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영 묵상노트] 산상수훈(39)
마태복음 6장 25절-34절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우리의 인생사를 간단히 표현하면 흔히 고생과 염려, 그리고 수고뿐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실 인생이란 자체가 항상 행복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웃는 날보다는 우는 날이 더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인생을 고해(苦海)와 같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같은 인생의 모습에 정 반대되는,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니 이와 같은 염려를 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 앞에 불경(不敬)을 저지르는 것이며, 이는 곧 죄(罪)라고 봅니다. 그리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세상 사람들처럼 보물, 재화를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보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데, 우리는 여기서 어떤 교훈을 받을 수 있을까요?
25절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라고 합니다. 즉,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목숨을 주시고 몸을 주셨으니, 음식이나 의복은 어찌 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니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위하여 26절-29절에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솔로몬의 영광보다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백합화가 더 하다고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염려를 한다고 그 키가 한 자나 더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키”(ἡλικίαν)라는 단어는 우리의 신체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명(壽命, lifespan)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설명을 이어간 후에, 31절에서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라고 재차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염려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이미 앞 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과 몸을 주셨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과 달리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걱정하지 않더라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34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일 일을 위하여 미리 염려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 인생은 오늘은 있지만 내일은 내 마음대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한 것입니다. 내일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이방인처럼 염려하지 말라고 했으니, 다가올 미래를 위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그냥 살아도 된다는 것일까요?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있어 내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을 마치 마지막 날처럼 최선을 다하여 주어진 책임을 감당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오늘의 일이 무엇일까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성경은 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나라”라는 말은 바로 천국(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을 의미하겠지만, 좀 더 나아가면 우리가 천국의 시민(Civitas Dei)으로 지금 세속 국가(civitas terrena)에 살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의 의”라는 말은 하나님의 의로우심(δικαιοσύνη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33절은 산상보훈의 핵심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씀으로, 성도는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의 나라에 두고, 하나님의 의만을 사모하면서 만족하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는데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ταῦτα πάντα προστεθήσεται ὑμῖν). “너의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찌 염려가 없겠습니까만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에, 오늘 하루를 마지막같이 살아갑시다. 우리가 염려를 한 들 어찌 내 생명의 키를 한 치라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가는 복된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