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갱죽
새해 첫날 아침에 집사람과 나는 집에서 빤히 보이는 앞산 등반을 하고 돌아왔다. 금방 다녀올 것 같은 마음과는 달리 두 시간 반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게다가 아침밥도 먹지 않은 상태에 추위에 떨다보니 집 근처까지 와서는 허기가 졌다. 집에 가서 배불리 뭔가를 먹을 생각뿐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집에 먹을 게 있느냐고 물었다. 집사람은 고개만 살래살래 흔든다. 어제 시장을 좀 보려고 했는데 수영이 엄마가 놀러와서 마트에 못 갔다고 했다. 식은밥이 좀 있을 거란다.
식사를 준비하던 집사람이 김치 갱죽을 먹어봤느냐고 물었다. 자기는 어릴 때 이 갱죽이 먹기 싫어 늘 엄마에게 짜증을 내곤 했는데 갑자기 갱죽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한번 만들어 먹자고 했다. 나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새해 첫날 첫 식사를 죽으로 때운다는 게 좀 그랬다. 게다가 김치 갱죽이란 옛날 궁핍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아픈 추억거리가 아닌가? 그렇다고 아내의 간절한 제안을 묵살해 버리기도 어려웠다. 나는 그렇게 하자고 억지 대답을 했다.
집사람은 갱죽을 어떻게 끓이는지 모르니 나보고 해달라고 한다. 이건 완전 산 넘어 산이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진동을 하는데 나에게 요리를 해 달라니……. 이건 몰염치를 넘어 거의 테러 수준이 아닌가? 나는 갱죽을 끓일 줄 모른다. 사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만 했지 언제 우리가 죽을 끓이거나 음식 만드는 과정을 유심히 본 적이 있었겠는가? 나는 인터넷으로 갱죽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그것도 음식이라고 조리법이 수십 가지가 뜬다. 김치 갱죽보다는 김치에다 콩나물까지 넣는 김치콩나물 갱죽이 대세다. 그러나 집에는 현재 콩나물이 계시지 않는다. 버섯도 넣으면 좋다고 하지만 그 분도 없다. 멸치에 다시다를 넣고 푹 끓인 육수가 있으면 좋다고 했지만, 멸치와 다시다가 있어도 그것은 사양하겠다. 그 육수 만드는 동안 내가 아사(餓死)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나는 형편껏 하기로 했다. 맹물을 냄비에 적당히 붓고 김치를 대충 썰어 넣고 멸치 좀 집어넣고 그리고는 끓였다. 밥통에는 굳다 못해 딱딱해진 식은밥 덩이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 중 일부를 떼어 끓는 물에 집어넣었다. 집사람은 TV의 새해 특집 오락프로를 보느라 음식이 죽이 되는지 밥이 되는지 아예 관심이 없다. 까르륵까르륵 웃음소리만 들려온다. 맛을 보라고 해도 TV를 본다면서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건 완전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드디어 나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김치 냄새도 훅훅 풍기는 게 제법 갱죽을 떠올리게 한다. 집사람은 후루룩 후루룩 잘도 먹는다. 어릴 때 맛과 똑 같다고 난리다. 나도 갱죽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물론 어릴 때의 어머니가 해준 그 맛은 아니겠지만 옛날의 향수를 떠올리기에는 충분하다. 우리 부부는 새해 아침식사로 갱죽을 배가 불룩하도록 먹고 또 먹었다. (2015.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