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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봄 숲에 가득하고 (雜花滿芳林)
도연명의 <음주(飮酒)〉에 차운하다 20수〔次飮酒 二十首〕
······················································································ 서하 이민서 선생
한가히 거처하고 또 편안히 누워 / 閑居且高臥
술이 있으면 따라서 마신다네 / 有酒斟酌之
전원은 언제가 제일 즐거운가 / 田園何最樂
바로 봄비 내리는 때라오 / 樂在春雨時
꽃들이 봄 숲에 가득하고 / 雜花滿芳林
날아다니는 꾀꼬리 다시 여기에 있네 / 流鶯復在玆
지인(至人)은 현묘한 이치 통달하니 / 至人洞玄機
유행감지(流行埳止)를 다시 어찌 의심하리 / 流坎復何疑
가소롭구나 이욕(利慾)을 좇는 무리여 / 可笑怵迫徒
조개와 황새가 공연히 서로 버티는 격이로다 / 蚌鷸空相持
[주-1] 음주(飮酒) :
《도연명집(陶淵明集)》 권3에 수록되어 있다. 도잠(陶潛)은 〈음주〉 시를 통해, 시비가 전도되고 혼효된 난세 속에서 과거의 인물들을 통하여 어둠 속에서 빛을 찾듯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고자 했다. 자신을 길 잃은 새로 비유하기도 했고, 안회(顔回)의 안빈낙도와 영계기(榮啓期)의 지족(知足)에 뒤이어 칭심(稱心)의 경지를 모색하고 개척해 나가기도 했다. 《윤수영, 도연명의 〈飮酒〉詩에 나타난 인생의 의미, 중국어문학 50권, 영남중국어문학회, 2007, 34~35쪽》
[주-2] 날아다니는 …… 있네 :
원문 ‘유앵부재자(流鶯復在玆)’는 원래 당(唐)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술을 기다려도 오지 않다[待酒不至]〉에 나오는 구절이다.
[주-3] 유행감지(流行埳止) :
출사(出仕)하고 은거(隱居)하는 일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 권48 〈가의전(賈誼傳)〉의 “흐름을 타게 되면 함께 흘러 내려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잠깐 정지해 있을 뿐이다.[乘流則逝, 遇坎則止.]”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4] 조개와 …… 격 :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 나오는 말이다. 큰 조개가 껍데기를 벌리고 있을 때 지나가던 황새가 쪼아 먹으려다가 조개껍데기가 닫히는 바람에 도리어 주둥이를 물리어 서로 마주 버티다가 어부에게 모두 잡혔다는 것으로, 둘이 서로 다투다가 함께 패하여 제삼자에게 이득을 취하게 하는 것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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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게도 육신의 부림 받는 인생이여 / 勞生苦形役
목을 길게 빼고 청산을 바라보네 / 引領望靑山
약관에 품었던 작은 바람 / 弱冠抱微尙
부끄러워라 늙어 감에 공언이 되었구나 / 將老愧空言
어느 날 갑자기 세상 떠난다면 / 苟能一日去
오히려 여생이 즐거울 것을 / 猶可樂餘年
산중의 사람에게 알리노니 / 爲報山中人
소식을 자주 전해 주시게 / 芳信數相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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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이나 은자(隱者) 모두 산에 있지만 / 樵隱俱在山
예로부터 실정(實情)은 같지 않다네 / 由來不同情
어깨 나란히 하고 한세상 함께하나 / 齊肩共一世
선악은 각기 명칭 다르다오 / 善惡各異名
오악(五嶽)이 마음에서 솟고 / 五嶽起方寸
평지풍파 일어나면 / 風波平地生
영고성쇠 지척에서 달라지니 / 榮枯咫尺異
총애와 치욕 실로 놀랍구려 / 寵辱眞可驚
세도(世道)가 날로 무너져 가는데 / 世道日交喪
오래 머문들 끝내 무얼 이룰지 / 淹留竟何成
[주-5] 나무꾼이나 …… 않다네 :
《문선(文選)》 권30에 실린 사영운(謝靈運)의 〈전남수원격류식원(田南樹園激流植援)〉에 나오는 “나무꾼과 은자 모두 산에 있으나, 예로부터 그 일은 다르다오.[樵隱俱在山, 由來事不同.]”라는 구절에서 온 것이다.
