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은 재작년 세금만 8700 만원을 냈다. 소설로 밥 먹는 한국 작가 중 최고 납세자 그룹에 속한다. 약속 장소는 일산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김훈은 자전거를 끌고 땀을 흘리며 나타났다. “(이 자전거) 1500만 원짜리야. (기사에) 써도 돼.” 그는 지나치게 솔직했다. 자발적 편집이 필요했다. 3시간 반을 인터뷰하다 다시 옮긴 자리에서 그는 부드러운 사케(청주)를 다소 거칠게 마셨다.
2004년에 인터넷서점 YES24에서 대표작가들 중 ‘지금 노벨문학상을 받을 사람’을 물었다. 1위는 ‘토지’의 박경리였다. ‘앞으로 받을 것 같은 사람’은 1위가 ‘칼의 노래’의 김훈이었다. 요즘 그는 여러 북클럽에서 가장 모시고 싶은 첫 번째 손님이다. 4월 중순에 낸 ‘남한산성’은 갖가지 화제를 뿌리면서 이번 주까지 27만부를 찍었다. 물론 종합 1위다. 현대, 삼성, 금호, 아모레퍼시픽 등등 굴지의 그룹들도 그를 모셔간다. 강의료는 ‘200(만원)안팎’인데, 역사와 김훈에게 배우자는 열풍 같은 것이다. 검사들, 현직 교사들, 대학생들 강의 요청은 수십 개가 쌓여 있고, 틈을 내려고 최선을 다한다. 영화사에서도 3곳에서 접촉이 왔다. TV 드라마 제작사 2곳도 출판사에 의사타진을 했고, 뮤지컬도 2곳에서 오퍼를 넣었다. 심지어 CF 제안도 들어왔다. 요컨대 그는 이 시대 최고 인기작가이고 또한 부자다.
본격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한가지 약속을 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안 했던 얘기만 합시다.” “…”
―몇 시에 일어나나?
“7시쯤 일어난다. 술 안 먹으면 6시쯤. 방 청소하고, 옷 입고, 신문 본다.”
―침대에서 자는가?
“장판 방바닥에서 요 깔고 홑이불 덮고 잔다. 나는 어디서든 문 열고 잔다. 문 닫으면 답답하다.”
―해외여행가면 호텔 방문도 열어 놓는가?
“해외여행 별로 안 간다. 작년에 프랑크푸르트에 간 것이 구라파(유럽)에 30년 만에 간 것이다. 나는 비행기도 싫다. 사람 묶어놓고 개밥 주고…. 증오하지. 엄마가 미국에 계셔서 뵈러 갈 때가 있긴 하지만 관광목적으로는 안 간다.”
―신문은 뭘 보는가.
“조선일보와 국민일보다. 내가 국민일보 근무할 때 평생 독자가 됐다.”
―신문은 어떤 면을 주로 보는가.
“뉴스면은 제목만 보고, 사설과 오피니언면을 꼼꼼히 읽는다. 논객들이 미리 설정한 틀 안으로 이 세계를 밀어 넣으려는 안간힘이 보인다. 세상이 그 안으로 들어갈 리가 없는데. 보편적 진리를 말하려는 강박에 빠져서 아무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자들은 이념의 일관성을 과시하기도 해. 이념을 일관되게 해서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나는 그런 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런 논객들을 보면 다 옳아. 틀린 소리 안 해. 그렇지만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옳은 말이 모자라서 이런 것은 아니란 말이지.”
김훈은 말 밭을 솎아 낸다. 뵈게 나 있는 문장들을 못 참는다. 몇 밤을 공들인 문장도 내 것이 아닌 듯하면 고랑을 뒤엎고 다시 김을 매듯 그 자리에서 버린다. 그래서 더디다. 작가라고 명함 박으면 누군들 안 그럴까 싶지만 그는 참 유난스럽다. 그가 2001년 동인문학상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회는 한국 문단에 ‘벼락처럼 내린 축복’이라고 했었다.
―아침은 뭘 먹는가.
“과일, 야채, 된장국, 밥. 마누라가 주는 대로 먹는다. 난 식단과 돈에 대한 권력이 없어.”
―식사 마치면 바로 집필에 들어가나.
“9시쯤 시작되지. 연필 들면 오늘 글이 써지는지 안 써지는지를 알아. 안 되는 날은 종일 앉아 있어도 안 돼. 그런 날은 그냥 나가 놀아. 그러나 아침 9시부터 다음날 새벽2시쯤까지 쓸 때도 있어. 그런데 겨우 5장밖에 안 써지면 환장하지. 그것마저 맘에 안 들어 새벽에 버리기도 해.”
―점심은 어디서 먹나.
“마누라가 집에 있으면 집에 가서 먹고, 외출했으면 근처에서 해결하지. 가장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먹어. 김밥과 자장면. 자장면은 인이 박혀서 한동안 안 먹으면 먹고 싶어져. 맛의 근원 정서를 갖고 있어. 그 빌어먹을 찜찜한 게 생각나.”
―술은 무슨 술 먹나.
“소주는 안 먹으려 해. 빚을 내서라도 좋은 술 먹자는 생각이지. 싼 술 먹으면 몸이 부대껴. 요즘 와인을 배웠는데 최근에는 사케로 바꿨어. 와인을 마시면 계통 없이 취해서 너무 로맨틱해져.”
―계통 없이 취한다니?
“술이 뼈 속에 스며 논리의 계통이 무너져. 대신 위스키는 딱, 취하는 계통이 서지. 사케는 양쪽이 다 있어.”
