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심란한 마음에 떠밀려 으로 새벽길을 나섰다. 남편과 며칠째 마음의 담을 쌓은 터라 집을 뛰쳐 나왔버렸다.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았다. 애마는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국도를 질주했다. 숨막히는 상황을 벗어나 자연과 호흡하면 막힌 가슴이 뚫릴 것을 기대하며.
연둣빛 산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봄꽃이 무리지어 벙긋벙긋 꽃잎을 열었다. 길 가장자리에 ‘송소고택’입간판에 나를 맞는다. 만석꾼의 삶 속에 빠져보리라. 고택 앞에서 주위를 조망한다.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쳤고 앞으로 실개천이 도란도란 정겹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국이다. 봄볕을 흥건히 담은 고택은 고즈넉하다. 대문 앞에서 옷매무시를 가다듬는다. 평범한 대문이다. 문턱이 없다. 민초들이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턱을 없앤 것이 아닐까. 잘 정돈된 마당과 아담한 정원, 세월의 더께가 두껍게 내려앉은 대청마루가 객을 반긴다.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건축한 가옥이다. 구십구 칸이라지만 웅장하거나 고압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기둥도 서까래도 여느 집처럼 보통을 지향한다. 검소가 배어 있는 건축물에서 선비의 진면목을 발견했다. 지붕을 덮은 기와와 처마의 우아한 곡선은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다. 나처럼 직선만 추구하다 낭패를 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았는가. '강하면 부러진다.' 는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유연한 곡선을 외면한 채, 바늘 같은 성정이 들킨 듯 하여 애써 눈길을 외면했다.
깨어진 기와 조각에 흙을 켜켜이 넣어 물결무늬처럼 단아한 담장을 따라 걷는다.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하는 담에는 세 개의 구멍이 나 있다. 왜 구멍을 뚫었을까? 구멍 속을 살폈다. 사랑채의 풍경이 오롯이 잡힌다. 담 너머 사랑채에서는 여섯 개의 구멍이 있었지만, 안채의 동정을 식별할 수 없게 하였으니 남녀유별, 삼강오륜의 미덕을 담장에까지 접목 했을지 모를 일이다. 새 개의 구멍은 안채에서 사랑채의 손님을 살펴 음식을 장만한 지혜의 구멍이다. 때론 바깥세상을 동경하는 여인네를 위한 숨구멍 역할도 했으리라. 사랑채에 들른 호남을 훔쳐보며 이루지 못할 연정에 가슴앓이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담장을 쓸어본다. 높낮이가 적당히 얌전하다. 나지막한 담장이 의미심장하다. 벽을 낮춰 객들을 편케하고, 한편으론 담의 기능을 도모한 만석꾼의 고매한 품격을 읽을 수 있겠다.
송소고택 담장 앞에 서니 남편과 쌓은 마음의 담장이 떠오른다. 축구경기가 있는 날 밤이었다. 남편은 다음 날 새벽에 열리는 경기를 보겠다며 텔레비전 채널을 독점했다. 나란 존재는 아랑곳없다. 가슴에 파란 불꽃이 일렁인다. 치미는 감정을 다독여보았지만, 내성耐性은 한계치를 넘었다. 속마음을 앙칼지게 쏟아 냈다.
“도대체 언제까지 텔레비전만 보고 있을 거야?" 남편은 나의 말에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대꾸 한마디 없이 텔레비전 채널만 이쪽저쪽으로 바삐 움직일 뿐이다.
"마누라보다 축구가 더 좋으냐? 축구하고 살아라." 나의 정체성이 실종된 것 같아 송곳처럼 대들었다.
“잔소리 작작해라.” 대답이 가관이다. 자리를 박찼다. 잔소리꾼으로 치부했다. 화가 머리까지 치밀었다. 안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가버렸다. 마음의 빗장마저 야무지게 걸었다. 남편은 덤덤한데 제 성질 다스리지 못해 하릴없이 스스로 담장을 친 꼴이다. 나의 직선적인 성격을 잘 아는 남편은 ‘이내 풀리겠지.’ 허허실실 작전을 구사한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넘으려 할 것임은 틀림없다. '이번만은 높은 콧대를 꺾으리라.'
막상 뛰쳐나왔지만, 마음은 난마처럼 얽힌 거미줄처럼 복잡하다. 남들은 나를 두고 빈틈없이 찰방지다고 한다. 어리석게도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가치관을 확신하며 그것을 장점으로 여겼다. 고택의 담장에서 소통의 구멍의 의미를 되새긴다. 내가 친 단단한 담장에 남들은 답답하지 않았을까. 심호택 선생은 담장에 구멍을 내어 지혜롭게 소통을 꾀했건만, 나는 견고한 담 위에 철조망마저 얹었으니소통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없었을 터이다.
오늘 나의 돌출 행보는 소통 부재로 인한 남편과 쌓은 단절의 담이다. 어쭙잖은 자존심이 오만을 생산했으리라. 지금껏 남편과 수많은 담장을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했다. 돌아보면 그이는 견고한 나의 담을 슬그머니 잘 넘어와 주었다. 흑백논리를 앞장세운 까칠한 나의 성정을 어루만져 주었다.
사소한 일에도 담장부터 쌓고 보는 자신이 작았음을 고백한다. 송소고택 담구멍에 거듭 눈동자를 대어본다. 구멍 저 편에 황소같이 우직한 그이가 서 있다. 소통의 창이 있는 송소고택 담장이 우매한 나의 정수리에 강렬한 죽비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