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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여자, 전염병 최초 사망자 강청댁의 삶을 중심으로 ‘죽음은 불운인가 행운인가, 자연도태는 선인가 악인가’라는 제목으로 책맛보기를 시작합니다.
잘생긴 용이의 아내 강청댁은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사랑에 매달릴수록 오히려 사랑으로부터 더 멀어져야 했던 강청댁은 서른네 살 나이에 마을에서 전염병 최초 사망자가 됩니다.
“임자도 부지런히 길쌈하라고. 그라믄 내가 임자 죽으믄 수의 입혀 묻어줄 것이니.”
용이가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지만 강청댁은 수의는커녕 지게송장으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강청댁을 죽음으로 몰고간 콜레라는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1903년 무렵 이 땅에 번졌던 전염병이었습니다. 당시 무성했던 소문으로는 ‘송장이 태산을 이루고 있다는 둥, 미처 숨도 끊어지지 않은 사람들을 끌고 가서 산 채 불에 태워 죽인다는 둥, 길을 걷는 사람이면 모조리 끌어다가 가두어놓고 굶겨 죽이고 때려죽이고 침을 놓아 죽인다는 둥’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전염병이 얼마나 심각하고 민심이 흉흉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강청댁이 살았더라면 마을에서 벌어진 참상들을 목격했을 수도 있습니다.
전염병 사망자가 생겨날 시초에는 고개를 넘어가는 망자에게 상두꾼이 있었다. 다음에는 거적에 만 초라한 지게송장이 수없이 고개를 넘어갔다. 그러나 그것도 여유가 있을 때의 일이다. 길에서 죽은 시체는 그나마 거둘 사람이 없어 굶주린 늑대와 야생 개들, 까마귀에 뜯기는 처지가 되었다.
마을에는 집집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부적이 나붙었다. 그뿐만 아니라 귀신을 쫓는다는 가시 돋친 응개나무 토막, 여인의 피묻은 속곳, 닭 피가 묻은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가 삽짝에 내걸려 있기도 했다. 병이 그런 방어를 겁낼 리는 없었다. 병균의 습격 대상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없었다. 부자와 빈자의 구별이 없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도 않았다. ‘난리가 났다면 피난이나 가지’ 하고 사람들은 절망했으며 희망을 미신에 걸어보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다.
당시 전염병은 약육강식과 상관없이 자연도태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전염병이 번질 때는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누가 강자인지도 헷갈리게 합니다. 강청댁의 죽음은 사랑받지 못한 자, 번식에 실패한 자에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도태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전염병이 일으킨 끔찍한 참상들을 모른 채 눈을 감을 수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복된 죽음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자연도태가 악이고 자연선택이 선이라고 반듯하게 갈라치기할 수는 없을 것도 같습니다.
1903년은 고종이 등극한지 40년이라 축하식이 예정되어 있던 해였습니다. 그 축하식이 연기되다가 결국 제대로 거행하지도 못했다고 하니 당시의 어지러웠던 형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일본은 승승장구하여 1905년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이 땅과는 을사조약을 체결합니다. 콜레라 전염병 유행은 1910년 일제강점기의 서막을 열고 있었던 셈입니다. 21세기의 코로나 전염병은 과연 어떤 억압적 상황을 예비하고 있을지 우려되기도 합니다.
용이의 첫사랑이자 이룰 수 없는 사랑 월선이는 강청댁에게 버거운 연적이었습니다. 미모와 교태를 겸비한 임이네 역시 강청댁에게는 만만찮은 강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강청댁은 질투의 화신처럼 강짜만 부릴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월선이처럼 사랑받지도 못하고 임이네처럼 아이를 낳지도 못한 채, 원한에 사무쳐 죽어간 강청댁을 보노라면 새삼 사랑이 뭐길래, 자식이 뭐길래 이토록 사람을 처참하게 만드는가 싶어집니다. 자연도태의 처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입니다. 강청댁은 신부였던 시절 자연선택을 향한 풋풋함과 투명함으로 당돌하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당시 그녀는 할미꽃다발을 만들어 용이에게 건넬 정도로 어여뻤습니다. 용이가 그녀와 백년가약을 맺기 위해 조랑말을 타고 산청 너머 함양 땅 첩첩산중 강청에 혼인하러 가는 날은 개울 얼음이 막 녹은 이른 봄이었습니다.
신방 촛불 밑에서 용이는 신부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살결이 가무잡잡했다. 예쁘지도 않았다. 분꽃같이 뽀얀 월선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울컥 치미는 눈물 때문에 용이는 돌아앉고 말았다. 날이 밝기도 전에 용이는 봄갈이를 해야한다며 그예 떠나겠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한데 나이 어린 신부가 함께 가겠다 하며 나서는 것이다. 신부를 조랑말에 태우고 신랑은 걸어서 고개를 넘었다.
