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2일 날씨가 맑아 전형적인 한국의 봄날씨였다,
내가 취미로 여기는 민물낚싯대를 쌍포로 쓰기위해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딱 한군데가 보여 서로 연락하에 오전 9시에 만나기로 약속후 집을 나선시간은 정확히 7시였다,창3동역까지 가서 도봉도서관 사거리에서 만나 대를 건네 받아 종로소재 종묘에 도착하니 그리 번잡하지 않아 보였다,
우선 커피한잔을 받아들고 시골에서 상경한 종친과 대담을 나누다 보니 영녕전제향이 봉행 될 시간인지라 부랴부랴 달려가니 벌써 제향이 거행되고 있었으며,초헌례를 올리고 있었다,
대축관이 대축을 하느라부복을 한후 제향절차에 따라 제례참반을 하게 되었다,
종묘 영녕전 [宗廟永寧殿] 은 보물 제821호. 정면 16칸, 측면 4칸 고설집으로
이 사당에는 조선 태조고황제의 선대 4조 및 종묘의 정전(正殿:太廟)에 봉안되지 않은 조선 역대왕과 그 비(妃)의 신위(神位)를 모신 곳이다. 1421년(세종 3)에 건립되어 그 해 12월 목조(穆祖)의 신주가 제1실에 옮겨진 이래 170여 년을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때 정전과 함께 소실되어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중건되었다. 67년(현종 8)에 다시 중건되었으며, 1836년과 70년에 각각 개수되었다.
조선에서는 국왕이 승하하면 종묘 정전에 모시었다가 5세의 원조(遠祖)가 되었을 때 영녕전으로 옮기어 모시게 되어, 영녕전을 천묘(遷廟)한다는 뜻의 조묘(祖廟)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지금 이곳에는 태조고황제 선대의 4조(祖)이신 목조 ·익조(翼祖) ·탁조(度祖) ·환조(桓祖)를 비롯하여 정종(定宗) ·문종(文宗) ·단종(端宗), 기타 추존된 왕과 왕비 등 32위의 위패를 15실에 봉안하고 있다.
건물은 정전 서쪽에 남향으로 세워졌으며, 엮음은 평범하지만 그 규모가 대단히 커서 재목들이 정교 ·치밀하고, 꾸밈새도 그에 따라서 무게가 있으면서 소박하게 처리되어 엄숙하고 투박하다. (자료출처 : 두산백과)
전주에서 30여분의 종현께서 상경을 하신다는 전갈을 받고도 일일히 만나뵙지 못하고 정전제향이 봉행 되기도 전에 불가불 귀가하기에 이르렸다,최근 인후가 나빠지는가 싶드니 망막에 이상이 와서 그림자가 비치는가 하면 치아를 손보느라 몇일째 고생중이다,
신경을 너무 쓰거나 무리하면 질환이 더 악화가 되어 고생스럽기 짝이 없는고로 오전중으로 귀가 해 버렸다,
조상어른께 불공하기 그지 없으나 45년여를 비바람이 부나 눈보라가 휘몰아 치나 더우나 추우나 변함없이 종사참여를 해 온 터라 자손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나마 이해를 해 주실것으로 믿는다,
특히나 전주 덕진의 건지산하 조경단의 시조공 할아버지의 음덕을 잊지않고 지내는 처지라 활공하기 그지없다,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아내의 질병을 봉숭화 세그루를 주시어 병을 낫게 해 주신것도 시조공 할아버지의 음덕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자식들이 일취월장하여 국내 재벌그룹의 임원으로 무탈하게 지내도록 해 주신것도 시조공 할아버지의 음덕임이 틀림이 없는줄 안다,집안에 우환이 그칠세 없어도 모두 물리치고 중환일지라도 능히 물리쳐서 후유증 없이 건강하여 일반인과 하등 불편이 없고 더욱이 모두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무나 이루어 지는게 아닐 것이다,
위암,노졸증과 2회의 뇌출혈 및 뇌경색,C형 바이러스성 간염,이름모를 중병등이 후유증없이 건강하게 완치 된다는게 기적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