[주-6] 오악(五嶽)이 마음에서 솟고 :
이는 당(唐)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앵무주를 바라보며 예형을 슬퍼하다[望鸚鵡洲悲禰衡]〉에 나오는 말로,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고 격분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李太白文集 卷19 望鸚鵡洲悲禰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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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태가 그윽한 동산의 나무에 / 園木含幽姿
아름다운 새들 함께 날아다니네 / 好鳥相與飛
꾀꼬리며 비둘기는 즐겁게 지저귀는데 / 鸝鳩鳴聲樂
두견새는 밤에 슬피도 우누나 / 子規夜啼悲
슬프고 즐거운 건 무엇 때문인가 / 悲樂亦何爲
물성(物性)이 의지하는 바 있어서라오 / 物性有所依
고니는 홀로 높이 날아 / 黃鵠獨高飛
저물녘에도 돌아오지 않고 / 日暮猶未歸
봉황은 곡식 쪼아 먹지 않으며 / 鳳凰不啄粟
낭간(琅玕)이 쇠함을 탄식한다네 / 歎息琅玕衰
어째서 두 새의 마음은 / 胡爲二鳥心
다른 새들과 다른 것인가 / 乃與衆禽違
[주-7] 낭간(琅玕) :
봉황이 쪼아 먹는다는 죽실(竹實) 혹은 경실(瓊實)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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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바람이 뭇 구멍에서 일어 / 吹萬生衆竅
밤낮으로 너무도 시끄럽구나 / 日夕苦喧喧
시끄러움과 고요함은 다르지만 / 喧靜雖不同
또한 중도를 너무 벗어난 것이지 / 於道亦已偏
세인(世人)들은 시장과 조정(朝廷) 동경하고 / 世人戀市朝
기리계(綺里季)는 남산에 있었구려 / 綺皓在南山
출처는 각자 달라서 / 出處各殊方
종신토록 되돌릴 줄 몰랐네 / 終身不知還
때에 따라 진퇴하는 건 / 乘時有卷舒
지혜로운 사람과 말할 수 있으리 / 可與智者言
[주-8] 시장과 조정 :
명리(名利)를 다투고 좇는 곳을 말한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1〉에 장의(張儀)가 진 혜왕(秦惠王)에게 “신이 들으니, 명예를 다투는 자는 조정으로 가고 이익을 다투는 자는 시장으로 간다고 하니, 오늘날 삼천(三川)과 주실(周室)은 천하의 시장이요, 조정입니다.[臣聞爭名者于朝, 爭利者于市, 今三川周室, 天下之市朝也.]”라고 하였다. 삼천은 진(秦)나라 때 설치한 군(郡) 이름이고, 주실은 주나라 왕실이다.
[주-9] 기리계(綺里季)는 남산(南山)에 있었구려 :
‘기리계’는 한(漢)나라 초기에 전란을 피하여 상산(商山)에 은거하던 네 백발노인[四皓]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머지는 동원공(東園公)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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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원(蘧瑗)이 나이 육십에 변화되어 / 蘧瑗六十化
지금이 옳고 어제가 그름을 알았지 / 昨非覺今是
난초와 혜초 시들었고 / 蘭蕙旣變衰
쇠와 돌도 끝내 사라지네 / 金石終銷毁
만물은 모두 없어지고 / 萬形同歸盡
종국엔 도(道)만이 우뚝한 법 / 惟道終卓爾
그러니 옥(玉)을 품은 사람은 / 所以懷玉人
갈옷 입고도 비단옷 걸친 이 비웃지 / 被褐笑錦綺
[주-10] 거원(遽瑗)이 …… 변화되어 :
‘거원’은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현대부(賢大夫) 거백옥(蘧伯玉)이다. 거원이 나이 육십이 되었을 때 그동안의 잘못을 깨닫고 고친 것은 그 덕을 진전하는 공부가 늙어서도 게을러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거백옥은 나이 육십이 되어 변화되었다.[蘧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라고 한 데서 온 것으로, ‘화(化)’에 대해 주희(朱熹)는 ‘사라져 막힘이 없는 것[消融無固滯]’이라고 풀이한 반면, 요로(饒魯)는 거원의 기질이 육순의 나이에도 계속 변화한 것으로 보았다. 《論語集註大全 卷14 憲問 注》
[주-11] 옥(玉)을 …… 비웃지 :
도(道)를 간직한 사람은 세상에서 알아주는 이가 없어 자신은 안 좋은 옷을 입더라도 비단옷 입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노자(老子)》 제70장에 “나를 아는 자가 드물고 나를 본받는 자도 적으니,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굵은 베옷을 입고 속에는 보배로운 도를 품고 있는 것이다.[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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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 맑은 기운이 / 天地有淑氣
뛰어난 인물 내니 / 產出人中英
찬란히 사업 넓힘은 / 煌煌富事業
분명 현철(賢哲)의 마음이지 / 炯然賢哲情
시대 운명을 만나지 못하면 / 時命苟不諧
성인(聖人)의 삶도 순탄치 않으니 / 聖路亦欹傾
뛰어난 재능 발휘 못하고 / 懷奇不自見
울분 토하며 이따금 울었네 / 發憤時一鳴
한가로이 작가(作者)의 뜻 보면서 / 閑看作者意
동시대 살지 못함을 한탄하네 / 恨不同時生
[주-12] 울분 …… 울었네 :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도 시대를 잘못 만나 등용되지 못하면 울분을 토하며 때론 저술을 남겼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권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한비자(韓非子)는 진(秦)나라에 갇혀 있을 때 〈세난(說難)〉과 〈고분(孤憤)〉 편을 저술하였고, 《시경》 300편도 대개 성현이 울분을 토하여 지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분이 맺혀 있는데, 그것을 풀 방도가 없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하게 한 것이다.[韓非囚秦, 說難孤憤, 詩三百篇, 大抵賢聖發憤之所為作也. 此人皆意有所鬱結, 不得通其道也, 故術往事思來者.]”라고 하였다.
