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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가 끝나면] 박은영
S#0. 기하학적인 무늬 + 서울 야경 / 밤 (인트로)
어둠 속에 부서지는 빛 같은 느낌의 이미지.
무슨 조직물 같기도 한, 길게 이어지는 이미지.
넥타이를 매고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한 이사.
앞좌석에는 운전하는 중도가 보인다.
타이틀 “오페라가 끝나면”
#0-1.
창밖에 흘러가는 도시의 야경.
한강을 밝히는 다리,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후미등.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고층 빌딩들. 아름답지만 한편으로 쓸쓸한 서울의 야경.
S#1. 한이사 차 안 / 밤
<라 트라비아타> 소프라노 아리아 (‘안녕, 지난날이여’ 정도) 흐르는 차 안.
운전석에 앉아 운전 중인 (젊은 스타일의 넥타이 하고 있는) 중도.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한 이사.
중도, 눈빛이 예민하고 퀭하다. 눈가 꾹꾹 눌러 보는 중도.
한이사 야근에 운전기사 노릇까지. 나 악질상산가?
중도 (얼른 손 거두고) 아닙니다, 이사님.
슬픈 아리아가 흐르는 가운데, 창밖에 시선 두는 한이사.
한이사 오페라란 게 비극인데도 참 아름답단 말야. 사랑 얘기라서 그런가.
중도 뜨거워서겠죠.
뜨거운 게 식고 나면 그 다음엔 미지근한 현실이니까요.
그러니까 오페라도 거기서 끝나는 거고. 그 다음 얘긴, 구차하잖아요.
한이사 자네도 뜨거운 뭔가가 있었어?
중도 글쎄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한이사 앞으로... (젊구나) 허긴.
중도 너무 뜨거운 건 말고요. 저는 안전주의자라,
그런 감정 때문에 다른 걸 망치는 바보짓은 안 할 겁니다.
한이사 안전주의?
(웃고, 의미 있게) 사람 맘에, 그렇게 브레이크가 걸리면 좋게.
# (인서트) 주황에서 빨강으로 색깔을 바꾸는 삼색등. 신호 앞에 멈춰 서는 한이사 차.
한이사 글러브박스 열어봐.
중도, 거울로 한이사 흘끗 보고 글러브박스 열면 선물 포장 상자 있다.
한이사 자네 꺼야.
중도 이게.. 뭡니까?
한이사 자장가. 요즘도 잠 못 잔다며.
동네 꼬맹이 하나가 그걸 켜놓은 다음부터
밤새 울지도 않고 잘 잔다잖아.
중도 (마음 느껴져 빙긋 웃고) 감사합니다.
한이사 감사는 무슨, 잘 재워서 더 부려먹으려는 건데.
중도 (웃는)
한이사 (창밖 보다) 중도야, 너한테 소개해줄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인지 조만간 한번 볼래?
중도 (기대감에 슬쩍 웃고) 네.
한이사 (조금 쑥스럽게 곁눈질로 보며) 근데 너, 그런 타이는 어디서 사니?
S#2. 바 앞 / 밤
중도, 얼른 차에서 내려 한 이사 뒷문 열어준다.
한 이사, 바 안으로 들어가고, 허리 굽혀 인사하는 중도.
S#3. 회사, 엘리베이터 안 / 밤
중도, 한이사와 넥타이가 바뀌어 있다.
엘리베이터 문에 바뀐 타이 자꾸 비쳐보는 중도.
썩 마음에 드는 듯 이리저리 매만져도 보고, 좀 거만한 표정도 지어본다.
S#4. 사무실 / 밤
늦은 밤 불 꺼진 사무실.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음영어린 얼굴의 중도.
모니터에 ‘2차 인사이동 명단 수정안’ 또박또박 글자가 박힌다.
중도, mp3 이어폰 끼면 오페라 아리아 선율 흘러나온다.
푸른 모니터 불빛 앞에서 망설임도 없이 살생부를 타이핑하는 중도.
# 복사실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나가는 복사기 불빛에 비치는 무덤덤한 중도의 얼굴.
어둠 속에서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S#5. 이사실 / 밤
주인 없이 고요한 이사실. 중도, 한이사 책상 위에 정리한 서류를 놓는다.
잠시 나가지 않고 서서 빈방 둘러보는 중도. 고조되는 아리아 음악.
# 사무실
진동으로 혼자 울리는 휴대폰.
S#6. 선술집 / 밤
가요 들리는 복고풍 선술집.
남자 3명이 모여 앉은 종철 테이블.
고기 몇 점이 맥없이 구어지고 있는 불판 위로 전화 신호가 가는 소리 들리고,
난처한 얼굴로 전화기 들고 있는 종철.
윤대리 안 받아?
종철 (사람 좋은 웃음) 바쁘다고 그러긴 하더라고.
윤대리 중도 그 자식이 언제 안 바쁜 때가 있었냐.
인사과 밥 먹는다고 유세는 씨.
조대리 말은 바로 해라. 인사과 밥 먹어서 유세가 아니라,
똑똑하고 잘난 데다, 차기 실세 한 이사 통이라 유센 거지.
윤대리 한이사가 이번 인사 직접 지휘하는 거 확실하지?
조대리 그렇다니까.
윤대리 (기대감으로) 동창 좋다는 게 뭐냐. 오면, 뭔 말이 있겠지.
종철 (웃고) 그래.
조대리 아유, 궁금해 죽겠네.
윤대리 종철아, 내가 살치살 쏜다고 확실히 얘기했냐?
종철 그래, 인마...
윤대리 한우 꽃등심으로 쏜다 그럴 걸 그랬나.
조대리 으이그... (못났다 싶게, 보는)
윤대리 뭐어...
종철 (웃고, 전화기 다시 두드려 보는)
S#7. 중도 차 안 / 밤
도로를 날렵하게 달리는 자동차.
누군가의 전화 받으며 운전 중인 중도.
중도 글쎄, 한 10분? 아니 6, 7분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S#8. 선술집 / 밤
11시 45분 가리키는 시계.
식어가는 불판처럼 점점 지쳐 가는 종철 일행.
종철 차가 많이 막히나봐.
요즘은 출퇴근시간이 따로 없어. 진짜 너무 막혀.
조대리 됐어, 감싸지 마, 인마.
종철 내가 뭘...
윤대리 감쌀 만도 하지. 얜 안전빵이니까.
종철 그게 무슨 소리야?
윤대리 회사 통틀어 친구라곤 너 하난데, 중도가 너 하나 커벌 못 하겠냐.
조대리 하긴, 따지고 보면 중도 그 자식 있는 자리가 종철이 얘 자리잖아.
종철 (보면)
조대리 재수씨 만나느라 포기한 해외연수말이야,
그때 그거 갔으면 지금 한이사랑 니가 엮였을 거 아니야.
윤대리 맞아, 중도가 종철이한테 못하면 사람도 아니지.
종철 그게 언젯적 얘긴데...
이때 드르륵 선술집 문이 열리고 일제히 그 쪽으로 시선 주는 일행.
S#9. 호텔 룸 / 밤
문이 열리면, 그 앞에 멋있는 척 폼 잡고 서 있는 중도. 슬쩍 미소 짓는다.
중도 많이 기다렸어?
여자 (새침하게) 아니.
중도 들어서자마자 매달려 키스하는 여자.
춤을 추듯이 엉켜서 침대로 가는 둘, 당장 일이 벌어질 듯한데,
전화 진동 소리 울린다.
여자 (전화기 잡으며, 애교로) 받지 마. 받지 마요, 응?
중도 (액정 뜬 ‘이사님’, 뿌리치고 일어나 받는) 네, 이사님.
샐쭉해서 팔에 매달리는 여자 떼 내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중도.
# 화장실
중도 (문 닫고) 말씀하신 대로 정리했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며칠 내로 곧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요.
근거 자료도 충분하고 최대한 뒷말 없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 비쳐보며 가다듬는 중도.
S#10. 바 / 밤
뒷모습으로 전화 받는 한이사.
한이사 그래. 수고했다. 쉬어. (끊는)
쓸쓸하기도 하고 왠지 씁쓸하게 술잔 비우는 한 이사.
한 잔 더 달라고 손짓하면, 위스키 따르는 바텐더.
바텐더 (따르며)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한이사 그래 보여?
바텐더 네.
한이사 (미소로) 그럴 리가 있나. 내 부하직원이 얼마나 일을 잘 하는데.
깔끔하고, 실수도 없지, 빠르지. 내가 손 댈 것도 별로 없어.
바텐더 (미소로) 근데요?
한이사 그게... 꼭 옛날에 나 같아서.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데...
(뭔가 떠올리는) 그때 내가... 좀 못됐었거든.
이때 바 안으로 들어오는 춘희(여, 30대 초반).
한이사, 눈도 못 떼고 반한 듯이 빠져 보다 얼른 중도와 바꾼 넥타이 다시 한 번 고쳐 맨다.
