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8년, '디어헌터'로 천재감독의 수식어까지 받게 된 마이클 치미노는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영화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그에게 백지수표를 주며 그의 차기작에 대해 전권을 위임하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마이클 치미노는 이 시점에서 '위대한 과욕'을 부리게 되는데 이는 미국토착지주대 이민노동자의
살육전인 존슨카운티 전쟁을 영화화하는 '천국의 문'을 만드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의 정신적
근원이랄 수 있는서부신화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피와 살육으로부터 태어난 아메리카의 정체를
밝히려는 그의 의도는 확실히 기존 할리우드의 게임의 법칙과는 만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마이클 치미노는 처음부터 멀리 나아간 것이다. 1천 백만달러로 시작한 제작비는 그 당시로는
전례가 없는 3천5백만달러까지 치솟았고 제작기간은 무한정 늘어났다.
..................... 처음 편집본은 무려 5시간을 상회했다.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고. 3시간 반,
두시간 반으로 거듭 재편집한 영화들은 그나마도 일주일도 안되어 간판을 내려야 했다. 결국
영화는 최종 150만달러의 수익만을 거뒀으며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파산했고 단지
영화 한 편으로 영화사를 파산시킨 마이클 치미노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그 후부터 지금까지
헐리우드 제작자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

1870년, 하버드의 졸업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문명을 전파하려는 젊은이들의 숭고한 이상주의
로부터 시작하여 20년 후, 상대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계급투쟁의 자리로 이동해간다.
졸업식 장면은 무척 길게 이어지는데, 재미있는 것은 마이클 치미노의 독특한 정서이다. 그는
다른 감독이중요시하는 부분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으며 그와 반대로 다른 감독에게는 그다지
촬영거리도 아닌 것들에 대해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이런 점은 그의 출세작인 '디어 헌터'에서도 이미 싹을 보인 특징이다. 크리스토퍼 월큰의 결혼식
피로연장면이 미치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며 오히려 베트남전 장면은 그다지 공들인 흔적도 없고
리얼하지도 않다. 그간의 베트남전 영화와 마찬가지로 정보의 부족이 느껴질 정도이다.

가난한 이주민의 편에 서는 제임스와 여주인공 엘라. 제임스는 1870년 하버드 졸업생중의
한 사람이고엘라는 이주민중의 한 명으로 창녀이다. 손님에게 단호하게 화대를 요구하는
그녀는 제임스에게만은 돈을 받지 않는다. 영화의 끝까지 그녀가 유부남인 제임스를 사랑하는
건지, 총각 나단을 사랑하는 것인지모호하다. 영화가 끝날때까지 이 모호함은 영화전체를 감싼다.
말하자면 마이클 치미노 영화의 핵심은 이 '모호함'이다. 거의 모든 장면들은 마치 즉흥연기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처럼 생생한 날 것의 느낌이 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술을 먹고 촬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영화 속에서 심심치 않게 반가운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제임스), 이자벨
위페르 (엘라), 크리스토퍼 워큰(나단), 제프 브리지스, 존 허트(빌리), 톰 누난, 테리 오퀸
('로스트'의 그사람) 심지어 미키 루크까지.
이윽고 충돌의 순간이 온다.(몰론 2시간 30분이 넘은 시점이다) 고용된 50인의 총잡이들과
이주민들과의장렬한 최후의 전투가 벌어진다. 여기서 마이클 치미노는 자욱히 날리는 흙먼지를
그대로 두고(!) 촬영하는너무도 모호한 결정을 내린다. 그것언 리얼리즘의 소산인지, 단지
귀찮아서인지 알 수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70년대라는 시간만이 허락할 수 있는 '미친'감독임에 틀림없다.)
로마시대를 방불케 하는 전투장면은 스펙타클 하기도 하지만 그 싸움이 가진 의미를 망각하지는
않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전투가 끝나고 고용된 총잡이들을 주 방위군이 보호하며 호송해가는 장면에서 드디어 이 영화의
주제가 드러난다. 수많은 이주민들의 피로 얼룩진 서부시대와 아메리카. 그 어느 수정주의
서부극보다도 처절하게미국의 건국신화를 조롱하는 변형된 웨스턴 무비. 말하자면 감독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내기에 뛰어들었으며 영화와 함께 격렬하게 연소한 것이다.
어느덧 만화에나 나오는 캐릭터들을 두고 철학을 논의하고, 영화를 논의하는 경박한 시대가
되었다.하지만 위대했던 70년대 미국영화들 중의 걸출한 걸작인 이런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얼마나 한심한 감상자가 되었는지를 단번에 깨달을 수 있다.
220분의 시간이 주는 흥분과 감상은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