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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수필문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양희용(사무)
수필 아카데미 초청 강연 – 고형렬 작가
다른 두 권의 자전적 에세이와 일곱 권의 타전적 에세이
장자의 『칠원서(漆園書)』 에세이를 간행하고
장자의 『칠원서』 속으로 15년 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여행이란 것은 일단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어서 즐거웠으며 그래서 쉬지 않고 길을 떠날 수 있었다. 그것은 만물을 올라타고 어디론가 가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는데 어느새 대하 에세이가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90년대의 은빛 물고기들은 남대천과 오십천을 떠나 그 북명의 바다인 베링해를 갔다 왔는데 그들 모두가 나였다. 지금도 그들은 가고 있고 또 어느 무리는 연해주 앞바다에 머물 뿐 아니라 어린 시절의 고성과 속초, 양양으로 돌아오고 있다. 에세이라는 물은 자신이 태어나고 살았던 곳을 잊지 않는 일이며 그 물고기들이고 놓친 시간이고 다 닳아버린 지느러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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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구멍이라곤 없던 나에게 무언가 지나가는 것의 서럽다는 말이 관통했다. 그 내막이야 다 말할 수 없지만 원고가 끝날 무렵에 나에게 이상 임상이 나타나서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병실에 누워 돌이켜보니 나에게는 다른 두 권의 자전적 에세이와 일곱 권의 타전적 에세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첫 번째 책이 『은빛 물고기』이다. 그때는 광산촌 답사를 중단하고 자미원의 영을 넘어 태백을 지나 삼척의 오십천에 손을 담그던 시절이었다. 모두에게 어둠이었듯 나에게도 그 시절은 캄캄한 절벽의 시대였다. 어둠이 아니었던 자식들은 누구였을까. 나는 그 어둠을 뚫고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모든 생과 시대는 상처투성이 아닌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 백 년 전부터 상처투성이였지만 나의 젊은 날도 상처투성이였다. 그렇다고 투옥의 대가로 수십 년이 지나서 생각지도 않았던 어떤 보상금을 받을 만한 처지의 사람도 아니었다.
이삼십 대는 상처의 시절이었다. 알 수 없는 곳을 향하여 재촉하면서 길을 갔다. 새벽에 길을 떠나고 한밤중에 영을 넘었다. 영을 넘으면 새벽이었고 나는 그 새벽의 빛과 사라져가는 동을 말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기억만이 나의 진짜 생인 것 같다. 도시의 술집에서 보냈던 날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일생일란一生一卵의 연어를 찾아 중심으로부터 먼 곳으로 나아가서 『은빛 물고기』의 자료를 모았다. 그 길만이 그 당시의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감추고 싶은 말이지만 아무도 그 은빛 물고기의 길을 모른다는 것이 내가 아는 것의 전부가 될 참이었다. 아는 것과 그 앎의 대상은 반드시 소멸되고 이상한 자아의 기억만이 어딘가에 한 권의 책처럼 남아 있을 터이다.
나는 아무도 상상하지 않는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은 늦가을 끝에서 형편없는 몸의 켈트가 되어 사라져갔다. 영하의 눈발 속에서 죽음들이 되었다. 그것은 멈춤이고 침묵이었다. 돌아갈 길도 없고 돌아올 길도 없었다. 여기서 나는 모든 것과 함께 아득해졌다. 나는 좀 일찍 아무도 모르게 그것을 문학으로 경험한 셈이었다.
두 번째 책이 『등대와 뿔』이다. 멀리 가버린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었다. 그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전후의 고달픔 속에서 희망을 찾던 유소년 시절의 아침 해를 다시 그 추운 바다에 떠올려서 보듬으며 그 가족을 만나고자 했다. 누군 죽고 누군 늙고 누군 멀리 가서 살고 있다.
추억 속의 그 실존은 아프고 힘겹지만 그립다. 그곳에 돌아가고 싶지만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모두 파괴되고 죽었고 다른 가족들이 와서 우리 가족처럼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시간의 회귀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 마을 사람들이 돌아올 리가 없다. 그곳이 나의 나라이다. 하지만 그곳에 다른 내가 살 것이다.
