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어머니의 눈물
성모의 밤 찬양 미사; 2016.5.28
창세 3,8-21; 묵시 12,1-18; 루카 1,46-56
중앙 보훈 병원 성당; 이기우 신부
오늘 우리는 성모성월을 보내면서 찬양의 노래로 수놓는 성모의 밤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곁에 계시는 성모 마리아여
묵주의 기도 드릴 때에 나를 위로하시며 빛을 밝혀주시니
모든 걱정 사라지고 희망 솟아오르네
항상 도와주옵소서 인자하신 어머니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이후 박해의 칼날이 몸서리치도록 천주학쟁이들을 괴롭힐 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조선 천주교회를 성모님의 보호 아래 봉헌했습니다. 인류의 첫 어머니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의 말씀을 어겼을 때 하느님께서는 장차 구세주의 어머니가 사탄을 물리칠 것을 예고하신 것처럼, 이 조선 땅에서도 성모 마리아께서 박해의 칼날을 물리쳐주시고 신자들이 배교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의 기도를 청한 것입니다. 유난히 조선 천주교회 신자들 사이에서 성모 신심이 뿌리내리고 널리 퍼진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 천주교회 신자들의 성모 신심은 박해를 피하고 배교를 이겨내는 종교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박해시대 신앙선조들의 성모 신심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조 마리아는 아들 안중근이 나라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하여 공적 이또 히로부미를 주살하고 사형 언도를 받았을 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공소를 한다면 그것은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국가를 위하여 일하다 그리되었으니 죽는 것이 영광이다.”
명주 수의 속에 숨겨져 온 이 한 통의 편지가 안중근 토마스 대한독립군 참모중장으로 하여금 고등 법원에 항소하기를 포기하고 떳떳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만들었습니다. 독립운동가를 키운 어머니의 이 한마디가 이천 만 동포의 공분을 자아내고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에 시달리던 수억 명의 중국인들까지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의 힘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사십 년을 사는 동안 나라를 빼앗긴 설움은 고스란히 여인들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성 노예로 끌려간 소녀들은 일본군 정신대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전쟁의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자신을 지켜줄 조국이 없는 소녀들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밤마다 일본군 병사와 장교들의 하룻밤 노리개로 전락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조국을 그리워 하였습니다. 그네들의 마음을 달래줄 노래는 일본군가가 아니라 빼앗긴 조국의 노래였습니다. 그 소녀들은 찔레꽃이 붉게 피던 남쪽 나라 고향을 목놓아 불렀습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흘리며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달뜨는 저녁이며 노래하던 동창생 천리객창 북두별이 그립습니다
작년 봄에 모여 앉아 찍은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겁던 시절아
어렵게 맞이한 조국의 광복을 맞이한 기쁨도 잠시, 이 땅에는 동족 상잔의 전쟁이 터졌습니다. 남에서나 북에서나 남정네들은 전쟁으로 내몰리고 그 뒤치닥거리는 고스란히 여인들의 몫이었습니다. 남과 북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되풀이했고, 수도 서울에서 인민군에게 부역하다 끌려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노래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많은 미아리 고개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을 하오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많은 미아리 고개
전쟁은 이 땅에서만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머나먼 월남 땅에서도 이 땅의 젊은이들을 자유 수호의 이름으로 불러들이는 동안 이 땅의 어머니들은 살아만 돌아오기를 손 꼽아 기다렸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너무나 기다렸네
굳게 닫힌 그 입술 무거운 그 철모 웃으며 돌아왔네
어린동생 반기며 그품에 안겼네 모두다 안겼네
말썽많은 김총각 모두 말을 했지만 의젓하게 훈장달고 돌아온 김상사
동네사람 모여서 얼굴을 보려고 모두다 기웃기웃
우리아들 왔다고 춤추는 어머니 온동네 잔치하네
폼을내는김상사 돌아온 김상사 내맘에 들었어요
믿음직한 김상사 돌아온 김상사 내맘에 들었어요
전쟁터에서는 살아 돌아오는 게 기적입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어머니로서야 당연히 잔치를 베풀고 춤을 추고 싶었을 겁니다.
어머니들의 애환은 전쟁에서만 비롯되지 않았습니다. 멀쩡한 내 땅, 내 집 앞에서도 젊은이들은 총칼로 찢기고 매 맞고 죽어갔습니다. 또 다시 어머니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흘러야 했습니다. 바로 1980년 5월 광주의 눈물입니다. 시인은 자기 땅에서 자기 나라 군인들에게 죽어가야 했던 아들을 묻어야 했던, 아니 자기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어머니들의 슬픔을 푸르른 소나무에 빗대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속에 사무쳐 우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의 넋이 주인되는 참 세상 자유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 가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셋바람에 떨지마라 창살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어쨌든 독립을 해야 했던 때에나, 나라를 빼앗겨 끌려가야 했던 때에나, 나라를 되찾고도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루어야 했을 때에나,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자유를 수호해야 했던 때에나, 심지어 자기 땅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피를 흘려야 했을 때에나, 우리를 지켜 주시는 분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어두움이 찾아들 때 우리 지켜주시는 성모 마리아여
묵주의 기도 드릴 때에 내게 평화 주시며 맑은 마음 주시니
모든 근심 사라지고 기쁨 솟아오르네
항상 도와주옵소서 인자하신 어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