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기다리고 2년도 기다리고.’ 전화기 이야기 입니다. 사려는 사람은 많고 팔려는 사람은 없는, 속절없는 현상에 ‘전화기근’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읍니다. “전화 가설난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도시도 심각하였읍니다. 당시 전화기 설치 비용은 10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수급 불일치로 값은 천정부지였다. 당시 기사에는 “서울 반포 전화국 관내는 180만원, 부산 사상국의 경우에는 210만원에 거래가 됐답니다. 중소 도시도 100만원을 넘어섰다”고 쓰여 있읍니다.
전화기는 희소성 그 자체였읍니다. 체신부 기록에는 해방 당시 남한의 전화기 수를 5만대로 적고 있읍니다. 1960년 10만대, 1970년은 50만대에 불과했읍니다. 1971년 전기통신법 개정으로 신규 개설(청색) 전화는 매매불가, 기존 전화기(백색)는 매매가능으로 이원화되면서 값은 폭등했읍니다. 전화기 소유자는 그렇지 않은 자보다 정보 전달의 신속성 등으로 이익창출 기회를 더 많이 가졌읍니다. 없는 자들은 전화기를 월세로 빌려 읍니다. 고리대금업자들은 전화가입권을 담보로 돈놀이를 했답니다.
이런 요지경은 전화기 보급이 확대되면서 사라졌읍니다. 1987년에는 유선전화 1가구 1대 시대에 돌입했다. 카폰, 휴대폰이 등장하고 21세기 들어서는 1인 1전화 시대로 변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