본팀의 가이드에게 지반이 같이 있는데서 얄라피크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세시간이 아니고 3일이 소요된다네.. 정식으로 캐러반을 해서 하루 베이스캠프 구축하고 하루 등반하고 철수하는데 하루인데 동계등반장비 일습이 필요하댄다.
지반이 이제는 지가 올라간 곳이 체르코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도를 보면 체르코리도 세시간에 오르긴 쉽지않아 보인다. 천미터가 넘는 고도 차이가 있는데.. 가보면 알겠지. 강진곰파에 들어서기 직전에 지반이 처음에 얄라피크라고 하다가 이제는 체르코리라고 주장하는 봉우리가 보인다. 갱진곰파 마을 바로 뒷산이다. 지도상의 얄랴피크와 체르코리와는 위치가 전혀 다르고 정상에는 케른과 바람에 날리는 타르초가 보인다. 눈은 하나도 없다. 마을 주위의 5000미터 급의 산에도 모두 눈에 덮여는데.
12시 조금 넘어 강진곰파(3850m)에 도착했다. 주위는 6,7천미터의 산으로 둘러쌓인 아늑한 분지였다. 돌담과 초원 위에 그림같은 롯지들이 있다. 세르파 롯지에 들었다. 롯지 창문으로 눈에 덮인 하얀산이 눈 높이로 보인다. 오후들어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은 제법 많이 내리는 눈이다 머리가 조금 아파온다. 펜잘과 아스피린을 한알씩 먹었다.
기온은 영하 3.2도인데 체감온도라고 하나 엄청무지 춥다. 겨울옷 다 꺼내 입고도 덜덜 떤다. 트레킹 기간 중 이곳 강진곰파가 가장 추웠다. 식당은 2층인 내방에서 내려가서 마당을 가로질러 다시 건너편 건물 2층으로 올라 가야한다. 나무 계단이 너무 가팔라서 오르내리기도 쉽지 않다.
식당에는 장작난로를 피우는데 온기라고는 늙은이 콧김만도 못하다. 그래도 방보다는 따듯한데 먼저온 洋夷들이 난로앞을 차치하고 있어 뒷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밀폐된 공간에 난로가 있으니 온기가 감돈다. 그러나 밀폐된 공간에 난로를 피우니까 산소부족이 있을 거다. 난로 가까이에 앉게 되었지만 따듯함을 느끼기보다 불쾌감과 머리아픔이 나타난다.
차라리 방에 돌아가 침낭에 들어가는게 났겠다 싶어 방으로 돌아왔다 옷을 많이 입어서 그런지 침낭에 들어가 조금 있으니 땀이 나는 듯한 느낌이다. 그동안 트레커가 그다지 보이지 않더니 강진곰파에 오니 트레커가 많이보인다. 이롯지에 동양인은 달랑 나혼자이다.
다섯시 쯤 눈이 그쳤다.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눈이 10cm 가량 내렸다. 모든 트레커가 나와서 사진 찍느라 정신없다. 랑시사하 가는길 쪽의 눈덮인 평원이며 랑탕리룽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반도 나와서 내사진을 몇장 찍어주었다. 수동카메라여서 초점과 노출을 맞춰야 하는데 할 줄 안다고 큰소리로 자신있게 말하지만 막상 나중에 보니 수동카메라에 초점 맞추는건 그 개념 조차 모른다.
롯지 부엌에서 지반이 술을 한잔준다. 오리지날 럭시라고 자랑하는데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워낙 술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 마셔 보겠다는 생각은 안했는데 지반이가 머리아픈데 이술이 좋다고 한다.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마셔 보았다. 한국의 청하와 그맛이 비슷한 것 같다. 찻잔으로 한가득 부어주지만 알콜도수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조금만 마시고 지반에게 넘겨주었다. 지반이 250루피를 빌려가다.
저녁은 플레인 라이스와 고산병에 좋다는 마늘스프를 먹다 이집의 밥은 찬밥을 물에 씻어놓은 것 같은 밥이다. 지금까지는 안남미라도 밥이 예전과 달리 상당히 먹을만했었는데 이집은 아니다. 할 수없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가져간 고추장 멸치 김등을 꺼내서 같이 먹어보지만 먹기 힘들기는 마찬가지.... 지나가던 洋夷가 내가 김을 먹는걸 보더니 신기한지 들여다보고 간다. 김이라고 알란가 몰르겄네...... 조금 마신 럭시에 술기운이 올라 헥헥거린다.
제5일 : 갱진리 등반
밤중에 화장실 가려고 밖으로 나왔더니 밤사이 눈이 어제 오후에 온 것만큼 더왔고 하늘은 잔뜩 흐려있다. 어제 온 눈은 거의 녹았었는데 또다시 그만큼 더 내린거다. 밤중에 화장실 가는 버릇은 이번 트레킹에 새로 생겼다.
원래 밤에 잠자다가 화장실 가는 버릇이 없는데 고산병 예방에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해서 물을 평소보다 많이 마셨더니 잠을 자다가 꼭 한번은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 여기처럼 화장실이 멀리있는 경우는 아주 귀찮다. 평소에 물을 아주 적게 마시는 편이라 고산병을 예방하려면 하루에 최소한 3리터는 마셔야 한다는 얘기에 어떻게 마시나 걱정했는데 습관적으로 마시기 시작하니까 얼마든지 마시게 된다 (물값이 비싸서 더많이 못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개었다. 하늘은 맑은데 주위의 높은 산에는 구름이 걸쳐있다. 지반이 얄라피크로 착각한 봉우리는 갱진리(kyanjin ri 4773m)였다. 바로 마을 뒤에 위치하고 있어서 갱진곰파에 들어서기 직전 그정상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어제는 눈이 한점도 없었다. 그러나 오전에 올라갔다가 오후에 눈이 내리는 가운데 갱진리를 내려오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었다. 지금 눈의 상태는 발목을 덮을 정도이다.
나는 신발이 문제이다. 사실 이번 트레킹 준비하면서 신발 가지고 고민을 좀했다. 명색이 산에 다니는 처지에 등산하면서 신는 신발은 십여켤레가 되지만 막상 트레킹에 신고 갈만한 신발은 없었다. 레퍼터리는 많아도 히트곡은 없는 경우였다.
93년 11월에 트레킹 갔을 때는 가죽 비브람을 신고 갔었다. 방수되는 동계용이라 무겁고 투박했다. 그때 경험으로는 4000미터 넘게 올라갔어도 눈을 전혀 밟아보지 못하고 비도 한방울 맞지 않았으므로 먼지만 팍팍 나는 길에 이신발은 과잉이로구나 생각했다
그때 일행중에 한사람이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도 아무 문제없이 트레킹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가을 시즌이면 날씨가 좋아서 별문제가 없겠지만 지금 우기가 다가오고 있는지라 비를 맞을 경우도 생각해야했다. 아무리 좋은 고아텍스 방수신발이라도 비가 많이 와서 위로부터 흘러내릴 때는 소용이 없겠지만 적은비와 젖은 땅을 지날 경우에는 방수신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이중화는 눈위에서는 뛰어난 기능을 발휘하지만 평지를 걷기에는 너무 불편하니 일단 제외하고 소위 릿지화라 부르는 등산화는 바닥이 너무 빈약했다. 예전 트레킹에 신었던 비브람은 아직도 멀쩡한 채로 있어 그걸 신던가 아니면 새로 사든지 해야했다.