너무 구체적인 것들이 들어가서 오히려 불편했던 자전적 책이 『등대와 뿔』이었다. 이 첫 권에 넣지 못한 글들이 꽤 남아 있지만 정말 쓰고 싶은 나의 타자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곳에 묻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 글쓰기에는 어떤 방책의 연금술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예전부터 나는 나를 상아喪我시키는 일을 중요시했다.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이는 것이 왠지 나는 더 나답다고 생각했다. 그 궁지에서만이 내가 겨우 나에게 보일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이 마음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나무 구멍 속에 들어가서 글을 쓰면서 나를 타자로 내다보고 싶다.
세 번째 자전적 에세이가 『고형렬 에세이 장자』 전 칠 권이다. 이 장자의 내편 일곱 편의 책명을 ‘칠원서漆園書’라 명하고 오십에 장자를 찾아 나섰다. 그것을 나태와 자유가 아니라 재촉이며 긴장이었다. 만약에 장자를 안락만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그 재촉과 긴장은 기쁨을 주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정말 한 시절이 가버렸다.
마지막 칠일이혼돈사七日而渾沌死로 끝나는(아니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응제왕」을 탈고할 무렵에 아쉬움을 느끼며 스무 살 때 한 약속대로 45년 만에 장자를 일 단 모두 읽었음을 알았다. 2300년 전에 집필된 한 사유의 문자 속에서 시간은 흘러갔다. 그 책 속에 해가 뜨고 해가 졌다.
그 글쓰기의 자체가 지닌 허무가 나를 씻어주었다. 다시 말하면 그 긴 글을 읽어야 할 정도로 나는 채울 수 없는 허무의 중병에 걸려 있었던 셈이다. 그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식으로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칠원서』의 에세이 12,000매는 나의 자전의 길이 되었다. 그 문장들이 옳든 그르든 나의 것들이다. 그 행위는 단순히 장자를 번역하는 일이 아니라 그 집필의 여행이 그 길과 문장의 내가 되는 일이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바로 그 에세이가 나의 자서라는 소리가 내부에서 들려왔다. 그때 나는 나의 길과 발을 동시에 보면서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문학행위는 자서전의 행위에 놓인다. 문학은 결국 자신을 자신과 타자에게 혹은 자연과 침묵에게 전하고 표하고 때로는 인간에게 등을 돌리고 나무에게 헌사하며 고백하고 또 숨기고 싶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문학일 리가 없다.
나는 그 문학의 어둠 속에 불빛이 늘 서 있거나 숨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을 한쪽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내려가는 하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도를 닮았는지 않았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도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무관한 물과 불빛 사이를 잇고 싶은 갈망이 나를 사유하게 한다.
나는 장자의 『칠원서』에 대해서 솔직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말과 자신을 찾아가고 장자를 읽었지만 결국은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곳에 나라는 것은 없었고 언어만 있는 것 같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 언어가 장자였고 없다는 내가 그곳에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 후 나는 내가 커다란 상처 덩이거나 한 덩이 흙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또 더 알 수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없는 내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살고 있는 그 나가 좋아졌다. 사람들이 나에게 장자가 누구이며 그의 도는 무엇인지 묻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기회에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다른 꿈 하나가 더 있었음을 고백하려 하다. 나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자서전을 쓰고 싶은 그것이다. 그러나 그 첫 문장은 아직 떠오르지가 않았다. 나는 이제 고작 장자의 집에서 돌아오고 있다.
그 길은 멀 길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의 마음은 눈보라에 갇혀 얼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이곳에 도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의 모두가 돌아오진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곳에 일부의 나를 두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나는 몇 가지 자전적 오브제들이 나를 살아오게 했던 것은 확인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 이상의 것을 말할 자신과 능력은 없다. 그렇다고 나를 흔들거나 누구를 유혹하고 싶지가 않다. 그 누가 읽지 않아도 자기 삶을 기록하는 행위처럼 안쓰러운 것이 없다. 없는 나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은빛 물고기와 등대와 뿔과 그리고 장자는 나와는 떨어질 수 없는 장르적 결속의 한 끈이 되었다. 암 것도 한 일이 없는데 자서전을 쓰고 싶은 마음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한없는 사람의 슬픔과 몸이 글을 존재하게 한다. 아니 그 글은 자서전이므로 다른 사람이 읽지 않아도 된다(?). 자서전은 자기 삶이고 몸이기 때문이다. 나는 없지만 나의 몸은 있다고 하면 성문成文이 될까.