8
자방(子房)은 특별히 뛰어나 / 子房特高妙
굳센 난새며 봉황의 자태라 / 矯矯鸞凰姿
초나라 한나라 사이 빙빙 돌며 / 翺翔楚漢際
오동나무 가지에 깃들려 했지 / 欲棲梧桐枝
훌륭한 장막 속 계책이야 / 英英幄中畫
곡역후(曲逆侯)도 한발 물러설 일 / 曲逆讓其奇
진나라 격파하고 항우 멸하고는 / 椎秦與滅項
애오라지 도가(道家) 생활에 빠져 / 糠秕聊爾爲
단약(丹藥) 먹으며 적송자(赤松子) 따르니 / 服食從赤松
용의 성질 누가 구속하랴 / 龍性誰能羈
[주-13] 자방(子房)은 …… 했지 :
‘자방’은 한 고조(漢高祖)의 신하 장량(張良)의 자(字)이니, 그를 봉황에 비유한 것이다. 《시경》 〈권아(卷阿)〉에 “봉황이 우니, 저 높은 뫼에서 하도다. 오동나무가 자라니, 저 아침 해가 뜨는 동산에서 하도다. 오동나무가 무성하니, 봉황의 울음소리 화(和)하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菶菶萋萋, 雝雝喈喈.]”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注)에 “봉황의 성질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鳳凰之性, 非梧桐不棲, 非竹實不食.]” 하였다.
[주-14] 훌륭한 …… 일 :
‘곡역후(曲逆侯)’는 진평(陳平)을 가리키니, 장막 속에서 훌륭한 계책을 내는 능력에 있어서는 훌륭한 모사(謀士)인 진평조차도 장량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한 고조(漢高祖)가 공신을 봉할 때 “장막 속에서 작전 계획을 세워 천 리 밖의 승리를 결정지은 것은 자방의 공이다.[運籌策帷帳中, 決勝千里外, 子房功也.]”라고 하였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주-15] 진(秦)나라 …… 빠져 :
원문의 ‘강비(糠秕)’는 쭉정이와 겨란 뜻으로 여기서는 유가 사상(儒家思想) 이외의 도가(道家) 학설을 가리킨다. 장량은 한(漢)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는 세상일에 개입하지 않고 두문불출하여 벽곡(辟穀)을 하며 도인술(導引術)을 추구하며 살았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한편, 〈유후세가〉에는 벽곡, 도인, 적송자 등 신선(神仙)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용어들의 등장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했던 신선 설화와 유사한 결말, 즉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결말의 형식까지 공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유라, 장량설화의 한국에서의 수용, 도교문화연구 제41집, 한국도교문화학회, 2014, 131~132쪽》
[주-16] 단약(丹藥) …… 따르니 :
한나라가 건립되고 장량이 유후(留侯)에 봉해진 뒤에 속세의 미련을 버리고 신선술을 닦으면서 말하기를 “지금 세 치의 혀를 가지고 임금의 스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호에 봉해지고 열후의 지위에 올랐으니, 이는 포의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영광으로서 나에게는 이미 충분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제는 인간 세상의 일을 버리고 적송자를 따라 노닐고 싶다.[今以三寸舌爲帝者師, 封萬戶位列侯, 此布衣之極, 於良足矣. 願棄人間事, 欲從赤松子遊耳.]”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사기(史記)》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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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이 사는 초가집이 / 孔明臥草廬
세 번 방문에 사립문 열리니 / 柴扉三顧開
왕패의 도략 거침없이 쏟아내고 / 縱橫伯王略
담소하며 뛰어난 생각 드러냈지 / 談笑吐奇懷
삼십 년간 경영하였건만 / 經營三十載
염운(炎運)이 쇠함을 어이하랴 / 柰此炎運乖
저 기곡(祈谷) 길 탄식하며 / 歎彼祈谷路
오가며 절로 서둘렀다오 / 來去自棲棲
칼 어루만지며 함곡관 돌아봄에 / 撫劍睨函關
한 줌의 진흙 없지 않았나니 / 非無一丸泥
재주와 운명 서로 만났다면 / 才與命相偶
예악(禮樂)을 조화롭게 펼 수 있었으리 / 禮樂可和諧
영웅에게 성패를 따지니 / 英雄論成敗
비루하다 속인의 혼미함이여 / 陋哉俗人迷
소리 높여 〈출사표〉 읊조리매 / 朗詠出師表