그런데 결론은 등산화가 아닌 집에 있던 일반 운동화를 신고 가기로 했다. 운동화 중에 바닥이 두껍고 발목부분도 풍성(에어라나 뭐라나)한 거였다. 바닥이 비교적 두껍지만 거기에 다른 운동화에서 빼낸 깔창을 하나 더 깔았다. 가능하면 바닥을 두껍게 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좋았다 그 정도 바닥이면 자갈길을 지나기에도 부담이 없었고 웬만큼 방수기능도 발휘한다.
바닥이 미끄러울 거라는 염려는 트레킹 구간 중에 등산화 암벽화창이 필요할 정도의 바위지대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리고 돌이 많다는 얘기도 있지만 특별히 강바닥 자갈길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산보다 돌이 많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었다고 본다. 나야 있는 신발을 신고 갔으니까 그렇지만 만약에 새로 신발을 구입한다면 요즘 잘나오는 경등산화 많이 있는데 그 정도면 안성맞춤이라고 생각된다.
8시경 우리도 갱진리 등산에 나섰다. 내가 신발 때문에 걱정하니 지반이 다른사람 몇 명 올라간 뒤에 따라가자고 한다. 얄라피크를 등반한다며 캐라반하던 프랑스 노장팀과 몇팀이 우리 앞에 섰다. 그들은 눈이 와서 얄라피크를 포기하고 내일 고사인쿤드로 간다고 한다.
트레킹 피크를 목표로 왔으니 그들의 행장은 탄탄하다. 럿셀이 된 길을 따라가니(럿셀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별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해가 나면서 기온이 올라가니 눈이 녹으면서 신발이 젖어든다 그래도 내가 신은 신발이 어느정도 방수기능을 발휘해서 양말까지 젖지는 않는다.
급경사에 햇살을 정면으로 받는데다가 눈에 반사되는 복사열까지 더해져서 땀을 비오듯 흘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10시50분 갱진리에 올라섰다. 정상에는 케른이 쌓여있고 타르초가 만국기마냥 펄럭인다. 정상은 온통 눈의 세계이다.
랑탕리룽과 랑탕2 킴정이 손에 잡힐듯이 건너다 보이고 멀리 마리모토피크에 랑시사리 나야캉까지 만년설에 어제 온 눈으로 우리가 서있는 갱진리까지 눈이 덮였으니 6,7천미터의 고산에라도 올라온 것 같은 기분이다.
발아래 건너편에 빙하도 보인다. 킴정과 리룽창 빙하였다. 산악회깃발을 가져간 김에 거기서 사진 몇 장 찍었다 겨우 4773m에 올라와서 깃발까지 가지고 사진 찍는게 조금 멋쩍기도 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정상에서 지반이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롯지에서 사온 브레드와 삶은 달걀이다. 굳이 점심 준비를 안해도 되는데 점심을 준비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팀이 하산한 후에 우리도 하산길에 접어들었는데 지반이 얄라피크와 연결되는 능선을 올라가자는거다. 내가 얄라피크에 보이는 관심에다 지가 얄라피크를 가보았다는 호언장담이 어긋난데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라고 할까. 그래서 굳이 점심을 준비한 것 같았다.
얄라피크와 연결되는 능선은 제법 날카로운 암릉으로 이루어졌고 거기에 눈이 덮여 매우 험해보인다. 가자면 못 갈 것도 없지만 그러나 얄라피크 가는 길은 갱진곰파에서부터 다르다. 여기서 얄라피크를 연결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매우 고생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신발로는 말도 안된다. 올라오던 때와 달리 양지쪽은 눈이 다 녹아있다. 질척하고 미끄러운 길을 빠른 속도로 내려오니 마을까지 한시간 걸린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너무 빨리 내려오는 것도 좋은게 아니었다.
힘들었나보다. 롯지에 돌아와서 차 한잔 마시고 앉아있자니 아무 생각이 없다. 생각 없는 가운데 생각을 가다듬어 앞으로 일정을 어떻게 할까 궁리한다. 세밀한 계획이 없었고 정보마저 빈약한 채 랑탕 계곡과 갱진곰파만 생각하고 왔다가 갱진리를 다녀왔는데 지반의 권유는 끝이 없다 랑시사하 고사인쿤드 헬람부까지.....
고사인쿤드 말고는 이름조차 몰랐었다. 트레커들이 하루 갱진리 하루 랑시사하를 다녀오는 게 평균적인 일정이니 당장 내일 랑시사하를 다녀오자는 지반의 권유에 어떻게 할까 망설인다. 랑시사하는 접어두고 고사인쿤드로 가볼까?
무엇보다 문제는 상태가 썩좋지 않았다. 머리가 아픈 것은 심하지 않았으나 속이 울렁거리는 증세가 약하게나마 나타난다. 내가 제일 겁내는 고산병 증세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인데 처음 트레킹왔을 때 페리체까지 가는 동안 계속 속이 울렁대더니 결국에 페리체에서 밤새 토하고 세끼를 굶으면서 간신히 하산한 일이 있어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있으면 겁부터 났다.
이집의 음식도 워낙 입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내려가서 고사인쿤드를 가보자 작정하고 내려 갈거면 오늘 아직 시간이 있으니 조금이라도 내려가자 생각하고 밖으로 나와 지반을 찾으려는데 갑자기 비가내린다. 에이 안되겠구나.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아침에 결정하기로 했다.
개었다 흐렸다 하던 날씨는 다섯시 넘어 본격적으로 비가 내린다.
제6일 : 갱진콤파 - 라마호텔
어제 오후에 내리던 비는 밤사이 눈으로 바뀌어 또 어제만큼 내렸다. 날씨는 맑게 개었다. 숙소 창문으로 눈부시게 하얀산이 그림같이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으려고 창문을 열다가 창문 잠금장치에 손을 다쳤다. 어찌된 일인지 트레킹 코스의 롯지들은 출입문이나 창문의 잠금고리 아귀가 제대로 맞는 게 거의 없다. 항상 잠그고 풀고 할 때 낑낑대고 힘을 써야 겨우 열고 닫을 수 있다. 마데카솔 연고 바르려고 새로 사간 것을 구멍을 뚫었더니 연고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랑시사하는 생략하고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대신 고사인쿤드를 가기로 했다. 랑시사하나 고사인쿤드 모두 예정에 없던 곳들이다. 랑시사하는 나중에 알고 봤더니 랑탕을 가면 꼭 가봐야 하는 곳이란다. 그래서 지도를 자세히 봤더니 빙하를 가까이 접근하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빙하를 만져 볼 수 있었는데.... 랑시사하는 숙소가 없어 갱진곰파에서 아침에 출발 오후에 돌아와야 하는데 왕복에 하루 꼬박 걸린다고 한다.
카투만두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안나푸르나와 랑탕 지도를 샀었다. 가격보다 얼마나 보기 쉽고 자세히 나와 있는가를 살펴보고 샀지만 그리고 정찰제라서 그냥 달라는대로 주고 샀는데 아마도 비싸게 샀는가 보다. 다른 사람지도 보면 상태는 떨어지지만 매우 싸게 산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랑탕 지도는 실제 가서보니 영 아니다. 현재로서는 가장 많이 이용되는 길인 듯한 샤브르벤지에서 라마호텔 가는길이 거의 눈에 보일 듯 말 듯이 표시되어있고 갱진리는 아예 표시가 되지도 않았다. 그밖에도 허점 투성이다. 트레킹 끝나고 다시 카투만두에 가서 다른 지도와 비교해보니 내가 가져간 nepa map와 비슷한 지도가 많다. shangri-ra map이 비교적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다행히 함께 샀던 안나푸르나 지도는 shangri-ra map였다.
