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패트리샤 켈리(영어: Grace Patricia Kelly, 1929년 11월 12일 ~ 1982년 9월 14일)는 미국의 배우이며 모나코의 대공 레니에 3세의 대공비(大公妃. 영어 Her Serene Highness the Princess of monacco, 프랑스어:Son Altesse Sérénissime la princesse consort de Monaco)이다.
1950년, 20세의 나이로 연기를 처음 시작한 후 그녀는 뉴욕에서 연극과 생방송드라마에 출연하였다. 1953년 10월, 모감보로 영화계에 데뷔한 이후 그녀는 1954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갈채를 비롯해 5개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였으며, 골든 글로브상을 탔다. 26살에 은퇴하고 모나코로 가게 된 그녀는 모나코 공녀 카롤린과 알베르 대공, 그리고 스테파니 공주를 낳았다. 또한 그녀는 미국 시민권과 모나코 시민권을 둘 다 유지했다.
1982년 9월 13일, 자동차를 운전하던 도중 갑작스런 발작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당했고, 다음날 사망했다. 차에 같이 타고 있던 그녀의 딸 스테파니 공주는 살아남았다.
1999년 6월 미국 영화 연구소가 선정한 미국영화의 전설적인 50명의 배우 중 한사람으로 선정되었다.
참고로 그녀와 모나코대공국에 대한 국내 관련 책으로는 '그레이스 켈리와 유럽 모나코 왕국 이야기[1]'가 있다. 1929년 11월 1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2] 의 명문가에서 출생하였다.
미국의 영화 배우로 아카데미 영화상을 수상했는데 이후, 1954년 잡지에 실릴 사진을 찍는다는 이유로 모나코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레니에 3세를 만나게 되어 레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에게 청혼 선물로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게 되고, 켈리는 영화 배우 출신답게 극적인 연출을 하게 된다. 바로 그녀의 작품 ‘상류사회’에 이 반지를 끼고 출연했던 것으로 1956년 4월 레니에 3세는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과 함께 은퇴한 그레이스 켈리는 1957년 1월에 공주 캐롤라인을, 1958년 알베르 대공을, 그리고 1965년에 스테파니 공주를 낳음으로 프랑스와 합병되는 위기를 무사히 넘기게 된다. 아울러 모나코의 관광객을 결혼 이전의 몇 배로 끌어올리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이른다.[3]
그녀는 공비가 된 이후에도 세간에 주목을 받아오다 1982년 9월 13일 둘째딸 스테파니 공녀를 조수석에 태우고 차를 운전하여 모나코에서 프랑스로 가던 중에 갑작스런 발작을 일으켰다. 결국, 자신이 운전하던 차가 37m 아래 산비탈로 굴러떨어지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다음날인 9월 14일 모나코 라 콜레(La Colle)의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스테파니 공녀는 살아남았지만, 경추 골절 및 뇌진탕 증세로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참고로 국내 그레이스 켈리에 관한 책으로는, '그레이스 켈리와 유럽 모나코 왕국 이야기[4]'가 있다.
그레이스 켈리의 아버지는 각종 조정 대회에서 무려 126연승의 신화를 썼으며 1920년 하계 올림픽 조정 2관왕을 차지했던 미국의 조정 영웅 존 켈리이며 그녀의 오빠는 과거 벽돌공이라는 이유로 헨리 로열 레가타 측으로부터 출전을 거절당한 아버지를 대신해 1947년 같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존 켈리 주니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