신부를 집에 데려다 놓고 잔치를 베푼 다음 날 용이는 허전하고 서러운 마음으로 봄갈이에 나섰다. 새댁이 점심을 이고 왔다. 가난한 새댁은 처녀 적에 입던 댕강하게 짧은 검정 무명 치마에 종아리가 보일락 말락 했다. 용이는 새댁에게 등을 돌리고 점심을 먹는다. 봄이라 하지만 들판의 바람은 아직 매운데 짧은 치마 밑의 종아리는 시려울 거라 용이는 생각했다. 풋살구같이 오종종하고 빈한해 보이는 신부의 얼굴 위로 월선의 보송보송한 하얀 얼굴이 떠올라 용이는 목이 메였다. 숭늉을 연달아 마셔가며 밥을 넘긴다. 점심을 끝내고 돌아보았을 때 새댁은 언제 갔었던지 산기슭 쪽에서 급히 논둑길을 밟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할미꽃 한 움큼이 쥐어져 있었다. 가까이까지 온 새댁은,
“저어, 이거... 피었소”
해죽이 웃으며 할미꽃을 용이 코앞에 쑥 내밀었다.
“벌써......봄이니께.”
용이는 입속말로 우물쩍거렸다. 새댁 얼굴이 빨개졌다. 용이 얼굴도 붉어졌다. 훌쩍 일어나 소를 논으로 몰고 가서 쟁기를 끼우며 용이,
“어서 가아!”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새댁에게 소리를 질렀다.
강청댁 생애의 황금기는 용이 모친 살아생전 외며느리로 살았던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외삼촌은 몸집 작은 여자는 자손 귀한 집에 아일 많이 낳아줄 거라고 위로를 하고, 용이 모친은 처녀 적에 입던 옷으로 그대로 시집을 온 신부를 옷해 입혀가면서 살 작정을 하고, 댕강하게 짧은 치마를 입은 신부의 종아리가 시릴까 연민하는 용이가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황금기도 짧디짧았습니다. 대를 이을 자식은 잉태되지 않았고 큰 방패막이였던 든든한 용이모친은 이 세상을 떠난 데다가 월선이 읍내에 주막을 차렸으니, 용이가 너무 좋은 강청댁은 그만 조선 팔도에서 강짜가 제일 심한 여자로 바뀌게 되고 맙니다.
용이같이 잘난 남자를 지아비로 삼은 강청댁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여자였다. 질투는 이 여자에게 영원한 업화였으며 사나이의 발목을 묶어둘 만한 핏줄 하나가 없었다는 것도 노상 불붙는 질투에 기름이었던 성싶다. 강청댁은 여자라면 모조리 용이를 노리는 요물쯤으로 생각했었고 병적인 적개감 때문에 마을에서도 외로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스물여덟 살 강청댁은 장날이면 심사가 뒤틀렸습니다. 장날은 으레 용이가 읍내 월선이 주막이 들르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월선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날아다니는 새가 아닌 다음에야 용이와 월선이 만나서 정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잠시동안 주막에 들르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강청댁으로서는 장날이야말로 원수일밖에 없다.
강청댁은 앙칼진 목소리로 배웅을 하고 용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연스레 집을 나섭니다.
“닭 판 돈 허탕에 쓰기만 해보제!”
“허 참, 서천 쇠가 웃겄구마. 내가 언제 돈을 허탕했다고 저럴꼬?”
용이가 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강청댁은 하루종일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릅니다. 해가 지고나면 집 앞에 지키고 서서 용이를 기다리느라 제대로 저녁을 짓지도 못합니다.
“그년 술청에 눌어붙어 있겄구나. 못 산다 못살아! 간에 천불이 난다! 사람 기다리기 못하겄네!”
정성껏 맛있는 반찬이라도 만들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화사해질 법도 한데 강청댁은 보리밥 한 그릇, 아침에 먹다 남은 된장뚝배기, 짜고 맵기만 한 김치 한 보시기로 용이 밥상을 차려놓고 집을 나섭니다. 두만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우뚝 서 있는 팽나무 앞에 서서 자식 낳게 해달라는 소원을 빕니다. 경건하게 욕심껏 비는 소원을 목신은 끝내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두만네는 강청댁 강짜를 타박합니다. 잡풀이 자라 무성해진 밭을 들먹이면서 말입니다.
