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구간(남해-여수-순천)-첫째 날(4월 11일 토요일. 맑음)
아내는 한사코 나를 위해 따라 나선단다. 내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어쩐지 처량해 보이고 혹시나 사고나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별로 가고 싶지 않지만 같이 간단다. 이거야 원, 내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뭐가 걱정이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아내가 같이 가면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한둘이 아니다. 뭐가 불편하냐고? 우선 잔소리가 많다. 매사에 참견이 많아서 귀찮다. 잔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밥 먹을 때도 혼자서 먹을 수 없는(2인분 이상이라야 주문이 되는) 음식도 먹을 수 있고 비싼 숙박비도 아깝지 않다. 친구들도 부부가 같이 다니는 걸 대단히 부러워하는 눈치고 금슬이 좋은 부부처럼 행세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이번에도 싱갱이를 하다가 결국 같이 집을 나섰다.
남해로 가는 버스, TV에서는 못난 노무현의 얼굴이 비치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몇 십억을 받아먹었다는 내용이 계속 반복해서 방송되고 있다. ‘설마 너는 아니겠지’ 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되고 말았다. 그 동안 탤런트 장자연이와 누가 잤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그 얘기는 어느 새 슬그머니 사라지고 노무현 사건으로 온 장안이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럽다. 도대체 대통령까지 해먹은 판에 무어가 아쉬워 그깟 몇 십억에 평생을 쌓아온 명예에 먹칠을 한단 말인가? 그렇게 빛이 많았다면 차라리 국민들에게 갚아달라고 호소를 해도 덜 창피했을 터인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모금을 해도 그깟 돈은 쉽게 모았을 게다. 노무현이 그렇게 멍청하고 얼간이 같은 친구였던가? 참으로 참담한 기분을 참을 수 없다. 노무현이도 괘씸하지만 권력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농사나 짓겠다는 늙은이를 이 때다 싶어 물고 뜯는 권력의 하수인들도 밉살스럽기 그지없다. 정말 야비하고 비열하고 가증스럽다. 마치 누가 먼저 노무현을 흠집 내나 내기라도 하는 듯해서 보기가 민망하다.
버스는 예정보다 늦은 오후 2시 반에 남해에 도착했다. 아내와 나는 우선 시장 근처의 오복식당에서 백반으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옆 자리에 50대 중반의 사내가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불콰한 얼굴로 앉아 있다. 그런데 이 사내가 먹는 물회가 어딘가 특이해 보인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눈여겨보고 있으려니 사내가 날더러 ‘백어’회라며 맛보란다. 백어(일반적으로 뱅어라고 부른다.)는 멸치어망에 함께 잡히는 고기로 멸치보다 약간 작거나 거의 같은 크기이고 몸체가 투명하고 눈만 까맣게 점이 찍힌 듯 보이는 고기다. 말하자면 바다의 빙어인 셈이다. 맛이 아주 부드럽고 특이하다. 이 사내는 남해에서 태어나서 값 싸고 맛 좋은 회감을 잘 안다고 자랑이다. 자기는 절대 활어는 먹지 않고 선어(죽여서 냉장시킨 생선)만을 먹는다며 활어는 회를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나 먹는단다. 사투리를 억세게 써서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대강의 뜻은 그렇다. 아무튼 이 사내 덕에 귀한 향토음식을 얻어먹었다. 여수에 가면 중간 크기의 도다리를 사서 세꼬시를 해 먹어보라며 맛이 죽인단다.
여수로 가는 배는 남해 서면 서성항에서 아침 9시 30분과 저녁 4시 30분 두 차례 있다. 그래서 내일 아침 배를 타려면 서성으로 가야한다. 남해를 3시에 출발해서 내금마을, 평현마을, 연죽마을을 거쳐 대정마을에 이르니 면사무소 크기의 마을회관이 떡 버티고 있다. 세상에, 마을회관이 이렇게 크고 훌륭하다니…. 대정에서 잠시 쉬고 다시 5시 30분에 서면에 도착했다. 남해스포츠파크호텔에 전화를 걸어 값을 물었더니 9만9천이란다. 토요일이라서 디스카운트도 안 된단다. 서면의 하나로 마트에서 비비빅 아이스 바를 하나씩 물고 인터넷에서 알아 둔 축항장 여관으로 향했다. 숙박비가 4만원이란다. 아니, 읍내의 인터넷도 되는 삐까뻔쩍하는 모텔도 4만원인데 뭐가 그리 비싸냐며 따졌더니 내 나이 또래의 여주인이 ‘노인네들이 삐까뻔쩍하는 모텔이 왜 필요하냐.’며 저희 여관이 바다가 한 눈에 보이고 조용해서 쉬기 좋단다. 뱃고동소리를 들으며 편히 쉬기에는 저희 여관이 최고란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노인네는 삐까뻔쩍하는 모텔에 들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느냐고 우겨서 간신히 3만 5천원에 하기로 했다. 아내는 5천원 때문에 노인소리를 듣는다며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다. 아무려나 그래도 5천원은 깍지 않았나. 여관주인과 감정적으로 싸운 것은 아니니까 창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 여관은 1층이 횟집으로 방송에도 나온 43년 전통의 물회 전문점이란다. 그래서인지 물회가 다른 곳보다 비싸다(대개 1만원인데 이집은 1만3천원이다.). 그래서 일단 밖으로 나왔다. 남해스포츠파크는 규모도 대단하고 시설도 대단하다. 친구들과 남해 힐튼 골프장에 왔을 때 처음 보았었지만 다시 보아도 역시 대단하다. 남해스포츠파크호텔 쪽으로 걷다보니 결국 호텔까지 왔다. 호텔식당의 전복죽이 1만원이란다. 게다가 여직원도 아주 예쁘다. 아내와 나는 단숨에 의기투합하여 호텔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호텔의 전복죽은 정갈하고 맛이 있었다. 예쁜 여직원 최정연 양(판촉팀장/010-5404-5460. mjc9090@nate.com)이 우리의 여관 키를 보더니 왜 저희 호텔에 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로 값을 물어보았더니 9만9천원이나 하더라. 너무 비싼데다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아서 그리로 갔다’고 했더니 ‘제가 알았더라면 싸게 해드렸을 텐데….’ 라며 다음에는 제게 먼저 연락하고 오라며 명함을 건넨다. 예쁘고 착하고 태도도 얌전해서 마음에 든다. 우리 며느리 삼았으면 좋겠다.
※축항장 여관/055-862-1718
남해스포츠파크호텔/055-862-8811/www.namhaehotel.co.kr/비즈니스 센터에서 인터넷 이용 가능
오늘 걸은 길 : 남해버스터미널-내금-평현-연죽-대정-서면사무소-축항장 여관. 8.7킬로미터
첫댓글 예쁘고 싹싹한 처녀만 보면 며느리감 생각하는 것 충분히 이해가네.와이프와 같이 다니는 게 혼자 다니는거 보다 백번 나으니께 배부른 투정말고 잘 모시고 다니게. 여기도 날씨가 조와 마누라 손잡고 탄전가라도 걸어야 겠네.
고마워유. 진찌 친구밖에 없네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