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시간이 넘었는데 출국 대기실에 입장을 안 시킨다. 이
공항은 대기실 입장 전에 설치된 마지막 검사대를 또 통과해야 된다. 그런데 출발 안내 모니터는 게이트와
게이트 사이에 한대씩만 설치되어 있어 출발 상황을 확인하려면 그곳까지 걸어가서 확인해야 한다. 목이
마르던 참에 모니터 근처에 있는 아주 조그만 이동식 매점에서 물을 샀다. 작은 이동식 진열 냉장고라서
어떤 것을 살 지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인인지 판매원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이가 엄청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판매를 하고 있었다. 나는 게이트 입구와 가까운 빈 의자를 찾아 가서 앉았다. 10여분이 흐른 것 같은 순간 매점 아주머니가 나에게 다가 오더니 출국 게이트가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모니터로 다가가 새로 바뀐 게이트가 어딘가 확인하고 상당히 멀리 떨어진 그곳을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새로 지정된 게이트에는 출국 검사대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드디어
검사대 앞에 서서 검사를 받으려 하는데 티켓을 보자 하더니 게이트가 또 바뀌었다 한다. 나는 급한 마음으로
안내 모니터를 향해 갔다. 모니터를 확인하니 원래 지정했던 게이트로 정보가 바뀌어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나는 힘도 들고 통증도 있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다시 지정된 게이트를 향해 뛰다시피 걸었다. 게이트에 도착하니 머리 속부터 땀이 비 오듯이 흘러 내렸다. 이렇게
똥개훈련을 시키듯 하면서, 이놈의 공항이 해야 되는 것인지
"라이온 항공"이 해야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안내방송 한번 없이 이런
짓을 해 댔다. 우왕좌왕하던 승객들이 하나 둘 게이트로 모이기 시작하자 검색을 시작했다. 드디어 출국 대기실에 들어 왔다. 승객들이 검사대를 다 통과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탑승을 시키지 않는다. 벌써
출발 시간은 한 시간 가까이 늦어진 상태다. 30여분을 더 기다린 후에야 드디어 탑승이 시작되었다. 지정된 항공기 좌석에 앉았다. 드디어 출발이구나. 맥이 풀렸다.
자카르타 공항에는 밤 10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여기 입국 심사도 만만치 않은데 제발
무사히 통과되기를 바라며 재빨리 입국 검사대 옆의 비자 발급부스에서 US$25불을 주고 비자를 발급받은
후 몇 곳의 입국 검사대 중 가장 짧아 보이는 대기 자들 줄의 맨 뒤에 섰다. 앞쪽에서 이미 심사를
받은 입국자들 중 대 여섯 명이 심사 후 통로에 별도로 옹기종기 모여 있더니 나이든 심사원의 안내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어떤 일로 왔느냐?" "관광하러 왔다." "싱가포르를
다녀 왔는데 비자만료로 다녀 온 것이냐?" "그렇다."
"어디에 묵을 예정이냐?" "내 딸네 집에 묵을 예정이다." "한국 귀국 편 항공권이 있냐?" "갖고
있다." "보여줄래?" 나는 여권지갑
속을 뒤져 유효기간이 9개월 남은 항공권을 보여줬다. "이거는
안 된다." "출국일자가 적혀있지 않아 안 되니 줄 밖에 서서 기다려라." "무슨 말이냐? 왜 안되냐? 내 여권에 문제가 있냐?"고 또 큰소리로 불만을 제기했다. 그 친구 다시 나에게 "기다려라." 그리곤 다음 입국자를 심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핸드폰을
켰다. 배터리가 거의 없다. 이 이사에게 전화를 했다. 이래 저래해서 지금 검사대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했더니 그 친구를 바꿔 달래서 그 친구 다른 입국자를 심사
중인데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무작정 들이 밀었다. 둘이서 한참을 애기한 후 핸드폰을 끊지 않고 돌려 주었다. 이 이사는 나에게 "혹시
50불 정도 가지고 계세요?" "알잖아요. 나 한 푼도 없다는 거." "아! 제가 고문님 한국가시는 항공권 이번에 예약한 거 이-메일로 보내
드릴게요. 그걸로 일단 보여 주시고 다시 부탁해 보세요."