이틀치 숙소와 음식값으로 1325루피를 치루고 8시10분에 갱진곰파를 출발하다. 옆방의 미국에서 온 두명의 아가씨들은 어제 우리와 갱진리를 함께 올라갔었는데 오늘 또 갱진리를 올라간다. 대단한 체력들이기도 하지만 눈덮힌 갱진리 정상이 그만큼 멋지다는 뜻도 되겠지.
얄라피크를 등반 한다던 일본이나 프랑스 팀들이 매일 내리는 눈으로 시도를 못하고 주춤거린다. 우리 롯지 부근에 캠프를 쳤던 프랑스팀은 아침에 하산 고사인 쿤드로 떠났다. 밤새 내린 눈으로 비탈길이 제법 미끄럽다. 밤새 내려 쌓인 눈이 아침에 해가 나면 금방 녹는다. 고도 3600미터 지점까지 내려오니 길바닥에 눈이 없고 뽀송뽀송 해졌다.
11시 25분 3300미터 지점에 내려오니 다시 랄리구라스 꽃이 피는 관목 숲 지대가 나타난다. 겨울나라에서 봄의 나라로 다시 돌아왔다. 올라갈 때 점심 먹고 갔던 당샤부의 롯지에서 점심 먹다. 롯지 주인과 지반은 친구사이란다. 주인여자는 얼굴이 마주 칠 때마다 환하게 웃어준다. 나처럼 무표정한 인간에게는 오히려 무안하기까지 하다.
갱진곰파에서부터 계속 밥이 쉽게 먹히지 않는다. 맛있게 먹어야 기운이 날텐데 이건 트레킹하기 위해서 억지로 먹어야하니 앞으로 많이 남은 트레킹 일정이 음식문제로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1시 30분 고라타벨라 체크포스트를 통과하면서 적혀있는 명단을 대충 살펴보니 한국사람은 딱 한 명이 오늘 라마호텔에서 랑탕으로 올라간 기록이 있다. 프랑스 독일 일본 이스라엘 사람이 많이 보인다.
고라타벨라 지나면서 길은 계곡 숲길로 변한다. 울창한 숲 속에 날씨까지 잔뜩 흐려지니 어둑어둑한 느낌이다. 잔뜩 흐리던 날씨는 오후 두시반 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운행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어서 앞에서 빠른 속도로 내려갔더니 지반이 힘들다고 쉬어가자고 한다. 올라갈 때는 내가 고산병 문제도 있고 해서 쉬어가자 쉬자 하며 갔었는데....
지반은 아무래도 전문 포터는 아니라서 인지 배낭을 버거워 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물론 내 배낭보다야 무겁지만 다른 포터들이 지고 다니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데도 말이다 나중에 안나 라운드 갔을 때의 포터는 나는 듯이 잘가더만.
라마호텔에서 고라타벨라 까지는 경사가 제법 심하다 쉬지 않고 냅다 내리닫으니 지치기 시작한다. 금방 도착할 것 같던 라마호텔은 생각보다 멀었다. 3시20분 라마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오늘도 윗층은 먼저온 洋夷들 차지 아래층에는 나혼자 뿐이다.
올라갈 때 여기서 샤워하고 4일 만에 다시 샤워했다 샤워는커녕 그동안 세수하기도 쉽지않았다. 갱진곰파에서는 물이 없어 백인여성이 눈을 움켜쥐고 세수하는 것도 보았다. 나는 그나마도 안 했지만.
몹시 추워하던 갱진곰파와 달리 고도차이가 1400미터가 나는 이곳은 따듯한 느낌이다. 두통과 숨가쁨이 말끔히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저녁으로 밥과 누들스프를 먹었는데 누들스프는 네팔라면이다 네팔라면은 처음 먹어본다 그런데 이 롯지는 특이하게 라면에 쌀이 들어가 있다 뒤에 다른 곳에서도 누들스프를 먹어보았지만 이곳에서 먹은 것 같은 건 보지 못했다.
처음 먹어보는 네팔라면은 내 입에는 맞지 않았다 싱겁고 느끼하단 것 밖에는 맛을 모르겠다. 한국에서도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식탁에 있는 양념통에서 고춧가루 후추가루 소금등을 넣으니 먹어 줄 만하다.
식당에 같이 있는 서양인들은 정말로 조용하다 옆 사람과 얘기 나눌 때도 조용조용히 주고받는다. 하물며 옆자리의 젊은 남자 세명이 웃고 떠들면서 카드놀이를 하는데도 목소리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옆 사람에게 폐를 안 끼치게 노력한다. 한국사람들이 평상시에 하는 대화정도의 소리밖에 안난다. 정말로 우리가 저들에게 배워야 할 것은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서 최소한의 예의 즉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닌가 싶다.
오늘 모처럼 속이 편하다.
제7일 : 라마호텔 - 샤브르
지난밤에는 모처럼 한번도 깨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하산하는 길이라 물을 별로 마시지 않았더니 밤에 화장실에 안가도 된다.
밤사이에 내방에 서생원이 와서 난동을 부렸다. 창가에 놓아두었던 양초를 갉아먹고 스포츠타월을 이빨로 쏠아서 타월이 너덜너덜 해졌다. 덕분에 남은 트레킹 내내 너덜너덜하는 타월을 써야했다.
롯지의 총명한 소년과 그누이와 기념사진을 찍고 8시넘어 출발했다. 기온은 영상 13도이지만 매우 더웠다.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서 계곡건너편 언덕 위에 오늘 우리의 목적지인 출로샤브르가 빤히 건너다 보인다. 계곡을 건너기전에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샤르파가은 거쳐 캉정으로해서 계곡이 아닌 능선으로 샤브르벤지 가는 길이다. 내가 가진 지도에는 계곡길보다 그길이 또렷이 표시되어 있었다. 샤브르벤지에서 시작할 때 그 길로 라마호텔까지 가는 줄 알았다. 나는 고사인쿤드 가는 길이라 계곡길로 가야한다.
40여분만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넜다. 다리 옆 찻집에서 레몬티를 시켰더니 차가운 레몬티이다. 따끈한 레몬티를 주문했는데 차가운 걸 마시자니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차값은 매우 비싸다. 한잔에 30루피씩 60루피다. 출발하고나서 지반의 말이 내게는 30루피 지반은 15루피 받기로 했었는데 60루피 다받았다고 궁시렁댄다. 글쎄. 그럴리야 없겠지만 둘사이의 모종의 흥정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1시가 못되어서 올라갈 때 점심 먹었던 밤부 롯지에 도착했다. 지반은 여기서 점심 먹었으면 하는 뜻을 비친다. 그러나 아침 먹은 지 얼마 안되었기에 생각도 없을뿐더러 너무 일찍 점심을 먹으면 맛도 없지만 저녁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차 한잔 마시고 통과.
밤부롯지 지나 또렷한 갈림길이 있어서 거기가 출로샤브르 갈림길인줄 알았더니 그길도 출로샤브르를 가긴 하지만 산을 넘어 가는 길이라고 한다. 괜히 힘 뺄 필요 없지. 만약에 혼자 와서 지도만 보고 찾아간다면 반드시 저 길로 갔지 싶다. 그 길도 출로샤브르와 연결은 되니까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겠지만 지도가 부실하니 문제이다.
11시11분 파리오(랜드슬라이드)라는 작은 롯지 두 개가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직도 점심 먹기에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이곳 지나면 밥 먹을 곳이 없다는 지반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주저앉았다. 지반의 시간계산으로는 출로샤브르에 점심시간 전에 도착 할 수 있을 같고 그러면 오늘 중으로 싱곰파까지 갈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중에 가보니 쉽진 않았다. 너무 덥고 경사가 심하다.