『열반경』에 기인종무변토(飢人終無變吐, 굶주린 자는 먹은 것을 결코 토해내지 않는다)란 말이 있다. 이를 진전시키면 먹음으로써 그 양식이 영혼 속에서 죽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장자의 일이시종一以是終과 같은 것이 아닐까. 내면에 있는 어떤 문자는 모든 집필의 손끝에서 일이시종을 꿈꾼다. 일단은 그것 외에 붙잡을 만한 다른 권력과 화폐와 장르는 나에게 없다.
나는 30대의 은빛 물고기와 50대의 등대와 뿔, 60대의 칠원서 에세이로 나를 다스려야 했다. 다스렸다는 것은 내가 혼돈 속에 있다는 뜻일 것이다. 오히려 나의 지난날의 수많은 과오와 절뚝거림의 길과 마주치고 싶다고 변명하고 싶다. 남은 것은 그것뿐이 아닐까. 다스려지지 않음이 남아 있는 사람의 자아 같은 것만 겨우 느껴지지 않을까. 죽어가는 사람의 하얀 머릿속처럼.
나는 바다로 떠내려가는, 알을 모두 내쏟은 한 마리의 걸레 같은 연어이다. 강가의 땅을 붙잡고 있는 얼음이 풀리는 이른 봄날의 그 켈트가 나이다. 그리고 저 해안에 밤새 눈을 돌리던 등대가 라이트를 끄는 눈 아픈 아침이다. 부정하고 거부할필요가 없는 나들이다.
둥근 수평선에 해가 자궁을 빠져나오는 낯선 지상이며 만물을 올라타고 노니는 광막지야의 한낮이다. 그가 한없이 요료廖廖한 만물지수(萬物之首, 인간. 이번에 처음으로 장자 원문에서 발견된 사자)가 아니고 무엇일까. 다른 무엇을 없다.
장자에 대한 에세이는 나 자신의 자전적 글이 아니지만 칠원漆園에 머물며 글을 썼을 장자라는 인물에 대한 타전적 해석으로서의 내가 취하고 쓴 일곱 권의 자전적 여행서이다. 문득 남의 생을 살고 있는 그 나의 얼굴을 쳐다본다. 혹시 나도 그도 장님이 아닐까.
결국은 또 다른 그의 기억과 글 속으로 찾아가야만 했던 나라고 하는 그 사람의 자전을 계속해서 구성하는 것이 앞으로의 삶이 아닐까. 모든 말과 문학은 결 푸른 에세이로 귀결되고 모든 작가는 하나의 언어로 귀화한다. 이러한 의문과 숙제가 없다면 삶이라 부를 만한 것이 이곳에는 없는 것 같다.
필자는 이 원고를 송고하고 다낭에 가서 며칠을 보냈다. 열흘 뒤에 송고한 원고에 대한 필자 교정을 보면서 미흡한 점에 대해 메모했던 이 글에 대한 단상을 아래와 같디 조금 첨부하였다.
사실 은빛 물고기의 생애를 그들의 누군가가 쓴 것이 아니고 인간의 내가 썼다는 것은 설명과 이해를 잘 할 수가 없다. 어느 연어 한 마리의 개체가 아닌 그들의 집단의 생애를 쓴다는 것은 더더욱 말하기 난감한 일이다.
또 『등대와 뿔』은 마치 다른 사람이 나=고형렬을 쓴 것처럼 읽을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책과 그 속의 나=고형렬은 그 밖에 있는 나=고형렬=필자=주인공이 아니라 타자이기도 해야 한다. 오늘이나 또 먼 미래의 저쪽에서(또는 전혀 모르는 사회와 골방에서) 썼다는 것을 독자와 나=고형렬이 인식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족이지만 여기서 이런 생각을 했다. 즉 문학 속에서 서로 분리되어 타자로 나타나는 현상을 통하여 문학의 본질을 더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학의 진행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문학의 새로운 영역을 넓히고 본질을 성찰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그것이 문학을 넘어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될 수 있을까.
