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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멋 그리고 성지순례] 강화도(상) - 갑곶돈대순교성지
구한말 신앙선조 피흘린 '순교의 섬'
강화도는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구한말 서구열강에 맞선 항쟁 유적까지 한반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 창고'다. 코끝을 휘감아 도는 짭쪼름한 갯내음과 갯마을 풍경도 도시 먼지에 막힌 숨통을 확 트여준다.
어디 그뿐인가. 바다와 갯벌은 철따라 다양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요즘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왕새우가 제철이다.
또한 신앙인에게는 구한말 신앙 선조들이 피흘린 '순교의 섬'이다.
서울 도심에서 1시간30분 정도 달리면 강화도 초입인 강화대교에 닿는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갑곶 순교성지가 나온다. 갑곶(甲串)은 조선시대 수군 진영이 있던 자리로 구한말 신앙 선조들이 이곳에 잡혀와 순교의 피를 흘렸다.
성지에 들어서면 젊은이들 사이에서 '빠다킹 신부'로 통하는 조명연 신부가 반갑게 맞아준다.
조 신부는 오래전부터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목소리가 느끼할 정도로 상냥해서 '빠다킹'이란 애칭이 붙었다. 그런데 조 신부는 미사시간을 빼고는 늘 작업복 차림이다. 혼자서 2년 가까이 성지를 가꾸느라 막노동꾼이 다 됐다.
조 신부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휙 둘러본 뒤 기념품 사갖고 빠져나가는 성지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성지는 심신이 지친 이들이 위로를 얻고, 가정이든 직장이든 자신의 자리를 성지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갑곶에는 대형 십자가와 순교자 3위 기념비, 그리고 십자가의 길 14처 외에 특별히 눈길을 끄는 조형물은 없다. 맛에 비유하면 조미료를 넣지 않은 담백한 맛이 나는 성지다.
잔디밭 한쪽에 있는 대형 십자가 아래서 기도한 뒤 벚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성지지기' 조 신부와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다. 강화대교가 건너다 보이는 벤치 분위기가 참 아늑하다. 벚꽃 피는 봄이면 운치가 더할 것 같다.
이곳 기념비의 주인공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때 순교한 우윤집ㆍ최순복ㆍ박상손이다.
당시 미국 함대는 5년 전 평양에서 조선인들이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운 책임을 물으면서 조선 정부에 통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병인년(1866년)에 천주교 박해의 칼을 한차례 휘두른 흥선대원군은 이를 거부하고 전국에 척화비를 세워가면서 교인들을 잡아들였다.
미국 함대가 강화도에서 물러나자 대원군의 아들 고종은 천주교인들을 더욱 철저히 색출해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바람에 미국 함대에 승선한 적이 있는 3명이 가장 먼저 붙잡혀 이곳에서 처형됐다. 좌영장(左營將) 홍재신은 백성들에게 천주교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 주기 위해 그들 목을 나루터 말뚝에 매달았다.(「승정원 일기」 고종 8년 6월1일 기록)
그러나 목이 베인 교인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상 3명 이름 뒤에 '등(等)'자가 붙어 있다. 또 「좌우포청등록」에는 문초를 받은 자가 40여명, 그 중 효수형 9명ㆍ참수형 3명ㆍ교수형 1명으로 기록돼 있다. 나머지 30여명에 대한 형벌기록이 없다. 당시 천주교인 처벌은 선참후계(先斬後啓, 먼저 목을 베고 나중에 아뢰는 것)가 흔했기 때문에 재판 형식을 제대로 거쳤을 리가 없다.
갑곶이라는 지명 유래가 흥미롭다. '곶(串)'은 지명 밑에 붙어 바다나 호수에 뾰족하게 내민 땅을 뜻하는데 갑곶은 몽골 장수가 강화도 공략 당시 폭이 좁은 강을 가리키면서 "우리 갑옷만 쌓아도 건널 수 있다"고 한데서 유래한다는 구전이 있다. 하지만 물살이 세서 강 건너 병영을 무너뜨리지 못했다고 한다.
성지에서 매일 오전 11시에 미사가 봉헌된다(화요일은 미사 없음).
성지 옆에 강화역사관이 있다. 제4전시실에는 구한말 서양 세력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항쟁역사 유물도 전시돼 있다. 자녀를 데리고 가면 '순교'와 '호국'의 충돌에 대한 설명을 따로 해줘야 할 것 같다.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
갑곶 순교성지에 묘가 한 기 있다.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베드로, 1830~1911) 묘다. 만일 그가 없었더라면 박해사의 상당 부분이 유실됐을 것이다.