“육례 갖추고 만났이믄 그기이 젤이지, 머엇을 죽네 사네 하노. 살림이나 정 붙이믄 그런 생각할 새가 어딨더노? 너거 미영밭에 풀이 우묵장성이더마. 누가 이서방 심썽을 몰라서? 가숙박대할 사램이 따로 있지.”
‘자그마한 몸집에 까무잡잡하고 다부지게 생긴 강청댁’은 왜 용이만 사랑하고 밭일과 살림은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오로지 용이 마음 붙들어 매는 데만 투신하다 보니 밭에 잡초가 우거져도 내 몰라라 하고 맛있는 밥 짓고 반찬 만드는 일에도 심드렁합니다. 밭일과 살림 속에서 자잘한 창조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자연 만물과도 어울렸다면 그토록 강퍅한 삶과 죽음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집니다.
임이네는 칠성이가 장에서 돌아왔다는 기별을 받고 반가운 마음이 되어 돌아가려고 일어섭니다. 용이도 함께 돌아왔을 것이라고 짐작한 강청댁은 마음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하지만 강청댁은 임이네처럼 집으로 가려고 일어나지 않습니다. 용이의 귀가를 학수고대했던 속내를 감추고 뜨악한 듯 말합니다.
“왔심 왔지. 누가 임이네 같을까봐? 저녁 채리놓고 왔인께 퍼묵겄지. 기생 첩년맨쿠로 내사 서방 보비유 못하요. 여염집 지어미가 서방 왔임 왔지 걸신들었다고 쫓아가아?”
마음이 언짢아진 임이네가 골이 나서 던진 한마디가 강청댁 마음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불씨가 되고 맙니다.
“월선이가 밤에 와서 무당집에 자고 가도 모르니..... ”
“자고 가아? 우리 남정네하고 말이가”
강청댁은 두말도 않고 사립문 밖으로 휭하니 나간다. 논길을 지나간다. 논가 도랑물에 잠긴 달이 강청댁을 따라온다.
‘그년이 와서 자고 갔다고? 그년이!’
눈앞에 용이가 있었다면 강청댁은 할퀴고 주먹질을 했을지 모른다.
열려 있는 사립문을 들어섰을 때 집 안은 비어 있었다. 방문을 잡아 젖혔다. 빈방이다. 뒷간으로 쫓아간다. 역시 없었다.
“오냐! 또 갔고나! 끝판 내자! 누구 하나 죽는 꼴 봐라!”
치마끈을 질끈 동여매고서 날 듯 밖으로 쫓아 나간다. 읍내까지 삼십 리 길 끝없이 굽이진 강물과 들판과 숲을 따라, 달이 아까보다 빠르게 강청댁을 뒤쫓았다. 삼거리 주막 앞에 당도했을 때 불 꺼진 주막 지붕이 작은 몸집의 강청댁을 압도해왔다.
“문 열어라! 이년!, 문 못 열겄나!” 빗장 빼는 소리가 났다. 대문 한 짝이 열리자 강청댁이 뛰어든다. 빈방 안을 더듬어보고 뒷간까지 달려가보고 술청도 살펴본 뒤 강청댁은 푸석 주저앉는다. 얼마 후 강청댁은 정신이 들어 벌떡 일어섰다. 월선에 대한 증오심에 불이 댕겨진 것이다. 달려들어 월선의 속적삼을 뿍 찢는다. 감당할 겨를을 주지 않고 다시 돌진해간 강청댁은 머리채를 낚아채서 휘감았다. 월선이를 쓰러뜨리고 주먹질을 하고 옷을 발기발기 찢으며 날뛴다. 작은 몸집이 마치 콩 튀는 것같이 보인다. 맞서서 싸운다면 그토록 당하지는 않았을 것을 월선이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몸을 피하기만 한다. 강청댁은 혼자 하는 주먹질이 싱겁고 무안쩍게 되어간다. 주먹질에 힘이 빠지면서 어떻게 수습할까 궁리에 바쁘다. 옷매무새를 고치면서 연신 으름장을 놓다가 땅바닥에 주질러 앉아 울고 있는 월선이에게 힐끔 곁눈질을 주고 나서 종종걸음으로 나선다.
강청댁은 날 듯 달려간다. 바람이 땀을 식혀주지만 마음까지는 식혀주지 않는다. 때린 쪽은 이편이건만 분풀이는커녕 오히려 싸움에 지고 도망쳐가는 것 같은 생각만 든다. 갈 길이 바쁘지 않으면 강변 모래밭에 가서 두 다리를 뻗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빌어 묵을 년의 팔자야! 자식새끼만 하나 있어도 내 신세가 요 모양은 안 됐일 긴데. 마음은 온통 그년한테 가 있고 껍디기만 내 차지, 무신 낙에 밭매고 길쌈할꼬. 설고 불쌍한 거는 나다! 이년이다.! 아이고 아이고오......”
