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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이제는 멕시코
I, 멕시코라는 나라로...
a, 멕시코로 가는 여정
‘멕시코’라는 낯선 나라를 향해 길을 나서기는 했으나 막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외통수였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이 땅을 다시 밟게 될 것인가?’
비행기를 기다리는 인야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먼 이국으로 떠나는 여행자의 감상 만은 아니었다.
여행이나 사업상 가는 길이 아니었기에, 인야는 기약 없는 귀국을 막연하면서도 걱정스럽게 떠올렸던 것이다.
그런 걸 보면, 돌아오리라는 것에는 의심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내가 왜 떠난다지?'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글쎄,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거라면, 그렇다면 나는 정말... 뼛속 깊이 ‘떠돌이’의 피를 타고난 게 아닐까?’
뭔가 절박한 기운이 인야를 야릇하고도 묘한 자유와 막막한 두려움 속으로 동시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러면서는 결국,
‘아! 나는 왜 그렇게 타고 태어나서는......’ 하며 뜬금없이 ‘역마살’을 끄집어 내면서, 그 탓으로 돌리고도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발길 따라 그 먼 곳으로 향하는 자신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6년 1월 17일, 때를 맞춰 비행기가 하늘 위로 치솟았다.
창가 좌석에 앉은 인야의 눈 아래로 조국의 오밀조밀한 산과 반짝이는 강줄기, 점처럼 박힌 집들이 희미하게 멀어졌다.
그것은 마치 먼 옛날이야기처럼 희미하게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아, 나는 간다. 전혀 알지 못하는 ‘멕시코’라는 나라로......'
첫 번째 환승지인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세 시간여의 대기 시간 동안 인야는 붉은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저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의 시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흐르는데, 마음 둘 곳 없는 자신만 뜬구름 같다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몇 년 전 스페인으로 떠날 때는 ‘새로운 삶’이라는 명분과 최소 1년 치의 생활비라도 가진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얼마나 버틸지도 모를 얇은 주머니 사정에 ‘잠깐 머물다 떠나리라’는 임시방편의 마음뿐이었다.
해가 지면 어디로 가야 할지가 늘 골칫덩이인 떠돌이의 신세가 된 자신이 새삼 처량하게 느껴졌다. 문득,
'살아계신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있을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스쳐, 인야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내에서의 시간은 불편한 잠과 뒤척임의 연속이었다.
창을 밀자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다.
여명이 밝아오며 구름 위에 떠 있는 비행기의 형체가 드러났다.
나리타 공항의 처량한 황혼보다는 차라리 눈앞의 먼동이 나았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은 분명 아메리카 대륙일 터라 인야는,
‘드디어 새로운 대륙에 상륙하는 것인가?’ 하며 스스로에게 작은 의미를 부여해 보았다.
그러나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뜻밖의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부터 짐을 들어주며 동행했던 젊은이들과 헤어진 직후였다.
미국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인야는 공항 경찰의 감시 아래 격리실에 반감금 상태로 갇히게 되었던 것이다.
죄인이 아님에도 그런 취급을 받는 사실에 불쾌감이 치밀었지만, 인야는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억울했다.
1층 격리실 창밖으로 분수대가 있는 작은 정원이 보였고, 그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며, 이곳이 바닷가임을 짐작할 뿐이었다.
그런데 오죽하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을 '시애틀'에 친구 H도 사는데......’ 하는 생각마저 간절했지만, 그곳에선 전화조차 걸 수 없는 현실이 그를 더욱 갑갑하게 했다.
두 시간여의 감금 끝에 멕시코행 비행기 시간이 되자, 경찰들은 인야를 인질처럼 출국장으로 끌고 갔고, 역시 특별 취급을 당하며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옆 좌석에 앉은 젊은이가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왔고, 몇 마디 나누다 보니 멕시코로 건축 견학 겸 답사를 떠나온 건축공학도여서... 동행이 되었다.
대륙은 역시 대륙이었다.
창밖을 주의 깊게 내려다 보니, 어느 부분은 녹지, 또 어느 부분은 사막, 그리고 고원으로 바뀌어 가는 듯했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광활한 풍광에 여독이 깊어, 지겨워질 때 쯤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본 멕시코 시티는 뿌연 스모그에 싸인 거대한 잿빛 덩어리였다.
착륙하며 마주한 공항의 모습은 여태껏 보아온 어떤 공항보다 초라하여 이 나라의 형편을 짐작케 했다.