춘희, 한 이사 보고 미소 지으면 그제야 무거운 짐 내려놓듯 환한 웃음 짓는 한 이사.
한 이사의 표정 변화 보는 바텐더.
춘희 제가 좀 늦었죠? 오늘 따라 작업이 많았어요.
한이사 (미소로 보기만)
S#11. 호텔 / 밤
침대에 돌아와 다시 여자 끌어안는 중도.
여자 (귀에 대고 속삭이듯) 무슨 전화?
중도 (이마에 살짝 키스하며) 선보란 전화.
여자 뭐?
중도 (여자 품에 강아지처럼 얼굴 묻는데)
여자 그 딴 거 볼 거 아니지?
중도 왜애. 이사님이 소개하는 여잔데, 마다할 이유가 있어?
여자 그럼, 난?
중도 (픽 웃는) 우리 만난 지 열흘밖에 안 됐는데, 이 호텔만 3번째야.
진지한 거 아니잖아.
여자 (발끈해서) 진지한 게 아님, 장난이니?
중도 왜 그래애... (계속 파고들려는데)
중도 밀어내고 분해 뺨 올려붙이려는 여자,
그 정도는 각오한 듯 눈 감고 뺨 대주는 중도.
여자, 그 모습에 기막혀 손 거둔다.
여자 (옷이며 가방 챙기는)
중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만 같이 있으면 안 돼? 밤도 깊었는데.
집에 가도 별 볼일 없잖아.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는 여자. 닫히는 문소리 들으며 입이 쓴 중도.
(시간 경과)
어둠 속에서 호텔 창밖을 보고 선 중도. 창 밖에서 불빛들이 반짝인다.
침대에 앉아 아까 한이사가 준 선물 풀어 보는 중도. 작은 네모박스(플라네타륨)다.
네모박스 스위치 켜면 아파트 천장에 가득한 푸른 별들.
팔 베게 하고 누워 미소 짓는 중도.
잠 청하려 아기처럼 모로 누워 동그랗게 몸을 움츠려 본다.
그러나 잠시. 한숨 끝에 다시 눈 뜨는 중도. 원망하듯 베개에 얼굴 부비다 일어나는 중도.
이내 불 켜고 냉정하게 서류 펴든다.
S#12. 선술집 / 밤
더 이상 손님도 없어 종업원들이 쓰레질을 하는 실내.
종철 일행, 불판에 말라붙은 삼겹살처럼 처량하게 앉아 있다.
서로 할 말도 잃고 쓰게 소주잔도 들이키는 것도 멈췄다. 난감해 눈치 보는 종철.
조대리 이게 우릴 뭘로 보고! (소주잔 세게 내려놓는)
종철 야, 진정해.
윤대리 별 볼 일 없는 고등학교 동창이라 무시하는 거지?
(A급 라인이 아니라는 거 아냐. 지는 뭐가 그렇게 잘 났어?
지는 첨부터 초고속 과장이야?)
내가 내일 그 새끼 만나면 가만 두나 봐.
종철 (걱정스레 보는데)
조대리 내, 이 자식을 진짜! (마시던 물잔 콱 내려놓는)
S#13. 로비 휴게실 / 낮
테이블 위에 놓이는 커피잔. 중도, 보면 윤대리다.
윤대리 (웃는 얼굴로) 이과장 여기 커피 좋아하지? 마셔 마셔.
조대리 어젠 바빴나 보다.
중도 그러게 어렵다 그랬잖아.
조대리 (입 비죽거리는)
종철 (중도와 앉아 있다가) 앉아.
윤대리 (앉으며) 중도야, 이번 인사 아는 거 있음 얘기 좀 해봐.
중도 (종철 나무라듯 보는)
종철 (슬쩍 시선 피하고)
조대리 그러지 말고, 좀 흘려 봐라. 응? 이번 건 너하고 한이사만 안다며?
중도 진상들... 진즉에 인사고과 신경 좀 쓰지.
윤대리 친구야, 동기 좋다는 게 뭐냐. (어울리지 않는 애교 부리는) 응? 응?
중도 (기막혀 웃고)
그때 꽃바구니 들고 로비 안으로 들어오는 춘희.
그 쪽으로 시선 가는 중도.
조대리 너, 얘기해줄 거지?
중도 어...
조대리 진짜?
중도 어! (춘희 보고 일어나는) 먼저 간다.
서둘러 춘희 쫓아가는 중도.
일행들, 황당해 중도 뒷모습 보고 섰다.
윤대리 뭐야... 저 자식. (종철 보고) 야, 말해 준다는 거지?
종철 (의아해 보는데)
종철의 와이셔츠 한 구석에 언제 떨어진 지 알 수 없는 커피자국 보인다.
S#14. 회사 엘리베이터 앞 / 낮
중도, 서둘러 쫓아갔지만 이미 엘리베이터 탄 춘희.
춘희가 내린 층 확인하고 얼른 옆 엘리베이터 타는 중도.
S#15. 회사 복도 (몽타주) / 낮
중도, 춘희의 뒷모습 보고 쫓아가는데
황급히 앞서 쫓아가지는 못하고, 미행하듯 조심스럽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꺾이는 복도를 따라 춘희를 쫓는 중도.
그러나 꺾인 복도를 지나자 방금까지 있었던 춘희의 자취 찾을 수 없다.
여기 저기 살피며, 난감해 서 있는 중도.
# 화장실 안
한편, 그 근처 화장실에서 거울 보며 매무새 고치고 있는 춘희.
밖에선 이리저리 살피는 중도 있다.
# 회사 복도
중도 이리저리 살피다 체념하고 돌아선다.
꽃바구니 들고 중도와 반대편 복도 걸어가는 춘희. 그대로 어긋나는 두 사람.
S#16. 사무실 / 낮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중도.
(플래시백)
화장기 없는 얼굴로 환하게 웃는 춘희의 앳된 얼굴(대학시절).
중도,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설핏 미소가 번진다.
중도 자리, 내선 전화 울린다.
들킨 사람처럼 얼른 냉정 찾고 전화 받는 중도.
중도 (받는) 네. 이사님.
S#17. 한이사실 / 낮
한이사, ‘榮典을 祝賀합니다’ 작은 리본이 달린 꽃바구니 앞에 놓고
난초용 분무기로 세심하게 물 뿌리고 있다.
꽃바구니에 시선 꽂히는 중도. 여느 꽃집 바구니와는 다른 플로리스트 솜씨다.
<인서트> S#14 로비에서 춘희가 들고 있던 꽃바구니.
중도 (뭐지? 싶은데)
한이사 기획 이사실에 전해 줘.
그 쪽 이사가 새로 왔는데 일단 환영은 해 줘야지.
중도 (모르는 사실이고) 기획 이사요? 처음 듣는 얘긴데요.
한이사 사장 쪽 낙하산이야. 실속 없이 화려한 걸 좋아한다는데,
여우 소리 듣는 걸 보면 맹탕은 아닌 것 같아.
중도 왜 저한테 미리 말씀을 안 하셨어요.
미리 언질을 주셨으면 이것저것 알아봤을 텐데요.
그럼, 저쪽에 대한 대비책도 미리 세웠을 거 아닙니까.
한이사 (웃음기로) 이과장, 자네... 다 좋은데, 가끔 넘쳐.
중도 (보면)
한이사 (온화하지만, 서슬 있는) 지금 날 가르치려 드는 건가?
중도 (정신 퍼뜩 났고) 아, 아닙니다.
한이사 욕심이 과하면 일을 그르쳐. 숨길 줄 알아야지.
중도 (모골이 송연한) 네.
한이사 가봐.
중도 (꽃바구니 들고 나가는데)
한이사 중도야, 이따 저녁이나 같이 하자.
중도 네. (인사하고 나가는)
한이사 (중도 나간 자리 보는)
S#18. 기획 이사 비서실
한이사의 말에 긴장감 남아 있는 중도.
중도, 스스로 다지듯 옷매무새 만지고 꽃바구니 들고 비서실로 들어간다.
비서 무슨 일이시죠?
중도 한이사님이 보내셨습니다.
비서 (내선 연결해 통화하는) 이사님, 한정훈 이사님이 꽃을 보내셨습니다.
네. (중도에게) 비서세요?
중도 아닙니다.
비서 (전화 끊고) 들어오시랍니다.
중도 그럴 것까진. 전 그냥 전해 드리면 되는데...
S#19. 홍이사실
책상에 앉아 해외 패션지 따위 보고 있는 홍미희(여, 50대 초반) 이사.
꽃바구니 들고 조금은 어색하게 선 중도.
홍이사 이번 시즌 참 재미없네. 눈에 쏙 들어오는 게 하나도 없어.
중도 한이사님이 보내셨습니다.
홍이사 (잡지에서 눈 안 떼고) 누구?
중도 네?
