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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출신인 조현종대표(사진 왼쪽)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동호회에서 한살 연상의 셜리 천 실장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안봉주(bjahn@jjan.kr) |
1999년 서울 삼청동 작은 골목에 13m²(4평)짜리 가게를 열었다. 한 점에 수십만원. 고가에, 파격적인 디자인에, 사람들은 3개월도 가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누가 사가든 말든 내가 원하는 모자를 만드는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작은 매장은 화동 본점이 됐고 신세계백화점과 로드 샵, 골프 샵 등 40여곳이 넘는 곳에 매장을 갖게 됐다. 연간 매출도 50∼60억원에 이른다.
"지금은 삼청동이 문화적 아이콘으로 부각됐지만, 당시만 해도 아무 것도 없을 때였어요. 사람들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다고 하지만, 우린 돈이 없어서 간 거였거든요. 인사동은 너무 비쌌고…. (웃음) 한국에서 만들어진 브랜드가 너무 비싸다며 회의적인 반응도 많았고, 영업하려고 사람들을 만나려 해도 아무도 만나주지 않던 시절이 있었죠."
디자이너 브랜드 모자 전문기업 (주)샤뽀의 조현종 대표(45). 불어로 '모자'를 뜻하는 '샤뽀(chapeaux)'는 대표 브랜드인 '루이엘(luielle)'을 비롯해 7개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손으로 만든 예술모자는 모두 아시아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 모자전문학교 C.M.T를 졸업한 그의 아내 셜리 천 디자인 실장(46·본명 천순임)이 디자인한 것. 영화 '모던보이' 김혜수와 드라마 '내조의 여왕' 김남주가 쓴 모자가 그의 작품이며, 가수 비와 탤런트 박원숙 등 모자를 즐겨쓰는 연예인들이 그의 고객이다.
조대표와 천실장은 요즘 전주 한옥마을 근처 옛 대성학원 건물에 '루이엘 컬쳐센터'를 준비하고 있다. 부부의 고향은 전주. 전북대 심리학과 출신인 조대표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유니텔 동호회에서 한살 연상의 천실장을 만났다. 선후배에서 부부, 다시 CEO와 디자인 실장으로 이들의 만남은 발전했다.
"고향으로의 컴백이 아니라 고향에서의 제2의 도약입니다. 전주가 모자의 도시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전주의 역사·문화·관광적 자원과 결합시킨다면 충분히 효과적일 거라고 봅니다."
아시아인 최초의 모자 디자이너로서 책임과 의무를 느낀다는 천실장이 모자를 보여주고 있다. |
그는 "개인적으로는 수익구조를 모자 유통에서 문화콘텐츠로 바꾸는 게 목표"라며 "모자와 관련된 전문가들의 집단체로서 모자의 무한한 힘을 주목해 사회적으로 공공적 기능도 함께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루이엘 컬쳐센터' 1층에는 국내에서 제일 큰 모자샵과 카페테리아, 세미나룸을 둘 예정. 2층에는 샤뽀 모자와 그동안 샤뽀가 수집하고 기증받은 모자들로 박물관을 연다. 3층에는 연구소와 공장 기능을 두고 대부분 체험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다. 본사 기능은 서울에 그대로 두지만, 당장 전주에서 11명 정도를 신규채용할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파티할 때 파티모를 씁니다. 완제품이 꽤 비싸요. 적게는 15만원, 20만원부터 어떤 걸 부착하느냐에 따라 몇 백만원을 호가하는데, 이게 다 디자인비와 인건비입니다. 재료 자체는 비쌀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3만원 정도 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분명 외국인들을 비롯해 매력을 느끼는 관광객들이 있을 겁니다."
그는 "모자의 장식 기능은 지역 공예가들의 작품으로 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며 "모자박물관이나 모자만들기 프로그램을 관광산업과 연계시키면 지역 경제도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루이엘 컬쳐센터'는 오는 6월 오픈 예정.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삼족오 직인을 증정한 전각예술가 고암 정병례 선생의 전시도 함께 한다. 지난 6년 동안 국내에서 유일하게 모자쇼를 하고 있는 만큼, 내년 4월쯤에는 전주에서도 모자쇼를 해 볼 생각이다. 잘만 되면 나중에는 외국 바이어도 초청해 한옥마을에서 2박3일 동안 머무르게 하고 싶다.
"우리 나라에서는 모자가 대중화돼 있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적은 다른 모자 회사가 아니라 미용실이에요. (웃음) 시대와 함께 모자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올바르게 모자를 쓰게 하는 교육 또한 우리들의 몫입니다. 모자가 문화인으로서 자기 자신이나 자기 철학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거든요."
그는 "영국이나 일본처럼 왕실제도가 살아있는 나라에는 모자가 발달해 있다"며 "이는 모자가 가지고 있는 위엄, 지위, 카리스마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사람들은 얼굴이 크고 뒤통수가 납작해 모자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쓰고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 모자야말로 그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자라고 생각해요."
프랑스에 불문학을 공부하러 갔다가 우연히 친구 따라 간 모자 학교가 인생의 전환점이 된 천실장. 그는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한 때 대중이 사랑하지 않는 디자인은 결국 자기만족이 아닌가라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아름다우면서도 쓰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는 "모자를 쓰고 거울을 바라보며 환상에 빠진 듯한 손님들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루이엘'은 불어로 '그와 그녀'라는 뜻. 소품으로만 인식되던 모자로 패션쇼의 휘날레를 장식한 그와 그녀. 그녀는 "아시아인 최초의 모자 디자이너로서 책임과 의무를 느낀다"고 했고, 그는 언제나처럼 "당신의 생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