그의 부친 박 바오로는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등의 시신을 수습해 노고산에 안장했다. 부친은 몇년 뒤 시신을 선산인 삼성산으로 이장하고 아들 박순집에게 "후일 성교회에서 성직자 무덤을 찾을 터이니 네가 잘 보아 두었다가 알려 드려야 한다"고 일렀다. 박순집은 1901년 삼성산 순교자 시신 발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서울 남문 밖 전생서(현 용산구 후암동)에 살던 그는 17살(1846년)때 김대건 신부가 서소문과 당고개를 거쳐 새남터로 끌려가는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훈련도감 군인이 된 그는 또 병인박해 때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 푸르티에 신부 등이 새남터에서 순교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후 몇몇 신자들과 새남터 순교자들뿐만 아니라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남종삼과 최형의 시신도 수습해 매장했다. 박해의 광풍이 멈추자 그는 프랑스 선교사를 입국시키는 데도 관여했다.
1888년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가 조선 순교자 행적을 조사할 때 그는 교회 법정에서 자신이 목격하고 들은 것, 시신을 묻은 곳 등을 상세히 진술했다. 그가 행적을 밝혀낸 순교자는 150명. 그의 증언록(병인사적 박순집 증언록)은 절두산 순교자기념관에 있다.
그의 딸은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에 입회한 한국인 최초의 수녀 5명 가운데 한 명인 박황월 수녀다.
그는 말년에 인천으로 이사해 전교활동에 힘쓰다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며 선종했다.
<갑곶돈대순교성지 가는 길 >
▶서울외곽 순환 고속도로= 김포 나들목(김포IC)에서 김포/강화 방면으로 나와 48번 국도 강화쪽으로 직진하면 김포시청-마송-강화대교-갑곶돈대순교성지까지 40분~1시간 정도 걸린다.
▶88 올림픽 도로= 88도로 끝에서 김포/강화 가는 길을 따라 좌회전 한 후에 첫번째 분기점에서 우회전해 제방도로를 따라 가거나(두번째 분기점은 매립지 도로임), 세번째 분기점에서 48번 국도로 바꿔 타고 계속 직진하면 강화대교-갑곶돈대순교성지에 도착(40~50분 정도 소요).
▶대중교통= 강화도행 시외버스를 타고가다 강화대교 건너 현대아파트 앞에서 내려 강화역사관 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성지안내표지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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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1. 강화대교가 한 눈에 들어오는 갑곶 순교성지. 맨앞 바윗돌은 부근에 몇개 있던 돌인데 동네 노인들이 '목친 돌', '비오면 빨개지는 돌'이라고 하길래 조명연 신부가 올려 놓았다.
2. 강화역사관 구내에 있는 갑곶돈대(사적 306호) 성벽과 총포류. 갑곶돈대는 고려시대부터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으며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이곳으로 쳐들어왔다.
841호
발행일 : 2005-10-09
[맛과 멋 그리고 성지순례] 강화도 (하)-진무영순교성지,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
현양동산에 '한국교회 성지 축소판' 조성
강화읍내에서 병인박해 순교지로 알려진 관청리 형방터를 찾느라 헤맸다.
그러나 형방터는 나타나지 않고 조선시대 이달(李達)의 한시 '경폐사(經廢寺)' 시구만 머리에 맴돈다.
"옛적 우물 낙엽으로 메워졌고(古井塡秋葉)/ 그늘진 뜰에는 저녁새 내려앉네(陰庭下夕禽)…."
동네 어르신들에게 물어 형방터라는 곳을 겨우 찾았다. 그러나 흔적도 없다. 그 터에 들어선 민가도 지은 지 오래돼서 쓰러질 지경이다.
은행나무 그늘에서 고추를 다듬는 할머니들한테 귀동냥을 했다.
"여기가 죄인들 붙들어다 죽인 포도청이란 얘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데 일제 때는 기생집이었어. 기생들 꿈에 머리 풀어헤친 사람들이 자꾸 나타나 잠을 못잤다는구먼."
노인네들이 말하는 형방터는 강화성당(주임 김현태 신부) 바로 뒤에 있다. 그러나 최인서ㆍ장치선ㆍ박서방ㆍ조서방 등 4명이 참수 순교한 곳은 이 부근 어디 쯤이었을 진무영(鎭撫營)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일성록(日省錄, 1868년 5월22일자)에 "사학죄인 장치선, 최영준(일명 인서)이 진무영으로 압송되어 효수(梟首, 목을 베어 매달아 둠)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진무영은 조선 후기 해상방어를 위해 설치한 군영(軍營)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성지연구가 한종오(베드로)씨가 10여년 전 문헌과 구전을 통해 성당 부근 농협 자리를 진무영 터로 지목한 바 있다.
다행히 강화성당 구내에 이들 4명의 순교를 기념하는 현판이 세워져 있다.
김현태 신부는 "지난해부터 성지를 개발하기 시작해 아직 미흡하다"며 "문헌 연구와 고증 작업을 하면 진무영은 인천교구에서 가장 큰 순교성지로 떠오를 것"이라고 장담한다.
'좌우포청등록'과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 등에 따르면 장치선은 제천 배론 신학교 집주인이던 장주기(요셉) 성인의 조카다. 그리고 최인서는 서울 아현(애오개) 회장이다.