다행히 바르셀로나에 있는 누리아의 먼 친척이라는 ‘아르뚜로’가 마중을 나와준 덕에, 낯선 곳에서 짐을 들고 호텔을 찾는 고생은 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스페인어에 문제가 없는 덕에 인야는 첫 스페인 입국 때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마음으로 절차를 마쳤다.
기내에서 알게 된 건축공학도와는 비용 절감을 위해 큰 방 하나를 함께 쓰기로 하고, 도심 한복판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매캐한 냄새와 오염된 공기, 입에 맞지 않는 음식, 그리고 해발 2,200m 고원지대 특유의 나른한 기운이 인야를 혼미하게 만들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인야는 가장 먼저 서울에 잘 도착했다는 안부 전화부터 걸었다.
거의 24시간 만에 도착했지만, 멕시코의 날짜는 서울을 떠나올 때와 같은 1월 17일이었다.
도착 초반, 인야는 시계조차 현지 시간으로 돌려놓지 않은 채 멍한 상태로 이틀 밤을 보냈다.
한국에 대한 미련을 놓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호텔이 중심부인 ‘소깔로’ 광장에서 멀지 않아 저녁이면 주변을 배회했다.
피곤에 절어 코를 골며 자는 옆 침대의 젊은이와 달리, 인야는 새벽 3시에 눈을 떠 갓등을 켠 채 몇 자 끼적이곤 했다.
어수선하고 불안한 도시 시설과 어두운 표정의 사람들, 가슴을 뜨끔거리게 하는 공해는 그를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다 날이 훤히 샌 뒤에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누군가 자신의 손금을 보며 ‘정상에 설 것’이라 말했다.
깨고 나서도 나쁜 꿈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지만,
'도대체 화가에게 정상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남았다.
그날 오후, 아르뚜로와 함께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런데 돈 있는 이들이 누리는 화려하고 깔끔한 집들은 인야에게 비현실적인 풍경일 뿐이었다.
취사가 되지 않는 방은 그림의 떡이었고, 결국 소득 없이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인야, 여기 멕시코에서는... 밤이 되면 특히 조심해야 해!" 하고 몇 번이나 당부하고 아르뚜로는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현지인을 안다는 건 보통 도움을 받는 일이 아니라서, 비록 방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온 하루를 자신을 위해 함께 해 준 그에게 감사했다.
물론 바르셀로나의 누리아와 연관된 일이라, 멀리 있는 누리아에게도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튿날에도 꿈은 이어졌다.
쓰러진 감나무에서 탐스러운 감을 따는 꿈, 그리고 어머니의 온기가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오열하다 어머니가 다시 깨어나시는 꿈들이 인야의 밤을 뒤흔들었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잠은 늘 부족했다.
인야는 동행한 공학도와 함께 '소깔로(Zocalo)' 광장의 ‘대성당(까떼드랄)’을 찾았다.
성당 입구에서 손을 벌린 채 무릎을 끓고 앉아 있는 노파를 보는 순간, 인야는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그 젊은이는 건물 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인야는 물기를 담은 눈으로 성상 앞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인야의 호주머니엔 5뻬소짜리 한 개 그리고 1뻬소짜리 두 개의 동전이 있어서, 나오는 길에... 더 늙어뵈는 노파한테 5뻬소, 그 뒤의 다른 노파한테는 2뻬소를 건넸는데, 그러면서도 이 세상이 슬프기만 했다.
다음 날 방문한 ‘국립 미술관(Bellas Artes)’에서 인야의 감정은 반전되었다.
거대한 규모의 벽화들에 압도당한 순간, 그는 처음으로,
‘여기에 잘 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의 문화가 결코 경제만큼 뒤쳐져 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야 자신을 여기에 오게 한 요인이었던 '멕시코 벽화'의 거장들과 처음 접하는 알프레도 살세의 작품, 그리고 고갱전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을 보며 인야는 강렬한 의욕에 사로잡혔다.
'기왕 나도 여기에 왔으니, '벽화'에도 한 번 빠져, 좋은 작품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나도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화가가 되고 싶다!' 하는,
어쩐지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이 작품 세계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예감과, 어서 빨리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강한 의욕에 사로잡히고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을 나온 뒤 그 앞 광장에서도 인야는, 따가운 햇살 아래 먼 이국의 고원 땅에서... 무한한 자유와 새로운 문화를 접한 야릇한 행복감에 젖어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지독한 공해는 다시 불평의 세계로 그를 몰고 갔다.