홍이사 비서도 아닌데, 한정훈 이사가 나한테 꽃을 들려 보낸 직원.
이게 뭐겠어. 내 사람이니까, 건드리지 마라.
아님, 내 사람이니까 앞으로 경계하는 게 좋을 거다,
뭐가 됐든. 그러니까 누군지 궁금해서. 누구야?
중도 (기가 좀 눌리지만) 인사과 과장, 이중돕니다.
홍이사, 일어서서 물건 훑어보듯 중도를 빙그르 돌아본다.
홍이사 잘 생겼네. 스타일 좋고, 똑똑하게 생겼고. 한이사가 옆에 둘만해.
중도 (조금 굴욕적인데)
홍이사 (자리 돌아가 앉으며) 근데 이름은 안 어울린다.
암튼, 잘 봤어요. 나가 봐요.
중도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홍이사 (쳐다보지도 않고) 심심하면 놀러 오구,
아예 이쪽으로 짐 싸서 와두 좋구.
중도 (불쾌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해서) 절 아십니까?
홍이사 인사과에 이중도가 둘인가?
중도 (보면)
홍이사 일 잘 한다며? 야심 있다며?
인사과 취미 안 맞아서 기획 부서로 옮기고 싶어 한다던데, 아닌가?
중도 (의표를 찔린, 만만치 않은)
S#20. 홍이사실 앞
이사실 나와 홍이사의 기운 털어내듯 고개 까딱해보는 중도.
자조하듯 웃고, 걸어가는.
S#21. 고급 식당 전경 / 밤 (인서트)
S#22. 고급 식당 안 / 밤
식당 안 낯설게 둘러보며 들어오는 중도.
중도, 뭔가 얘기하자 얼른 자리로 안내하는 지배인.
# 식당 룸
한이사,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긴장한 모습이다.
중도 들어서자 반갑게 맞는 한이사.
한이사 (반갑게 맞는) 어.
중도 늦었습니다.
한이사 (약간 들뜬) 아냐, 일찍 나왔어 내가.
뭐 먹지도 않으면서 여기 직원들 벌세우고, 약만 올리고 있었지.
지배인 (웃으며, 세팅된 자리 물 따르는) 아닙니다, 이사님.
중도 식사는...
한이사 (초조하고 설레는) 올 사람 더 있어. 배고파도 좀 참아.
중도 (?)
한이사 전에 내가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고 했지.
중도 (소개팅인가? 기대하는) 그게 오늘입니까?
(급히 차림새 신경 쓰며) 신경도 못 썼는데...
지배인 (off) 손님 오셨습니다.
중도 (돌아보면)
룸 앞에 서 있는 소박한 차림새의 춘희.
중도 말문이 막히고, 춘희도 조금은 놀랐다.
한이사 (슬쩍 소군거리는) 요즘... 내가 공들이는 여자야.
중도 (한이사 보는, 덜컹한다)
서로 멍해 보는 중도와 춘희.
S#23. 동장소
요리 접시 오르는 식탁. 프랑스 요리 정도. 식사하는 세 사람.
고개도 못 들고 눈치만 보는 중도. 자상하게 옆에서 춘희 챙기는 한이사.
춘희 역시 편치 않은데.
한이사 제일 아끼는 부하고, 요즘은 제일 친한 제 친구예요. 이 친구가.
중도 (가시방석이고)
춘희 (중도 보는)
한이사 (춘희 보며) 아무래도 두 사람 자주 보게 될 것 같아서.
춘희 씨,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이 친구랑.
춘희 (중도 보는)
중도 (가볍게 새알 걸리는)
S#24. 화장실
세면대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 보고 서 있는 춘희.
거울로 자기 모습 보는데, 표정 무겁다.
S#25. 고급 식당 룸
찻잔 놓여 있는 테이블. 둘만 있는 공간, 공기가 불편한 중도.
한이사 (눈치 보며) 뭔 말이 있어야지.
중도 네?
한이사 난 창피한 것도 모르는 줄 알아? 답답하긴. 어때?
중도 미인... 이시네요.
한이사 그런 거 말고. 그... 느낌이란 거 있잖아?
중도 조, 좋습니다.
한이사 스무 살 어린 여자 만나 주책 떤다고, 속으로 지금 나 씹냐.
중도 아닙니다, 좀 갑작스러워서.
한이사 (소년처럼 수줍어) 주책이래도 할 수 없고, 씹어도 할 수 없지.
태어나서 나도 이런 거 처음이니까. 넌 이런 느낌을 알까 모르겠다.
중도 (기막히고 복잡해 보는)
S#26. 식당 복도
춘희와 마주친 중도.
당황해 빨리 지나가려는데 왼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 쪽으로 겹치는 두 사람.
중도 옆으로 비켜주면, 지나가는 춘희.
중도 우리...
춘희 (멈추면)
중도 그냥 모르는 사이로 할까요?
춘희 (실망으로 있다, 안 보고) 모르는 사이... 맞는 것 같네요. (가는)
중도 (잡지도 못하고, 춘희 뒷모습 보는)
S#27. 식당 앞 / 밤
두 대의 검은 세단 서 있다. 심각하게 통화 중인 한이사와 그 옆에 선 중도.
좀 떨어진 곳에 춘희 서 있다.
한이사(E) 그래서 홍미희가 지금 일본에 있단 거야? (듣고 낭패스런 얼굴 되는)
어색하고 불편해 서로를 최대한 보지 않으려하지만, 의식하는 춘희와 중도.
한이사 알았어. 내가 지금 그 쪽으로 갈게. (끊는)
중도 (보면)
한이사 (사람 좋은 얼굴로 춘희 쪽 보며 복화술 하듯)
망할 구미호 같으니라고. 홍이사가 일본에다 일을 친 것 같아.
일본 소비자를 대상으로 신제품 설명회를 열었다는데
이 건에 대해선 내부에서도 아는 게 없어.
중도 그렇다고 당장 일본을 가세요?
한이사 이탈리아 쪽 명품 기획자며 디자이너들까지
대책 없이 스카우트 하고 있는데, 그것도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고.
이번에 뒤통수 제대로 맞았어.
중도 저도 그럼...
한이사 아니야. 거긴 조과장이 가 있으니까.
자넨, 여기서 이쪽 상황을 봐줘야지.
중도 네...
한이사 그래서 말인데, 자네한테 부탁이 있어. (춘희 쪽 보는)
중도 (한이사 시선 따라 춘희 보는)
S#28. 식당 부근 / 밤
먼저 떠나는 한이사 차 지켜보는 중도와 춘희.
차 떠나자 어색하게 서 있는 두 사람.
중도 (차에 시동 걸고, 유리문 내리며) 타요.
춘희 (터벅터벅 걸어가는)
중도 (차로 따라가며) 타요.
별 것도 아닌 걸로 이사님한테 찍히기 싫으니까.
춘희 (그냥 가는)
중도 (차로 따라가며) 재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춘희 (보는)
S#29. 차 안 / 밤
운전 중인 중도, 룸 미러로 뒤 보면 뒷좌석에서 앉아 있는 춘희.
중도 곁눈질 하는데, 시종일관 창밖만 보는 춘희.
중도 (분위기 풀어보려) 어떻게... 잘... 지냈어?
춘희 (한번 쳐다보고 다시 흘러가는 차창 밖 불빛들만 바라본다)
중도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춘희 (쳐다보지도 않고 여러 가지 생각)
중도 그래, 맘대로 해라. 나도 아쉬울 거 없어.
어색한 분위기가 무겁게 차 안을 짓누르고 있고, 말없는 중도와 춘희.
S#30. 춘희 집 앞 / 밤
고즈넉한 주택가로 들어오는 세단.
자동차 멈추면, 말 한 마디 없이 내리는 춘희. 따라 내리는 중도.
중도 너 왜 그래?
춘희 (그냥 가는데)
중도 (춘희 팔 잡아채 돌려세우며)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게 뭔데?
춘희 (보고)
중도 이사님 앞에서 니가 내 첫사랑이다!
우리 한때 죽고 못 살았다, 그래? 회사고 뭐고, 이중도 인생 끝장내?
춘희 (보다) 너, 왜 반말하니?
중도 (기막혀) 뭐?
춘희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기 밖에 모르는 건 똑같네.
남의 속 헤아릴 줄도 모르고 그저 지 생각밖에 못하지.
중도 내 생각? 그러는 너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냐?
그냥 상황이 애매하니까 서로 좀 돕자는 거잖아.
춘희 도울 일이 뭐 있어. 어차피 잘 모르는 사이로 하자며?
아는 사이였을 때도 나한테 해준 거 없잖아?
중도 내가 그렇게 안 해준 건 또 뭔데?
춘희 (보다) 제대로 된 머리핀 하나라도 사준 적 있어?
중도 야... (어이없고, 말문 막혀 보기만)
춘희 ...