맑은 빛 늠름하게 감도네 / 淸光凜昭回
[주-17] 공명(孔明)이 …… 열리니 :
후한(後漢) 말에 제갈량(諸葛亮)이 남양(南陽) 융중(隆中) 땅에서 초옥(草屋)을 짓고 농사지으며 은거하고 있었는데, 유비(劉備)가 세 번이나 찾아간 뒤에야 만날 수 있었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주-18] 왕패(王覇)의 …… 드러냈지 :
흔히 삼고초려(三顧草廬)로 표현되는 유비와의 만남에서, 제갈량은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차지하여 천하삼분(天下三分)의 형세를 이루고, 안으로 정치를 개혁하는 한편 밖으로는 동쪽의 손권(孫權)과 연합하며 서남쪽의 이민족을 위무하여 후환을 없앤 다음, 때를 기다려 북벌을 실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통일 국가를 건설한다는 중장기적 대책을 펼쳐 보였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주-19] 염운(炎運) :
오행가(五行家)에서 화덕(火德)으로 제업(帝業)을 일으키는 운(運)을 일컫는데, 여기에서는 한(漢)나라를 말한다. 촉(蜀)의 소열황제가 한 나라의 중흥을 표방하고 국호를 한이라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20] 기곡(祈谷) …… 서둘렀다오 :
‘기곡’은 기산(祈山)을 가리킨다. 제갈량은 위(魏)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이곳으로 여섯 번 출전하였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주-21] 함곡관 …… 진흙 :
후한 외효(隗囂)의 부장(副將)인 왕원(王元)이 “내가 하나의 진흙 덩어리를 가지고 대왕을 위해 함곡관의 틈새를 막아 버리겠다.[元請以一丸泥 爲大王東封函谷關.]”라고 했다. 《後漢書 卷13 隗囂列傳》 ‘함곡관’은 난공불락의 천혜의 요새이고, ‘한 줌의 흙’은 소수의 병력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제갈량이 촉(蜀)나라를 지킬 수 있는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로 쓰였다.
[주-22] 출사표(出師表) :
제갈량이 한실(漢室)을 부흥하기 위해 중원(中原)을 북벌(北伐)할 적에 촉 땅을 떠나면서 임금에게 올린 표문(表文)을 말하는데 “출사표를 읽고서도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자는 충신이 아니다.[讀出師表不泣者非忠臣.]”라는 말이 전해 올 정도로 그 충성스러운 마음이 심금을 울리는 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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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옛날 당나라 중도에 쇠할 제 / 唐運昔中否
육구가 바닷가에서 태어나 / 陸九生海隅
나라 다스리는 계책 펼치고 / 鋪張經國謀
인의에 부합한 출처 보였지 / 出入仁義途
위태로운 시대 당해 / 崎嶇際時危
감격하여 치구(馳驅) 허락하니 / 感激許馳驅
혼미한 자 어찌 굳이 추궁하랴 / 彼昏何足誅
유책(遺冊)에서 실마리 볼 수 있다오 / 遺冊見緖餘
성현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 聖賢未遇時
깊이 은거함만 못한 것을 / 不如且深居
[주-23] 육구(陸九)가 바닷가에서 태어나 :
‘육구’는 당(唐)나라의 명재상 육지(陸贄)로, 소주(蘇州) 가흥(嘉興) 사람이다. 《舊唐書 卷139 陸贄列傳》
[주-24] 치구(馳驅) 허락하니 :
‘치구’는 ‘구치(驅馳)’와 같은 말로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제갈량의 〈출사표〉에 “신은 본래 평민으로서 몸소 남양(南陽) 땅에서 농사지어 난세에 구차하게 생명을 보존하려 하였고 제후들에게 알려지거나 영달하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선제(先帝)께서는 신을 비루하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이 직접 왕림하시어 초려(草廬) 가운데로 세 번이나 신을 찾아 주시고 신에게 당시의 일을 자문하시니, 신은 이 때문에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께 구치(驅馳)할 것을 허락했습니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여기서는 제갈량이 유비를 위해 헌신하기로 했던 것처럼 육지도 국가를 위해 부지런히 봉직했다는 말이다.
