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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져버린 사랑 그리고 침묵
『속죄』+ 어톤먼트(영화), 이언 매큐언 장편소설, 문학동네, 2001.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lan R. McEwan)은 세상에 『속죄』를 내 놓으며 인간이 지닌 깊고 무지한 어리석음과 무모한 욕망을 폭로하고자 한다.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잔인한지, 그 잔인함이 한 남자를 어떤식으로 철저하게 부셔버리는지에 대해 쓰여졌다. 함부로 짓밟힌 젊은 남자의 미래는 그래서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들은 주인공이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브루오니에게 철저하게 분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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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영국 어느 시골 대저택을 배경으로 쓴『속죄』는 주인공의 눈으로 쓰여진 소설 속 소설이다.. 원작을 영화로 만든 <어톤먼트>(조 라이트 감독)는 거의 충실하게 소설의 팩트를 그려냈다. 소설이 세밀하게 인간의 심리묘사와 감정의 의식을 전달했다면 영화는 단연 영상으로 승부를 걸었다.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로비(제임스 맥어보이)는 상상 속의 인물들을 현실에 존재하는 연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톡톡톡 빠른 발걸음과 긴박한 하룻밤에 일어나는 일을 주인공 브라우니는 타자기 소리로 탁탁탁 쳐서 스토리를 만들어 버린다.
브라우니는 자가파멸을 가져오는 것도 모른 채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범인을 로비라고 지목한다. 롤라를 성폭행한 가해자를 보지 못했음에도 자세히 봤다라고 진술해버린다. 브라오니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한 진술이 사랑하는 연인을 평생 갈라놓을지 알았을까? 진실을 담지 못한 한 마디가 평생 씻을 수 없는 죄가 됐으니 말이다. 세실리아는 간호사로 로비는 감옥과 전쟁터로 생활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편지와 그리움으로 전해야 했다. 영화는 탈출에 실패한 영국해병들과 긴박하게 돌아가는 영국병원의 실상을 현장감 있게 촬영했다. 영상만으로도 원작에 버금가게 몰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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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년 동안 브라우니를 괴롭했던 진실. 작가가 되어 소설 속에서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p521)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를 용서할 만큼 이기적이지는 않다(p521)고 자백하는 브라우니에게 독자는 복잡한 감정을 남기게 만든다. 다행이도 관객들은 바닷가에서 행복한 순간을 보내는 세실리아와 로비를 보고 위로와 미소를 보내게 된다. 소설을 쓰는 상상력은 이언 매큐언의 몫이겠지만 마지막을 독자에게 선물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여 『속죄』는 아름다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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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와 <어톤먼트>는 인간의 오만함과 무지가 무참한 폭력의 결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수작이다.. 불쌍한 로비와 슬픈 세실리아를 보며 연민을 느끼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혈관성 치매로 기억을 상실해가며 인터뷰 하는 백발의 브라오니에게 우리는 어떤 감정을 보내게 될까? 내가 본 것이 진실이라고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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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