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심리상담 증가 현상에 대한 시론
제주 지역에서 사람의 마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심리상담이 증가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의 경고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심리상담에 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어려움이 늘어났다는 의미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 이면에는 경제적인 불안, 가족관계의 변화, 청년층의 미래 불확실성, 고령화와 고립화, 지역사회 갈등 등 다양한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상담 문턱을 낮추고 마음 건강을 지키는 제주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우리 사회에서 심리상담의 증가는 마음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된 결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심리적·사회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이제 제주도정은 이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제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된 정책 과제로 바라봐야 한다.
각자 개인마다 경제적 불안정은 심리적 어려움을 키우는 주요 요인이다. 제주의 산업구조는 관광업과 서비스업, 자영업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경기 변동과 소비 위축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골목 상가의 매출 감소, 저임금 구조에서 소득의 불안, 주거비 가중, 고용의 불안정성은 개인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특히 다음 세대인 청년층은 취업 기회와 주거,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부담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우리 사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생계의 불확실성 속에서 심리적 압박을 크게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의지나 적응력 부족으로만 설명한다면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 가족과 공동체의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제주 사회는 가족과 이웃의 관계망을 통해 어려움을 나누는 위기를 극복해 왔다. 그러나 1인 가구의 증가, 가족 형태의 변화, 세대 간 소통 부족, 이웃 관계의 약화는 정서적 지지 기반을 약화할 수 있다. 요즘 관광산업과 서비스업 종사자 등 불규칙한 근무시간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겉으로는 일상을 유지하더라도 내면의 외로움과 불안을 혼자 감내하는 우리의 이웃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정책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제주가 겪는 급격한 사회적·환경적 변화 역시 심리적 부담과 무관하지 않다. 인구구조의 변화, 동·서와 남·북 간 성장 격차, 개발을 둘러싼 갈등, 생활환경의 변화 등은 주민들의 소속감과 미래에 대한 전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하여 지역 현안이 10여년간 갈등으로 이어지면서 제주 공동체 내부의 불신과 피로가 누적되어 있다. 이러한 요인이 실제 상담 수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는 조사와 연구를 통해 확인해야 하지만, 개인의 심리 건강을 지역사회의 경제적·사회적 여건과 분리해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제주 사회에 심리상담 수요의 증가는 반드시 정신건강 문제가 악화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과거에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더라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상담을 꺼렸지만, 최근에는 상담을 자기관리와 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확산됐을 수도 있다. 따라서 상담 이용 건수만으로 제주 사회의 정신건강 수준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상담 수요가 실제로 얼마나 증가했는지, 어떤 나이와 계층에서 수요가 집중되는지, 공공서비스와 민간 서비스 중 어디에 수요가 몰리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할 시점이다. 심리상담 증가를 위기가 아닌 회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상담을 원하는 주민이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상담 비용이 부담스럽거나, 전문 기관이 멀리 있거나, 예약 대기가 길거나, 상담 기록과 정보 유출을 우려한다면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상담 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지역의 심리 건강 안전망이 충분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누구나 경제적 형편이나 거주지역, 나이와 관계없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과 전문성을 함께 높여야 한다.
제주도정은 심리상담 수요와 지역별 정신건강 실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나이별·지역별 상담 수요와 대기기간, 이용 비용, 서비스 접근성, 상담 중단 사유 등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공공기관과 상담 기관의 자료를 연계하고, 정기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변화 추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한정된 예산도 필요한 곳에 우선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권 중심의 공공 심리상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중심 지역뿐 아니라 읍·면 지역 주민도 편리하게 상담받을 수 있도록 보건소와 정신건강복지센터, 복지기관, 학교 등 기존 공공서비스와의 연계를 확대해야 한다. 찾아가는 상담과 이동 상담, 비대면 상담을 병행하되, 온라인 이용이 어렵거나 대면 지원이 필요한 주민에게는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여러 기관을 전전하지 않도록 초기 상담부터 전문 기관 연계와 사후관리까지 이어지는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생애주기와 대상별 맞춤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청년에게는 취업·주거·진로 문제를 함께 다루는 상담을, 중장년층에게는 실직과 경제적 부담, 그리고 가족관계 변화에 대응하는 지원을, 노년층에게는 소외와 상실감, 사회적 관계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초개별화하여 학교와 가정, 제주 사회가 협력해 조기에 어려움을 발견하고 전문적인 도움으로 연결해야 한다. 직장인과 소상공인에게도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다양화해 일상에서 마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담 인력의 전문성과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상담 수요가 늘더라도 전문 인력 확보와 교육, 적정한 사례 관리, 슈퍼비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어렵다. 제주도는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구분하면서도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상담 인력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과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상담 실적을 단순히 건수로 평가하기보다 이용자의 만족도, 적절한 전문 기관 연계, 지속적인 회복 지원 등 서비스의 질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심리적 어려움을 유발하는 사회구조적 원인에 대응해야 한다. 마음 건강 정책을 상담 지원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청년 일자리와 주거 안정, 취약계층의 생활 지원, 고립 가구 발굴, 가족 돌봄 부담 완화, 지역공동체 회복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심리상담은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불안과 외로움을 반복해서 만들어 내는 환경을 개선하는 일 또한 행정의 책임이다. 따라서 제주형 마음 건강 정책을 구축해야 한다.
심리적 어려움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삶의 문제다. 이를 숨기거나 방치할수록 개인의 고통은 깊어지고 가족과 공동체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도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위기는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제주도정은 심리상담 수요의 증가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지역의 실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상담 접근성을 높이며, 경제·복지·교육·보건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아울러 정책의 성과를 예산 투입이나 상담 건수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주민들이 실제로 도움을 받았는지, 서비스의 사각지대가 줄었는지, 회복을 위한 지원이 지속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제주의 경쟁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관광자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안전하고 인간으로 존엄하게 생활하며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비로소 살기 좋은 제주가 된다. 마음 건강을 지키는 일은 복지의 부수적인 영역이 아니라 도민의 삶의 질과 제주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과제다. 이제 제주도정은 주민 한 사람의 고통도 제주 사회의 문제로 바라보는 행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음이 아픈 도민에게 버티라고 요구하는 행정이 아니라, 도움을 청하면 실제로 손을 내미는 행정. 그것이 제주형 마음 건강 안전망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도민의 마음 건강은 제주도정의 중요한 책무다.
2026. 10. 14.
사단법인 제주미래전략연구원 김상명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