중도 (가다듬고) 네가 사회생활을 잘 모르나본데,
이 조직생활이라는 게 말이야, 이사님도 그렇고...
춘희 (말 끊으며)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들었어요, 이중도 씨.
(뒤돌아 가는)
중도, 화가 나고 기막힌데, 여러 생각 겹친다. 춘희 뒷모습 지켜보고 선 중도.
춘희가 올라갈 때마다 계단의 센서 등이 하나하나 밝혀진다.
옆에 굴러다니는 깡통 발로 차는 중도. 중도 뒷모습에서. F.O.
S#31. 춘희 집 앞, 차 안 / 낮 F.I.
전화기 만지작거리고 서있는 중도. 정말 싫지만, 통화 버튼 누른다.
중도 이중돕니다. 이사님한테 얘기 들으셨죠?
춘희 (아무 대꾸 않고)
중도 오늘 생일이잖..., 생일이라면서요.
춘희 (전화 끊는 소리)
중도 야! (전화기 보고) 뭐야, 끊은 거야?
# 식당 앞 (플래시백)
한이사 오페라 예약해 뒀으니까, 보여 주고,
예약해둔 식당 있으니까 밥 먹어.
여리고 수줍음도 많은 사람이라, 어디 가면 주문도 잘 못해.
그러니까, 최대한 매너 있게. 주문도 알아서 대신 해주고.
하루 동안 공주님 모시듯이 모셔. 부탁한다.
중도 (난처한데)
한이사 그리고 자네가 나에 대해서 잘 아니까... 나에 대해서, 응,
(툭 치고) 알지?
(다시 현재)
중도 (끊긴 전화 들고) 아... (원망스레) 나보고 어쩌라고!
중도, 전화기 만지작거리다 문자 찍는다.
‘어제 일은 미안(했)...’ 까지 치다가 문자 신경질적으로 지우는 중도.
다시 전화 걸려고 하는데,
이때, 화사한 원피스 차림으로 걸어 내려오는 춘희.
예쁘다. 잠시 빠져 보는 중도.
중도 (마음이랑 다르게, 툭) 촌티는 여전하네.
S#32. 오페라 극장 앞, 혹은 로비 / 낮
오페라 <돈 카를로> 공연 포스터 붙어 있는 벽면 앞에 서 있는 춘희.
중도, 매표소에서 예약된 티켓 받아 온다.
중도 (표 손에 든 채로) 오페라 좋아해요? 아니래도 할 수 없고.
춘희 (보면)
중도 (티켓 내밀며) 불편하면 혼자 봐도 되고.
춘희 (티켓 받아드는)
중도에게 티켓 건넨 직원, 포스트 잇 확인하고 어디론가 전화 건다.
S#33. 오페라 극장 로비
티켓 빤히 보는 춘희. 그런 춘희 마뜩치 않은 중도.
춘희 나 오페라 별론데, (티켓 다시 건네며) 그러니까 본 걸로 할게요.
(나가는)
중도 (난감해 티켓과 춘희 번갈아 보다) 이봐요! 아, 진짜... (따라 가며)
매니저, 고급스러운 작은 선물상자 들고 뒤늦게 뛰어나온다.
그러나 이미 밖으로 나가버린 중도와 춘희.
두리번거리다 난감한 표정되는 매니저, 상자 쳐다본다.
S#34. 순댓국집 / 낮
허름하지만 북적거리는 순댓국집.
그 안으로 들어오는 중도와 춘희. 영 식당이 마음에 차지 않는 중도.
중도 멀쩡히 예약해 둔 식당 놔두고. 고작 이런 델 와요.
춘희 아줌마, 여기 특으로 2개요!
한이사(E) 여리고 수줍음도 많은 사람이라, 어디 가면 주문도 잘 못해.
중도 (기가 막히다, 혼잣말) 진짜... 너무 모르시는 거지.
설설 끓는 순댓국 두 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리는 종업원.
뭐 이런 걸 먹나 싶어 춘희 빤히 보는 중도.
춘희, 긴 머리 왼손으로 추려 잡고 순댓국 떠먹는다. 그 모습 보다 슬쩍 일어서는 중도.
춘희 (보는)
중도 화장실 좀...
춘희 (무심히 보는)
S#35. 순댓국집 근처 좌판 / 낮
액세서리 잔뜩 진열된 데서, 머리핀 하나를 신중히 고르는 중도.
중도 이걸로 주세요.
S#36. 순댓국집
테이블 위에 핀을 슬쩍 꺼내놓는 중도.
게걸스레 먹다가 그런 중도 보는 춘희.
춘희 뭐예요?
중도 (핀 꽂는 시늉) 하고 먹으라고... 요.
춘희 (보면)
중도 거, 자꾸 머리카락이 국그릇으로 들어가잖아, 요, 지저분하게.
춘희 (보는)
중도 (먹으며) 별 뜻 없다구요.
춘희 (그 속 알고 보다, 무심하게 머리말아 올리는)
곁눈질로, 춘희의 목덜미며, 머리 올리는 동작이며, 커트 커트 인상적으로 보는 중도.
(플래시백) S#23.
이사 (소년처럼 수줍어하며) 주책이래도 할 수 없고,
뒤에서 씹어도 할 수 없지. 태어나서 나도 이런 거 처음이니까.
(현재)
아무 일 없다는 듯 자기 밥 먹는 춘희. 그 모습 특별하게 보는 중도.
중도 (괜히 마른 침 삼키는)
춘희 (먹으며) 앞으로 우리... 만나는 일 만들지 말죠.
어차피 더 이상 그럴 일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중도 (먹으며, 당연하단 듯 열심히 고개 끄덕이는) 오케이.
S#37. 사무실 / 낮
중도, 멍하니 딴 생각에 빠져 일도 손에 잘 안 잡힌다.
사진 한 장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도. 중도와 춘희가 연인이었을 때의 앳된 사진이다.
종철 (off) 뭘 봐?
중도 (얼른 사진 감추며) 어.
종철 여자 사진 같은데?
중도 아냐, 인마. 커피나 한잔 하자. (일어서 가는)
중도, 일어난 모니터 한 페이지에 한 자판만 계속 눌러져 있는 것 보는 종철.
‘ㅊ ㅊ ㅊ ㅊ ㅊ ㅊ ㅊ ㅊ...’
종철 치읓 치읓 치읓? 츠츠츠? 뭐어야... (이상스레 보다) 너 연애하냐?
S#38. 휴게실 / 낮
중도, 잠 부족해 눈가 누르며 커피 마신다.
종철 (걱정스레) 그놈의 불면증... 난 눈 감았다 뜨면, 아침인데.
맘먹고 자라면, 2박 3일도 자겠다.
중도 종철아, 춘희 기억나니?
종철 그럼. 대학 때 니 첫사랑.
중도 내가 걔를 왜 찼지?
종철 글쎄에... 촌스럽다 그랬던가?
중도 (생각하는데)
종철 근데, 니가 차인 거 아니었냐?
중도 (황당해) 뭐?
S#39. 이사실 / 낮
부장급들의 밀린 결재서류를 보고 있는 한이사. 중도, 구석에 서 있다.
쉽게 사인할 수 있게 친절하게 사인할 곳 손가락으로 짚어 주는 노회한 부장들.
한이사 오페란 재미있었나?
중도 (구석에 선 채) 네...
한이사 (기대감으로) 좋아하지?
중도 (거짓말 불편한데) 네.
결재 맡은 부장들, 꾸벅 인사하고 나간다. 가볍게 답인사하는 한이사.
한이사 (살갑게 빙긋 웃으며) 자네 생각은 어때? 나한테 넘어올 것 같아?
중도 글쎄요. 그것까지 제가 어떻게 짐작하겠습니까.
한이사 허긴. (웃고) 이번 갤리리 전시회 때 사람들한테 소개시킬까 해.
홍미희 이사가 주관하는 행산데, 부부동반이라잖아.
중도 (보는)
한이사 이사 중에 싱글은 나 하나니... 결국 날 엿 먹이자고 드는 거지.
아예 이번 기회에 우리 사이를 알리면 어떨까 싶어.
중도 (좀 당황스러운데)
한이사 그게 진도 나가는 데도 괜찮겠지?
중도 그보단 홍이사님 극비 프로젝트 건을 더 신경 쓰실 때 같은데요.
인사이동 리스트도 아직 마무리가 안 됐고...
한이사 그럼 이렇게 하지. 나야 붙드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중도 갤러리에 잠깐 있다가 자네가 집에 데려다 주는 걸로.
부담스럽지 않게 얼굴만 비추는 걸로 하자고.
한이사 그 사람 집 알지?
중도 그렇긴 하지만...
한이사 왜? 무슨 문제 있나?
중도 (보다)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S#40. 전시회장 앞 / 밤
한이사, 누군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섰고 차에서 내리는 춘희.
