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서 오신 손님들이 대구대교구 신자들은 성모 신심이 깊다고 감탄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됩니다만,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루르드의 성모님께서 우리 교구의 주보이실 뿐 아니라 교구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제껏 성모님께서 이 교구를 위해 전구해 주신 은혜가 너무나 역력하기 때문에, 성모님을 마음 깊이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모님께 드리는 사랑이 때나 장소를 가리지는 않지만, 그 사랑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성모당이요,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는 시기는 성모성월, 그 중에서도 성모의 밤 행사 때입니다. 성모당은 이제 대구의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외국인들도 심심치 않게 들르는 것을 보면 제법 먼 데까지 이름이 난 모양입니다. 성모당과 함께 이곳에서 열리는 성모의 밤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성모의 밤 행사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설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1973년부터라고 합니다. 이해 5월에 교구의 모든 본당에서 돌아가면서 성모당에 순례하고 성모의 밤 행사를 가졌는데, 그 후로 이것이 관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모의 밤은 그 이전부터 계속 있어 왔습니다. 해방 직후인 1949년 성모성월에 청소년들이 성모당에서 성모찬가를 부르며 헌시와 헌화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6.25전쟁으로 피난민들이 대구에 몰려들게 되자 계산성당, 해성학교, 효성학교, 신학교가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제공되었는데, 인민군이 대구 근교까지 밀고 내려왔을 때에는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무수한 이들이 성모당에 몰려와 기도했습니다. 절박한 상황이 지난 후에도, 오후 3시가 되면 성모당을 찾아 기도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사제가 인도하는 예절도 아니었지만, 평화를 간절히 열망하면서 나라를 지켜주시기를, 가족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어머니를 맡기셨습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7)하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그분의 지체가 되니,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우리에게도 어머니가 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전 카나에서 구원의 때를 앞당기셨듯이, 전쟁의 와중에서 불안에 떠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고 지켜주셨듯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어머니께서 당신 자식들을 위해 무엇인들 못하시겠습니까? “어머니, 사도께서 하셨던 것처럼 저희도 당신을 저희 집에, 저희 마음에 늘 모시고 살도록 전구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