[주-25] 성현(聖賢)도 …… 못하면 :
저본에는 ‘성현구우시(聖賢求遇時)’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맞게 수정하여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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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가 빈 골짝에 살며 / 幽人在空谷
노심초사 옛 도를 좋아하는데 / 苦心好古道
세상 경륜할 계책 함구한 채 / 括囊經世策
편안히 누워 늙는 줄 모른다오 / 高臥不知老
쌀독은 자주 비고 / 甁中粟屢磬
돌밭 볏모도 말랐건만 / 石田苗亦槁
마음 놓고 경영하지 않으면서 / 放心息經營
안색은 언제나 좋기만 하네 / 容顔常美好
금옥은 오래 지키기 어렵고 / 金玉難久守
좋은 명예를 보배로 여기니 / 榮名以爲寶
누가 알랴 현인 달사들이 / 誰知賢達士
고상한 데 마음 쓰는 것을 / 用意靑霞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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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한 용은 못 속에 있고 / 神龍在泥澤
자벌레는 몸 굽혀 때 기다리니 / 蠖屈以俟時
부열이 고종 만나 / 傳說得高宗
판축(版築) 일 그만두었네 / 乃與版築辭
계합이 일시에 일어나 / 契合在一時
영웅호걸이 이를 따르나니 / 英豪率由玆
이소가 동문 나가며 / 二疏出東門
벼슬 버림에 무얼 의심했으랴 / 挂冠更何疑
개지추는 진나라 포상 피해 달아나 / 介推逃晉賞
굳은 마음으로 자신 속이지 않았네 / 貞心不自欺
운명은 정해져 있거늘 / 大命有定端
허둥대며 어딜 가려는가 / 遑遑欲何之
[주-26] 신령한 …… 기다리니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자벌레가 몸을 굽혀 움츠리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숨는 것은 자신의 몸을 보전하기 위함이다.[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27] 부열(傅說)이 …… 그만두었네 :
‘판축(版築)’은 담장 쌓는 일을 말한다.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순(舜)은 밭두둑 사이에서 발신하였고, 부열은 담장 쌓는 곳에서 등용되었고, 교격은 어물과 소금을 파는 가운데에서 등용되었고, 관이오는 사관(士官)에 갇혔다가 등용되었고, 손숙오는 바닷가에서 등용되었고, 백리해는 시장에서 등용되었다.[舜發於畎畆之中, 傅說擧於版築之間, 膠鬲擧於魚鹽之中, 管夷吾擧於士, 孫叔敖擧於海, 百里奚擧於市.]”라고 하였다.
[주-28] 계합(契合) :
임금과 신하가 서로 화합하는 것을 말한다.
[주-29] 이소(二疏)가 …… 의심했으랴 :
‘이소’는 한 선제(漢宣帝) 때의 태자태부(太子太傅) 소광(疏廣)과 그의 조카인 태자소부(太子少傅) 소수(疏受)를 말하고, ‘동문’은 동도문(東都門)을 말한다. 소광이 태자태부가 된 지 5년 만에 스스로 성만(盛滿)을 경계하는 뜻에서 병을 핑계로 상소하여 사직하고 조카 소수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황제가 이를 허락하니, 고향인 동해(東海)로 갈 때 동도문 밖에서 송별연을 벌였는데, 그때 전송을 나온 공경대부(公卿大夫)의 수레가 수백 대나 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71 疏廣傳》
[주-30] 개지추(介之推)는 …… 않았네 :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24년 기사에 “진후(晉侯)가 망명 시절 수행했던 사람들에게 상(賞)을 줄 때, 개지추는 녹위(祿位)를 구하지 않았고 녹(祿) 또한 그에게 미치지 않았다. 개지추가 말하기를 ‘헌공(獻公)의 아들 아홉 사람 중에 유일하게 주군(主君)만이 살아 계신다. 혜공(惠公)과 회공(懷公)은 친근한 사람이 없어서 국내와 국외에서 그들을 버렸는데도 하늘이 진나라를 멸절시키지 않은 것은 반드시 나라에 주재자(主宰者)가 있게 하려 한 것이니 진나라의 제사를 주재할 사람이 주군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실로 하늘이 주군을 임금으로 세운 것인데 몇몇 사람은 자신들의 공로로 여기니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도 오히려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로를 탐하여 자신들의 공로로 삼는 것은 어떻겠는가. 아랫사람은 그 죄를 의(義)로 여기고 윗사람은 그 간악한 행위에 상을 내려 상하(上下)가 서로 속이니, 저들과 함께하기 어렵다.’하고 하였다.……드디어 은거하다가 죽었다. 진후는 개지추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면상(綿上)을 그의 봉전(封田)으로 삼았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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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강(杜康)으로 근심 달랠 수 있으니 / 杜康能消愁
저잣거리엔 참된 경지가 적구나 / 闤闠少眞境
묻노니 〈회사(懷沙)〉 지은 객이여 / 借問懷沙客
어찌 홀로 깨어 있다 자랑했던가 / 何爲誇獨醒
요명(窈冥)한 대도를 통달했건만 / 窈冥通大道
깊은 속내 누가 다시 알아주나 / 深情誰復領
안석에 거만히 기대 천하를 보나니 / 傲几視八極
기산(箕山)과 영수(穎水)를 어찌 알리오 / 寧知箕與穎
우스워라 당세 선비들은 / 却笑當世士
항상 마음 졸이는구나 / 憂心常炳炳
[주-31] 두강(杜康) :
최초로 술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사람인데, 전의되어 술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주-32] 회사(懷沙) 지은 객 :
〈회사〉는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한을 품고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을 때에 지었다는 부(賦)로, 《초사집주(楚辭集注)》 권4에 수록되어 있다. 《사기(史記)》 권20 〈굴원열전(屈原列傳)〉에 “굴원이 〈회사〉 부를 짓고는 돌을 품에 안고 멱라수에 투신해서 죽었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33] 요명(窈冥) :
《도덕경(道德經)》 제21장에 “그윽하고 아스라함이여, 그 속에 도(道)가 있도다.[窈兮冥兮, 其中有精.]” 하였는데, 요명에 대해 하상공(河上公)의 주(注)에 “형체가 없는 도(道)의 모습”이라고 하였고, 왕필(王弼)의 주에 “심원하여 볼 수 없는 모양”이라고 하였다.