"알았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배터리를
거의 다 사용한 것 같아 일단 전원을 끄고 심사원에게 충전할 수 있는 지를 문의하였다. 입국 검사대에
도달하기 전 약 10m 앞에 "가루다 항공"사의 항공권 발매부스가 있는데 그곳에 가서 부탁해 보라고 했다. 나는
그리로 가서 핸드폰을 켠 후 충전을 부탁했다. 다행히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직원 여럿이 근무를 하고
있었으며 상당히 친절하였다. 한 10분 정도가 지난 것 같은데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직원에게 전화기를 달라 해서 확인하니 이 이사였다. "이 메일 보냈어요." "알았어요. 끊어요." 나는 충전을 중단하고 다시 검사대로 갔다. 아직도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이 제법 줄을 서 있어 나는 검사대 옆에 서서 핸드폰을 밀어 넣을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때 입국자 여러 명을 인솔해 갔던 나이든 심사원이 나에게 건너편을 가리키며 그리 가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긴가 민가 하고 있는데 다른 젊은 심사원이 나에게 다가와서 건너편 검사대에서 수속을 하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통행을 통제하는 임시 저지선을 넘어 반대편 검사대로 갔다. 여권을 내밀었다. 나를 힐끔 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도장을 팡팡
찍고 그 위에 날짜를 쓰는 것 같았다. 그리곤 여권을 나에게 돌려 주었다. 나는 의외의 결과에 약간 당황스러웠다. 얼른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저 끝에서 또 돈 달라고 잡는 것 아냐? 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출구 바로 앞 통행라인이 끝나는 곳 바로 옆에 사무실이 있는데 그
앞에 심사원 한 명이 서 있었다. 그가 나를 멈춰 세우더니 여권을 달라 하였다. 순간 사무실에 구치를 시키려고 하는 것 아냐?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그가 여권을 돌려 주며 가라고 했다. 나는 그가 다시 나를 불러 세울까 봐 뒤도 안 돌아
보고 출구로 나갔다. 시계를 보니 11시 30분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마자 담배를 사려고 매점을 찾았다. 17,000RP짜리
담배를 25,000RP를 달라고 한다. 정말 마지막까지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어제 오늘 일진 한번 더럽네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 튀어 나왔다. 그래도 담배 한 갑을 사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나는 깊숙이
담배연기를 들이킨 후 서서히 내 뿜으며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기사의 답이 돌아 왔다. "제이 더블유! 제이 더블유!" 나는 카페 "제이 더블유"쪽을 향해 몸을 돌려 보았다. 거기에 기사가 서 있었다. 시간은 막 1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로써 악몽 같았던 꼬박 36시간의 싱가포르 체류기가 막을 내렸다. 입국 심사 장난이 아니네! 라는 교훈을 몸과 머리 속에 새겨 넣으며.....
<마지막 편 끝>.
자원거래 글을 올리면 삭제후 활동정지 됩니다. 자원거래 글은 골드회원 이상으로 <자원거래게시판>에 올릴 수 있습니다.
첫댓글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한편의 소설같은 36시간을 보내고 탈고하셨으니, 음 뭐랄까, 앞으로의 삶속에 되집어 볼 파란만장한 이야기꺼릴 하나더 장만하셨네요.
읽는 사람들에게 교훈도 가져다주시고~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글이 피부로 전해오네요... 감사
고생담을 아주 재미있게 읽어서 죄송한 마음이 살짝 들려고 합니다. ㅎㅎㅎ
마치 내가 격고 있는 것 같이 생생합니다. 쉽게 쓰시면서도 현실감이 팍팍 듭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마지막에극적인 반전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고생하셨는데 무지 재밌었어요 ㅎㅎ
글감사합니다.
가슴 짠한 동지애도 느낄수 있고 아련한 예일도 일깨워 주시고 외국생활의
대등소이함을 느낄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