라마호텔 2480m에서 출발 지금 우리가 있는 계곡이 해발 1600m이고 2200m의 샤브르까지 600미터의 고도를 올라야하는데 그경사가 매우 심하다. 싱곰파는 3200m이니 샤브르에서 다시 1000m를 올라야한다. 샤브르에서 신곰파까지는 네시간이 걸린다. 결국 랑탕계곡에서 싱곰파까지 1600m의 고도를 오르느데 약7시간이 소요된다.
라마호텔에서 싱곰파까지는 약10시간이니 체력 좋은 사람이면 하루에 가능한 거리고 시간이다.(실제로 그렇게 운행한 사람을 나중에 만났다) 나도 그렇게 되면 하루를 단축 할 수 있지만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아직 많이 가야하니까.
12시 47분 랜드슬라이드를 출발했다. 내앞에는 그동안 별로 안보이던 전문적으로 짐을 나르는 포터들이 많이 가고 있다. 개중에는 어린이와 젊은 여자들도 꽤 있다 아이들과 여자들은 혹은 맨발 혹은 발가락 슬리퍼이다. 험한 산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신발도 제대로 못 신은 그들 뒤를 따라가고 있자니 포터에게 짐을지워 가며 느긋하게 가고 있는 내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사람의 운명이란 무엇일까? 다 같은 인간으로서 저들과 나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단지 어느 곳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차이 밖에 없는게 아닐까? 만약에 神이있어(나는 無神論者) 그런 운명이나 팔자를 가름한다면..신도 못신고 다니는 사람들 신이나 신겨줬으면!!!
사실 나도 체력이 어느 정도만 뒷받침되면 포터없이 혼자 다니고 싶다.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저런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렇다. 洋夷들은 체력이 좋아서인지 거의 포터를 쓰지 않는다. 그들에게 부러운 것은 그것 한가지였다.
출발한지 10여분 1시 정각에 산사태 난 곳을 지나는 중간에 희미하게 갈림길이 있다. 이곳이 출로 샤브르 가는 갈림길이었다. 왼쪽으로 들어서자 곧장 코가 닿을 듯이 급한 경사지대다 길은 일자로 뻗지 못하고 갈之자로 나있다.
한시간만에 해발1950m의 한라산 정상 높이의 고개 마루 찾집에 도착했다 고개마루에서는 바로 코앞에 샤브르 마을이 건너다 보인다. 그러나 깊숙한 계곡을 돌아 건너야 하므로 사브르 마을 입구까지는 50분이 걸렸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감자밭 옥수수 밭이 있고 무엇보다 밀밭이 엄청나다.
심한 경사지대를 개간해서 계단식밭에 한가득 밀을 심어 비탈진 마을이나마 매우 풍요롭게 보인다. 마을 아래쪽은 퇴락한 빈집이 많고 롯지들도 거의 영업을 하지 않고 문을 닫아걸었다. 마을 중간부터 사람들이 사는집이 많고 롯지도 영업하는 곳이 보인다.
3시30분 마을 위쪽에 자리한 호텔라마에 숙소를 정했다. 새로 지어서 깨끗한 롯지들은 모두 전망 좋은 마을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예까지 오는 동안 마을사람들의 눈총이 따갑다. 자기 집에 묵어갔으면 하고 바라는.... 멀리서 보기에 높은 언덕 위에 새집처럼 올라앉은 마을이지만 막상 와보니 상당히 큰 마을이다.
무엇보다 마을을 활기 있게 만드는 건 어린아이들이 몰려서 시끌벅적 하게 뛰어 노는 것인데 트레킹 구간 중에 처음으로 여기서 아이들이 모여서 뛰어 노는걸 본다. 내가 묵은 숙소는 지은지 오래되어 나무가 까맣게 변색된 이층건물인데 내가 유일한 투숙객이다.
샤브르는 조망이 천하일품이었다. 그동안 랑탕계곡에 갇혀 지내다가 여기에 오르니 가슴이 탁트인다. 갱진리에서 보는 것과는 그 느낌이 또 다르다 랑탕 계곡은 너무 깊숙해서 한눈에 그전모가 보이지 않지만 가네시히말과 랑탕리룽 수랴피크 나야캉등의 하얀산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고 웅장한 산세에 깊은 계곡과 가까이 마을아래 밀밭과 빠꼼한 틈이 없이 개간한 비탈진 경작지, 룽다가 펄럭이는 마을집들까지....
유감스럽게도 저녁만 되면 비나 눈이오는 갱진곰파 부근의 산들은 오늘도 운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무리하게 싱곰파로 가지않고 여기서 묵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제 8일 : 샤브르 - 싱곰파
다른 날보다 조금 이른 7시 44분에 출발하다. 역시 시작부터 급경사를 오르느라 땀을 쏟는다. 출발한지 30분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찰랑파티 가는길이고 오른쪽이 싱곰파 가는길이다. 내가 하루에 많이 갔으면 하는 바램을 드러내놓고 표시하지는 않았는데 지반이 눈치를 채었는지 오늘 우리는 라우르비나야크까지 갈 거라고 한다.
하루 운행 거리를 정하는 것 모두 내가 정할 수 있지만 나는 최대한 지반의 의견을 존중하고 길을 아는 지반에게 의지해서 주로 그에게 맡기는 편이다. 라우르비나야크를 가려면 지름길인 찰랑파티로 가야하지만(지도상으로 지름길이 나와있다) 지반도 그 길은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그 길은 가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길이 확실치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모든 트레커가 가는 싱곰파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나도 꼭 라우르비나야크를 오늘 가야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니까.
그 유명한 전나무 숲이 나타난다. 네팔 소년 두명이 저 아래에 보이더니 금방 우리를 따라잡는다. 열살 남짓한 소년들과 얘기를 주고받던 지반이 내게 배터리있냐고 물어본다. 소년들이 구형 일제 라디오를 가지고 있는데 건전지가 없다는 거다. 내가 손전등 예비용으로 가져온 것 두 개를 반드시 필요할 것 같진 않아서 그들에게 주었다. 테이프까지 있었으나 테이프는 나오지 않고 라디오만 나온단다.
그 라디오를 지반이 들고 간다. 소년들에게 곧 돌려주는가 했으나 계속 지가 들고 가면서 음악을 듣는단다. 건전지를 지가 주선해서 주었다고 우세스럽게끔 행동하는 거 같다. 아이들은 돌려달란 말도 못하고 지반의 뒤만 졸졸 따라가고 있다.
내가 라디오는 왜 안 돌려주느냐고 했더니 조금 후에 아이들에게 돌려준다. 라디오를 받아든 녀석들은 경사가 급한 길을 잽싸게 위로 뛰어올라 가더니 금방 시야에서 사라진다. 민들레꽃이 고개만 겨우 땅위로 내밀고 지천으로 피어있다. 길 주변 땅이 온통 노란색이다.
