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사람, 아니 남자이면서 여자이기도 한 사람.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조 때 사방지는 무려 열 네 번이나 등장한다. 사방지는 양성 인간이었다. 사방지의 행적이 괴이하다는 제보를 받고 사헌부에서 그의 몸을 수색하였다.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동시에 지닌 것이 드러났다. 그런 그에게 세조는 장안의 논란을 일축하고, 그는 단순히 병자일 뿐이라며 멀리 지방으로 보내 노비로 삼았다고 한다. 사방지의 어머니는 여자 옷을 입히고 섬세한 손가락에 바느질을 가르쳐 여자 행세를 하게 하였지만, 사방지는 성인이 되어 성적으로 문란하였다고 기록에 보인다. 얼마 전 나는 휴가를 얻은 두 딸들과 대만의 타이뻬이로 여행을 갔었다. 그곳의 세계적 명물인 101층 빌딩 전망대와 세계 10대 호텔 중의 하나라는 그랜드호텔을 구경하였다. 호텔은 중국의 왕궁처럼 화려하고 웅장한데다 사원 같은 특이한 건축물이었다. 관광을 마치고 일본 기업이 소유한 소고백화점으로 쇼핑을 나섰다. 타이베이에는 소고백화점, 미쓰코시백화점을 비롯한 많은 일본 기업들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일본이 대만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소고라는 이름의 백화점만도 세 군데나 되었다. 택시 기사는 외국인인 우리를 소고백화점 세 군데 중 명품관이 있는 곳에 데려다 주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명품관은 상류층 사람들이나 드나드는 곳이라서 일본인 관광객들 몇 명이 눈에 띌 뿐 한산한 편이었다. 프랑스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이 내걸린 의류매장에 큰딸이 관심을 보였다. 그 디자이너가 우리나라 대한항공 여승무원의 유니폼도 디자인하였다고 딸은 알려주었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는 두 딸을 반갑게 맞이하는 점원을 보고 놀란 것은 나였다. 점원은 남자 목소리를 지닌 너무나 매혹적인 여자였다. 딸들은 화사한 의상에 눈을 파느라 그를 예사롭게 느끼는 눈치였다. 부드러운 바리톤 음색, 동양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구적인 풍모를 지닌 윤곽, 서시나 양귀비를 연상시키는 미모. 뛰어난 조각가가 잘 빚어낸 작품처럼 그는 아름다웠다. 나는 잠시 넋을 잃은 듯 꼼짝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유창한 영어로 우리를 반기며 안으로 안내할 때까지 그의 불행을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은 세련된 듯 조화로운 미모 때문이었을까. 무대에서 패션을 연출하는 모델처럼 그는 후리후리하게 큰 키에 차분한 지성을 지니고 있었다. 예전에 태국에서 광대처럼 분장하고 춤추던 게이쇼를 본 적도 있었지만, 그는 그 때의 내 선입견을 넘어선 사람이었다. 철부지 어린 소녀라면 그와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냥 그를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았다. 그 예의 바르고 고매한 분위기, 멋진 음색으로 흐르는 듯한 영어 발음. 그는 나에게도 예쁜 블라우스를 권하며 입어보라고 하였다. 그는 진열된 옷가지들에 부착된 도난방지클립에 키를 대어 우리가 골라 놓은 옷들을 빼내고 있었다. 딸들은 옷에 붙은 가격표를 보며 세계적인 명품인데 왜 이렇게 저렴한지 모르겠다며 이 옷 저 옷을 다 꺼내어 입어보느라 즐거워하였다. 단순한 옷이 아닌 작품이라서였을까. 거의 모든 옷이 한 점 이상 없었다. 하나씩밖에 없는 옷들을 다투어 입어 보던 딸들이 나름대로 고른 옷가지를 들고 계산대 앞으로 나왔다. 가늘고 기다란 점원의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 계산기 위를 오르내렸다. 먼저 큰딸 앞에 점원은 계산기를 내밀어 보여줬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딸은 뒤로 물러섰다. 환율을 착각하여 사실상 가격표에서 0 하나를 빠뜨려 읽은 모양이었다. 옷가지 서너 점이 무려 사백만 원을 넘었으니 놀랄 수밖에. 명품관 쇼핑은 그만 아이쇼핑으로 끝나고 우리는 그 곳을 나왔다. 뒤죽박죽으로 상품을 어질러 놓았지만 끝까지 친절하게 웃어주던 그의 인상은 백화점을 다 돌아 나온 뒤에도 잊혀지지 않았다. 성서에 "태초에 하느님이 사람을 창조하였으니 그를 아담이라 하였다."고 쓰여 있다. 히브리 원어로 보면 하느님의 존재는 남성이나 여성을 지칭하는 성 개념이 없는 단어인 엘로힘이라고 한다. 엘로힘은 남녀 성 개념도 없지만 단수 복수의 개념도 없다. 아담 역시 성 개념을 띠지 않으며 그 뜻은 흙이다. 양성을 가진 하느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으니 최초의 인간은 양성 한 몸의 존재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카발리스트라고 불리는 유대 신비주의자들이 남긴 문서를 보면, 엔소프라는 무한한 힘이 있었는데 그 힘에서 아담 카드몬이라는 인간 원형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아담 카드몬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갖춘 양성적 존재인데 그로부터 아담과 이브가 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성과 여성성 한쪽씩만을 차지한 채 살아 온 아담과 이브는 늘 다시 한 몸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을까.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당연시하고 성의 이분법만이 자연의 유일한 섭리인 양 생각해 온 것은 어쩌면 인간의 착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고백화점에서 만난 그는 정녕 이 시대에 내려온 아담 카드몬이었을까. 남과 여의 이중주, 그의 교묘한 화음이 비 내리는 타이뻬이 시가지의 아스팔트 위에서 나를 붙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