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전주에 다녀오는 길이다. 2월의 기록이니 오리엔테이션때인가보다. 내려갈때는 세 명이었는데, 출근때문에 남편은 먼저 올라가고, 아들은 전주에 남고, 마지막으로 나도 혼자 올라가는 길이다. 기숙사에 아들의 짐을 풀고, 정리한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친구들과의 수다삼매경에 얼른 올라가라고 엄마 등을 떠민다. 버스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아들은 내 마음 같지 않다.
직접 차를 가지고 내려갈 수도 있지만,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우리집 '자동차'는 질주본능을 잠재우고 주차장을 지키는 일이 더 많다. 운전이 서툴기도 하지만, 서툴다고 자주 안하는 버릇을 들이니, 가끔의 운전은 더 긴장감을 유발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잇점이 더 많다.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쪽잠을 잘 수도 있다. 단점보다 장점을 더 부각시키며 자동차를 모시고 있는 우스운 상황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다.
상산고에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걸었다.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 익숙해지고 친해지는 길은, 무작정 걷는 일이다. 걸어본 길은 잘 잊히지 않는다. 한번 걷고 나니, 오랜시간 속 깊은 대화를 나눈 것처럼 전주가 친근해졌다. 버스터미널에서 기숙사까지의 길이 이젠 낯설지 않다. 그새 정이 들었나보다.
두 시간을 꼬박 걸어온 다리를 쉴 겸, 버스 시간도 남았어서 커피숍에 간다. 커피와 약간의 빵을 주문한다. 음악이 흐르고 실내는 춥지도 덥지도 않다. 평일 오후 3시쯤이라 카페도 한산하다. 모르는 가요가 흐르지만 그것대로 듣기 좋았다. 모든게 평화롭다. 마음이 평화로우니 주위 사물이나 사람들이 모두 편안하게 보였다. 마음에 따라 눈에 보여지는 것에도 같은 마음이 흐른다. 책을 꺼내 몇 장 읽으려니 남, 여 한 쌍이 들어온다. 커플은 아니고 면접관과 면접을 보러온 젊은 여자다. 요즘 면접은 커피숖에서 하나 싶긴한데, 분명 남자는 질문하고 여자는 답한다. 그 긴장감이 내게도 전해져 책에 집중이 안되었다.
대화가 처음엔 호기심이 일었는데, 나중엔 지루해져 지나는 사람을 관찰한다. 터미널 근처라 여행가방을 든 사람이 많다. 도착한 사람, 떠나려고 하는 사람, 모두 바퀴달린 트렁크를 끌고 있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서 오는 길일까? 각자의 사연이 궁금하다. 저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고, 잊지 못할 추억 한보따리쯤 품고 있겠지? 낯선 사람을 관찰하는 일은 지루하면서도 한편으로 재밌는 놀이다.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러 간다. 버스가 출발하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시체처럼 잤다. 오랜만에 걷기운동이 꿀잠을 자게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