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심리학] 위기때 말많은 리더, 조직 망친다
인지 심리학자이기에 게을리할 수 없는 공부 중의 하나가 뇌(腦)에 관한 연구다. 뇌의 작동방식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심리에 관한 보다 깊은 통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뇌에 관한 연구에서 심리 말고도 중요한 것 하나가 더 있다. 중추인 뇌를 비롯한 신체의 각 기관이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면 리더와 폴로어의 상호작용과 참으로 많은 구석이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2013년에 미시간대학 의과대학의 지모 보리긴(Jimo Borjigin) 교수 연구진은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죽기 직전에는 뇌가 심장에 너무 많은 지령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응급처치가 필요한 순간에 황금보다 귀하다는 심장 작동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보리긴 교수 연구진은 산소 결핍으로 죽기 직전 쥐의 뇌와 심장이 어떻게 교신하는가를 관찰했다.
산소결핍의 위기 상황에서 다급해진 뇌는 많은 종류의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시켜 엄청난 양의 시그널을 심장을 향해 퍼붓는다. 이로 인해 심장은 혼란감에 휩싸여 스스로 무너진다. 이른바 심정지 상태다. 어이없게도 이러한 심정지 상태에서도 뇌는 상당시간 활동하면 대답 없는 다른 신체기관들에 무차별적인 지령들을 보낸다. 그러면서 뇌는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다른 기관들을 스스로 무력화시키면서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보리긴 교수의 실험을 약간만 더 인문학적으로 바꿔 표현해 보자. 뇌는 모든 정보가 종합되는 일종의 중추적 센터다. 수많은 일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뇌를 제외한 신체의 각 기관은 각각 작고 구체적인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에 관한 명령만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순간에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뇌는 다급해진 나머지 그 모든 정보를 개별 신체기관에 무차별적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정보를 받은 개별 신체기관은 이제 각자 자신을 지키고자 하면서 다른 기관과의 협력과 상생을 중지한다. 이 상황을 보고 있는 뇌는 더욱 답답해지고 더 많은 지령을 내려 보낸다. 신체가 아비규환의 상태에 순간적으로 빠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심장은 자신이 버텨낼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정지해 버린다.
그러면 뇌를 리더로, 그리고 심장과 같은 각각의 기관을 맡은 일을 담당하고 있는 폴로어로 한 번 가정해 보자. 인간 세상에서 위기의 순간에 리더가 조직을 망가뜨리는 과정과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긴박한 위기의 순간에서 리더의 머리는 복잡해진다. 당연하다. 하지만 리더 한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수많은 생각들이 그대로 복사되어 폴로어들에게 전달되면 조직은 무너진다. 이럴 때일수록 지시는 간결해지고 분명해져야 한다.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 고위 장성들은 하급부대에 작전지시를 내리러 갈 때 작은 석판 하나만 들고 갔다고 한다. 그들이라고 해서 어찌 하고 싶은 말이 적었겠는가. 하지만 작은 석판에는 중요한 사항 2~3개만 적을 수 있고 정확히 이 정도의 내용만 하급부대 지휘관에게 전달된다. 그들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양의 명령이고 따라서 실행이 즉각적으로 일어난다.
혼란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스라엘이 1970년대 중동 국가들을 상대로 연전연승했던 가장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유 중 하나다. 위기의 순간에 리더의 말이 많아지면 조직의 심장이 정지한다. 보리긴 교수의 의미심장한 말을 되새겨 보자. 그녀는 산소 결핍의 순간에 뇌와 심장을 끊어 놓으면 3배 이상 더 오래 생명이 유지된다고 역설했다. 위기의 순간 리더의 달변보다는 침묵이 조직을 구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