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규민 <칼럼니스트>
오래 전 처음 외국여행을 계획했을 때다. 먼저 외국어학원에 등록했다. 그렇게 오래 영어를 배웠는데 생소한 단어가 참 많다.
주방에서 쓰는 어휘가 새로웠다. 남자라고 요리와 주방에 대한 용어를 대할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세월이 바뀌었으니 남자도 요리하고 청소하는 게 당연하다. 채소이름도 외우고 주방기구 이름도 부지런히 외웠다. 그러다 원어민 강사와 다툼이 생겼다. 다툼은 “garbage disposer” 때문이었다. 디스포저는 요즘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당시는 생소했다.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를 칼날이 달린 모터로 잘게 부수어 물과 함께 배수관을 통하여 하수도로 흘려보내는 기구를 말한다.
나는 음식물쓰레기를 별도로 처리하지 않고 하수도를 통해 강물로 흘려보내면 수질오염을 일으키니 사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원어민 강사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한다. 이미 서구사회에선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한단다. 서투른 영어로 논쟁을 벌이다 감정을 상해 그길로 학원을 그만 두었다. 그러나 지금도 음식물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할 때가 많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논쟁은 한국사회에서 진행형이다.
조리도 하고 아침밥상도 자주 차리는 편이지만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건 하지 않는다. 두어 번 하다 출근하는 옷에 오물이 튀어 낭패를 당한 다음부터 절대 하지 않는다. 아내와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문제로 여러 번 다퉜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이 있다.
정치인들은 도대체 이런 문제 하나 속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뭔 말들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정치인이 있는지 검색해 봤다. 경기도지사가 디스포저 문제를 환경부와 적극적으로 논의해 새로 짓는 아파트에 설치하라고 이야기한 보도가 있을 뿐이다.
음식물쓰레기 처리문제에 불만이 있는 건 분류방식에도 있다. 생선뼈에 살점이 많이 붙어 있으면 음식물쓰레기이고 살점이 없으면 일반쓰레기란다. 흙이 묻은 채소뿌리나 양파껍질, 조개껍데기는 일반 쓰레기이다. 조리가 끝나고 쓰레기 분리를 해 놓으면 영락없이 잔소리가 날아온다.
고추씨와 땅콩껍질은 일반쓰레기, 과일껍질은 음식물쓰레기인데 그것도 구분 못하느냐는 힐난이다. 호두껍질이나 사과껍질이나 다 과일껍질이긴 마찬가지인데 사과는 되고 호두는 안 되니 머리가 돌 지경이다.
쓰레기 발생을 줄이기 위해 음식을 알맞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기를 빼서 버리거나 건조기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지렁이를 사육해서 음식물쓰레기도 줄이고 분변토 생산을 하는 것도 좋다. 종량제를 실시해서 스티커를 붙여 배출하는 것도 좋고, 전자칩을 이용해서 버리는 양만큼 과금하는 제도(RFID)도 좋다.
요즘은 음식물쓰레기 자동집하시스템을 도입한단다. 지하 관로를 통해 모아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이 획기적으로 생활의 불편을 줄이거나 예산을 절약하거나 자원의 재활용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차라리 기술적으로 획기적인 방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씽크대에 디스포저(분쇄기)를 설치하고 이것을 변기의 관로와 연결하여 정화조로 나가게 하자. 정화조에 대한 처리방식에 기술과 자본을 투자해 빠른 시간 안에 위생적으로 처리하며 자원화하는 방식이 국민의 생활편의를 증진하는 길이다.
관료들의 한정된 생각과 업체의 이익에 매여 기발한 아이디어가 사장되는 사례가 바로 음식물처리방식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3선을 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국민전체를 위해 성공해야 하는 정책을 채택한 점이란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면 절대 채택하지 않는 우리 정치나 관료조직의 굳은 관습은 먼바다에 버리자. 앞으로 음식물쓰레기를 해양에 투기하지 못하니 잘못된 관행이라도 먼바다에 버려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