장자는 2300년 전의 한 도인이지만 죽어서 살아있는 문자 사유의 인물이다. 나는 『칠원서』 에세이를 쓰면서 장자가 아주 먼 미래에서 한 사람이 자신을 찾아 방황하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 마음은 문을 열 수 없는 광막지야이고 슬픔에 해당한다. 그 장자의 위치에서는 더 말할 것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 불통을 즐기면서 그 죽은 저쪽의 타자와 이쪽에 살아 있는 어떤 타자인 ‘나’가 하나가 되려고 하는 사생일조死生一條의 모험을 시도한 셈이다. 그러니까 결정적인 문장을 쓸 수 없었고 그 어떤 확증적인 자료로 내 마음에서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했다.
지레 짐작한 것일지 모르나 나는 아마도 자신의 본생本生에 도달하고자 하는 역망에 걸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현재의 나로서는 그 모든 것의 앞에 두고 싶은 커다란 모험적 사유라고 생각한다. 가당치 않은 길로 들어섰던 것일까.
비록 그 문장을 쓰지 못할지라도 그것 앞에 서 있는 나를 느낀다. 이것이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솔직히 말해서 그 외의 것들이란 것이 나에게 있기라도 한 것일까. 그래서 나는 불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불통이 나를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오히려 소통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수많은 나와 타자들 그리고 제삼자와 방외자들은 서로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저쪽에 살아 있거나 없는 자들로 이해한다. 그때 나는 아주 조금 그들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그 작은 틈으로 그들이 보인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쓰고 싶은 언어와 문법이 결핍을 느끼고 있다. 그 문장이 올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불행하다고 여기지지 않는다. 그것을 알면 된 것이 아닐까, 그 이상은 불가의 영역이다 싶다. 어느 날 문득 그 문장이 머릿속에 빗처럼 쏟아질지도 모르지만. 그때 나는 다른 곳으로 막 건너가고 있을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글을 쓸 때나 글을 쓰고 나서나 글을 쓰기 전에 나는 항상 '나없음'을 느끼고 그것을 이렇게 만졌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며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두려움이고 기쁨이다. 내가 여기 있으므로 저쪽에 없는 나를 알 수가 없다. 이 차단된 몸의 '잘려있음'은 전율이다. 그러니 저쪽에 내가 있다면 그 나는 이곳의 나를 알 리가 없다. 그리고 이곳의 내가 나일 리가 없다. 분리된 나를 느끼는 것이다. 기이한 일이지만 불행하게 여겨지지가 않는다.
그 모든 나의 본래의 나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있다. 없음의 화두보다 있음의 의문이 더 영구한 선적 통로이다. 그러나 그 통로를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이것이 우리를 사람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본생(本生, 필름 원판 혹은 네거티브 같은 것)이 있지만 그를 만질 수 없고 입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다는 것이 현재의 자아이다. 그 내가 바로 내가 다시 써야 할 타자의 글이고 책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돌연히 다른 의문을 던지면서 이 글의 바깥과 뒤를 생각하면서 그곳을 찾을 수 있을까 살피고 나를 확인하면서 글을 마친다.
- 2019년 6월 24일 양평과 6월 27일 다낭에서
| 고형렬(高炯烈) 작가 소개 |
1954년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
1979년 『현대문학』에 「장자莊子」 「수풀 속에는」 발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대청봉 수박밭』 『성에꽃 눈부처』 『밤 미시령』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유리체를 통과하다』 『지구를 이승이라 불러줄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 등과 장시집 『리틀보이』 『붕새』 등을 발간.
산문집: 『등대와 뿔』 『은빛 물고기』 『시 속에 꽃이 피었네』 『아주 오래된 시와 사랑 이야기』 『고형렬 에세이 장자』 전 7권 등 다수.
수상: 2006년 제38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2006년 제8회 백석문학상, 2009년 제55회 현대문학상, 2015년 제2회 형평문학상, 2018년 유심작품상 수상.
경력: 창비 편집부장. 계간 『시평(詩評)』 창간.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