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동서고속도로와 내린천휴게소
심 영 희
유월 마지막 날에 동서고속도로 동홍천 양양구간이 전면 개통되었다. 개통시간이
오후 여섯 시라 당일 그 길을 달려보기는 무리인 것 같다. 별로 해놓은 일 없이 벌써 올해도 상반기는
끝이 나고 드디어 오늘 하반기가 시작되었다.
하반기 첫날인 오늘은 토요일이다. 생각 같아서는 아침부터 서둘러 양양바다까지
가보고 오고 싶지만 열한 시부터 두 시간 복지관 수업이 있으니 선뜩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일단 복지관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나니 자꾸 마음이 요동친다.
춘천근교에 새로운 길이 개통되면 당일이나 그 다음날은 그 길을 달려보고 궁금증을 풀어야 하는 습관 때문일까 동홍천에서
양양까지 동서고속도로가 개통되면 곧바로 도로를 달려보려고 했으나 여건이 잘 맞지 않는다. 내일은 일요일이라
시간은 충분한데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되어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진다니 오늘 못 가면 다음주 토요일에나 시간이 될 것이니 좀 늦은 시간이지만
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오후 세 시 삼십 분 집을 나섰다. 춘천나들목부터 통행차량이 많아 나처럼
새로 개통된 도로를 달려보기 위해 가는가 보다 생각하니 차량 정체도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많은 차량들이 원주 홍천방향으로 직진하고 있다. 내차와 몇 대의 차량만 서울과 동홍천 방향으로
우회전 했다. 거기서도 절반가량은 서울 쪽으로 달리고 나머지는 동홍천 쪽으로 또다시 우회전 했다.
동홍천 양양구간이 터널 서른다섯 곳과 쉰세 곳의 교량으로 만들어졌다는 뉴스는 터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몇 번 다녀보았던 동산 1, 2터널을 지난 뒤 북방 1, 2터널을 지나 동홍천 부근인 화촌 1, 2, 3터널을 빠져나가니
홍천휴게소가 나왔다. 휴게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구경거리다.
큰 구조는 아니지만 새로 개장한 휴게소답게 모든 게 깨끗했다. 요즈음
내년 동계올림픽 덕분에 고속도로 화장실에 많은 변화가 왔다. 우선 화장실 칸마다 문 윗부분에 불을 달아
사용 중이면 불이 켜져 있고 사용하지 않을 땐 불이 꺼져있어 멀리서도 빈 칸을 쉽게 구분할 수 있어 좋다. 문
손잡이에 표시되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사용 유무를 확인하던 때보다 훨씬 편리하다.
또 더욱 위생적이고 미관상 좋아진 것은 화장실 칸마다 놓아졌던 휴지통을 치웠다는 점이다. 고속도로휴게소마다 놓인 휴지통에는 언제나 휴지가 넘쳐나 불결했고 여행객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손이 저절로
코와 입을 막았는데 휴지통이 사라진 휴게실 화장실은 한결 신선하고 청결해 보인다.
일명 김영란 법으로 꽃이 팔리지 않아 난을 키우던 농가에서는 꽃을 폐기해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는 것을 엊그제
뉴스에서 보았는데 뉴스와는 달리 수십 개의 대형 화환이 사람보다 먼저 방문객을 맞이 한다. 개업 당일
화분이 들어왔겠지만 상인의 양심에 따라 아직 싱싱한 꽃이 많은 반면 벌써 시들어 비틀어지는 화환도 있어 꽃가게 주인이 오래된 꽃을 꽂았거나 재활용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게소 편의점에서 음료 한 병을 사는데 앞에 서있던 손님이 음료 몇 가지를 사는데 계산대에서는 무슨 무슨 카드는
안 된다며 퇴짜를 놓은 뒤 세 번째 카드로 결제를 하는데 그 모습이 생소하다.
휴게소에서 출발해 고속도로로 들어서자마자 화촌 4, 5터널이 나오는데
짧은 터널길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것도 터널 축에 끼이는가 생각할 시간도 없이 5터널이 나오는데 5터널 역시 4터널보다는
조금 길지만 아주 짧은 길이의 터널이다. 6터널을 지나고 역시 길이가 짧은 7터널과 8터널을 통과해 화촌 9터널에
나오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길이가 꽤 길겠구나 생각하고 들어섰는데 이곳에서부터는 차량정체로
2~30km로 운행하며 가야했다. 유흥업소에 들어온 듯 아치형의 등에서 빨간 불이 번쩍
파란 불이 번쩍 노란 불이 번쩍하며 십여 개에 가까운 불이 길을 밝힌다. 조금 더 지나니 내가 좋아하는
무지개색깔의 불빛이 정말 무지개를 보듯 아치를 그리며 장관을 이루어 그야말로 터널 안이 환상적이다. 누구의
발상인지 참 잘한 것 같다.
내촌 1, 2터널을 지나 서석터널에 다다르자 홍천지역의 낯익은 이름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행치령터널에 들어서자 처음 보는 고개 이름이 홍천군에 속하는지 인제군에 속하는지 궁금증을
남겨놓고 새로운 고개 이름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는 마음에 반가웠다. 인제에 왔다는 실감을 할 수 있는
상남 1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상남터널 역시 6터널까지 있다.