한층 더 세련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중도, 춘희 도착하는 것 봤고 숨어서 그 모습 멍하니 빠져 보고 섰다.
한이사 (반갑게) 고생스럽진 않았어요?
춘희 네. 편하게 왔어요.
한이사 (춘희의 목을 살핀다)
(플래시백)
주얼리 샵. 목걸이 고르고 환하게 미소 짓는 한이사.
(현재)
아무것도 목에 걸지 않은 춘희.
한이사 (섭섭한데, 일단 안으로 안내하는) 들어가죠.
안으로 들어가는 춘희와 한이사 지켜보는 중도.
S#41. 전시회장 안
젊은 예술가들의 모던 아트를 전시한 갤러리 안.
춘희, 한이사와 함께 등장하자 단번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춘희 쪽 바라보고 선 중도.
춘희, 원래부터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중도 (춘희 보며, 혼잣말) 원래 저렇게 생겼었나?
종철 (중도 어깨 너머로) 춘희 아니야? 야, 쟤가 여긴 웬일이야?
중도 (대꾸 않고 가는)
홍미희 이사에게 춘희를 소개하는 한이사.
그 옆에 괜히 가서 붙어 선 중도. 그런 중도가 신경 쓰여 조금 피하는 춘희.
한이사 (춘희 소개하며) 요즘 제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분입니다.
홍이사 (춘희 관심 있게 보고) 말 참 어렵게 하시네요.
춘희 (인사하는)
홍이사 (춘희에게 고개 까딱하고) 근데 이렇게가 맞아요?
(춘희와 중도 쌍으로 가리키며) 난 아무래도 이쪽인 것 같은데.
한이사 (표정 관리 안 되지만, 허허 무마하며) 이사님도.
홍이사 정말 감 없나 보다. 딱 보면 몰라요? 한이사님은 내 또래 어때요?
살짝 연상이 좋아, 요즘엔.
한이사 (표정 관리 안 되는데) 많이 연하도 잘들 삽니다. 요즘엔.
홍이사 네에...
그나저나 명품 아트랑 가전을 결합한대니까, 반응이 이렇게 좋네요.
그나저나 한이사님, 밀어붙이기식 실용주의 컨셉은, 잘 돼 가세요?
한이사 (미소만)
홍이사 암튼 여잘 몰라. (춘희 보며) 답답하죠? 또 봐요. (가는)
춘희 (어색한 미소만)
한이사 (춘희의 빈 목을 자꾸 쳐다본다)
춘희 (시선 느끼고, 자기 목에 손 대보는)
한이사 (얼른 시선 거두고, 미소로) 잠깐만요.
한이사 잠시 한눈 판 사이, 춘희 손을 이끄는 중도.
S#42. 동장소 / 밤
갤러리 기둥 뒤쯤으로 춘희를 끌고 온 중도.
중도 가자.
춘희 (손 뿌리치며) 왜 이래요?
중도 이사님 지시야. 너 집에 데려다 주라고.
춘희 이제 막 왔는데.
중도 오늘 이 안에서 처리할 업무가 많으셔. 니가 있으면 방해만 되고.
춘희 그럼 인사라도.
중도 됐어. 인사는 무슨.
원래 이렇게 치고 빠지기루 다 얘기가 돼 있는 거야.
(눙치는) 이 바닥이 원래 그래. 가자, 그만.
춘희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끌려가는)
S#43. 갤러리 앞 주차 공간 / 밤
자기 차를 끌고 나오는 중도.
중도 (앞 유리 내리며) 타.
춘희 (뒤로 타려고 하는데)
중도 옆으로 타.
춘희 (살짝 째려보고 뒤로 타는)
중도 그냥 말해본 거야.
출발하는 중도의 차.
그 뒤로 춘희를 찾아 나온 한이사. 낭패스러워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S#44. 달리는 차 안 / 밤
룸미러로 자꾸 뒤를 돌아보는 중도. 주는 거 없이 받은 거 없이 기분 좋다.
한편,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드는 춘희.
중도 어쨌거나, 이렇게 다시 보니까... 좋네. 너도 사실 좋지?
춘희 (보는)
중도 너랑 나랑 인연은 인연이다. 이게 얼마만이지?
(보고) 아니이... 우리가 아무리 서로 마주칠 일 안 만들래도,
사람 사는 일이 사람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춘희 너, 계속 반말할 거니?
중도 (춘희의 반말에 기분 좋아진)
S#45. 도로 / 밤 (인서트)
중도의 차가 기분 좋게 달리는 도로.
S#46. 춘희 집 앞 / 밤
차를 대고 얼른 나와 춘희 뒷문 열어주는 중도.
춘희, 이런 매너가 낯설지만 천천히 나오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습 뽀뽀하는 중도.
중도 뺨 가볍게 때리는 춘희, 그러나 춘희 손목을 붙잡고 딥키스까지 해버리는 중도.
춘희, 떨어지자마자 가방으로 때린다. 피하려다 미끄러지는 중도.
춘희 화가 나 다가가서 몇 대 더 때리려고 하는데 중도의 이마에서 살짝 흐르는 피.
중도 (알았고) 어!
춘희 (약간 당황해) 피난다...
S#47. 춘희 집 / 밤
깔끔하고 편한 느낌의 아늑한 빌라.
춘희, 약을 찾는 동안 소파에 누워 춘희의 손수건 대고 있는 중도.
얼추 피도 다 멈췄는데, 춘희 뒤돌아보면 더 아픈 척 끙끙대는 중도.
춘희 조금만 기다려. (구급상자 내오는)
중도 집이 별로 안 변했네.
춘희 변했어. 니가 기억을 못 해서 그렇지.
중도 거의 다 똑같은 것 같은데.
손수건 떼 내고 빨간약과 연고를 발라주는 춘희.
중도, 밴드 붙이는 춘희 배를 끌어안고 강아지처럼 얼굴을 묻는다.
약간 당황하여 중도를 밀치고 손에 잡히는 쿠션 정도 던진 후 주방 쪽으로 가버리는 춘희.
(약간의 시간경과)
춘희 (커피 들고 서서) 이거 마시고 빨리 가!
중도 (이미 잠든)
춘희, 정말인가 보면, 쌔근쌔근 아기처럼 잠들었다. 잠든 중도 바라보는 춘희. DIS
S#48. 춘희 집 / 아침
춘희, 침대에서 눈 뜨면 햇살이 들이치고 있다.
얼른 일어나 소파 보면 벌써 나가고 없는 중도. 개어진 이불만 있다.
식탁엔 아침에 나가서 사온 우유 한 병과 메모가 놓여 있다.
‘잘 자고 간다’ 픽 미소 짓는 춘희.
S#49. 회사 / 낮 F.I.
밝고 경쾌한 걸음으로 회사에 들어오는 중도.
중도, 이마에 밴드는 붙였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미소를 짓고 먼저 손인사하는 둥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다.
S#50.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콧노래까지 흥얼대는 중도.
종철 뭐야... (의아해 보다) 너 혹시...?
중도 (웃기만)
종철 (보다) 잤냐? 잤구나? 이 자식!
중도 (씩 웃는)
종철 잤어? 잤어? (반가운 마음에 중도 덥석 껴안고 뛰는)
주변 사람들, 이상하게 보고.
종철 어떻게 잤어? 제대로 자 본 건 6개월도 넘은 것 같은데.
중도 있다, 그런 방법이.
종철 뭔 방법?
휴대폰 진동.
중도 (받고) 네, 이사님.
S#51. 이사실 + 오페라극장(플래시백) / 낮
한이사, 돋보기 내려 쓴 채 서류에서 눈 떼지 않고 있다.
중도 (인사하는)
한이사 어젠 어떻게 된 건가?
중도 제가 잘 모셔다 드렸습니다.
한이사 언제?
중도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고, 밖에 나와 계셔서, 모셔다 드렸습니다.
한이사 (보고) 그래?
중도 네.
한이사 (부드럽게) 잘 했네. 가 봐.
중도 (인사하고 가려는데)
한이사 이과장.
중도 (보면)
한이사 그때 봤던 오페라가 <돈 카를로>였던가.
중도 (당황스런) 아, 네...
한이사 (보며) 그거, 무슨 내용이지? 아직 못 봐서.
중도 그냥.... 사랑이야깁니다. <아이다> 같은.
한이사 (보는) 아이다...?
# 오페라 극장 (플래시백)
작은 상자를 한이사에게 건네는 직원.
오페라홀 직원 티켓을 수령해 가시긴 했는데, 두 분 다 관람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선물은 못 전해드렸습니다.
# 오페라 극장 밖 / 밤 (플래시백)
쓸쓸하게 혼자 걸어 나오는 한이사. 난간 붙들고 기대선다.
# 현재, 이사실
중도 (반반한 얼굴로 서 있는)
한이사 (보고, 포커페이스로) 응... 그렇구만.
