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4:25-5:2절)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하신 일 전체를
믿음으로 수용 곧 영접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영접이며 그 이름을
믿는 겁니다(요1:12) 한 때는 예수를 영접하라고 골목마다 소리치다가 요즘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자랑한다는 웃지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예수를 영접하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던 그분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듣고 믿어
회개와 세례로 따라가므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다시 산 자라는 믿음이
없이는 결코 죄와 사망에 종에서 벗어난 의와 거룩과 영광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로
사망에 의해 온 인류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로 태어납니다. 불 못으로 갈 운명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을 다 행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을 온전히
지키면 의가 될까요? 십계명은 너무 무거우지 잘게 쪼개어 하라는 계명 248개,
하지 말라는 계명 365개로 가볍게 나누면 다 지켜 의인이 될 수가 있을까요?
의는 율법을 다 지키는 자가 얻는 게 아니라 아담 안에서 죄와 사망의 종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활에 의해 그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아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시인하므로 의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의 아들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의와 평강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을 얻습니다.
예수를 평생 믿고 병이 들어 신음하는 목사들에게 당신 지금 죽으면
불 못이라는 말을 해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오직 예수만 믿고 목숨 걸고 선교를 하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말문이 닫힌 선교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전하고
예수가 당신 바깥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그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주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부활과 연합이 되어 영생을
얻었노라고 전하여 마지막 말문이 열려 아멘 할렐루야로 해피앤딩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또 제게 수십 년 선배이신데 평생 오직 예수만
증거하며 부흥사로 또는 총회장으로 또 신학교 이사장으로 섬기시고
명예욕이나 물질의 욕심이 전혀 없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다만 식탐을 빼고서...
그분의 마지막 몇 년을 섬기게 되었는데 간암으로 곡기가 끊기는 순간까지
그 분은 죽음 너머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제게 하신 말인즉 내가 일어나면
자갈치에 가서 싱싱한 고기를 사다가 푹 고아서 같이 먹자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고 찬양을 불러드리면 ‘내 걱정 근심과’ 다음에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하면 그만 잠이 드셨습니다.
이는 주님 품에 돌아갈 의향이 전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만 귀를 막은거죠.
임종하시기 전 마지막 밤 저 혼자 그 암의 고통과 사투를 벌이면서 죽어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오직 예수라는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유튜브로 인기를 얻으며 아침마다 설교를 하고 있는 목사가 있습니다.
이 분이 청년들하고 평생 말씀을 나누다보니 설교하는 수준이 어려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어린 사람으로 봤는데 어느 날 나이를 말하는 걸 보니
저보다 한 살이 많더군요. 그렇지만 왠지 어리게 보이는 걸 어쩝니까?
제가 몇 번이나 ‘예수를 믿는 우리’라는 말을 잡고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보라고 해도 아직 아무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신 믿음의 스코어는 불 못이야 말하고 싶습니다.
그 증거가 그가 폐암이라는 징계를 받아 하나님께서 그 병에서 벗어나
다시 구원을 이루는 시간을 주신 겁니다. 패자 부활전과 같은 겁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이나 앞으로도 자신이 쓸모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그의 구원을 위하여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징계입니다.
제가 목회가 뭐냐고 하나님께 물을 때에 그건 널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가치라는 뜻의 티모데오 곧 디모데서의
전서는 자신을 먼저 가르치라는 말씀이고 후서는 충성된 자에게 부탁하라입니다.
인간에게 예수를 믿을 자유도 있고 거역할 자유가 있다고 해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위해 말씀을 순종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복도
받고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치면서 왜 자신은 사망의 덫에 걸려 병에 걸립니까?
핑계는 근사합니다. 어릴 때에 아버지가 피우는 담배로 간접흡연을 했고
교회개혁을 위해 싸우다가 스트레스를 받아 그렇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이게 뭐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도 아니고, 강아지 풀 뜯는 소리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대속을 따라가지 않으면 영생은커녕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드리워 있어 그게 스트레스가 되는 줄 왜 몰라요?(요3:36)
주께서 그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아담 안에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 놓고 이를 듣고 믿음으로 의를 얻고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어 그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이 엄청나고 원더풀한 복을 얻지 못하면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아래에
있음을 왜 모를까요? 그건 복음의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성경말씀을
알아듣기 쉽게 또 정확하게 전달하여 현 상황에 적용하려는 루틴만 공부한 결과입니다.
그게 바로 미국식 교육학에 의한 귀납적 성경 연구라는 강해설교의 한계입니다.
성경은 연역으로 기록되었지 귀납이 아닙니다. 들으면 믿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로마서 4장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우리에게도 주셨다고 말합니다.
율법이 없고 할례도 없었지만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지는 그 믿음에 의해 의를 얻고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치는
믿음까지 나아가므로 하나님의 의를 얻어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최초로 의를
얻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 됩니다(갈3:27,29)
다윗 또한 율법과 성전이 있었지만 제사로 그의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복을 받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복(롬4:6-8)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믿음은 율법과 성전에 의한 죄 처리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오시는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믿음으로 아무 행위도 없이 불법의 사함과 죄의 가리움과 정죄를
당하지 않는 복을 받은 겁니다. 제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었습니다.
성경은 항상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있는자로 계산하라(롬6:11) 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받고 믿고 따라와 성령 안에 잠기면 중생과
회개와 믿음과 칭의와 하나님의 자녀와 거룩함이 한꺼번에 이루어집니다.
물론 계시는 점진적이어서 서서히 깨달아져 총명과 명철이 더 해가지만
우리를 진리의 말씀을 낳는 순간에 이미 우리들에게 이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다 죄 사함을 받았다 나는 천국에 간다 이런 뇌까림의
누룩에서 벗어나 우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 나는 주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라는 기본 값을 항상 시인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의가 나타나고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여 성령 안에 잠겨서(성령세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그 영광에 나아가는
엄청난 구원의 즐거움으로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복을 누리게 될 겁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