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배영상 : https://youtu.be/saG7FFa6_9Y
제목 : 믿음의 개혁이 멈추면 부패한다.
본문 : 렘 14:19-22
날짜 : 2025. 10. 26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그동안 매년 모든 교파와 교단 그리고 모든 교회가 매년 종교개혁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개혁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도 개혁의 주체인 종교지도자들이 개혁을 원치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물론 다수의 성직자들은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소수의 기득권층들이 원치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던 러시아의 한 주교가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임재를 위해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주님께서 그 주교의 앞에 오시자, 주교는 주님께 아직 때가 아니니 좀 더 있다가 다시 오시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 주교는 주님의 임재를 바라고 기도했지만, 정작 자신이 누리고 있었던 부와 명예를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누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개혁을 원치 않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세시대의 교회는 부와 명예를 비롯해 권력까지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치적을 하늘에 닿게 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자 바벨탑을 쌓듯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게 성당을 지으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루고 지키기 위해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금했고, 심지어는 면죄부를 사면 자신들의 죄를 탕감받는다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왜곡하여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이로 인해 일어난 것이 바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는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게시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포함한 온갖 부정부패를 성경적으로 비판하며 반박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이것을 계기로 개신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 이후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며칠 전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문자 내용은 현 감독이 전 감독을 고소한 사건이었습니다. 전 감독은 당시 재직 기간에 호남연회를 위한 수혜헌금과 미자립교회를 위한 헌금 총 1억 4천 5백 만 원 중, 1억 2천 5백 만 원을 횡령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현 감독이 이를 횡령으로 경찰에 고소한 사건이었는데, 연회에서 5천 만 원에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전 감독이 횡령한 헌금은 수혜를 입은 성도들과 미자립교회를 섬기는 어려운 목회자들을 도우라고 모금한 헌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헌금을 횡령한 목사가 징계나 제재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장정개정위원장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본인의 횡령으로 인해 도움을 받지 못한 수혜를 입은 성도들과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유사한 상황들이 모든 연회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자라고 성장한 모 교회에서도 새로 부임한 목사가 공금횡령과 성스캔들로 물의를 일으키고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다른 연회에 있는 규모가 더 큰 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을 갔으며 부흥사로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과거 연회에 참석을 하면 그나마 개혁을 외치는 목회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저도 잠잠한 것 같습니다. 이미 우리 자신도 교회가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세상 사람들은 세속화된 교회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세상 사람들도 교회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였지만, 교회는 그들의 비판에 교회를 핍박한다는 이유로 귀를 닫았습니다.
민수기 22장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세상 적인 탐욕에 눈이 멀어 발락을 향해 가던 발람 선지자를 하나님의 사자가 가로막습니다. 그런데도 발람은 세상 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2:33절을 보면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라고 하나님의 사자가 발람 선지자에게 말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한낱 미물인 나귀를 통헤 발람 선지자의 미친 짓을 깨닫게 하듯이, 세상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교회의 세속화에 대해 경고하고 외치고 있지만, 교회는 이러한 외침에 귀를 닫고 눈을 감고 하나님의 사자가 가로막고 있는 길을 향해 점점 다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돌이키지 않고 계속 그 길을 가면 결국 그 길의 끝인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영혼 없이 목회를 하던 목사가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그동안 나는 예수를 몰랐다”라고 고백을 하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영혼 없이 목회를 하거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그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는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세속을 향해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마틴 루터가 과감하게 그 세속적인 길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돌이켜야 한다고 외치며 종교개혁을 시작했듯이, 우리도 세속적인 길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개혁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1.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시작은 바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두 가지의 잘못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들의 악입니다. 여기서 죄라고 하지 않고 악이라고 한 것은, 자신들의 악한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철저히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은 죄를 범한 행위를 심판하기에 마음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 마음에 품은 악한 생각조차도 용납하지 않고 철저한 회개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조상들의 죄악입니다. 신 5:9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록 자신들이 죄를 짓지 않았어도 조상들의 지은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죄와 무관한 조상들의 죄악을 회개함으로 자신들에게 임할 심판마저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은 행위뿐만 아니라 마음에 품은 생각, 그리고 조상들의 죄까지도 완전하게 회개하고 청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본문 14:21절을 보면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회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레 11:45절에 보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벧전 1:15절에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 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거룩함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내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는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3.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본문 14:22절을 보면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가 있고 그들이 숭배하는 무수한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우상들은 아무 능력이 없는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며, 참 능력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왕의 왕이시며 우리의 전능자가 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능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그분이 예배하신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전능의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해야 합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중세교회가 타락하여 세속화되었을 때, 마틴 루터를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우리 개신교입니다.
그런데 현재 교회를 보면 점점 세속화되었던 중세교회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세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며 더 크고 화려하게 성당을 건축하듯이, 개신교회는 점점 더 크고 화려하게 예배당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중세교회가 성경에도 없는 면죄부를 팔아 성당건축을 하듯이 개신교회는 성경에도 없는 온갖 종류의 헌금을 만들어 예배당 건축을 하고 규모를 키우려 합니다.
또한 중세교회의 종교지도자들이 세상 적인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듯이 개신교회의 종교지도자들 또한 세상 적인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고 누리려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중세교회 종교지도자들이 부패하여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듯이 개신교회 종교지도자들 또한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성직자들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목회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득권층에 속한 일부 권력형 종교지도자들로 인해 전체가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러한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시작입니다. 나를 통해 종교개혁을 시작하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