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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설교(91)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본문 : 요 2:13-22
<배경 이야기 - 성전 숙정>
우리 민족이 추석이 되면
고생고생을 하면서까지
고향을 찾는 것과 같이,....
유대인들도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그들의 신앙의 고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땅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영적 고향을 찾아
예루살렘 성전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평화가 가져다 준
선물이었습니다.
로마의 평화는 비록 폭압적이기는 하였으나
사회적 안정과 여행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으므로.....
그 동안 꼼짝도 못하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결과 성전 당국에 막대한
이권과 수입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성전은 이권 다툼 속에서
그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전의 위기가 온 것입니다.
진실한 성도들은 성전이
타락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감히 성전의 타락상에 대하여
입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성전의 타락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마치 성전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 모든 실상을 보셨습니다.
<본문 13-16절 읽어라>
13절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절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절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분노하시고 그들을 성전 밖으로
내어 쫓으시고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만약 성도님들이이 오랜만에
시골에 있는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집에 들어와
온 집안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오물을 버리면서....
더럽히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아마 계속 그렇게 아버지의 집을 더럽히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당장 내어 쫓겠죠.
만약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당신이 뭔데 우리가 이 집에서
노는 것을 못하게 하는 거요?”한다면.....
성도님들은 당장
“이 집은 내 아버지의 집이요.
내 아버지의 집이 유흥장인지 아시오?
당장 이곳에서 나가시오”하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흥분하고
그들을 내어 쫓을 수 있습니까?
바로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장사치들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성전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12세 때 유월절을 맞아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오신 적이 있습니다.
제사를 드린 후 돌아가는 길에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사흘 길을 가다가 뒤늦게 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찾다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거기서
선생들과 성경에 대하여
토론을 하고 계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한편으로는
안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부모로서 당연한 심정입니다.
그런데 책망하는 부모 앞에서
12살의 어린 나이의 예수님은
너무도 담담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2:49).
예수님은 성전을 ‘아버지의 집’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전관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은 그 누구의 집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
‘곧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전의 목적>.......
또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마21장에 보면 예수님의 성전의 목적에
대한 진술이 나옵니다.
마21: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만남의 관계를
가지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사람을 만나거나 사업적 인맥을 찾아
교제를 하기 위하여 나오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성도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이것도 교회의 여러 가지
기능중의 하나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것은
예배하는 곳,
기도하는 곳입니다.
온전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즉 예배와 기도가 수단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목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예배나 기도가 이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수단이 아니라 신앙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또 어떤 교회는 그 교회 자체가
우상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의 교인이라는 지나친 자부심은...
교회를 수단화시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교회를 찬양합니다.
자기 교회에 나와야 신령한 체험을 하고
은혜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른 한편 성령의 역사를
제한시키고 교회의 보편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우리가 교회(예배)를 수단화시킬 때
우리는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놀라는 제자들>.......
그런데 예수님이 성전을 숙정하실 때에
얼마나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하셨던지
그것을 지켜보는 제자들이 엄청 놀랐습니다.
17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것은 시편 69편의 말씀입니다.
‘열심이 나를 삼킨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는 것이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피곤한 줄도 모르고
오직 그 일에만 빠져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모든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집’을 깨끗케 해야
하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남을 내어 쫓기 위해 일종의
무기(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심)를 만드신 것도
처음이셨습니다.
평소의 예수님의 말씀과 인격을
생각해 보건데....
정말 놀랄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제자들만 놀란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는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운데 유대인들이 묻습니다.
18절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우리는 유대인의 악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로 진리를 쫓는 사람들이었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예수님이 장사꾼들을 몰아내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신해주니 얼마나 시원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아들 되심을 고백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에게 표적을 보이라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이
이 모양이 되었습니까? ...
어떻게 되었기에 이들은
진리를 보고서도....
진리를 진리라고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지 못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까?
그들 안에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오직 돈밖에 없었습니다.
돈 욕심이 있으면 진리가 무엇인 줄 알면서도
진리를 인정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에 양심이 팔려서 진리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진리를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 유대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혹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
내 입장과 이익에 그만 눈이 멀어
진리를 알면서도,
주님의 말씀이 양심에 부딪쳐 올 때도 모르는 척,
아니 척 하면서 스스로를 속인적은 없습니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표적을 보여 달라며 예수님께 도전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무시무시한
예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1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무서운 예언은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들에게 이것보다 더 듣기
싫고 두려운 예언은 없습니다.
전에 미가 선지자와 예레미아 선지자가
성전 파괴의 예언을 했을 때,...
사람들은 분노해서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저주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영원히 방황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순히
성전이 이방 세력에 의하여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시지 않았습니다.
“너희가”라고 꼭 집어 말씀하십니다.
이번에 성전을 허무는 자들은
이방인들이 아니라 너희 유대인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정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자기들이 이 성전을
허물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0절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한 것입니까?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즉 해석이 필요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요한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21절입니다.
21절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성전을 자기 몸과
동일시 하셨습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수님과 교회는 동일시되어 표현됩니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
그러면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
성전을 헐라는 것은 ....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뜻하는 것이며......
성전을 일으키리라는 것은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 깊은 말씀을
알아듣는 이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20절)라며
조롱했습니다.
웃기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비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기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제자들조차도 그 당시에는
이 말씀을 이해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22절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간신히 이 말씀을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맺는 말씀 - 예수님이 우리의 성전>
사랑하는 성도님들 !
이 본문에서 우리가 깨닫는
심오한 진리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건물이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우리들의 성전입니다.
전에는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고 제사하였으나 ...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디서나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고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새 성전이시기에...
그의 이름으로 모인 곳은
그 어디이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존재하는 근거입니다.
주님이 성전이시기 때문에
주님 모신 곳은 그 어디나
작은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의 가정도....,
직장도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로 이루어진
성령의 공동체가 곧 교회입니다.
금산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
예배하고, 봉사하고, 가르치고,
교제하는 성령 공동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안에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사람이 곧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고전3:16-17 읽어라>
16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절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제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
예수님을 참된 성전으로 삼고......
나아가 성령께서 거주하시는
우리가 곧 성전임을 깨닫고 ......
주의 복음의 빛을 세상에 널리
비추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