나는 처음 접하는 행치령터널 이름을 잊어버릴까 봐 졸음쉼터로 들어가 행치령터널 이름을 메모지에 적었다. 졸음쉼터라고 졸음 오는 사람들만 들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으니 참 좋은 것 같다.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상남 6터널을 빠져 나오자 갈등이 생겼다. 내린천휴게소에서 되돌아갈까 내친김에 양양까지 갔다올까 고민을 하며 나도 몰래 내 차는 내린천휴게소 차선에 합류하고
있다. 어제 개통식을 했다는 휴게소가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데 자동차가 빼곡히 차있다. 그래서인지 자동차속도도 10km에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이십여
분이 지나 휴게소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생각보다 차량이 많지 않았다. 의외의 결과다.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층으로 올라가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깜짝 놀랐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이층에 올라가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주차장에 차도 많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사람들아 많을까 하며 2층 밖으로 나가보니 그쪽 주차장에 차량들이 빈틈없이 주차돼 있었다. 이레적으로 휴게소를 중앙에 두고 하행선 상행선이 함께 이용하는 휴게소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로 위 상공형으로 건축된 휴게소란다. 4층 야외 쉼터까지 구경할 곳이 참 많았다.
이층에 마련된 “사람, 숨길을
열다”라는 주제로 전시된 제1전시실로 들어갔다. 한눈에 고속도로 역사를 볼 수 있다. 연대별로 정리해 놓은 역사에는
1996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고속도로 건설계획수립을 시작으로 1969년 2월 한국도로공사를 창립했으며,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가 전구간 개통됐으며 1971년 1월 고속도로 제1호 휴게소를 개장했는데 경부고속도로에 있는 ‘추풍령휴게소’라고 한다. 추풍령휴게소에
많이 들렸었지만 제일 처음 개장한 휴게소라는 것은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고속도로 발전사를 읽어볼수록 공부할 것이 많아졌다. 1984년 6월에는 영남과 호남을 잇는 88올림픽도로를 개통했는데 이것도 지명을
사용하지 않은 첫 번째 고속도로라고 한다. 1988년 6월에는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개장에 이어 1994년 9월에는 버스전용차로제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단다.
20C에 들어와 2000년 6월
‘하이패스 시범운행’ 개시,
같은 해 11월에 ‘서해대교 ‘ 준공 2007년 12월에는
하이패스 전구간 개통에 이어 2011년 12월 ‘졸음쉼터’를 설치했고 2015년 12월 고속도로 4000km 시대에 와 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발전이고 짧은 시간대에 목적지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장점 중에 장점이다.
그런데 나는 길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고민이 생긴다. 자고 나면 늘어나는
도로와 아파트 건설로 논밭이 사라지고 산허리가 잘리고 이러다가 우리의 후세들은 농사지을 땅이 없어 무엇을 먹고 살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또 도로가 한곳 건설될 때마다 생업에 타격을 받는 마을이 생긴다. 이번
고속도로 개통으로 홍천과 인제 지역을 벗어난 외각지역으로 차량이 이동하니 지역경제는 손해를 볼 것이 뻔하다. 자동차가
다녀야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어야 장사가 될 것이 아닌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오늘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무엇을 느꼈는가 별로 감동받은 새로운 것이 없다. 전동차
대신 승용차를 탔을 뿐이지 경춘선 철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하늘이 보이는가 하면 금방 굴속으로 들어간다.
휴게소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둘러보고 발전한 우리나라에 또한 좋아진 도로사정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개운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동서고속도로에서 길이가 제일 긴터널로 무려 11km나 된다는 인제양양터널을
가보고 싶었지만 돌아올 시간을 생각해서 휴게소에서 춘천으로 되돌아오기로 마음 정하고 국토교통부가 2016년에
계획했다는 2020년 이후의 ‘국가도로종합’계획표까지 꼼꼼히 읽어보고 전시장을 나왔다.
휴게소 안은 성황을 이루고 있다. 저마다 음식을 시켜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좌담을 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도 2층까지는 작동이 되어
타고 올라 갔는데 3층 올라갈 때는 올라가는 쪽은 작동을 안 시켜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타고
내려오는데 그것도 이색적이다. 고장이 난 것이 아니라면 계단 오르기 운동에 좋은 것이니 불편한 일은
아니다. 또 많은 전력 낭비도 막을 수 있는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북적거리는 내리천휴게소를 나와 상행선 홍천휴게소에서 우동을 먹으려고 했는데 우동은 오늘 영업이 벌써 끝났다고 한다. 같은 홍천휴게소지만 내려가면서 들였던 휴게소만큼 자리가 잡히지 않아 아직은 엉성한 분위기다. 축하화환도 반대편 휴게소 절반도 안 된다. 내가 먹을 마땅한 음식이
없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한 뒤 집에 와서 글쓰기에 열중한다.
새로 만들어진 길이 언제나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듯 그 길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새 길을 보며 폐허가 되어간 마을과 상가와 주택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한다.
나 또한 유년의 추억이 서린 사십 년 역사의 고향집이 도로에 자리를 빼앗겨 친정이라는 또 고향집이라는 본거지가
없어진지 20여년이나 된 것이 늘 아쉽고 그립기에 더욱 그런 애처로운 마음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고향집이 그대로 있다면 손자손녀를 데리고 가서 할머니가 일곱 살 때부터 살았던 집이라고 구경을 시켜줄
텐데 정말 너무도 아쉽다.
어쨌던 동서고속도로 개통으로 수도권역 시민들이 양양지역을 많이 찾아와 영북지역과 영동지역의 경제발전에 큰 보탬이
되어준다면 강원도민으로 박수를 보낼 일이다.
내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니 장마가 끝나고 복지관 방학이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 11km에 달한다는 인제양양터널을 지나 양양까지 다녀올 계획을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