10시30분 해발3050m의 고개 마루에 올라섰다. 두채의 롯지가 마주보고 있다. 모두가 쉬어간다. 시간이 이르긴 하지만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 먹는 달밧은 맛이 좋았다. 밥맛이좋고 나쁘고하는 나의 기준은 반찬이 아니라 밥 그 자체이다.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계열의 쌀과 달리 길쭉하고 끈기가 없는 안남미라는 쌀은 전에 트레킹왔을 때와 달리 상당히 좋아졌다. 정말 먹기 힘들었던 예전 트레킹과 달리 이번에는 갱진곰파에서만 밥이 개판이었지 그 외의 곳에서는 먹을만했다 우선 눈에 띄는게 밥을 할 때 압력솥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예전에 산에서 취사가 허용될 때 고도가 높은(겨우 천미터남짓) 산에서 밥을 하면 기압이 낮아서 뜸이 잘 안 든다고 뚜껑에 돌을 얹어 놓았었다. 한국에서도 그랬는데 여기는 오죽할까? 압력솥으로 하는 밥은 안남미라도 제법 찰지고 특히 쌀이 익다가 말거나 익은 것도 아니고 안 익은 것도 아닌 미친 밥은 없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꼭 압력솥만의 문제가 아니고 쌀 자체도 품질이 좋은거라네. 쌀값이 3배의 가격차이가 난다고하니..
네팔에 와서 달밧 먹으면서 처음으로 밥을 더 먹었다 그동안 더주는 것을 사양하고 주는 것만은 어떻게든 남기지 않고 먹으려고 노력했었다.
11시55분 출발 아직도 오르막은 계속된다 출발한지 20여분 등성이에 올라서니 평탄한 지형에 장대한 전나무숲이 나타난다. 숲 자체도 엄청나지만 나무마다 밑둥에 두터운 이끼를 덮고있어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이렇게 이끼 덮인 곳을 보자면 정말 사람이 다니지 않았던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깊숙한 계곡이라야 겨우 볼 수 있는데.
길은 평탄해지고 진흙이 다져진 길이라 매우 부드럽다. 그모습이 동백꽃과 흡사하고 동백처럼 붉게 피었다가 동백꽃처럼 통채로 바닥에 떨어지는 랄리구라스가 많이 피어있어 전나무숲을 한층 아름답게하고 지나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1시에 싱곰파(찬단바리)에 도착 레드판다 롯지에 들었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 롯지 건물들은 크고 깨끗했다. 식당 건물 만해도 꽤 큰 편인데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새로 지은 숙소는 마치 또 하나의 다른 롯지인 걸로 알았을 정도다. 숙소도 깨끗하고 화장실도 제대로 된 수세식이다. 아직도 바깥에는 마무리 공사중이다 일찍 도착한 덕에 가장 전망 좋은 방에 들었다.
아직 시간이 이르다 라우르비나야크까지 간다고 아침에 말했던 지반이 여기서 묵어가자고 하지는 못하고 더 올라 갈거냐고 물어온다. 여기서 묵어가자고 했다. 오늘 라우르비나야크까지 간다고 해서 일정이 단축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 라우르비나야크까지 가면 고도를 2000미터 가량 올리는 셈이 되니 무리일 것 같다. 싱곰파 일대는 지리산 제석봉처럼 고사목이 많이 보인다.아니 지리산 제석봉에는 지금은 전처럼 고사목이 많지 않지만.
오후에 비가 내린다. 더 움직였다간 비 맞을 뻔했다.
제9일 : 싱곰파(3200m) - 고사인쿤드(4380m)
잠을 못 자다. 생전 그런 일이 없는데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안 오더라도 눈감고 누워있으면 잠자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서 밖이 훤해질 때까지 악착같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고소증의 일종인 모양이다.
밖에 나오니 날씨는 쾌청하다 저 아래 둔체쪽이 아스라히 내려다 보인다. 날씨가 맑기는 하지만 안개가 끼어있어서 아래까지 선명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8시에 싱곰파를 출발 울창한 숲과 평탄하다싶은 길을 걸어 9시10분에 찰랑파티를지나고 지리산 세석평전처럼 키 작은 관목에 길이 이리저리 나있는 지대를 지나 10시 조금넘어 라우르비나야크에 도착했다.
지번의 말에 의하면 라우르비나야크란 시바신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던져서 생겨난 곳이라는데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곳 일대 지형이 지팡이처럼 돌출된 지형이 아니고 황소의 등처럼 한없이 부드러운 능선 이라서 말이다.
싱곰파에서 우리보다 늦게 출발했으나 중간에 우리를 앞질렀던 어제 같은 숙소에 묵었던 홍콩여자 트레커도 그곳 롯지에서 쉬고있었다. 그 홍콩아가씨는 매우 힘이 좋다. 소매없는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질끈 동여서 위로 올린 모습이 겉으로 보기에도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어제 싱곰파에 늦게 도착하더니 라마 호텔에서 출발해서 싱곰파까지 왔다고 한다.
내가 이틀에 걸쳐서 온 길을 하루만에 온 것이다. 배낭은 크지 않지만 직접 메고 포터없이 가이드와 같이 다니는데 네팔인 가이드는 네팔사람 치고는 매우 세련된 겉모습이 트레커와 가이드가 아닌 마치 동행자처럼 보인다. (그들은 큰배낭을 교대로 메고 다닌다)
점심시간에 맞춰 고사인쿤드까지 갈 수 있지만 고도 적응도 할겸 충분히 쉬면서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달밧을 먹는데 서비스로 네팔고추 절임을 주는걸 지번이 맛있게 먹길래 젓가락 굵기의 작은 고추를 한입 먹었다가 어찌나 맵던지 혼겁을 했다.
전망 좋기로 유명한 라우르비나 야크지만 구름이 발아래 있어서 오늘은 그다지 전망이 좋지않다. 그렇다고 운해가 멋지게 있는것도 아니다. 11시 20분 출발 해발4000미터의 황량한 고원지대에 오르니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불고 추워진다. 고개넘어 서니 바람은 조금 덜한 대신 급사면을 가로지르는 길이라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되니 숨이 몹시 가쁘다.
1시 조금 안되어 길 오른쪽에 수량은 작지만 길다란 폭포가 보이고 작은 호수가 보인다 사라스와티쿤드이다 그위에 조금 큰 바이랍쿤드. 그리고 롯지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너머에 고사인쿤드가 있었다. 이곳은 트리슐리콜라의 상류이다
두시가 되기 조금전에 고사인쿤드 롯지에 도착했다. 곧바로 호수에 가보았다. 주위의 설산을 옆에 끼고 검은빛으로 보이는 고사인쿤드가 있는 이곳은 높이가 4380m. 규모는 조금 작지만 바로 아래에 바이랍쿤드는 고사인쿤드보다 더검고 신비로워 보인다. 사진 몇장 찍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우박까지 사정없이 내려서 롯지로 쫓겨 들어왔다.
다섯시에 눈이 그쳤다 다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눈은 내리자마자 녹아버린다. 눈이 녹는 사이로 작은 풀꽃이 고개를 내밀어 억센 생명력을 보여준다. 고사인쿤드를 한바퀴 돌았다. 돌을 정비해서 길을 만들어놓았다. 그중에는 징검다리도 있어서 거길 건너려니 현기증이 났으며 숨이 몹시 차서 빨리 걷지도 못한다 한바퀴 도는데 40여분 걸린다. 가는 중에 가끔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위해 호흡을 조정하고 사진 한 장 찍고 나면 가슴이 터질 듯이 숨이 가쁘다.
눈이 녹은 물이라 깨끗하다 손을 넣어보니 생각보다 차갑진 않다 마셔보지는 않았다(한번 마셔봐야 되는건데). 호수에 무슨 생물이 사는지는 알 수 없다. 가녁에서 들여다 보기엔 살아 움직이는 것은 아무 것도 안 보이긴 했다. 지대가 갱진곰파 보다 높지만 추위는 갱진곰파보다 훨씬 덜춥다. 다만 숨은 매우 가빠진다.