달음박질쳐 가면서 강청댁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올 때는 악이 받쳐 몰랐는데 밤길이 무섭기도 했다.
가고 오고 육십 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새벽이 되었습니다. 용이는 집에 없었습니다. 아침 해가 떠올라 사방을 비추기 시작하자 그제야 용이가 집안으로 들어섭니다. 강청댁이 달려들어 떠밀어내다가 아픈 팔을 안고 주질러 앉습니다. 월선이를 때리면서 팔이 삐었던 것입니다.
소리지르는 품이 엄살만도 아닌 것 같아 용이는 강청댁의 팔을 잠자코 주물러 준다.
“어젯밤 어디 갔소. 내 죽는 꼴 볼라요. 어디 갔던고 안 묻소.”
“그만해라. 영팔이 집에 갔다. 와!. 개를 잡았다 캐서, 가서 한잔씩 했지. 더워서 누각에 가서 잤다.”
이후 월선은 주막 대문에 못질을 해놓고 사라지고 맙니다. 강청댁은 월선이 떠났으니 용이 마음이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용이 마음은 더 멀리 달아나버렸습니다. 용이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넋빠진 사람이 되어 들판에 앉아있을 때가 허다했습니다. 용이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강청댁 속은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을까요? 게다가 월선의 빈자리를 임이네가 비집고 들어와 꼬리를 쳐대니 강청댁으로서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였습니다.
용이는 못질을 한 월선의 주막을 본 뒤론 읍내 장에 나간 일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도 좀체 만나는 일이 없었다. 강청댁에게는 더 멀리 떠난 사람이었다. 강청댁은 가끔, 아주 가끔 제 머리를 와둑와둑 잡아뜯으며 우는 일이 있었다. 제 머리를 와둑와둑 뜯으며 울 적에 용이는 강청댁 옆에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싸늘하게 갈라진 내외, 용이는 하는 일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으며 늘 범접할 수 없는 거리를 지키는 데 변함이 없었다. 용이는 날이 갈수록 냉정했고 종내는 작은 방에 혼자 거처하게 되었다. 강청댁은 한밤중에 마루에서 다리를 뻗고 울었다.
용이가 월선을 잃자 연쇄적으로 강청댁은 용이를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 집에 함께 사는 내외간이지만 그들은 각자 처절하게 고독해집니다. 침식을 잊을 정도로 일에 미친 용이에 반해 강청댁은 매사에 의욕을 상실한 채로 일상을 보냅니다. 의욕상실은 자연도태로 이어질 수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용이는 거의 매일같이 까대기에 들어박혀 가마니를 짜고 짚세기를 삼고 연장 손질을 하며 날을 보내었다. 일에서 손을 놓고 우두커니 앉았는 시간을 몹시 두려워했다. 강청댁은 전보다 더 살림을 모르게 됐는데 용이 덕분에 집안은 옛날보다 깨끗이 정돈되고, 그래서 도리어 냉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랬던 용이가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임이네가 임신을 하고부터입니다. 강청댁이 서방질한 임이네 머리채를 낚아채는 바로 그 현장에 용이가 달려와서, 칠거지악을 들먹이며 뻔뻔스럽게 말합니다.
“칠거지악 중에 멋이 들어 있는고 니 아나? 그 하나로 아이를 못 놓는 일이다. 그 둘째는 질투하는 일이다. 그 다음은 가장을 대수로 안 여기는 일이다. 그래도 할 말이 있나.”
강청댁에게 칠거지악은 복종해야만 하는 완전한 법이었을까요? 그 후 용이는 두 여자를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용이는 자신한테 고분고분 순종하는 여자가 둘이나 생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는지 허랑방탕한 난봉꾼이 됩니다. 서른한 살 임이네와 서른네 살 강청댁은 용이가 안 보이는데서 끊임없이 시비를 걸고 싸워댔습니다. 도태되지 않으려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여자는 밭을 매다가 호미를 동댕이치고 싸웠고 논의 김을 매다가 흙 묻은 손으로 서로 할퀴며 싸웠다. 용이는 뻔뻔스러워졌고 어딘지 모르게 추해진 것 같이 보였다. 그는 여자 둘을 증오하고 멸시했다. 나도 짐승이지 사람은 아니라 하면서 헛웃음을 웃곤 했다. 용이는 주막에서 술을 마시다가 쌈질하는 것이 일쑤요. 농사지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장돌뱅이를 따라다니기도 했으며, 소를 팔아 노름에다 털어 넣고 돌아오곤 했다.