상황에 따라 종잡을 수 없이 널뛰는 감정은 불안의 반증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초저녁에 침대에 누워 TV를 보다 언뜻 졸았는데, 그래서 막상 잠을 자려고 자세를 잡자 그 사이에 잠은 도망가 버리고... 인야의 정신은 초롱초롱해지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만나 동행이 된 젊은 공학도는 다음 날 ‘메리다(Merida)’로 떠날 채비를 마쳤고,
인야의 홀로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술대학 등록을 위해 찾아간 행정처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친절했다.
동양인을 무시하던 바르셀로나의 까딸란(바르셀로나 주변 까딸루냐 사람들) 보다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거긴 일단 동양인을 깔보거나 무시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여긴 그런 건 없어 숨쉬는 것 자체가 편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인종차별이 없는 곳이라는 뜻일 것이었다. 게다가 물가까지 싸서 너무 좋았다.
어디든, 좋은 점 나쁜 점은 공존하는 것일 테니까.
'빨리 집이 구해져야 뭘 하든 말든 할 텐데...... 근데, 어머닌 안녕하실까?' 하고 인야는 전화를 걸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전화를 안 받으셨고, 군산 형 집에 걸으니 통화 중이고... 그런 와중에 전화카드의 돈이 몽땅 지워져, 결국 어머니와는 통화조차 못하고 말았다.
겨우 다음 날 통화할 수 있었는데,
“어머니 저예요. 안녕하세요?”
“그, 그려, 잘 있다. 너는?”
“물론, 저도 잘있습니다.”
“근디, 어떻게.. 벌써 전활 했냐?”
“그냥,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근데, 지금 전화기의 돈이 다 떨어져 가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 그려......”
그리곤 끊었다. 인야가 생각해도 너무나 이상하고 싱거운 전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음성을 들은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채워진 느낌이었다.
오후에는 국립미술대학교(ENAP)가 있는 '쏘치밀꼬(Xochimilco)' 지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버스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이 인야의 가슴을 후벼 팠다. 아코디언의 애절한 전주로 시작된 그 노래는 가사의 뜻을 다 알기도 전에 그의 콧등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아코디언 소리는 늘 그의 향수를 자극했고, 인야는 자신의 유약한 감수성을 탓하며 노래에 빠져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래는 멕시코의 전설적인 가수 호세 호세(José José)의 ‘Llora Corazón’이었다.
‘사무치게 운다’는 뜻의 그 노래는 곧 온 라틴아메리카를 휩쓸고 있었고, 같은 언어권 안에서 불길처럼 번져나가는 문화의 힘을 보며, 인야는 한국과는 다른 대륙의 거대한 에너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인야가 도심 한 복판에 있는 학교 행정처(산 까를로스(San Carlos))에 가서 학교 등록을 하는데, 거기 담당자가 대번에,
“스페인에서 왔어요?” 하고 물어왔다.
“아니요.”
그저 짧게 대답했을 뿐이다.
“스페인 억양이네요?”
“아, 이전에 몇 년 거기서 살기는 했었지요.”
“아, 그래서 그렇군요!” 하고 웃으며,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기에,
인야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인야가 멕시코에 도착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도, 그런 현상은 여기저기서 상당히 잦고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야의 스페인어에 스페인 억양이 강하게 스며있다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인야 쪽에서도, 멕시코에서의 발음이나 억양이 스페인에서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우리나라 같이 작은 나라에서도 지방마다 사투리가 존재하는데, 이 스페인어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땅덩어리 차이(대륙간)가 있으니, 그렇지 않을 것이 오히려 이상하겠지. 스페인 자체에서도 말이 다른데......'
같은 스페인어인데도 그런 차이를 실감하며 인야는 언어라는 것이 땅의 크기와 세월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분화되는지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멕시코 시티에 도착한 지 일주일, 인야는 어렴풋이 몸의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멕시코시티’가 해발 2,200 미터 정도의 고원지대라 ‘고산병’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직접 겪어보지 못해왔기 때문에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왔다.
그런데 1주일을 넘기면서, 머리가 멍하고 띵한 것은 시차 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몇 계단만 올라도 다리에 힘이 빠지고 현기증이 일었고, 입맛이 없어 먹는 것이 부실하다 보니 기력은 더 떨어졌다.
길거리 음식을 믿지 못해 호텔 주변의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인야는 자신이 이 잿빛 도시와 공해에 익숙해질 수 있을지 깊은 우려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제주도의 ‘한라산(1950미터)’ 보다 더 높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그 높은 곳의 공기가 이토록 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못내 씁쓸하기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