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의 동학 유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동학> |
경주시 "경북민의 자긍심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 발간" |
15.12.15 16:45 | 최종 업데이트 15.12.15 16:45 | 정만진(daeguedu) |
|
|
▲ 경주시가 발행한 <동학> 표지(왼쪽)와 경주 구미산 용담정 내의 최제우 초상(정만진 찍음) |
ⓒ 경주시 |
| 경주시가 <동학>을 발간했다. <동학>은 '경북의 정신문화, 그 뿌리를 찾아서'를 부제로 달고 있다. 물론 경주시가 경상북도 정신문화의 뿌리로 지정하고 있는 것은 동학만은 아니다.
경주시는 '삼국통일의 주역이자 세속오계를 지키며 천오백 년을 이어온' 화랑정신, '세상이 알아주면 출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때를 기다리며 자연을 벗삼아 수양하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으면 분연히 일어나 의병의 기치 아래 병장기를 들고 싸웠던' 선비정신, '현대 경북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새마을정신도 경북정신사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주시가 <동학>을 발간한 것은 1860년 4월 5일 수운 최제우가 득도함으로써 '동학정신의 메카'가 된 용담정이 경주 구미산에 있고, 최제우가 그 아래 가정리에서 태어났으며, 2대교주 해월 최시형 역시 경주 황오리에서 출생했기 때문이다.
수운의 묘소가 있는 구미산 일대는 최제우 순교 이후 폐허로 방치되다시피 하다가 1974년 이후 성지의 면모를 갖추어 현재는 매년 수천 명의 교인과 일반인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자리매김되었다.
경주 구미산 용담정은 '동학의 메카'
<동학>은 그림으로 보는 경북정신사, 경북의 정체성과 풍류정신, 풍류정신에 대한 김정설(소설가 김동리의 형)의 해설을 묶은 1부 '경북의 이상', 동학의 개념, 동학의 정신, 경주 용담정, 동학의 대표인물(최제우, 최시형, 3대 교주 손병희, 4대 교주 박인호, 전봉준)로 구성된 2부 '경북의 동학', 동학농민혁명 발발 원인, 동학농민혁명 우리 지역 개요, 동학 발상지 경주, 최시형의 근거지 포항, 동학농민군 세력이 가장 강성했던 상주, 가장 치열했던 전투지 예천, 동학혁명의 시발점 영해, 동학조직 재건의 기틀 영양, 최제우 처형지 대구 등을 소개하고 있는 3부 '동학의 명소'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동학혁명의 자취가 서려 있는 현장에 대한 세세한 안내와 충분한 사진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주를 예로 들면, 조선 후기 들어 상주 지역에서 소빈농의 혁명이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요인과 그 지역 동학농민군 전투를 소상하게 설명한 후, 일본 앞잡이 김석중이 동학농민군을 공개처형한 중모장터(모동면 용호리 50-1), 경북도 민속자료 120호인 상주 동학교당 건물(은척면 우기리 728)과 내부 전시 풍경, 상주 동학교주 김주희 초상, 용담유사와 동경대전 목판본 및 통운역대 책판의 실물 모습, 동학교기, 적색예복, 낙동 일본군 병참부 터(낙동면 낙동리 111 낙동파출소), 상주동학농민혁명기념비(상주산업대 맞은편 소천교 남쪽끝), 상주 대접주 김현영 고택 터(모서면 삼포리 164), 상주관아, 동학농민군 처형지인 화령장터, 남사정터, 광주원 등의 사진을 빠짐없이 싣고 있다. 게다가 끝 부분에는 자전거를 타고 순례할 수 있는 여정까지 다섯 코스로 나누어 안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학>은 대구경북 소재 동학유적지 전체를 책의 말미에 지도로 나타내고 있어 답사자를 위한 훌륭한 답사안내서 역할까지 해준다. '(1) 용담정,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산 63'부터 '(32) 접주제를 처음 실시한 포항시 흥해읍 매곡동'까지 모두 32곳을 표기하고 있는 지도는 현장의 주소까지 병기하여 나그네의 발길을 편안하게 해준다. 또 홈페이지와 언론 보도를 제외하고 참고 서적과 논문만도 쉰 개 이상 명시하고 있어 좀 더 학술적으로 동학유적지를 답사하고자 하는 답사자에게도 매우 유익하다.
|
▲ 경주 구미산의 최제우 묘소 |
ⓒ 정만진 |
| 동학은 조선 봉건사회의 해체기에 발생한 민족이념으로, 당시 피폐된 민중의 힘을 하나로 집결시켜 반봉건 반외세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완수하면서 지상에서의 군자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다.
특히 최제우가 걱정한 보국안민은 유학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은 보국안민을 핵심적으로 활용하였고, 농민혁명은 청원 단계를 넘어 정치의식화와 무장투쟁의 길로 나아갔다.
외세와 봉건세력에 맞서 싸우다가 끝내 당장의 대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동학농민군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조선 봉건사회는 급속히 해체되어 갔다. 지배계급은 '위로부터의 혁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 민족은 의병전쟁과 독립운동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 <동학>은 '동학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기상으로 가슴에 남아 있게 되었다'면서 '이 책이 경북민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앞장서고, 경북의 앞날에 정신적, 문화적 자양분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동학>(경주시 발행), 170쪽, 비매품, ISBN 978-89-961544-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