제10 일 : 고사인쿤드 - 둔체
아침 일찍 일어나 지번이 물 나오는 데를 보여준다고 해서 고사인쿤드위의 물 나오는 데를 가보았다. 너덜지대에 돌을 쌓아서 입구를 막아놓고 있는 곳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 나라의 성황당 비슷하게 만들어놓았다. 너덜지대의 중간이고 또 그 위에는 만년설이 쌓인 산이 있어 그곳이 발원지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시바신은 고사인쿤드와 많은 관련을 갖고 있다. 호수 안에 바위가 물위로 조금 보이는 곳은 시바섬이고 고사인쿤드가 생겨난 유래가 시바신이 목이말라 돌로 땅을 내리치니 물이 솟아나와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호수가에 작은 사당이있어 사바신의 남근 상징을 모셔두었다. 이곳 일대는 호수가 많은데 호수의 숫자가 번뇌의 숫자와 같다고 한다.
이곳에 온 서양인 트레커들은 거의 고사인쿤드를 넘어 헬람부로 간다. 둔체로 하산하면 오늘로 트레킹이 끝나지만 헬람부를 가게 되면 3일이 더 소요된다. 헬람부야 말로 정말 생각지 못하던 지역이라 지반이 헬람부를 가자고 꼬드겼지만 사양하고 둔체로 내려가기로 했다. 둔체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헬람부지역을 가지않고 그냥 내려가는것에 대한 미련이 자꾸 뒤꼭지를 당긴다. 헬람부는 어떻게 생겼는지 기왕에 온걸 넘어 가볼걸 그랬나.
7시50분 출발 8시45분 라우르비나야크 9시20분 찰랑파티 통과 10시20분 싱곰파에 도착했다. 홍콩에서온 미스劉도 둔체로 내려간다. 고사인쿤드에서 같이 출발했던 그들은 어찌나 빨리 내려가는지 도저히 못 쫓아가겠다. 그들은 싱곰파에서 점심을 먹고 간다.
나는 점심 먹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냥내려 가기로 했다. 당시 내가 가져갔던 랑탕 지도(nepa maps)에는 둔체 가기전에 디마사란 마을을 하나 거치는 것으로 표시되었다. 지번에게 물어봐도 마을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내려가는 길은 엊그제 싱공파에 올라와서 내려다보았을 때 경사가 하도 심해 과연 내려가는 길이 있을까 걱정했던 길이다. 비탈이 너무 심하니까 일자로 뻗은 길이 없다. 지그재그로 숲속을 통과한다. 쉴새 없는 내리막이 이어지는데 아무리 가도 마을은 나오지 않고 중간쯤에 외딴집이 하나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어 복잡하다. 나는 지도상에 있는 마을이 나타나면 거기서 점심을 해결 할 생각으로 그곳은 그냥 지나쳐 계속 비탈길을 내리닫는데 12시30분 트리슐리 계곡을 건넜다.
지도상으로 보면 그 디마사란 마을이 진작에 나타났어야 하는데 디마사고 뭐고 아까 만났던 외딴집 말고는 둔체까지 아예 마을이라고는 없다. 지도에는 지금 우리가 가고있는 계곡 길은 표시가 아예 없고 바르쿠쪽 능선의 중간쯤에 길이 있는 것으로 표시되었다. 오는 중에 갈림길을 보지는 못했다. 이제는 배도 고프기 시작해서 꼭 그 마을이 아니라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만났으면 했으나 둔체에 도착 할 때까지 아무 것도 만나지 못했다.
1시15분 둔체에 도착했다. 마을에 내려서기 조금전 트리슐리 계곡입구에 네팔에서 보기드문 커다란 공장이 있는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히말라야 생수회사였다. 둔체에서 샤브르벤지로 가는 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는데 지번이 길을 잘못들어 엉뚱하게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지번이 둔체 쪽은 초행길이라는 걸 알겠다. 자기말로는 한번 왔었다고 하는데......
랑탕뷰호텔에 들었다. 호텔 로비에서 쉬고 있는데 정확히 십분 후에 홍콩의 미스劉가 도착한다. 우리는 점심도 못먹고 쉬지않고 내려왔는데 점심 먹고도 금방 쫓아내려 왔으니 정말 빠르다.
그런데 算筒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일이면 카투만두에 가겠구나 생각하면서 열심히 내려 왔건만 카투만두에서 버스 파업이 있어서 오늘 버스가 안왔단다. 하루 두 차례 카투만두에서 버스가 오면 그 버스가 샤브르벤지에서 자고 다음날 카투만두로 돌아가는데 카투만두에서 버스가 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내일 카투만두 가는 버스도 없다는 것이다.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고..
둔체에서 제일 좋은 호텔이라는 랑탕뷰 호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네팔 정식 달밧이라는데 매우 맛이 좋다. 호텔이라 그런지 산에서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점심 먹으면서 수고했다고 지번이와 맥주 한병을 나눠 마셨다.
점심을 먹고있는데 한국사람 두 명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 사람들은 알고보니 히말라야생수공장의 한국인 직원들이다. 본사는 서울에 있고 사무실은 카투만두에 있다. 우연히 둔체에 나왔다가 한국사람이 있다는 말에 올라와 본 것이란다. 서로 간에 반가웠지만 나는 아직 밥먹는 중이고 해서 그들은 곧 내려갔다.
점심 먹고 방에가 서 짐 정리하고 샤워하고 나니 지반이 면도한다고 백루피를 빌려달라고 하면서 아까의 한국사람들이 호텔로비에서 맥주 마시고 있다고 해서 내려가 그 사람들과 어울려 간단히 맥주한잔 하였다.
마을에서 약 500m정도 떨어진 공장에도 같이 가보았다. 작은 시골마을인 둔체에 매우 큰규모이다. 한국인 직원은 두사람 뿐이고 현지인 직원이 25명쯤 된다는데 생수로 쓰이는 원수는 2킬로쯤 되는 지계곡 상류의 의 물을 끌어어오고있고 정수 시스템은 이태리제라고 한다. 엄청난 투자를 했지만 네팔의 인프라가 워낙 부실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전기공급이 하루에 네시간 밖에 되지를 않아 가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며(내가 갔을 때도 정전이어서 기계가 놀고 있었다.) 둔체까지의 도로 사정도 매우열악하다. 사무실에 컴퓨터가 있어도 전기사정도 그렇고 해서 그저 갖춰놓고 있을 뿐이라고 하며 당시 사무실에는 형광등이 켜져있었는데 그것도 자력발전이라고 한다.
그 두 사람은 김상진(37세) 이제완(36세)씨로서 네팔에 온지는 두 달 정도 된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사람은 내가 두 번째 만나는 것이라고 매우 반가워했다. 둔체는 우리나라 里정도 규모로 보이는 작은 마을이지만 랑탕 일대에서는 가장 큰마을이다. 거기서 소일거리도 없고 공장도 바쁘게 돌아가는게 아니고 매우 적적한 생활이라 그들 말로는 수도생활 한다고 표현한다. 둔체에도 잘 안나온다고 한다. 하기야 나와봤자 별 볼일도 없으니까.
