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저녁식사 끝내고 영암 터미널에서 광주갔다가 광주에서 저녁 9시40분출발 전주행 고속버스에 올라탄다.
10시40분 전주 도착. 저녁 11시경에 전주 아가씨가 일러준데로 "스파 라쿠아" 찜질방 찾아갔다.
나중에 집에와서 위치 확인해보니 전주 신도시에 있는 대한방직옆에 전북도청에서 멀지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5층건물 전체를 찜질방으로 운영중인데 수준이 호텔급 수준이다.
www.spalaqua.com 으로 인터넷 검색 해도 될것같다. 요금은 \8.000냥이다.
1253년 역사의 땅 "천년 전주" 전주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 된 때는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으로 완산주를 전주로 개명하면서
지금까지 불려지고있다. 1253년의 역사를 간직한 千年도시가 바로 전주이다.
900년 견훤이 세운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전주는 조선왕조 500년을 꽃피운 조선왕조 발상지다.
전주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판소리(동편제)의 본고장으로 전통생활양식의 근간인
한옥.한식.한지등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를 담고있는 전통문화체험관광도시다.
아침 8시30분. 몇년전 수요방 친구들과 한번 들러본 식당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맛이 한결같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 100% 국산 콩나물로 시원하고 담백하다. 맛도 가격도 착하다, 4,000냥이다
새우젓으로 간 맞추면된다. 24시간 영업이다.
예전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했을때는 하루에 달랑 300그릇만 팔아서 삼백집이되었다.
욕쟁이 할머니는 고인이 되었고 지금은 혈육이아닌 다른분에게 잘할 자신이 있다고해서 팔아넘겼다고 전해진다.
모주인데 한약제로 만든다. 찹쌀가루+계피+흑설탕+생강+감초넣고 5시간 끓이는데 어머니가 정성껏 해준것같다하여
모주라고 불린다. 예전엔 그냥 줬던거 같은데 2000냥이다.
이 봉순할머니(욕쟁이 할매)가 박대통령이 신분을 밝히지않고 손님으로갔는데 "이 놈아!누가보면 영낙없이 박통인줄 알겠다
옛다, 계란이나 하나 더 쳐먹어라"라며 후하게퍼 주시던 일화가 삼백집에 존재한다.
삼백집에서 5분거리에 있는 전주 객사(보물 제583호 75,3.31 지정)
조선 초기에 세운 객사는 전주를 찾아온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하던 지금으로 치면 현대판 영빈관이다.
본관에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면 여기에 경의를 표했으며 나라에 경사가 있을때에는 이곳에서 축하의식을 행했다한다.
옛 전라 감영의 권위와 명성을 상징하는곳으로 주관과 서익헌만 있었으나 동익헌을 복원 하였다하며
본관의 현판에 쓴 풍패지관의 豊沛는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지명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비유한 말 이라한다.
전동 성당. 사적 제 288호 대지 13,200m2 건물면적 625m2
도갑사와는 달리 소박하고 아름답고 정겨움이 느껴져 신심이 절로 묻어 나오는 곳이다.
서산의 개심사, 지리산 의 천은사등 촌색시마냥 수줍어 하는 모습이 피로에 지친 나그네를 미소짓게한다.
고풍스러우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1891년 프랑스인 신부 보두네가 대지 매입하고 1908년 푸아넬 신부의 설계로 착공 1914년에 완성됐다하니 거의 100년 되간다.
그후 마르셀로 라구르 신부가 부임하여 미쳐못한 성당 내부와 외부의 미화작업을 마무리 지었다한다.
마치 명동 성당을 본듯하다. 천주교 신자를 처형했던 풍남문 밖에지어진 성당 이라한다.
정조 15년 (1791년) 최초의 순교자 윤 지충과 권 상연 그리고 순조 원년(1801년)에 호남의 첫사도 유 항검과 윤 지헌등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 됐다한다.
정면 중앙에는 높은 종탑을 세우고 양측에는 작은 탑을 세웠는데 이 종탑의 지붕은 12개의 채광창을 돌린 12각형의 드럼위에
12각형의 뾰족돔을 얹어 마무리 하였고 작은 탑은 8각형 드럼위에 8각형 뾰족돔을 얹었다한다.
1998년 상영된 조직보스(박 신양)와 여의사(전 도연)의 안타깝고 가슴아픈 사연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짓게한
영화 "약속"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약속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을 올리는 배경지로 등장 했던 전동 성당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풍남문; 보물 308호 63, 1,21 지정
조선시대 전라 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 이었으며 전주성에는 동,서,남,북, 각각
출입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풍남문만 남아 있다하며
고려때 세웠으나 정유재란때 불 타버렸고 영조 44년에 전라감사 홍 락인이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이라 한다함.
전동 성당과 한 불럭사이에 위치 하고 있음
풍남이란 풍패의 남쪽이란 뜻이라함
다음 편에도 전주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