중도 (인사하고 나가는)
한이사, 책상 위에 있는 작은 상자 열면 목걸이가 나온다.
케이스 손으로 꽉 쥐는 한이사. 생각이 많아진다.
의자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한이사.
S#52. 춘희 꽃집 앞 / 낮
꽃집 밖에서 빙긋이 미소 짓고 서 있는 한이사.
춘희 (얼른 나가서 반갑게 맞는)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오셨어요.
한이사 보고 싶어서... 왔죠.
춘희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미소만)
S#53. 카페 / 낮
카페에 나란히 앉은 춘희와 한이사. 테이블 위엔 뜨거운 차가 놓여 있다.
연인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분명 정감 있는 분위기의 두 사람.
한이사 못 보던 머리핀이네요.
춘희 (흘러나온 머리 매만져 넘기며) 네... 머리가 거추장스러워서요.
# (상상)
자연스레 손 뻗어 춘희의 머리핀을 고쳐주는 한이사. 춘희, 편하게 미소 짓는다.
# (현실)
테이블 밑으로 손가락 꼼지락거리고만 있는 한이사.
한이사 지난번에 생일이었는데, 직접 챙기질 못해 미안해요.
춘희 별 말씀을요. 여러모로 신경 써주신 것만 해도 감사해요.
한이사 (잠시 주저하다 목걸이 내밀며) 거절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춘희 (뭔가 싶어 보는)
한이사 받아줘요. 그렇게 대단한 거 아니에요.
춘희 (상자 열어 보는, 진심으로 감탄해) 와... 정말 예뻐요.
한이사 (상자 가까이 밀어주며, 미소로) 해 봐요.
춘희 (목걸이 보다, 케이스 살짝 덮는)
한이사 (보면)
춘희 우리가 만약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면. 그때 받을 게요.
지금은 못 받아요.
마음을 받을 것도 아니면서, 이런 거 덥석 받으면, 도둑놈 심보죠.
한이사 (맘이 찢어지는데, 겉으론 미소 지으며 고개 끄덕이는)
<시간경과>
어스름 진 카페. 식은 찻잔.
카페에 아직도 홀로 앉아 있는 한 이사.
다 식은 커피엔 손도 대지 않았고, 그 옆엔 주인도 없이 목걸이 케이스 그대로 놓여 있다.
S#54. 춘희 집 앞 / 밤
집 앞을 얼쩡거리는 중도.
중도, 멀리서 춘희가 오는 게 보이자 춘히 발 앞에 장난스레 PT용 레이저를 쏜다.
춘희, 빨간 레이저 빛이 뭔가 보다가 시선을 옮기면 장난스러운 레이저 문양. 스마일.
중도를 발견하는 춘희.
중도 (레이저 끄고) 이제 와?
춘희 (보는)
중도 밥은... 밥은 먹었어?
춘희 (시계 보고) 10시 넘었는데. 넌 이때까지 굶니?
중도 (머쓱하고)
춘희 안 바쁜가보네. 매일 야근이라더니.
중도 바빠. 또 들어가 봐야 돼.
춘희 그래? 그럼 가. (빌라 안으로 들어가는)
중도 (머리핀 보고) 잘 어울린다.
춘희 (등 뒤로 픽 웃는)
중도 나중에 또 올게. 간다~ (뒤돌아 가는)
춘희 (슬쩍 나와서 중도 가는 쪽 지켜보는데)
중도 (뒤쪽에서 나와서, 춘희 뺨에 뽀뽀하고 도망가는)
춘희 (당황스럽지만, 못 말린다 싶은 표정으로 보는)
이 과정 지켜보는 누군가의 시선.
S#55. 차 안 / 밤
차안에서 작게 흘러나오는 오페라 아리아.
<돈 카를로> 중 ‘왕비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냉혹한 듯 슬픈 듯, 그들을 보는 한이사. 서서히 화면을 가득 채우는 한이사의 얼굴. 어둠.
S#56. 사무실 / 밤
불 꺼진 사무실에 혼자 남아 서류작업 하는 중도.
얼마 전 작업하던 인사이동 및 구조조정 수정안이다.
모니터에 찍히는 살생부 명단.
‘기획팀 이종수 부장 - 창원 지사 과장 / 영업팀 박창현 차장 해임
/ 인사과 강호준 과장 영업 1팀 대기 발령... 대기발령, 대기발령.’
중도 (이력서와 인사고과 실적보고서 등을 놓고 보며)
46세. 아내와 1남 2녀. 아직 고등학생이 둘이나 있는데...
영업실적 평가 하.
50세. 대학생 자녀가 둘. 2/4분기 프로젝트 평가 C+.
법인카드 사용내역...
(기막히고 안타까운 마음이고) 이러니까 대기발령이 나죠, 부장님.
(혼잣말처럼) 살아남으려면 꼬투리를 잡히지 말아야 됩니다.
냉정하게 이름을 적어나가는 모니터. 그러나 정리하는 손이 예전만큼 경쾌하진 않다.
중도가 든 서류 중에 종철과 조대리 윤대리의 사진이 붙은 자료들이 있다.
서류 무겁게 들여다보는 중도.
중도 어이구, 이 무능한 화상들...
S#57. 이사실 / 밤
불 꺼진 방에 조심스레 들어와 서류를 놓는 중도.
중도, 그냥 나갈까 하다, 조심스레 의자에 앉아 본다.
의자 등에 기대 목을 늘여도 보고 권력의 자리 만끽하는 중도.
슬쩍 책상에 다리까지 걸쳐 본다.
이어폰 낀 채로, mp3 음악을 바꾸는 중도. 오페라 대신 힙합 바운스가 쿵쿵 나온다.
흥겨운 힙합 바운스가 쿵쿵 심장을 울리고, 고개도 까딱 까딱 한결 편안해지는 표정의 중도.
갑자기 불이 환하게 켜지는 이사실.
중도, 눈앞에 한정훈 이사가 서 있는 걸 본다.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서는 중도. 동시에 이어폰 빼고, 음악도 뚝 멈춘다.
중도 이, 이사님!
중도 보고 선 한 이사. 약간의 분노마저 담긴 눈빛.
뭘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중도.
S#58. 옥상 / 밤
도시가 한 눈에 보이는 빌딩 옥상에 서 있는 중도와 한이사.
한이사, 야경 감상하듯 난간 근처에서 바라보고 있다.
중도, 저지른 일이 있어 바늘방석이다.
중도 이사님... 맹세코 전엔 그런 적 없습니다. 처음입니다. 죄송합니다.
한이사 뭐가?
중도 (?)
한이사 뭐가 그렇게 죄송해?
중도 저, 그게...
한이사 (품속에서 소주병 꺼내 돌려 딴다)
내 자리에 잠깐 앉은 게 그렇게 죄송하단 거냐?
중도 죄송합니다.
한이사 그건 그렇게 죄송한 일도 아니야.
(소주 한 모금 마시고) 난 사장 의자에 안 앉아 본 줄 아냐?
중도 (보는)
한이사 사람이면 욕심 있는 게 당연하지. 욕심이 없으면 살아있는 게 아니지.
중도 (고개 숙이는) 죄송합니다.
한이사 내가 잠가놓는 서랍에 뭐가 있나, 밖에서 되게 궁금해 하는 모양인데.
대단한 기밀이라도 들어 있는 줄 알지만. 고작 이거 한 병이야.
뭐, 소주병 밑에 중요한 거 몇 개 들어 있긴 하지.
중도 (보는)
한이사 (약간 취기로) 중도야, 소주 한 병 숨기기도 쉽지가 않은데,
사람 마음 숨기기가 얼마나 어렵냐. (중도에게 건네는) 그치?
중도 (받아 들고 보기만)
한이사 마셔.
중도 (마시는)
한이사 (다시 가져와 마시는) 너라고 욕심이 없겠냐. 욕심나겠지.
나도 욕심이 나. (술병 건네는)
중도 (마시고, 한이사의 배려 깊은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잘 하겠습니다.
한이사 인사이동 리스트 작성은 끝났고?
중도 네.
한이사 (끄덕끄덕)
중도의 젊고 생기 있는 모습을 질투 어린 시선으로 하나하나 뜯어보는 한이사.
한이사 (돌아서 다시 야경을 보는)
중도 (한이사 시선 따라 야경 본다) F.O.
S#59. 춘희 꽃집 / 아침 F. I.
아침 햇살이 뽀얗게 드는 꽃집.
능숙한 솜씨로 꽃을 다듬는 춘희. 환한 표정과 밝은 모습.
S#60. 회사 화장실 / 아침
중도, 화장실에서 차림새 매만지고 있다.
더 이상 빤지르르할 것도 없는 수트 차림에, 한이사와 바꾼 타이까지 맨 완벽한 차림. 경쾌하다.
S#61. 이사실 / 아침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한이사.
밤새 뭔가 정리라도 한 듯 초연함 서려 있다.
