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2일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김성우×엄기호, 따비)
너와 나의 잦은 충돌
오늘도 유튜브 보는 걸로 치사한 말다툼이 이어진다.
“그만 봐.”
“이것까지만 볼게.”
“자꾸 약속한 시간보다 더 본다.”
“5분만 더 본 거잖아.”
“5분은 무슨. 뭐 볼지 찾아보겠다고 이것저것 본 것까지 치면 10분은 더 지났어.”
“엄마 아빠는 핸드폰 훨씬 더 많이 하면서….”
아이는 말끝을 흐리긴 하지만 불만이 잔뜩 섞여 툴툴거린다. 내가 생각해도 치사하다 싶은 순간이 있긴 하지만, 시간을 제한하지 않으면 한두 시간 꿀꺽 집어삼켜 버리는 것이 유튜브라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기에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들이 즐겨 보는 영상에서 툭 튀어나오는 비속어,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재미있다고 실실대고 따라 하기까지 하는 걸 보면 내 마음은 불편해진다. 아이가 책을 조금만 더 보겠다고 했어도 이랬을까.
“지금은 정보나 이야기를 ‘읽고 쓰는’ 게 아니라 ‘보고 찍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보를 습득하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죠. 읽고 쓰는 것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고 구성하는 사람들과 보고 찍는 것으로 그걸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세대 갈등에도 이런 측면이 깔려 있다고 보고요.”(30쪽) 그렇다. ‘읽고 쓰는’ 것을 추구하는 나와 ‘보고 찍는’ 것이 익숙한 아이는 매일 같이 충돌한다.
내가 유튜브를 보지 말라고 하는 이유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나에게 묻는다면 어디 책뿐이랴. 시간도, 관계도 때로는 밥도, 잠도 집어삼키고 있다고 답하겠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영상이, 어디서든 손안에 움켜쥘 수 있는 핸드폰이 그렇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에도, 길을 걷거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잠들기 직전에도 쉼 없이 본다. 볼 게 있어서 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그냥 보고 있다. 볼 것을 찾기 위해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함께 보내는 시간이 침범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 의해 편집된 정보, 굉장히 주관적으로 요약된 정보”(146쪽)에 폭 빠져 순간의 재미에 만족하며 우리가 잃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이유로 다르고 낯선 것은 마주하지 않으려다 더 깊은 외로움과 고립으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바보가 되지는 않을까.
네가 유튜브를 보는 이유
아이가 처음 유튜브에서 찾아본 영상은 장난감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장난감의 작동 방법을 찾다가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봤다. 자세한 설명부터 변신 과정, 적절한 상황극까지 설명서나 책이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을 영상은 담고 있었다. 아이는 금세 빠져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습득 능력을 보여줬다.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궁금한 것을 검색해서 찾고,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은 건너뛰고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은 반복해서 봤다. 그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다룬 책은 별로 없는데 유튜브에는 영상이 아주 많다고 한다. 관련된 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연결되어 확장되기까지 한다. 장난감 로봇에서 로봇을 다룬 애니메이션, 그 애니메이션 마니아의 각종 괴담까지. 아이 입장에서는 볼 게 이렇게 많은데 정해진 시간은 너무 짧은 것이다.
주변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가 없어 나만 좋아하나 싶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아이는 자기와 관심사가 같은 유튜버나 블로거를 찾고 좋아한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가족도, 친구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데, 그래서 나름 외로웠는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여기 있었구나 싶어 반가운가 보다. 아이의 이야기에서 친구 이름보다 유튜버를 더 많이 알게 된다.
“왜 학생들이 유튜브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가? 자유와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보다 보면 재밌거든요. ‘보다 보면 재밌다’는 게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게 아니라 학생들한테 자유로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죠. 학교에 가면 몸에 맞지 않은 갑옷을 입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곳에 오면 입어보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어볼 수 있고, 하고 싶은 놀이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런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거죠.”(117쪽)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가장 먼저 컴퓨터 앞에 앉는 이유가 이렇게나 많은데, 다짜고짜 영상은 나쁘고 책은 좋다고 말하는 건 나의 리터러시 문제인 듯하다.
너와 나를 위한 리터러시
리터러시가 “무언가를 이해하고, 이해한 걸 바탕으로 어떤 행위, 즉 판단을 하거나 결정을 하거나 합의를 할 수 있는 능력”(62쪽)이라면, 그래서 “삶을 영위하고 관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역량”(62쪽)이라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거다. 리터러시. “리터러시를 논의할 때 중요한 것은,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하느냐 영상을 봐도 되느냐가 아닙니다. 그 무엇을 하든, 이것들을 통해서 타자의 세계에 대한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죠.”(173쪽)내가 추구하는 매체와 네가 좋아하는 매체가 다르다는 사실에 갇혀 있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다르기 때문에,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귀 기울여 듣고 확인하고 돌아보면서 나 아닌 너를 이해하기 위해 다가가자.
첫댓글 어머 글이 너무 재밌어요.
나에게 묻는다면 어디 책뿐이랴. 시간도, 관계도 때로는 밥도, 잠도 집어삼키고 있다고 답하겠다. 요부분 너무 저같습니다. 인터넷상에 맥락없는 동의를 지향하라하는데 너무 와닿아서 밑줄 쫙 입니다.^^
저도 이 부분이 딱 들어왔네요. 채도, 시간도, 관계도, 밥도, 잠도 집어삼키고 있는 유튜브. 웃프네요. 엄마로서의 현실적인 고민과 그럼에도 위트를 잃지 않는 혜화님의 글! 힛, 이렇게 잘 쓰시면 어째~~
혜화샘~ 소제목과 그 흐름까지 넘 좋아요. 너와나 충돌, 나, 너, 너와 나의 리터러시(이해)로..^^, 치사한 말다툼은 저희집만 있는게 아니군요..ㅋ타이머까지 종종 동원된답니다. 1초도 더 허용할 수 없다며! ㅋㅋㅋ
소제목 다는 센스까지~~~ 꺄아 못하시는 게 없습니다. 혜화샘
너와 나의 리터러시, 아, 이거슨 관계에 대한 철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댓글을 썼다 지웠다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에요.
나의 철학, 아이들과 다른 나의 리터러시, 아이들의 재미와 자유를 이해는 하겠는데, 여전히 머뭇거리고 갈등하는 나의 리터러시, 그 안에 담긴 내 마음이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되면 좋았겠다 싶어요.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나에게 묻는다면 어디 책뿐이랴. 시간도, 관계도 때로는 밥도, 잠도 집어삼키고 있다고 답하겠다. 저도 이 문장이 확 꽂히네요! 글이 너무 좋아요^^ 혜화 쌤 글은 삶의 고민과 책의 내용이 늘 잘 녹아 있어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