기숙사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한국인 트레커가 오면 숙소는 자기들이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이다. 실제로 기숙사는 직원들을 수용하고도 많이 남아있었다. 생수제품을 네병이나 얻어가지고 돌아왔다. 거기서 나온 생수는 네팔에서 시판되는 것을 그전에도 그후에도 보지 못하였는데 다른 생수보다 용랑이 작은데도 가격은 더 비싼걸로 보아 시중에서 판매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플라스틱병은 매우 견고하고 병마개도 잘 열린다. 네팔에서 나온 플라스틱 생수병은 병자체도 매우 약하지만 특히 병마개가 잘 열려지지 않아 애를 먹이는데 히말라야 생수는 확실히 기술적으로 차이가 많이 있다. 쉽게 잘 열린다는 애기다. 그들에게는 내가 한국에서 가져간 설악산 마가목주를 건네주었다. 그친구들이 마시고 싶어하는 것은 역시 한국의 소주였다.
호텔로 같이 돌아와서 호텔 옥상에서 다시 맥주 한잔하는데 옥상에서는 랑탕2봉이 아주 잘보인다. 그래서 호텔이름도 랑탕뷰호텔이다. 한국인 세 사람이 어울린 옥상 술자리에서 그두사람 얘기를 들어보자니 네팔과 네팔사람에 대해 아주 부정적이었다.
우리처럼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와 달리 이곳서 생활을 하면서 밤낮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사는사람들이라 그들 네팔사람의 부정적인 면을 많이 보았으리라. 나같은 여행자도 그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견해에 대해 이해가가는 점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으니.
나중에 합석한 통역으로 있는 키란 뉴판은 한국에 4년을 있었다는데 한국말을 아주 잘한다. 그는 원래 타멜에있는 호텔(deutsch home) 매니저라고 한다. 지반까지 다섯명이 두사람이 사는 저녁까지 얻어먹고 헤어졌다. 카투만두 가는 버스는 내일 아침이 되어야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를 알 수 있단다. 그래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니까.....
제 11일 : 둔체에서 카투만두
잠이 들었다 깨었다 하다가 일어난 시간은 일곱시. 아니 이런 젠장 어제 지번이 카투만두 가는 버스가 가게되면 7시경에 출발한다고 했는데 이런 낭패가 있나. 항상 새벽 다섯시경에 잠이 깨었는데 오늘은 어째 늦잠인고.
후다닥 일어나 짐 챙기고 있는데 지번이 왔다. 다행히 오늘 카투만두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일곱시 조금 넘어 출발하기로 했다나. 트레킹 끝나고 나서 하릴없이 여기서 발이 묶이긴 싫었다.
얼른 배낭메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오고 있다. 트레킹 중에 아침부터 비가 내린 적은 오늘이 처음이다. 많이 내리는 비는 아니다. 카투만두에서 버스가 오지 않았는데도 카투만두로 가는 버스가 있는 것은 네팔사회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가 묵은 랑탕뷰호텔의 사장은 돈 많은 사람이라 버스 세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세대의 버스 중에서 한 대를 오늘 카투만두로 운행시키는 것이다. 돈없는 노동자들은 조금이나마 좋은 대우를 받고자 파업을 하건만 그와중에 돈 있는 자는 그걸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다.
마오이스트가 횡행하는 이유를 알겠다. 유난히 랑탕지역에는 마오이스트가 붙여놓은 포스터가 많다.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뚱의 사진에 지금은 없어진 구소련의 낮과 망치가 그려진 붉은 깃발이 있는 포스터였다. 둔체에는 마을 한복판 건물에 그 붉은 공산당 깃발이 높다랗게 걸려 바람에 펄럭인다.
지번이 이미 끊어놓은 버스표를 호텔카운터에서 숙박비 계산할 때 같이 지불했다. 버스표를 받고보니 원래 이 차는 7시15분에 출발 하는거다. 제시간에 정확히 출발했으면 난 못타고 갈 뻔했다. 버스는 많은 사람을 싣고 7시55분에 출발한다. 보나마나 목욕 자주 하지 않았을 현지인들이 비를 맞고 차에 한가득 탔으니 버스안의 공기는 탁할 수밖에 없겠지...
뒷자리에 앉은 洋夷가 냄새를 못참겠는지 문을 활짝 열어제친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불어 창가에 앉은 나는 어깨가 시리다. 그래도 참아야지.. 비 맞은 사람들에게 나는 냄새나 냄새가 싫어서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도... 배낭커버로 어깨를 감쌌다. (나중에 비가 그치자 洋夷들은 버스의 지붕위로 올라갔다)
국립공원 입구에서는 모두 내려 체크포스트를 통과했다. 들어갈 때와 절차는 똑같다. 체크포스트를 지나 조금 가다가 다시 버스가 서더니 사람들이 모두 내려서 버스 앞쪽으로 걸어간다.
"이건 또 뭐야?" 나도 버스에서 내려보니 길이 계곡쪽으로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이다. 둔체 가는 길 자체가 워낙 경사 급한 사면에 있어서 여러 층에 걸쳐 돌로 쌓은 축대 전체를 철망으로 얽어놓았는데 그축대 전체가 어제 밤에 내린비로 약10여센티미터가 내려 앉아버렸다. 그 아래 계곡은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1000미터는 족히 될 듯 싶다. 그게 완전히 무너져 내렸으면 복구하는데 며칠은 걸릴 것 같았다.
버스는 사람들이 모두내려 체중을 가볍게 한뒤에 운전사 혼자서 기우뚱 기우뚱 아슬아슬하게 넘어온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성을 올린다.
비가 그친다. 비가 그치면서 해발 2000여미터의 찻길 아래 계곡이 온통 구름바다이다. 구름바다 위로 하얀산이 솟아있는 장관은 정말 쉽게 보기 힘든 환상적인 풍경이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앉은자리는 계곡 반대편이고 버스안에는 사람도 많아서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장면을 사진을 찍지 못했다. 카투만두로 들어가는 비행기도 히말라야를 볼 수 있는 위치가 있듯이 랑탕가는 버스도 그랬다. 랑탕에 갈때는 왼쪽 나올 때는 오른쪽에 앉으면 발아래 까마득히 계곡을 구경 할 수가 있겠다.
랑탕에 가던 날에는 뜨거운 햇볕과 후끈한 열기 그리고 사정없이 밀려들어오는 흙먼지로 고생했는데 오늘 비가 그치고 해가 나니 매우 상쾌하다. 바람도 적당하게 따습고 무엇보다 먼지하나 없이 촉촉히 젖은 대지와 나무들이 싱그럽기 그지없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달라 보일 수가 있을까?.
네팔의 버스는 차장이 남자들이다 그리고 거의 두명이지만 돈받는 차장은 한사람이다. 네팔의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누가 차장인지 모를 정도로 차장처럼 행동하는 젊은 친구들이 두어명 씩 꼭 있다. 차장도 네팔에서는 젊은 친구들에게 선망의 직업인가보다. 하기야 그들에게 일자리 자체가 절대부족이니까. 그리고 네팔 차장들의 특기는 휘파람이다 모든신호를 휘파람으로 한다. 휘파람 불줄 모르면 차장도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발가락슬리퍼를 끼고도 달리는 버스지붕 위를 원숭이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는걸 보면서 지금은 없어진 한국시내버스의 여차장들이 생각났다. 아침 출근시간이면 사람이 너무 많아 버스문도 닫지 못 한 채 남자여자 할 것 없이 몽땅 두팔로 싸안고 문짝대신 몸으로 버티면서 버스를 출발시키던 그옛날의 어린 차장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도 참으로 힘들고 위험한 직업이었다.
12시20분 버스는 트리슐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버스를 바꿔 타야했다. 다른 노선이 아니라 그냥 차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타고 온 차는 둔체로 돌아가고 새로운 버스를 타고 카투만두로 가는거다.