그런 용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주막 영산댁이었습니다.
“사램이 모도 제 살고 접은 대로 살 수 있간디? 이 세상에 나와서 죄닦음 하니라고 그런 거를 워짤 것이오? 이 서방도 맘 고치묵으시요이. 본성을 망치믄 될 것이오? 내 이서방이 그러는 거 알지라우. 사램이 변한 게 아니고 변해보고 접어서 그런다고. ”
점점 배가 불러오는 임이네 모습을 바라보며 생지옥을 살았을 것 같은 강청댁은 마을에서 제일 먼저 전염병에 걸려죽습니다. 죽기 직전까지도 발버둥치며 악담을 퍼붓는 모습은 참혹해서 못 볼 지경입니다.
“ 아무래도 희한한 일이구마, 어느 년이 못 묵을 것을 임석에 넣은 것 아닌지 모르겄네? 오냐아! 내 죽고 나거든 아들딸 놓고 재미지게 살겄다 그거로구나아! 하늘이 시퍼렇다! 하늘이! 제집 소나아 공몰해서 사약을 먹있고나. 누구 아무도 없나! 원통해서 내가 우찌 죽을꼬!”
윤보와 영팔이 강청댁을 땅에 묻으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윤보가 젊었을 당시에도 전염병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송장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혹은 샘에 물을 길러가지 못하도록 삽과 곡괭이를 들고 마을끼리 싸웠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관을 짜는 목수, 송장을 치우던 백정, 상두꾼, 무당들이 돈을 벌기도 했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전염병이 피해가지는 않았다고 하니, 돈을 버는 중에 전염병에 걸려 더러 죽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팔이가 뜬금없이 전염병이 일본탓이라며 왜인들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서 말을 쏟아냅니다. 영팔의 우려대로 1903년 전염병이 창궐하던 이땅은 일본에 의해 차츰 잠식당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 1910년 일제강점기를 향해 이미 발은 내딛은 형국이었으니 말입니다.
“나라가 망할라 카이 별눔의 일이 다 생기고, 우떻든지 간에 왜눔들을 말짱 쳐 직이야만 우리가 편히 살 기구마. 이눔우 돌림벵이 왜벵인께 하는 말이 아니오. 그러니께, 저어 내 어릴 적에 이 벵이 돌앗일 적에도 왜눔우 새끼들이 묻히가지고 온 벵이라 안 합디요! 이눔우 세상이 우찌 될라꼬 이러는지. 왜눔 들어오고부텀 잘되는 거 하나 없이니께. ”
최참판댁 마름 김서방이 탈진한 채 행랑 뜰에 드러누운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식솔들에게 용이 처 강청댁이 죽었다는 소식이 당도하게 됩니다.
“동네에서는 강청댁맨치로 토하고 설사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카더마, 돌림벵인가 배요.”
“그라믄 괴정이다! 괴정! 호열자라는 말이다.”
“여러 해 전에 사, 사람들을 몰살시킸다 카는 그 뱅 말이가? 그 벵은 걸리기만 하믄 죽는다!”
모든 얼굴이 순식간에 빳빳해진다.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다 기력이 소진되어 땅바닥에 드러누운 김서방을 빙 둘러싸고 있던 사람의 울타리는 무너진다. 눈빛들은 일제히 공포로 변했다. 삼수가 맨 먼저 그 자리에서 떠났다. 술렁술렁 다 빠져나갔다.
집안의 일상은 무너졌다. 마을의 일상은 무너졌다. 불안과 공포는 시시각각 검은 구름같이 마을을, 최참판댁을 엄습해오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덮쳐올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재앙 앞에 마을 전체는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집집에서 병자의 신음이 들려올 것이다. 시체는 줄을 잇고 마을 뒷산으로 떠날 것이다.
평사리 마을에서는 김진사댁 두 청상이 죽었다. 영팔이 막내딸이 죽었고 임이네는 용이 아들를 낳고 칠성이 아들 둘을 잃었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한편 최참판댁에서는 마름 김서방이 죽은 뒤 돌이와 봉순네는 동시에 발병하여 죽었다. 그 다음의 희생자는 윤씨부인이었다. 읍내에 가서 길상이 들은 소식은 문의원도 죽었다는 것이다. 마침내 운명은 조준구를 향해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조준구는 최참판댁 재산을 모두 차지하게 될까요? 최치수와 윤씨부인이 죽은 이후 열한 살 서희가 과연 어떻게 생존을 도모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