한이사 (비서 내선 콜) 인사과 연결해줘.
비서(E) 이중도 과장 연결할까요?
한이사 아니... 조과장 오라고 해요. 내가 뭘 시킨 게 있어.
S#62. 사내 게시판 앞
멍하니 게시판을 보고 있는 종철.
그 옆으로 ‘가만히 안 두겠다’며 흥분하고 있는 조대리.
그런 조대리를 막고 있는 윤대리와 김대리.
사람들 모여 수군거리는 위로 멍한 표정으로 게시판 응시하고 있는 종철.
몰려든 사람들에 어깨가 밀쳐져도 추스를 생각도 못 하고.
‘김종철 대리 - 총무부 대기 발령’ ‘조영석 대리 - 여수 지사 발령’
눈앞이 아득한 종철. 위로도 못하고 보고 선 윤대리, 조대리.
중도, 사람들 모여 있는 게시판 앞으로 가서 본다.
자기가 했던 것과 다른 인사이동이 고지돼 있는 걸 본 중도.
중도가 작성한 리스트의 두 배에 가까운 명단. 얼굴이 질리는 중도.
중도 뭐가 이렇게 많아. 이건 아니야...
종철 (멍한)
중도 (기막혀 서 있는데)
조대리 (중도 멱살 잡는) 왜, 나냐? 왜 내가 왜 지방 발령이야?
나 열심히 했어. 이제 융자 빌려서 전셋집 하나 얻었는데...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심하게 했냐? 내가 잘 못한 게 뭐냐? 대체?
중도 아니야... 난, 아니야.
윤대리 적어도 미리 얘긴 해줄 수 있었잖아.
종철이 대기발령 났어. 어떻게 종철이한테까지 말 한마딜 안 해.
중도 뭔가... 잘못됐어.
조대리 이 치사한 새끼... 나쁜 새끼! (중도 멱살 쥐고 흔드는)
중도 (멍한)
S#63. 사무실 / 낮
벌써 자기 짐 싸고 있는 종철. 중도, 종철 막으며, 짐 싸던 것 풀어 던진다.
중도 하지 마. 아직 안 끝났어.
종철 (보는)
중도 내가 해결할게. 그러니까, 기다려.
종철 (보다 웃고) 일개 대리 인사가, 뒤집히는 거 봤어?
중도 (단호하게) 아냐. 가만히 있어봐. 방법이 있을 거야.
급하게 나가는 중도.
S#64. 이사실 / 낮
한이사실로 직행하는 중도.
비서들 말려보지만 한이사 방으로 들어간다.
중도, 이사실 안에 이사와 뭔가 논의하고 있던 조과장 본다.
한이사 (비서들에게 나가라고 손짓하는)
비서들 (나가는)
한이사 무슨 일이야?
중도 (조과장 보면)
한이사 나가 봐.
조과장 (나가는)
중도 이번 인사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제가 정리한 거랑 내용이 다릅니까.
한이사 그 사이 변동 사항들이 좀 있었어.
중도 제 친구가 둘이나 좌천 발령을 받았습니다.
한이사 그래서?
중도 왜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겁니까.
한이사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인사고과 준 부장이나 과장한테 물으라고 해.
중도 아니요... 이사님, 개인감정이 포함된 것 같은데요.
한이사 그래?
중도 (보다) 저 때문입니까. 그 일 때문입니까?
한이사 (보는)
중도 ...춘희 때문입니까.
한이사 그만 나가지.
중도 어떻게 개인감정으로 한 사람 인생을,
한 가정을 바닥으로 처박을 수가 있습니까?
한이사 지난번 인사이동은 이번보다 가혹했는데...
그땐 군소리 한 마디 없다가
이번 인사 이동이 갑자기 문제가 되는 이유가 뭘까.
그 때는 몰랐던 남의 인생, 남의 가정이 왜 지금은 중요해졌나?
중도 (보다, 독해지는) ...춘희하고 저, 원래 아는 사입니다.
한이사 (알지만, 저릿하게 보는)
중도 대학교 때 만나서 5년 정도 사귀었습니다. 제 첫사랑이고요.
결혼을 생각할 만큼 깊은 사이었는데, 제가 좀 어렸습니다, 그땐.
한이사 (펜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중도 근데 이사님 덕분에 다시 만났고, 다시 잘 될 것 같습니다.
한이사 (노려보는)
중도 (체념한 듯) 전, 지난 번 이사님 말씀이
저를 감싸 안으시겠다는 말씀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단 말씀이셨네요.
저도 욕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디 끝까지 한번 해보시죠. 남자 대 남자로. (나가는)
한이사 (보는)
S#65. 춘희 꽃집이 보이는 차 안 / 낮
춘희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는 중도.
중도, 춘희가 꽃집에서 웃으면 자기도 따라서 빙긋 웃기도 한다.
그러나 곧 뭔가 독한 표정으로 변하는 중도.
중도 (전화 거는) 이중돕니다.
S#66. 사장실 / 낮
한이사에게 차를 따라주는 사장(남, 60대).
다도로 차를 받는 한이사.
사장 이번에 온 차는 지난 번 것보단 향이 못 해요.
똑같은 밭에서 똑같은 이슬 먹고 나는 건데,
왜 그렇게 매년 조금씩은 다른지 몰라요.
그쪽에선 내 미각이 유별나서 그렇다고는 합니다만.
한이사 (음미하는)
사장 내가 홍미희를 이사 자리에 박아 놔서
한이사님이 뿔났단 얘기가 들리던데.
한이사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사장 어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겠습니까.
지금 제깟 녀석이 벌여놓은 신규 프로젝트가 반응이 좋아서
신이 난 모양인데,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 잘 아시잖아요.
한이사 네. 잘 하고 계신 걸로 저도 듣고 있습니다.
사장 그래서 심기가 언짢으셨던 건가. 이번 인사이동 말입니다.
좀 무리수를 두셨던 모양입니다.
한이사 무슨 말씀이신지.
사장 젊은 사원들 주축으로
이번 인사가 부당하다는 말들이 도는 모양이에요.
인사라는 게 원래 말이 나오는 겁니다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을 조심해야 돼요.
멀쩡한 뱃속에 애도 죽인다는 게 말 아닙니까.
한이사 네. 주의하겠습니다.
사장 재혼하실 생각은 전혀 없으신 건가요?
한이사 (보면)
사장 한이사님 같은 분이 오랫동안 혼자 계시면,
다른 쪽에선 쾌재를 부르게 돼 있습니다.
뭔가 안정감이 없어 보인 달까. 차기 사장으로도 거론되시는 분이
아직까지 반려자를 못 만나셔서야 되시겠어요?
제가 중매 설까요? 마침 딱 좋은 혼처를...
한이사 (그 속 뻔히 읽히고, 끊으며) 실은 교제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장 (조금 실망하는) 아, 그런 분이 계세요.
한이사 조만간 국수 대접하겠습니다.
사장 허허... 제 친척 조카가 많이 섭섭해 하겠네요.
한이사 (뭔가 결심하는 듯)
S#67. 홍미희 이사실
뭔가 너무 재밌다는 듯 올려다보는 홍이사. 보면, 그 앞에 굳은 얼굴로 서 있는 중도.
홍이사 이게 누구야. 한이사님 꼬맹이 아니신가?
중도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홍이사 드릴 말씀?
중도 전에... 절더러 짐 싸서 들어오라고 하셨는데 아직도 유효한가요?
홍이사 (보는)
중도 아직 유효하다면, 이사님 밑으로 들어오겠습니다...
홍이사 (흐흐흐 웃고) 재밌네. 내가 그런 말을 던졌을 땐,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였는데.
어쩌다가 부자지간이 그렇게 틀어졌을까.
중도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것뿐입니다.
저를 받아 주실 수 있는지, 없는지.
홍이사 그래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뭘까?
중도 한정훈 이사는
홍이사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호구가 될 겁니다.
홍이사 (재밌다는 듯 웃다) 이번엔 나한테 시간을 좀 줘야겠는데.
나한테도 좀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중도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인사하고 일어서는)
나가는 중도 재밌다는 듯 보는 홍이사.
S#68. 사무실 / 낮
종철 책상 앞으로 다가가는 중도.
책상 위에 정리 박스 두어 개 놓여 있고, 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종철.
중도,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무 말도 생각이 안 난다. 기척에 올려다보는 종철.
중도 술 한 잔 할래?
종철 (웃음기로) 나 되게 바빠.
중도 (?)
종철 나, 오늘부터 대리해. 대리운전이라도 해야지.
김대리 진짜 대리 됐다, 야. (웃는)
중도 기다리랬잖아.
종철 대기 발령이 뭔지 너도 알잖아.
이러다 제풀에 치쳐서 떨어지게 만드는 거.
해고 통지 돌려 말하는 게 대기 발령이야.
중도 (먹먹해 보는)
종철 근데 나같이 물러터진 놈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냐.