트리슐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트리슐리부터는 엉성하나마 포장도로이다. 한결 잘 달리고 앉은 자리도 편하다. 이 길을 네팔에서는 고속도로라고 부른다. 고속도로라고는 하지만 1차선이라 맞은편에서 차가오면 비켜나기 힘든 곳이 많고 커브가 워낙 심해서 빨리 달리지는 못한다.
게다가 사람 내리고 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차장에게 내리겠다고 손짓한 사람은 차가 완전히 정차한 다음에 천천히 일어나서 선반 위에 올려놨던 짐을 챙겨서 여유있게 출입문으로 나간다. 어떤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 내리고 차가 출발하려는데 그제서야 차를 세우고 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차장이나 운전사가 빨리 내리라고 하기는 커녕 인상 한번 쓰는걸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였다면 욕을 바가지로 퍼붓거나 최소한 인상을 있는 대로 쓸텐데 이곳 차장들은 웃는 얼굴로 내려주고 차를 출발 시킨다. (그래서 고속도로 30km가는데 두시간)
4시 반에 카투만두 외곽에 도착 거기서 내려야 했다 터미널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다. 정식 노선버스가 아니기도 하지만 파업 중인 터미널로 들어갈 수는 없는일. 덥고 뜨거운 태양 아래를 한참을 걸어서야 택시를 탔다. 택시비를 반분하기로 하고 미스劉네와 네명이 함께 타고 타멜까지 갔다.
김치하우스앞에 가니 검비르가 반겨준다. 김치하우스 식당에서 가네시씨와 음료수 한병 나눠 마시고 지번과 함께 강사르 게스트하우스에서 랑탕 가기 전에 맡겼던 짐을 찾아가지고 타멜 중심부에 있는 김치하우스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거기가 조금 싸고 캉사르와 달리 김치하우스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 해서 그리로 갔건만 바로 문앞에서 먼저 몰려들어가는 洋夷들에게 한발 늦었다. 그들 땜에 내가 들어갈 방은 없단다. 캉사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야했고 당연히 그렇게 할줄 알았던 지반이 의외로 나를 끌고 빌라에베레스트로 간다
"잠깐" 지번의 말이 이해가 안간다. 트레킹 가기 전에는 내가 김치하우스 게스트하우스에 묵겠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캉사르 게스트하우스에 집어넣더니 이번에는 캉사르 게스트하우스에 방이 있는 것 같은데도 거기에 나를 들게 하려다가 가네시에게 말들었다면서 빌라에베레스트로 끌고 간다.
빌라에베레스트에 간다면 지반이 자네가 같이 안가도 되겠다고 했더니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이 친구가 나를 김치하우스와 떼어놓으려고 하는게 아닌가 싶다. 김치하우스에 불평이 많더니.. 그래, 그렇다면 나는 빌라에베레스트로 갈 것이 아니고 시타홈게스트하우스로 가야겠다고 했다.
결국은 시타홈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시타홈 게스트하우스의 나라얀씨는 키가 컹충하게 크고 눈이 쑥들어간 얼굴이 아리안계보다는 아랍인처럼 보인다 그는 한국에 6년이나 있었다는데 한국말을 잘한다. 더블룸을 하루 200루피에 묵기로했다. 실내에 샤워 할 수 있는 화장실을 갖추었다.
지번에게 트레킹 11일 동안의 포터비를 계산해주었다. 하루에 350루피씩 총3850루피인데 4000루피를 주었다. 거기다가 트레킹 중에 지번이 빌려간 350루피는 트레킹 가기 전날 게스트하우스 숙박비(300루피)를 지번이 해결하기로 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지반이 자청해서 그렇게 하겠단다.
트레킹 가기 전에도 그랬지만 조금 전에도 맡겨두었던 짐 찾으면서 하루 묵었던 숙박비 계산 햐려고 했더니 지반이 그럴 필요 없다고 말렸다. 그래선 안되고 바로 해결했어야 되는데 결국은 한참 나중에 문제가 되고 말았다. 그러면 지번에게 4050루피를 주는 셈이된다. 일당외에 200루피를 더주는 셈이라 적은 듯 했지만 지번은 나와 함께 안나푸르나에 갈 생각이 있었으므로 매우 만족해하였다.
트레킹 하는 중간에도 그랬고 카투만두에 오면서도 계속 나에게 부탁하기를 김치하우스 식구들이 보는데서 계산하지 말고 그들에게는 얼마 주었다고 얘기하지도 말아달라고 하더니 지금은 그들이 물어보면 포터비 안 줬다고 얘기해달라고 당부한다. 나 원 썅 나같이 거짓말 안하는 사람에게 웬 거지같은 부탁인지... 원 그러마고 대답은 못 하겠고 그냥 묵살했다. 그는 돌아가면서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대해서 지가 내일 시골 갔다가 5일날 돌아오니 그 때에 같이 가자고 한다. 나는 그에게 안나푸르나 간다고만 했지 언제 어디로 갈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얘기하지는 않고 먼저 포카라에 가서 거기서 결정할 생각임을 랑탕 트레킹중에 말해주었는데 지반은 혼자서 다 결정해놓고 안나 라운드는 베시사하르로 가야된다고 햐면서 지가 시골갔다가 5일날 돌아오니 6일날 출발하자고 한다. 포카라가 아닌 베시사하르로 가야한다는 것은 나도 알고있었으나 일단 포카라를 먼저 가고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우기가 오기 전에 빨리 시작하고싶었다. 그런데......
나는 여태까지 지반에게 안나 갈 때 같이 가자고 한일이 없고 그가 같이 가겠다고 할 때에도 "그래 같이 가자" 하고 대답한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너하고 같이 안가겠다고 한일도 없이 아주 우유부단하고 기회주의적으로 마음속으로만 저울질하고 있었다. 물론 지반과 같이 가면 편한 점이 많다. 그는 제 형처럼 한국인의 정서를 아주 잘 헤아리고 마음씨도 착하다. 한국말도 잘하는 편이다 어려운 어휘를 이해 못하지만 그정도면 아주 잘하는 한국말이다.
그런데 그는 전문 포터와 달리 배낭을 아주 무거워 하는 것이 보인다.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같이 다녀보면 어떤 때는 따라가는 내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에잇 혼자 다녀야지). 그리고 지리를 잘 모른다. 물론 그는 가이드가 아니고 포터니까 지리를 모르는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랑탕을 여러번 다닌걸로 얘기하면서도 지리를 헷갈리는데 안나푸르나에는 한번 가보았다고는 하는데 글쎄 그말을 믿을 수도 안믿을 수도 없었다.
같이 가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야 없겠지만 내욕심에는 그곳 지리를 잘아는 사람과 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돌아가는 지번에게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산 한국담배 타임을 몇 갑 나누어주었다.
화장실에 물이 썩 잘나오지 않는다 겨우 샤워하고 빨래 몇 가지 하고나니 여덟시가되었다. 김치하우스에 가서 저녁 먹는데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으니 입맛이 당긴다. 갱진콤파까지는 음식이 안맞아서 걱정했는데 갱진콤파에서 내려와서는 음식에 적응하기 시작해 크게 한국음식이 생각나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역시 입에 맞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런데 맛있게 먹은 한국음식이 속에 들어가니 속이 편치않다 어느새 네팔음식에 뱃속이 길들여졌나보다.
<랑탕 트레킹 끝>
첫댓글 제1일만 읽어는데 저두거기에 가보구 십네요...자동차 지붕에타구~낼또 봐야지.
제2일 여기는 그럭저럭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는데 화장실이 변했군요...여기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