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리 부인 을 읽기 전에
퀴리 부인은 폴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시대에 태어났다.
그래서 자유롭게 탐구하며 학습할 수 있기를 갈망하였다.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입학한 퀴리 부인은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며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였다.
1895년피에르 퀴리와 결혼하여 우라늄과 토륨의 방사선을 연구하던 중에
피치블렌드에서 방사선 원소인 플로늄과 라듐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903년 남편과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1911년에는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평생 학문과 연구에 몸바쳐 노벨상을 두 번이나 탄 인물은 흔치 않다.
그런 면에서 퀴리 부인의 인내력과 함께 학문에 대한 열성을 읽을 수 있다.
우리도 학문에 정진하는 퀴리 부인의 신념을 배워야겠다.
방사선 원소를 발견한 퀴리부인
많은 과학자들 중에서 나는 퀴리부인을 가장 좋아한다.
단지 여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남자로소도 헤쳐 나가기 어려운 일을 해냈고
당시 여자로서는 많은 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힘든 연구를 성곡적으로 이루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 번만으로도 일생의 영광으로 기록되는
노벨상을 두 번씩이나 타는 업적을 남겼다.
남편과 공동으로 방사선 원소를 연구하여 노벨 물리학상르 받은 후
다시 단독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과학자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그녀는 1867년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5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그녀는 가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으나
열한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어렵게 자라났다.
가정 교사를 하면서 대학 갈 돈을 스스로 모았으며
마침내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압학하여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 때 그녀는 젋고 유능한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여 남편과
협력하여 공동으로 연구 생활을 시작하였다.
쿠리 부인은 피치블랜드에 들어 있는 두 원소를 발견하고 플로늄과 라듐이라 이를 붙였다.
퀴리 부인의 라듐 발견은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죽어 가는 환자들에게는 더없이 밝은 희망의 빛이었다.
만약 퀴리 부부가 라듐 제조법에 관해 특허를 얻었다면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퀴리 부인은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특허권을 포기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정신인가!
보통 사람 같으면 돈벌이에 이용하려고 눈이 휘둥그래졋을 터인데
인류의 행복을 위해 퀴리 부부는 모든 욕심을 버렸다.
그 외에도 퀴리 부인의 훌륭한 면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면저 퀴리 부인이 낮선 프랑스로 공부를 하러 간 것과 공부할 때의 자세이다.
남의 나라말을 배워서 공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프랑스 어를 잘 몰랐던 튀리 부인은 그 어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두 배의 노력을 했다.
참된 용기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 있다.
퀴리 부인은 이 말을 죄우명으로 무엇이든지 하려는 의만 있다면
성공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우리에게 불러일으켜 주고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퀴리 부인이 고학을 하면서 대학을 마쳤다는 점이다.
우리 주위에도 고학이나 독학을 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여자의 능력을 그렇게 인정하지 않던 옛날에
그것도 다른 나라에 가서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 면에서 퀴리 부인은 용기와 함께 강한 인내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또 남편을 잃은 괴로움 속에서도 남편이 이루지 못한 학문적 숙제를
이어 받아 더욱 연구에 몰두했다.
슬픔을 딛고 학문에 전념한 퀴리 부인의 태도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였다.
서양난 심비디움







개발선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