중도 (무슨 말 해야 할지 모르겠고) 미, 미안하다. 근데, 근데...
종철 설마 나까지 모를까봐 그러냐.
중도 (보면)
종철 너, 아닌 거 알아 인마.
일이 이렇게 되는 줄 알았음, 얘기라도 했겠지.
너도 모르는 독한 일들이 꼬여 있으니까, 이렇게 된 거야. 그렇지?
중도 (눈물 나올 것 같은데)
S#69. 선술집 / 밤
왁자지껄하게 회사원들 떠드는 술집. 중도, 친구도 없이 혼자서 술 먹고 있다.
모든 너무 미안하고 참아내기가 힘들다. 술이 물처럼 싱거운 중도.
아무리 먹어도 정신이 말짱하다.
S#70. 춘희 집 문 앞 / 밤
춘희 빌라 문 앞에 서 있는 중도.
춘희, 영문 몰라 보는데
지친 표정으로 희미하게 웃는 중도. 말없이 고개 숙이는 중도.
그런 중도 보는 춘희.
S#71. 춘희 집 / 낮
침대에 누워 있는 중도.
춘희, 그 옆에서 중도 바라보고 있다. 아이처럼 잠들어 있는 중도.
춘희, 보다가 손가락으로 가만히 중도 눈썹 만져 본다. 살짝 미소 짓는 춘희.
서서히 밝아 오는 춘희의 침실.
춘희 침대에서 눈 뜨는 중도. 춘희는 없다. 어린아이처럼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중도.
벽에 가지런히 정돈돼 걸려 있는 중도의 양복과 셔츠. 기분 좋아지는 중도.
# 욕실
개운하게 세수를 하는 중도. 욕실 칫솔걸이에 핑크색 칫솔이 하나 매달려 있다.
중도, 망설임 없이 그 칫솔에 치약 묻혀 이 닦는다.
세면대 아래 있는 장에서 능숙하게 새 수건 꺼내는 중도. 변한 게 없다.
수건 들고, 미소 짓는 중도. 그 수건으로 얼굴 닦고 젖은 머리도 말린다.
# 식탁
해장국과 밥이 차려진 식탁. 그 옆에 춘희가 남긴 메모 있다.
‘먹고 속 풀어. 4시까지는 집 비워줬음 해. 부탁할게.’
메모 보고 미소 짓는 중도.
S#72. 한이사 차 안, 꽃집 앞 / 저녁
꽃집 근처. 차 안에서 춘희 모습 지켜보는 한이사.
한이사, 춘희가 꽃집에서 웃으면 자기도 따라서 빙긋 웃기도 한다.
# 꽃 손질하고 있는 춘희.
이상해 밖 내다보다 나오는 춘희. 보면, 꽃집 앞 턱 바닥에 앉아있는 한이사.
놀라 보는 춘희.
한이사 (앉은 채로 꽃 건네며) 건너편 꽃집에서 샀어요.
춘희 (받는)
한이사 데이트합시다, 우리.
춘희 (보는)
S#73. 춘희 집 근처 공원 / 저녁
나란히 걷는 한이사와 춘희.
춘희, 아까 한이사가 준 꽃 들고 있다.
춘희 꽃집에 꽃을 사들고 와요?
한이사 중국집 딸이 자기네 집 짬뽕만 먹으란 법 있나요.
춘희 (픽 웃어버리는)
한이사 난 왜 이렇게 늙었는지 모르겠어요.
춘희 늙지 않으셨어요.
한이사 아니에요. 세상에서 제일 늙고 못생긴 인간이 나에요.
춘희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한이사 (용기내서 춘희의 손을 드디어 잡는다)
춘희 (보는)
한이사 이 길이 너무 멀었어요. 북극에서 남극만큼.
춘희 (잡은 손 보는)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한이사 알아요, 알아요...
그냥 조금만 이대로 더 가요. 저기까지만. 집 앞까지만.
춘희 (가만히 따라 가는)
S#74. 춘희 집, 홍미희 이사실 / 밤
옷 거의 차려 입은 중도, 그런데 넥타이가 없다.
전화 진동 소리. 액정에 ‘홍미희 이사실’이라고 뜬다.
중도 (받는) 네, 이사님.
홍이사(F) 좋아요, 그 제안, 받아들일게요.
중도 (미소 짓는)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김종철 대리 복직하고 조대리 복직은...
# 홍미희 이사실
홍이사 그건 걱정 말고. 언제까지 올 수 있겠어요?
# 춘희 집
중도 1시간 내로 갈 수 있습니다.
홍이사(F) 이렇게 하지. 회사로 오는 건 좀 그렇고.
우리 쪽에서 장소를 정해서 연락을 줄 테니까, 전화 기다려요.
전화 끊는, 중도. 전화기 꽉 쥐어본다.
S#75. 춘희 집 앞 / 밤
춘희 집 앞까지 손잡고 걸어온 한이사와 춘희.
춘희, 무안하지 않게 살짝 손을 뺀다.
춘희 이사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한이사 (무슨 말인지 짐작이 되는데) 나 차 한 잔 안 줄래요?
춘희 (보면)
한이사 그냥 춘희 씨가 끓여주는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싶어요.
춘희 (난처한데)
한이사 나 아무것도 안 할 게요. 그냥 차 한 잔이요.
춘희 (망설이는데)
S#76. 춘희 집 / 밤
양말 신는 중도. 오늘따라 양말 신는 데도 손이 더디다.
S#77. 춘희 집 밖 / 밤
나란히 걸어 올라와 문 앞에 서는 두 사람.
S#78. 춘희 집 / 밤
밖의 상황도 모르고 거울에 얼굴 비쳐보고 빗질까지 하는 중도.
S#79. 춘희 집 / 밤
# 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
# 돌아보는 중도.
# 집 안으로 들어오는 한이사와 춘희.
# 잘 정돈된 집 안엔 아무도 없다.
S#80. 주방
# 찻물을 끓이는 춘희.
# 한이사, 거실을 둘러보며 춘희의 공간을 둘러본다. 정말 따뜻하다.
춘희 국화차 좋으세요?
한이사 그래요. 난 다 좋아요.
오디오에 눈을 돌리는 한이사.
CD 진열대에 제법 많은 장수의 CD가 있다.
한이사 CD가 많네요?
춘희 (주방에서) 다 흘러간 유행가에요. 전 세련되질 못해서.
한이사 (CD 한 장을 꺼내 오디오에 넣는)
잔잔한 팝송이 흘러나오는 오디오.
# 춘희, 찻잔 꺼내 준비한다. 잔마다 국화꽃을 예쁘게 띄운다.
# 한이사, CD들 손가락으로 짚으며 보고 있는데, 오디오 장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는 타이.
익숙한 느낌으로 바라보는 한이사.
# 테이블 세팅하는 춘희.
춘희 (미소로) 차 드세요.
# 거실
한이사 (덤덤하게) 욕실 좀 쓸게요.
춘희 네.
# 춘희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미소로 알았다고 답하는 한이사.
S#81. 욕실
들어와 거울 보는 한이사.
그 옆, 욕실 커튼 뒤, 양말도 다 신지 못하고 급하게 몸을 숨긴 중도가 있다.
숨도 못 쉬고 죽을 듯한 긴장으로 있는 중도.
홍이사의 전화가 올까봐 재빨리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꾼다.
한이사,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손에 든 것 들어 확인한다.
넥타이. 중도와 전에 바꿔 맸던 바로 그 타이다.
한이사(E) 근데 너, 그런 타이는 어디서 사니?
(플래시백) S#1. 차 안.
룸 미러 안에서 웃으며 타이 푸는 중도. 웃으며, 자기 타이 푸는 한이사.
서로 보며 웃는, 정다운 부자 같은 두 사람.
(현재)
중도도 그 넥타이 봤고. 긴장감으로 타들어갈 것 같은 중도.
저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눈을 감아버리는 한이사.
넥타이 쥔 채로 얼굴을 감싸는 한이사.
눈 질끈 감는 중도.
그러나 이내 애처럼 꺽꺽 울기 시작하는 중년 남자의 숨죽인 울음소리.
그 소리에 눈 뜨는 중도.
한이사, 가슴을 쥐어뜯으며 소리죽여 운다. 너무 아파서 신음이 터져 나오는 울음 우는 한이사.
고통스러운 상사의 울부짖음을 고스란히 듣는 중도. 긴장은 이내 연민이 된다.
춘희(E) 차 다 식겠어요, 이사님.
한이사, 너무 아파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도.
한이사 그래요... 잠시만요.
대답한다. 한이사의 고통과 사랑을 고스란히 느끼는 중도.
샤워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남자.
S#82. 식탁
예쁜 국화차 두 잔을 식탁에 놓는 춘희.
차 위에 떠 있는 국화 예쁘다.
보고 미소 짓는 춘희의 얼굴.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