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5:1-16
찬송가 373장 ‘고요한 바다로’
고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1-7절)
욥은 모든 자녀와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채 극심한 고난으로 지쳐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그의 친구들이 그를 찾아와 이런 저런 말로 위로하고자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5장에서는 그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엘리바스가 전하는 조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은 만큼 인생의 경험도 많았을 것이고 또한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이해도 가장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욥에게 자신이 경험하고 자신이 이해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1, 2)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어제 살펴본 4장에서 엘리바스는 탄식하는 욥을 질책하며 자신이 체험한 인생의 경험들을 제시하면서 욥의 당면한 고난의 원인이 범죄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지적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5장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욥의 잘못을 지적하고 질책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욥이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지금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게 욥이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절에서 어리석게 분노하는 자를 향한 저주는 욥을 염두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분노하며 부르짖지 말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3-5)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엘리바스는 악인이 멸망당하는 것을 자신이 직접 보았는데 그 결과가 비참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미련한 자로 상징되는 죄인은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자식들이 잘되고 부요한 가문을 이루고자 하였지만 오히려 그의 모든 가족들의 삶은 가난해지고 구원으로부터 멀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엘리바스의 이러한 실증적인 진술은 은연 중에 재앙을 받고 있는 욥을 정죄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6, 7)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재난과 고생이 티끌과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이유없는 고난은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이 고생을 위하여 났다’는 말 역시 고난 이면에는 그것이 발생하게 만드는 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엘리바스의 이 말은 일반적인 권선징악적인 심판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순식간에 자녀를 잃고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의 자리에서 비통해 하는 욥에게는 해서는 안될 말이었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사랑하는 자녀 잃은 것이라는 말은 아비의 가슴을 후벼 파는 잔인한 말입니다. 지금 욥에게 필요한 것은 편협하고 획일화된 인생조언이 아니라, 말없이 다가가서 그 아픔을 어루만져주며 함께 울어주는 사랑의 포옹이었습니다.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의탁하리라(8-16절)
(8)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엘리바스는 고난 받고 있는 욥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8절만 떼어놓고 본다면 언뜻보면 맞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욥기의 문맥을 고려하여 읽어보면 이 말은 상당히 위험한 조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엘리바스는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고 말하면서 은연 중에 자신이 욥보다 영적으로 더 우월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너라면 시간을 낭비하거나, 쓸데없는 불평으로 내 영혼을 괴롭게 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면서 욥 앞에서 교만하게 조언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안에서 정말 조심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보편화 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똑같은 모양과 방식으로 받아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성도들을 인도하실 때에 맞춤형 인도를 하십니다. 사람에따라 이모양 저모양으로, 때로는 늦게 때로는 이르게 인생을 간섭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받는 이웃을 향해 내가 이해한 하나님을 강요하기보다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으로 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9-11)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일을 행하시는데 거기에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뛰어넘을 수 없는 위대함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대자연의 힘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를 따라 만물들을 복종케 하십니다. 특별히 이들이 살았던 곳은 물이 귀한 곳인데 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언급함으로써 모든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12-14)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그들은 낮에도 어두움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본절의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악인들의 계획에 대항하여 그 뜻을 무력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묘사합니다. 악인들의 계략이 아무리 정교하고 변화무쌍한 것이라 해도 그 모든 것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이 그들의 악의를 파하고 무력화 시키십니다. 악인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 할지라도! 공의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 하시면 모든 일이 허사가 됩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 살펴보았던 에스더를 보십시오. 악인 하만이 유다인을 멸망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방식으로 유다인을 구원하시고 악인을 멸망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계획 할지라도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5, 16)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강한 자의 칼과 그 입에서, 또한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시나니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희망이 있고 악행이 스스로 입을 다무느니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 억압받는 약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강한 자보다 훨씬 더 강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할 때 불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강한 사람도 언젠가는 약해지고 아무리 힘이 있는 사람이라도 힘을 잃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런 염려를 떨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한 분이시며 졸지도 주무시지고 피곤치도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 보았을 때, 하나님에 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엘리바스의 이야기들은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견되는 아쉬움은 무엇입니까? 옳고 바른 소리라 할지라도, 적절하지 않은 대상에게, 적절하지 않은 때와 방법으로 전했다면, 그것을 오히려 독이 될 뿐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해 어설프게, 나의 생각과 나의 신학으로 해석하고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부르짖을 때에도 얼굴을 감추시는 분이십니다. 죄가 없는 자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고난과 징계를 내리시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인간의 생각과 경험으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교우님들.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경험과 생각대로 재단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절대로 변함없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라는 사실만 기억하며 고난을 이겨내십시다. 고난의 순간에 있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고난을 당하는 이웃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하며 눈물을 닦아 주십시다. 각자의 삶에 맞춤형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우리 모든 100주년기념교회 교우님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인간인지라, 한계와 오류 투성이의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고난과 시련을 믿음으로 바르게 해석할 능력이 우리안에 없음을 정직하게 아뢰이오니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주님께 창문을 여는 우리들되게 하여주옵소서. 여전히 고난 중에 있는 교우와 이웃을 정죄하기보다 따뜻한 사랑으로 안아줄 줄아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고난과 고통의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 간증이 있습니까? 고통 속에 있는 교우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 간증하시겠습니까?
2.힘들고 어려운 교우를 위해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3.유명인이 간증하는 집회에 참석해본 적 있습니까? 그 간증에서 나에게 적용되어야 할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4.고난을 바르게 해석하고 주님을 향한 건강한 믿음과 이웃을 향한 따뜻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결단 하시겠습니까?
(작성 : 김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