[주-34] 기산(箕山)과 영수(穎水) :
높은 지조를 뜻한다. 중국 고대 요(堯) 때의 고사(高士) 허유(許由)가 기산에 숨어 살며, 임금 자리를 넘겨주려 하자, 영수에서 귀를 씻었다는 고사가 있다. 《高士傳 卷上 巢父, 許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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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서로 옮겨 가 / 四序相尋繹
추위 가면 또 더위 오니 / 寒往暑又至
이를 느끼며 무얼 하려는가 / 感此欲何爲
즐겁게 한번 취한다네 / 陶然成一醉
취한 뒤 맑은 노래 부르면 / 醉來發淸謠
잠깐 사이 참된 즐거움 일어 / 眞樂在造次
홀연 자신도 잊게 되는데 / 忽忽吾忘我
귀천에 대해 누가 알리오 / 誰知賤與貴
또 은자를 데려와 / 且携東皐子
마주하며 취미 말하네 / 相對說趣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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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과 기름은 불이 전하는 바요 / 薪膏火所傳
음양에는 참된 집 있다네 / 陰陽有眞宅
예로부터 선인들 / 古來羽化人
단약(丹藥) 만드는 부엌에 자취 남겼지만 / 丹竈留餘迹
순일함 지켜 조화로움에 처해 / 守一處其和
천이백 년간 몸을 닦았다네 / 修身千二百
세상 사람들 스스로 애태우다 / 世人自煎熬
늙기도 전에 백발성성하니 / 未老頭已白
깊은 산중으로 돌아가시게 / 歸去來深山
성명(性命)을 참으로 아껴야 하느니 / 性命眞可惜
[주-35] 순일함 …… 닦았다네 :
《장자(莊子)》 〈재유(在宥)〉에, 광성자(廣成子)가 황제(黃帝)를 타이르면서 “나는 도의 순일함을 지키고 도의 조화로움에 처하였기 때문에 천이백 년이나 내 몸을 닦아 오는 동안 나의 형체가 항상 쇠하지 않았던 것이다.[我守其一以處其和, 故我修身千二百歲矣, 吾形未常衰.]” 하였다. 또 주희(朱熹)의 《회암집(晦庵集)》 권85 〈조식잠(調息箴)〉에 “전일하게 지켜 화락하게 처하면, 천이백 살을 살 수 있으리.[守一處和, 千二百歲.]”라고 하였다.
[주-36] 성명(性命) :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건도(乾道)가 변(變)하여 화(化)함에 각각 성명을 정한다.[乾道變化, 各正性命.]”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본의(本義)에 “물(物)이 받은 것이 성(性)이고, 하늘이 부여한 것이 명(命)이다.”라고 하였고, 또 “각정(各正)이란 태어난 처음에 받는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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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오랫동안 적의 수중에 들어가 / 神州久陸沈
북방 오랑캐가 상도(常道) 어지럽히니 / 胡羯亂天經
공연히 바다에 뛰어들 마음 생길 뿐 / 蹈海空有心
닭 울음 들은들 끝내 무얼 이루랴 / 聞鷄竟何成
천지가 이미 무너지고 갈라졌고 / 天地已崩柝
세월 또한 여러 번 바뀌자 / 歲月亦屢更
사신들 날로 분분하게 왕래하며 / 冠蓋日紛紛
적의 조정으로 금패 실어 나르네 / 金貝輸賊庭
십만 개의 횡마검(橫磨劍)으로 / 橫磨十萬劍
누가 먼저 용맹 뽐낼까 / 賈勇誰先鳴
관중(管仲) 없는 상황 탄식한 성인(聖人) 말씀 / 聖人歎微管
천 년 뒤 나를 상심케 하네 / 千載傷我情
[주-37] 바다에 뛰어들 마음 :
어지러운 세상에 사느니 차라리 바다에 뛰어들어 죽겠다는 말이다.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인 노중련(魯仲連)이 조(趙)나라에 가 있을 때 진(秦)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을 포위하였는데, 이때 위(魏)나라가 장군 신원연(新垣衍)을 보내 진나라 임금을 황제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노중련이 “진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칭한다면 나는 동해(東海)에 뛰어들어 빠져 죽겠다.” 하니, 진나라 장군이 이 말을 듣고 군사를 50리 뒤로 물렸다고 한다. 《史記 卷83 魯仲連列傳》
[주-38] 닭 울음 들은들 :
영웅이 입신양명할 시기를 가리킨다. 진(晉)나라의 조적(祖逖)이 유곤(劉琨)과 함께 사주(司州) 주부(主簿)가 되어 같은 이불에 자다가 밤중에 닭의 울음을 듣고는 유곤을 차서 깨우고 일어나 춤을 추면서 “닭이 일찍 울면 난리가 난다. 대장부 난세를 만나 공을 세우자.”라고 하고는, 원제(元帝) 때 분위장군(奮威將軍)으로 북벌(北伐)을 했고, 석륵(石勒)을 격파하고 황하 이남 땅을 회복하였다.
