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간 이야기다. 얼마 전 산친구 산악회를 따라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을 다녀왔다. 이제 함께하지 못하고 D코스를 택했지만 속으로는 그 날 옹녀와 변강쇠가 잠들어 있는 마천면 건너 삼봉산을 혼자 가려다 생각을 바꾸어 몇몇 산우님들과 동행을 했다.
우리 나라 사람들 누구나 기억하겠지만 옹녀와 변강쇠를 모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슬플 때나 괴로울 때 그리고 마음이 우울할 때 판소리로 또 창극으로 마음을 달랬던 이야기 그리고 80년 대 암울한 군사 독재 시절에 이대근과 원미경이 출연한 영화는 우리들의 마음을 달래 주던 이야기다.
지난 몇 년 전 전라도 남원군과 경상도 함양군이 서로가 옹녀와 변강쇠가 자기들의 연고라고 2년 간 지루한 소송 전에 함양군이 승소 했다. 남원군은 변강쇠가 전라도 남원이라고 하지만 변강쇠 판소리에는 두 사람의 최종 정착지가 함양 땅 등구리라고 한 이유가 판소리에는 등구리로 나온다. 나는 어려 번 무등산 막걸리를 들고 직접 찾아가 인사를 지금도 드리고 있다.
변강쇠 형님은 1802년 임술생이고 옹녀 누님은 1804년 갑자생이다. 저 먼 평안도 월강촌에서 태어 난 옹녀는 이상하게도 시집만 가면 남자들이 1년 안에 빼빼 말라 죽는다. 잠자리만 했다하면 금방 시름시름 죽는다. 사람들은 옹녀가 뛰어 난 미모와 건장한 육체에 죽는 다지만 또 청살상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남자들은 나비떼처럼 줄을 서 옹녀에게 장가를 가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사연 때문에 평안도 여자들과 원로들이 모여 이러다 젊은 남자들 다 죽게 생겼다고 하면서 옹녀에게 저 멀리 떠닐 것을 권한다. 옹녀도 결국 압박에 못이겨 단봇짐을 쌓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간다.
한편 전라도 변강쇠는 거구의 체격에 잘 생긴 남자다. 변강쇠에 시집만 갔다 하룻밤만 자고 나오면 여자들은 온 몸이 시퍼렇게 멍들고 몇일을 드러 누워 버린다. 그래도 여자들은 변강쇠만 나타나면 어쩔 줄을 모른다. 남자들은 부인 단속에 나선다. 그러다 지역 사람들이 이게 큰 일이라고 하면서 변강쇠를 불러 멀리 떠날 것을 권한다. 착하고 성실한 변강쇠는 짐을 싸들고 북으로 올라간다.경기도와 황해도 중간 청석골 어느 산골짜기에서 옹녀와 변강쇠는 마주친다.홀아비와 과부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함께 살기로 언약을 맺는다. 그 날 휘영청 밝은 달이 뜬 밤에 달빛이 깔아 준 바위에서 산천 초목을 흔들 정도로 초야의 밤을 맞은 두 사람은 이제 진짜 짝을 맞았다고 하면서 둘은 함양군 마천면 삼봉산 아래 등구리에 청착한다.
뛰어 난 미모와 건강한 몸메에 양반 집 첩이나 기생으로 살 것을 권했으나 옹녀는 거부하고 등구리에서 들기름 장사와 농사를 지으면서 부지런히 살아 간다. 그러나 변강쇠는 술과 노름과 게으름으로 세월을 보낸다. 참다 못한 옹녀는 나무 좀 해오라고 야단을 친다. 먹기는 두목 세목을 먹으면서 이게 뭐냐고 하자 화가 난 변강쇠는 지리산 일대의 장승을 날마다 뽑아 온다. 깜짝 놀란 전국의 장승들이 갖은 병을 주어 변강쇠는 1825년 을유년 생을마감한다. 그래도 남편이라고 장례를 치르려니 그 거구를 지고 갈 사람이 없다 그래서 장례를 치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하자 또 삼남의 잠놈들이 다 모이고 심지어 중들도 지원한다. 다행이 초라니가 지고 장례를 치르나 그도 깔려 죽고 만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끝이 나고 옹녀는 소식이 없다. 우리 민초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 웃고 울고 생활의 활력을 주고 떠난 옹녀 누님과 변강쇠 형님에게 나는 고마운 마음에서 가끔 묘를 찾으나 간단한 비와 꽃다발이 놓여 있고 그 밑에 아직도 작은 주막집이 있다. 막걸리 맛도 좋아 나는 그 곳을 좋아하여 들리며 가끔 순창 옹씨 후손들이 찾고 옥천 옹씨들이 찾는다는 말도 들리고 요즈음 가수와 배우로 또 인천 광역시 홍보대사인 옹성우가 그 후손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민족이 있는한 우리에게 판소리와 창극 그리고 영화로 친숙한 우리의 옹녀 누나 와 변강솨 형님를 사랑한다. 그리고 함양군에서 관리한 묘소에 부근에는 대리석 조형물과 적자에 폐가될 정도로 겨우 명맥을 유지한 옹녀 주막집에도 함양군의 지속적인 지원이 있기를 부탁하면서 전국민의 사랑을 받으 수 있도록 공원화 했으면 좋겠다(이야기는 판소리와 함양군 홍보물을 참고하였습니다) 끝.
첫댓글 바람거사님 !
변강쇠 형님도 되시고,옥녀누님도 되시고 존경합니다
변강쇠와 옥녀가 만나서 살았던곳,함양군 삼봉산 아래 등구리~
삼봉산만 그냥 갔다 왔는데 ~ 다음산행에는 변강쇠&옥녀 기운을 받아와야 겠어요 ~~
그럴필요도 없겠네요 ~
바람거사님과 악수했으니까, 그 기운을 전달받았겠지요 ㅎ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요
산행에서도 틈틈히 뵙도록 오시기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강산 회장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되면 옹녀와 변강쇠 묘 입구에 있는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 나누시게요.
판소리 음란야사물로서 크나큰 인기 몰이을 했던 한시대의 풍작물이였던 변강쇠와 옹녀의 역사와 기록 해설을 적날하고 이해가 쉽도록 묘사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건강과 시간이 허락되시면 자주 뵙기을 청하옵니다 무더위와 폭우 폭염이 넘나드는 여름날에 건승하시고 즐거운 나날이 쭉~~욱 이루세요
감사드림니다!!!!!
산행대장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항상 열심히 고생하신 덕에 산행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