이들은 병인박해로 성직자 12명 중 9명이 처형당하자 생존자 리델 신부를 중국 천진으로 탈출시킨 데 이어 상해에서 프랑스 신부들과 접촉했다. 리델 신부는 박해 참상을 프랑스 공사에게 알려 로즈 제독의 강화도 출병(병인양요)을 촉발한 장본인이다.
흥선대원군이 생각한 대로 천주교인들이 정말 서양배를 불러들여 국가를 위태롭게 하려 했던 것일까.
그 답은 장치선이 중국에 다녀온 직후 재동에 사는 조주서와 나눈 대화록에 있다.
"서양배가 나라를 침범할 생각은 없나요?"(조주서)
"성교의 본뜻은 다른 사람의 나라를 빼앗는 법이 없고, 만일 성교가 널리 퍼지면 풍속 중 괴상한 것은 혹 바꿔지고 고쳐지는 법은 있소."(장치선)
강화성당 바로 위에 고령궁지(사적 제133호)가 있다.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고종 19년(1232년)에 도읍을 강화로 옮기면서 개성 궁궐 모양을 본떠 지은 것인데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소실된 외규장각과 장년전이 바로 이 안에 있었다. 순례길에 꼭 한번 들러볼 만한 사적지다.
발걸음을 '한국교회 성지 축소판'인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책임 김종성 신부)으로 돌렸다.
바다의 별 청소년수련원(내가면 고천리)에 있는 이 현양동산은 한국교회 무명 순교자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것인데 볼거리가 참 많다.
동산으로 올라가면서 순교자의 길, 호야나무(해미성지), 물고기 모양 제대돌, 묵주연못, 무덤(다락골 줄무덤), 옹기, 토굴(황사영 백서), 순교자 현양당, 성모당, 무명 순교자 현양탑 등 순교자 관련 조형물을 볼 수 있다.
동산이 넓고 조용한 데다 경치가 빼어나 휴식장소로도 제격이다. 김종성 신부가 4년 동안 포크레인을 직접 조작해가면서 하나하나 완성한 땀의 결정체다.
김 신부는 현양동산을 '삶의 성지'라고 말한다.
"순교성지는 아니다. 엄숙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찾아와 기도하고 쉬어갈 수 있는 삶의 성지를 만들고 싶다. 근심걱정을 다 내려놓고 오르다보면 무명 순교자들의 위로와 격려를 느낄 것이다. 그들은 신앙 불모지를 복음의 밭으로 일구느라 목숨까지 바치지 않았는가."
김 신부는 볼거리 많은 탁트인 분위기에 대해 "관광명소가 아니라 기도명소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맛집/ 외포리 '서울 횟집'>>
강화도 외포리는 웬만큼 알려진 명소다.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들 단골집인 서울횟집(대표 조승상)은 석모도행 배를 타는 외포리 선착장 부근에 있다.
서울횟집의 자랑거리는 섬 어부들이 잡아 공급하는 싱싱한 활어회와 빼어난 전망이다.
봄철에는 서해 특산물 밴댕이회, 가을철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왕새우 소금구이가 유명하다. 담백한 맛이 일품인 왕새우 소금구이는 요즘이 제철인데 4인 가족 기준 3만5000원이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물때를 잘 맞춰 가면 자연산 농어, 우럭, 숭어를 맛볼 수 있다.
2층은 선착장 부근 식당들 가운데 전망이 가장 좋다. 창가에 앉으면 마니산과 석모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또 석모도를 오가는 배와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갈매기떼 풍경도 볼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바로 옆 망향돈대에 올라가 감상하는 저녁노을은 한 폭의 그림이다.
조승상(요한, 50)ㆍ조경숙(마리아, 45) 주인내외 인심도 후하다. 강화도 토박이 남편 조씨는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강화도령'이다. 부인은 남편 조씨를 "수도원에서 수사로 살면 딱 좋을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당과 주차장이 넓다. 단체 손님들은 식사 후 마당에서 족구경기를 하거나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문의: 032-933-6461.
김원철 기자
<<찾아가는 길>>
서울서 강화대교를 건너 직진하면 읍내 중간쯤 군청 부근에 강화성당(032-933-2282) 표지판이 보인다. 우회전해서 조금 올라가면 강화초등학교 맞은 편에 성당이 있다. 강화터미널에서 10분 거리.
바다의 별 청소년수련원에 있는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032-932-6318)은 강화성당에서 나와 서문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고비고개를 넘어야 한다. 강화성당에서 현양동산까지는 차로 20분 거리.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842호
발행일 : 200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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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1. 무명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 무명 순교자 현양탑은 인천가톨릭대 조광호 신부 작품이다.
2. 강화성당 구내에 있는 진무영 순교성지. 구한말 프랑스 선교사들을 보호하고, 종교자유를 얻기 위해 애쓴 장치선 등이 이 부근 어디선가 참수당했다.
3.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 성모당. 성모 마리아가 옷자락을 휘날리며 대문을 열고 나와 순례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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