김훈은 성큼성큼 냉장고로 가서 사케 ‘월계관’을 꺼내왔다. 안주는 마른 오징어에 고추장이었다.
―당신은 뭐 하냐고 물으면 ‘논다’고 대답할 때가 많다.
“ ‘논다’는 건 매우 치열한 행위야. 작가에겐 세상을 관찰하는 행위지. 나는 혼자서 잘 놀아. 자전거 타고 나가 바람 쐬고 노을을 본다고. 놀면서 세상을 들여다 보고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구나 하는 것을 알게 돼. 노을이나 바람 속에 있다는 것은 내가 시간 속에 있다는 얘기야. 생애를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어떻게 언어로 포착해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답함이 있는 거지. 결국 할 수 없는 것이고.”
―당신은 세상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쓴다. 감정을 표백해버린, 강시(?屍)들의 언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죽고, 통치자로서만 기능한 임금의 언어다. 작가의 매혹적인 오만과 전지전능의 시각에서 나올 수 있는 문장만 쓴다. 유머를 혐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수다를 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 나는 내 문장이 뼈만 가지고 있으면 좋겠어. 골격만…. 뼈 안에 모든 정서나 정한(情恨)이 저절로 드러나길 바라는 것이야. 나는 내 문장이, 말하자면, ‘귀족의 문체’를 완성하는 것이길 바래. 유머? 나는 뼈대 안에 유머가 있다고 생각해. 드러나는 것은 물론 아니지. 기자 시절에 배운 스트레이트 문장에 대한 편애와 집착이 있는 것이고.”
―당신은 말과 글을 경멸하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 말은 ‘쓰레기’고 글은 ‘똥’이다. 그래서 꼭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나머지는 절대로 내뱉지 않는다. ‘…같은’, ‘…처럼’ 같은 비유법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말과 글을 경멸하면서 말과 글로 먹고 사는 것, 그것이 당신이 말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인가.
“나는 말과 글을 불신하는 사람인데, 경멸까지는 아니야. 혐의를 두는 정도지. 그것들이 소통 가능한 것인지 의심해. 객관적 진실에 도달할 도구인지 불신하는 것이지. 그러나 결국 말을 안 하고는 살 수 없으니 신뢰할 수는 없고 말을 끌고 살아가.”
“서문에 ‘조국의 성’이라고 썼는데, 나는 조국이란 단어를 내 평생 처음 쓴 것이야. 내가 감히 쓸 수 없는 단어였어. 내가 조국을 쓴 뜻은 내 역사적 혈연을 말한다기 보다 삶은 영원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야. 삶은 단념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국가도 마찬가지라 생각해. 개인의 윤리와 국가의 윤리는 다른 것이야. 개인은 치욕을 참지 못해 순국선열처럼 자결할 수 있지. 그러나 국가는 그렇게 할 수 없어. 국가는 그런 윤리의 길을 갈 수 없어. 국가가 자멸의 길을 간다면 죄악이지. 국가는 치욕을 걸머지고 살아 남는 것이 도덕이야.”
김훈은 “지금도 무슨 부대라고 얘기하면 절대 안 되는” 곳에서 37개월 군역을 치렀다. 고려대 영문과를 다니다 군대 갔는데 돈이 없어서 복학을 못했다. 그는 휘문고 졸업이다. 그는 “군대 가니까 정말 좋더구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말로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육사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것에 실패해서 기자가 됐고, 지금은 작가다. 사적인 이야기로 잠시 화제를 바꿨다.
―키, 몸무게?
“172㎝, 63㎏”
―시력은? 안경은 언제 쓰는가?
“시력도 청력도 나빠. 귀가 안 들려 병원에 갔더니 노화 현상이라면서 못 고친대. 귀가 나빠져도 괜찮아. 듣고 싶은 것도 없고. 그러나 눈이 안보이면 안 되지. 책을 못 읽잖아.”
―영화 볼 때는 안경을 쓰지 않나.
“영화를 안 봐. 내 생애에 지금까지 5개도 안 봤어. 나이 먹고 가려니 컴컴한데 가기 싫고, 냄새 나고, 껌 씹고…. 영화뿐만 아니라 테레비도 안 봐. 뉴스만 봐. 인이 박힌 것이지, 기자질을 많이 해서. 뉴스는 하루만 안 봐도 큰 일이 벌어져 있더군. 나라가 뒤죽박죽이니까 그렇지. 뭔가 무너져 가고 있어. 뉴스 장사 해먹기가 정말 좋은 나라야.”
―삐뚜름하게 모자를 쓰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머리카락이 빠져서 그래. 병원 갔더니 직사광선 받지 마라고 하데. 패션이 아니야. 일종의 노인용품인 게지. 겨울에는 안 써.”
김훈과 이야기하면서 자전거를 빼놓을 수는 없다.
―1500만 원짜리 자전거도 있나.
“처음 10만 원짜리는 타다 버렸어. 지금이 네 번째야. 조립품이니까 다국적이지. 내가 원하는 것은 가볍고, 튼튼하고, 고장 안 나고, 세 가지야. 미관은 필요 없어. 4000만 원짜리도 봤어. NASA가 개발한 카본소재로 만든 자전거야. 어떤 놈이 그 자전거를 끌고 왔길래 10분만 타 보자고 해놓고 1시간을 탔지. 진짜 좋더군. NASA는 얼마나 위대해. 나 같은 놈까지 매혹시키니까. ‘남한산성’ 팔아서 그거 살 거야. 귀족 취미라고 비웃는 놈들이 있는데 30년 동안 야근한 끝에 지금 1500만 원짜리 타는데 뭐가 잘못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