[주-39] 적(賊)의 …… 나르네 :
금전과 화폐를 두루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조선(朝鮮)이 청(淸)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것을 가리킨다.
[주-40] 십만 개의 횡마검(橫磨劍) :
길고 큰 날카로운 칼로, 《구오대사(舊五代史)》 권88 〈진서(晉書) 경연광열전(景延廣列傳)〉에 “진나라에는 십만 개의 횡마검이 있으니, 옹은 싸우고 싶으면 빨리 오라.[晉朝有十萬口橫磨劍, 翁若要戰則早來.]” 하였다.
[주-41] 관중(管仲) …… 말씀 :
《논어》 〈헌문(憲問)〉에서 공자(孔子)가 관중을 찬양하면서 “만약에 관중이 없었더라면, 우리들은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하는 오랑캐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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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의 고목나무엔 / 庭前有古樹
밤낮으로 거센 바람 잦아 / 日夕多高風
많은 새들 우짖으며 / 衆鳥喧百族
정원을 날아다니네 / 飛翔一園中
어찌 알랴 대붕(大鵬)으로 변해 / 焉知大鵬化
구만리 길이 열릴 줄을 / 九萬路始通
가련하다 구름 사이 기러기여 / 可憐雲間鴻
예전에 활에 다쳐 슬피 우누나 / 哀鳴舊傷弓
[주-42] 대붕(大鵬)으로 …… 줄을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대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갈 적에,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 창공으로 날아올라 간다.[搏扶搖而上者九萬里.]”라는 말이 나온다.
[주-43] 활에 …… 우누나 :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한번 화살에 상한 새는 시위 소리만 듣고도 높이 난다.[傷弓之鳥, 聞弦音而高飛.]”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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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詩書)를 일찍이 좋아했는데 / 詩書夙所好
늙어 가며 새로 얻은 것 적구나 / 老去少新得
은미한 말 수사(洙泗)에서 끊어져 / 微言闃洙泗
진위는 더욱 의혹에 휩싸이니 / 眞僞轉相惑
세속 유자들 공연히 힘쓸 뿐 / 世儒空自劬
지극한 도는 막힘이 있다네 / 至道有關塞
스스로 심신에 증험할 수 있나니 / 苟自驗身心
어찌 감히 나라를 논하리오 / 豈敢論邦國
때때로 중묘의 문(衆妙門) 관찰하며 / 時觀衆妙門
안석에 기대 저녁 내내 말이 없네 / 隱几終夕默
[주-44] 수사(洙泗) :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두 강인 수수(洙水)와 사수(泗水)이다. 공자가 이곳에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주-45] 중묘(衆妙)의 문(門) :
‘중묘’는 도(道)를 가리킨다. 《도덕경(道德經)》 제1장에서 “도는 현묘한 중에서도 더욱 현묘하여 만물이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玄之又玄, 衆妙之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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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듣기론 옛 현인들은 / 吾聞古賢人
배우고 여가 생기면 벼슬한다는데 / 學而優則仕
말세 풍속은 청탁을 좋아해 / 末俗好干謁
어지러이 스스로 망신하네 / 紛紛自喪己
부정하게 짐승 열 마리 잡는 것을 / 詭遇獲十禽
왕량이 부끄럽게 여겼으니 / 王良以爲恥
잘못하여 한번 길 잃으면 / 差池一失路
털끝만 한 차이 천 리나 어긋나지 / 毫釐謬千里
벼슬하다 늙어 죽은들 / 老死簪紼間
썩은 냄새 누가 다시 기억하랴 / 腐臭誰復記
주임(周任)의 밝은 경계 있고 / 周任有炯誡
노자는 그칠 줄 앎을 귀히 여겼나니 / 老氏貴知止
높은 수레와 네 마리 말은 / 高車與駟馬
전복돼 오래 믿기 어려워라 / 傾覆難久恃
[주-46] 배우고 …… 벼슬한다는데 :
《논어》 〈자장(子張)〉에 “벼슬을 하면서 여가가 있으면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하고서 여가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라는 말이 나온다.
