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2:20)
1.철학은 인간이 인간을 연구하는 것이며 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신앙은
말 그대로 믿고 앙망하는 것인데 사실은 좀 다르다.
인간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 자리에서 자신을 보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앙이
거의 신학적인 범위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신학
이상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제자훈련이다
신사도주의다 하는 식의 말은 있으나 제자도 보이지
않고 시대적인 사도도 보이지 않는다. 말은 제자가
제자를, 사도가 사도를 만든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
교황이 지상의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며 임무교대를
계속 하는데 만약 제1대 교황으로 추대된 베드로의
영성을 가지면 능히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돌아가시면서 주의 제자들로 하여금 주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요14:12) 주님이 아버지께 가셔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시므로 베드로는 사도행전의 사도가
된 거다. 그래서 베드로의 설교로 성령충만이 임한다.
2. 왜 플라톤의 지혜가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전승 되지 않았을까? 플라톤이 이데아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 붙잡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
텔레스는 눈에 보이는 학문에 치중한 거다. 왜 석가의
제자들이 천차만별인가 그 듣기 좋은 열반을 시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것이 열반이다가 최종메시지다. 왜
유수한 교회의 목사들에게 교회 후계자는 있는데 어찌
영성의 전수는 되지 않는가? 그렇게 제자훈련을 하지만
왜 제자가 나타나지 않고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떠다닐
말꾼만 되는 걸까? 겨우 제자들이라고 해 봐야 앵무새다.
나는 로마서의 구원을 터득한 후 줄기차게 외길을 걷다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건 사도와 선지자는 인간이
인간에게 넘겨주는 직분이 아니란 거다. 아무리 훌륭한
목사라도 직접 제자나 사도를 만들 수가 없다. 절대로
안 된다. 허나 베드로나 바울이 남긴 말씀을 듣고 따라
가서 끝(테로스)이신 그리스도께 닿으면 그들과 같은
사도의 사역을 할 수가 있다. 이는 나보다 아버지가
더 크시며 내가 아버지께 감이라 하신 그 자리에 따라
올라가는 비밀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는 바울이 그가
체험한 삼층천의 광경은 간증 않고 왜 그의 서신의
지성소라 하는 에베소서를 기록했을까 오래 생각했다.
환상이나 표적은 믿음으로 의가 되지 못한다. 생명도
거룩함도 영광을 얻지 못한다. 그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과 지금 하시고 있는 일에 동참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실제의 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환상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 사실(엡2:6)
은 믿어지지 않는다. 환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피로 하나 되고 십자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한
성령 안에서 한 몸 한 영이 되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엡2:1-18) 그로 인해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받아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그와 함께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갈 수 없다(엡2:20-22)
3. 사람들이 이단(異端)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이단이라는
말은 끝내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끝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지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단이라 하지 않고 미단(未端)이라 하거나 말단(末端)이라
말한다. 그건 아직까지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혼의 구원을
받는 믿음의 끝에 이르는 진리의 순종(벧전1:22)이 없기
때문에 시온 산 자락에 서 있는 거다. 사도 베드로는 그가
변화산에서 존귀와 영광을 얻은 주님을 본 환상보다 우리
안에 성령의 감동으로 샛별처럼 떠 올라 낮같이 환해지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됨이 더 확실하다고 한다(벧후1:16-21)
베드로가 본 그 광경은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받아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설 수 없는 거다.
변화산 체험으로 베드로가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주의
약속으로 성령이 임하신 후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
하는 사도가 되었다(행1:8) 그는 성령 안에서 진리를 통해
보좌에 앉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함께 하시는
주의 제자로 표적과 함께 말씀을 확실히 증거했다(마16:20)
4.말씀을 증거하는 중에 말씀을 들으러 오는 이들이 흡사
사고팔고의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인양하는 모습을 본다.
아이들이 부모 속 썩이려고 밥 안 먹어, 공부 안 해 하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목사가 이래도
응, 저래도 응하니까 자신이 교회의 소비자인양 생각하나
보다. 그래서 어떤 목사는 교인을 VVIP라는 소리까지 한다.
나는 말씀을 공부할 때 소비자가 상품을 파는 상인 대접을
하면 가차없다. 그건 그 사람의 영적인 장래를 위해 반드시
손을 본다. 그대로 두면 어느 세월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터득하여 성령 안에서 진리로 은혜의 보좌에 닿겠나.
나 같은 경우 신앙생활한 지 25년 만에 아담 안에 있었던
내가 그리스도 안에 옮겨진 사실을 알고 롬8장 안에 발견
되었다. 그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향하여 바라보고
나아가고 나아가다 다윗과 같이 영광 나라 계신 임금이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주님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통일이
되었다. 또한 25년 이상이나 걸린 것 같다. 50년 세월이다.
내가 전한 말씀을 앵무새처럼 지식으로 전하는 게 아닌
자신의 것이 되어 나와 똑 같은 말씀(레마)을 전하는 사역자가
나온다. 제자훈련도 좋고 신사도주의도 좋다. 다만 자신이 주의
보좌에 닿는 비밀을 가지라. 만약 바울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이 되어 주의 부활에 연합이 되기 위한 고난을 배우고
그리스도께 붙잡힌 것을 붙잡으려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므로 삼위 하나님 안에서 일체가 되는 영적인 비밀을
다른 이에게 넘겨줄 수만 있다면 제자나 사도의 직을 바로
넘길 수는 없지만 자신과 같은 사역을 할 수 있는 계승은
가능한 거다. 만약 승계를 원하면 명의와 신분만 넘기지
말고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넘긴다면
그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기뻐하시는 계승이 된다. 왜
베드로 이후 모든 교황이 꽝인가. 왜 마르틴 루터의 제자는
없고, 칼빈주의는 있는데 칼빈의 제자는 없는가? 미안하지만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그리스도의 신비함이 그들에게는 없음
이다. 그래서 로마서와 요한복음과 히브리서를 강추하는 거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주의 종들은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자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