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래에 대한 시모음 ]
[ 순 서 ]
□돌고래가 산다더라 / 고정국
□사람이 고래만 같으믄 / 권선희
□고래를 위하여 / 정호승
□나의 고래를 위하여/ 정일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고래의 꿈 / 서승희 (노래 바비킴)
□고래를 기다리며 / 안도현
□고래, 고래 소리지르는 세상으로 / 다서 신형식
※ 돌고래가 산다더라 / 고정국
가끔씩 맨발로 와서 물수제비 뜬다더라
바위에도 젖을 물리는 포유동물이 산다더라
만발한 국화밭 가꾸며 동해바다가 산다더라
한 생애 열길 물속 벽을 향해 돌아누우며
늦도록 굽은 허리로 자맥질 돕던 바다
나선형 슬픔을 감추며 늙은 고래가 산다더라
강강술래 강강수월래 독도리 산 1번지
정강이 뼈를 깎으며 섬이 혼자 산다더라
정한수 놋그릇 머리엔 초록 등을 켠다더라
동체로 곤두박질치는 절망이여 빛이여!
등 푸른 백두대간에 밀고 당기는 물갈퀴여
돌아와 자유를 가꾸며 사람들이 산다더라
※ 사람이 고래만 같으믄 / 권선희
고랫배 타고 반평생 싸돌았다마는
살라꼬 온 데로 설쳤다마는
금마가 을매나 자식들로 물고 빨매 애끼는지
내는 안다
반들반들하니 시커먼 눔 만나믄 말이제
가슴이 벌컹벌컹 뛰는 기라
금마가 얼마나 이쁜지 모르제?
내하고 금마하고 똑같이 울렁울렁
지칠 때까정 파도 타매 가는데 말이다.
금마 옆구리에 몽실하니 새끼가 붙은 기라
우짜겠노 내는 사람이고 지는 괴기니
놓치지 않을라고 가기는 간다마는
맴이 억수로 씨는 기라
그래그래 가다보믄
새끼가 고마 처진다 아이가
그라믄 우짜는 줄 아나?
요래조래 지 한쪽 팔에 새끼를 얹어가꼬 간다.
포 쏠라고 배는 달라붙제
새끼는 깩깩울제
가슴팍에 피멍인들 안들겠나 말이다
어미 고래 질질 끄잡고 온 날은
난리가 난데이
울 마눌 입은 째질 대로 째지고
온 동네 사람들 마카 모딘 판장은 그야말로 굿판이제
그라믄 모하겠노
술한잔 먹고 든 집구석 온천지
새끼 델꼬 도망치던 금마 오락가락 하지럴
깩깩거리메 에미 찾은 새끼 오락가락 하지럴
내 그런 날으는 한숨도 못잤데이
새끼 내삐리고 소식 없는 둘째 놈
검둥고래만도 몬한 놈
고래 새끼만도 몬한 내 손주 놈이 가여버가꼬
잠든 볼때기만 조물락 조물락
날밤으로 싸커멓게 샜데이
※ 고래를 위하여 / 정호승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올라
별을 바다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 나의 고래를 위하여/ 정일근
불쑥, 바다가 그리워질 때 있다면
당신의 前生은 분명 고래다
나에게 고래는 사랑의 이음동의어
고래와 사랑은 바다에 살아 떠도는 같은 포유류여서
젖이 퉁퉁 붓는 그리움으로 막막해질 때마다
불쑥불쑥, 수평선 위로 제 머리 내미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고래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실례다
당신이 본 것은 언제나 빙산의 일각
누구도 사랑의 모두를 꺼내 보여주지 않듯
고래도 결코 전부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한순간 환호처럼 고래는 바다 위로 솟구치고
시속 35노트의 쾌속선으로 고래를 따라 달려가지만
이내 바다 깊숙이 숨어버린 거대한 사랑을
바다에서 살다 육지로 진화해온
시인의 푸른 휘파람으로는 다시 불러낼 수 없어
저기, 고래!라고 외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고독한 사람은 육지에 살다 바다로 다시 퇴화해가고
그 이유를 사랑한 것이 내게 슬픔이란 말 되었다
바다 아래서 고래가 몸으로 쓴 편지가
가끔 투명한 블루로 찾아오지만
빙하기 부근 우리는 전생의 기억을 함께 잃어버려
불쑥,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다 아득한 밑바닥 같은 곳에서
소금 눈물 펑펑 솟구친다면/ 이제 당신이 고래다
보고 싶다,는 그 말이 고래다
그립다,는 그 말이 고래다
※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 고래의 꿈/ 서승희(노래 바비킴)
파란 바다 저 끝 어딘가 사랑을 찾아서
하얀 꼬릴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이렇게 너를 찾아서 계속 헤매고 있나
저 하얀 파도는 내마음을 baby
다시 흔들어 너를 사랑하게
I'm fall in love again 너를 찾아서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
I'm fall in love again 너 하나만
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걸 넌 아는지
먼훗날 어느 외딴 바다의 고래를 본다면
꼭 한번쯤 손을 흔들어 줘 baby
혹시 널 아는 나 일지도 모르니
I'm fall in love again 너는 바다야
나는 그 안에 있는 작은 고래 한마리
I'm fall in love again 왜 이렇게 돌고 돌아야 하나
내 마음을 왜 몰라
한 잔 두 잔 술에 잊혀질 줄 알았어
운명이란 없다고 말했었던 나인데
하지만 난 너를 보며 사랑에 빠져
이제 꿈을 찾아떠나 바다를 향해
I'm fall in love again 너를 찾아서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
I'm fall in love again 너 하나만
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걸 넌 아는지
I'm fall in love again 너를 찾아서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
I'm fall in love again 너 하나만
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걸 넌 아는지
※ 고래를 기다리며 /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 고래, 고래 소리지르는 세상으로 / 다서 사형식
삶이 그리운 날 소주 한 잔을 걸치면
죽음에 이르러 비로소 살맛을 느끼는 세상으로
고래 한 마리 푸우! 헤엄치고 나와
세 치 혓바닥 위에서 인생을 논하곤 했지.
나이 들고 보니 아무리 큰 것들도
젓가락 하나면 해체가 끝나는 것을
시끌벅적 만선 깃발에
배꼽 위까지 오는 가죽 장화를 신고
시커멓게 살아야 되는 줄 알았으니.
친구여, 이제 항해를 끝내고
장생포항으로 돌아오라.
닻을 내리고 농수산물 도매 시장으로 오라.
반구대 암각화에서 빠져나온 고래도
사람냄새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와 눕는 곳.
여독이 풀린 놈들은 그리운 사람과 소주잔 기울이며
한 점, 젓가락의 지시에 따라서
맛있게 살아서 혓속을 유영하는 항해의 출발점.
그대, 살아 있는 잔 속의 바다에 빠지고 싶어
나, 반듯이 누워 예리한 칼날을 받으리니
꿀꺽, 목젖을 통과해야 비로소 새 삶을 얻어
고래, 고래 소리 지르는 세상으로
어서 오라, 친구여!
입 다물고 있어 죽은 줄 알았던
우리들의 바다 속으로
잘 소독된 고래가 지금 살아서 돌아가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