[주-47] 부정하게 …… 여겼으니 :
왕량은 옛날 말을 잘 몰았던 사람이다. 왕량이 일찍이 조간자(趙簡子)의 행신(幸臣) 해(奚)를 태우고 말을 법대로 몰자, 해가 온종일 짐승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는 왕량을 일러 천하의 천공(賤工)이라고 했다가, 그 후에 왕량이 다시 해를 태우고 고의로 말 모는 법도를 지키지 않고 짐승을 속여서 만나게 해 주자, 해가 하루아침에 짐승을 열 마리나 잡고는 왕량을 일러 천하의 양공(良工)이라 하고, 왕량을 자기 어자(御者)로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조간자가 왕량에게 해의 어자가 되어 달라고 말하자, 왕량이 듣지 않고 거절하여 말하기를 “내가 법대로 몰면 온종일 짐승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속여서 만나게 해 주면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잡으니, 나는 그런 소인(小人)과는 수레를 함께 탈 수 없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下》
[주-48] 주임(周任)의 밝은 경계 :
주임은 옛날의 훌륭한 사관(史官)이다. 주임이 “벼슬에 나아가 일을 담당할 능력이 없으면 물러나야 한다.”라고 한 말을 이른다. 《論語 季氏》
[주-49] 노자(老子)는 …… 여겼나니 :
《도덕경(道德經)》 제44장에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게 되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게 된다.[知足不辱, 知止不殆.]”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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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촉 지역엔 명산 많아 / 巴蜀多名山
종종 선인이 머무나니 / 往往棲仙眞
아득한 저 청성(靑城) 경계는 / 邈彼靑城界
풍속 교화가 태곳적 순수함 간직했네 / 風化太古淳
내가 좋아하는 범장생은 / 吾愛范長生
얼굴이 늘 신선한 동안(童顔)이었고 / 童顔常鮮新
상안에 사는 기리계는 / 綺皓在商顔
도화원에서 진나라 학정을 피했지 / 桃源避狂秦
한나라, 위나라, 진나라를 살펴보면 / 眼看漢魏晉
어지럽기가 먼지 같았으니 / 紛紛若埃塵
삼백 년 흐르는 세월 동안 / 歷歲過三百
어찌 약석(藥石)을 부지런히 일삼 았겠나 / 寧事藥石勤
또 듣건대 초(譙) 선생은 / 又聞譙先生
육친 버리고 은둔하여 / 高擧棄六親
신령한 성정으로 세상 끊으니 / 靈性自絶世
복된 땅에서 누가 나루터 물을까 / 福地誰問津
군평 또한 도(道)를 좋아해 / 君平亦好道
저자에서 점치며 벼슬 사양했네 / 卜肆謝簪巾
천 년 전을 회고하노라니 / 緬懷千載上
고상한 풍도 후인(後人)을 흥기시킨다 / 高風起後人
[주-50] 청성(靑城) :
중국 사천성(四川省) 도강언시(都江堰市) 남서쪽에 있는 청성산(靑城山)으로, 도교(道敎)의 다섯 번째 성지이다.
[주-51] 범장생(范長生) :
진(晉)나라 때 ‘청성 처사(靑城處士)’로 이름이 높았으며 130살을 살았다고 한다.
[주-52] 상안(商顔)에 …… 피했지 :
‘상안’은 사람의 얼굴 형태와 비슷한 모양의 상산(商山)이라는 뜻으로, 보통 상산의 별칭으로 쓰인다. ‘기리계’는 진(秦)나라 말기에 폭정(暴政)을 피해 상산에 숨어 살았던 네 명의 노인 중 한 사람이다. ‘도화원(桃花源)’은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가공의 땅으로, 진대(秦代)에 피난 간 사람들의 후손이 살았다는 별천지인데 여기서는 상산을 가리킨 것이다. 《陶淵明集 卷5 桃花源記》
[주-53] 어찌 …… 일삼겠나 :
국가의 병폐를 바로잡으려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약석’은 본래 병을 치료하는 약제(藥劑)와 폄석(砭石)인데, 잘못을 바로잡도록 규계(規戒)하는 말의 비유로 사용한다.
[주-54] 초 선생(譙先生)은 …… 끊으니 :
진(晉)나라 은자인 초수(譙秀)로, 파서(巴西) 사람이다. 그는 천하가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 인사를 폐하고 내외 친척을 보지 않았다. 《晉書 卷94 逸民列傳 譙秀》
[주-55] 복된 …… 물을까 :
선경에 사는 사람은 세상에 나와 돌아다닐 필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주-56] 군평(君平) …… 사양했네 :
‘군평’은 전한(前漢)의 은사(隱士) 엄준(嚴遵)의 자이다. 그는 촉(蜀) 땅에 은거하여 성도(成都)의 저잣거리에서 점을 쳐 주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는데, 하루에 100전(錢)만 벌면 가게 문을 닫고 발을 내리고서 저술을 일삼았다고 한다. 《高士傳 卷中 嚴遵》
<출처 : 서하집(西河集) 제1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황교은 유영봉 장성덕 (공역) |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