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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11월 9일)●
0757년(신라 경덕왕 16) 행정 구역 개편, 9주 설치, 군현 지명 개편
1593년(조선 선조 26) 왜병에 함락되었던 평양성 탈환
1685년(조선 숙종 11) 서울 종각 불탐
1799년 나폴레옹, 쿠데타에 성공
1818년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 출생
1841년 영국의 왕 에드워드7세 출생
1867년 일본왕 명치 즉위
1872년 미국 보스톤에 대화재. 850명 사망
1874년 전두엽절제술을 개발한 포루투갈의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 출생
1878년 도산 안창호 출생
1882년(조선 고종 19) 한성조약
1899년 소파 방정환 출생
1905년 13도 유생들, 일본공사의 횡포 통박 성명
1905년 러시아 혁명의 발단이 된 '피의 일요일'
1913년 미국 제37대 대통령 닉슨 태어남
1918년 독일 노동자 혁명, 빌헬름 2세 퇴위
1918년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사망
1919년 김원봉 의열단 조직
1920년 단찌히 자유시 선언
1920년 보통학교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 藤榮作) 일본 수상에 선출
1965년 마르코스, 필리핀대통령 당선
1966년 경북선 철도 개통
1969년 문교부, 남자 고교생 및 대학생에 군사훈련 실시키로 결정
1969년 초음속여객기 콩코드 첫 비행
1970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사망
1978년 충북 청원에서 청동기 시대 고인돌무덤 떼 발견
1979년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부대 창설
1981년 노태우 정무장관 유럽-아프리카 13개국 순방 등정
1983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 일본 방문, 나카소네 수상과 회담
1986년 대한변협과 김근태 씨 부인 인재근 씨, 고문경관 및 관련자 15명 고발
1987년 민주당, 임시전당대회서 김영삼 총재를 대통령후보로 추대
1987년 전남 담양에 다섯 쌍둥이 탄생
1988년 조지 부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1989년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 국가주석직 사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군사위 주석에 선출
1989년 한국-멕시코, 경제과학 및 기술협정 체결
1990년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
1991년 베이커-아지즈 협상 결렬
1991년 이브 몽탕 사망
1991년 환경처, 국가환경선언 제정 방침 발표
1995년 부동산 실명제 발표
1995년 KEDO 설립관련 한-미-일 실무 협의 워싱턴에서 열림
1996년 금호미술관 개관
1996년 한국불교연 이사장 이기영 박사 별세
1999년 한평생 국내 오페라 개척한 성악대모 김자경 여사 별세
2000년 국학자 이가원 교수 별세
1796(조선 정조 20) <화성성역의궤> 완성
1878 (조선 고종 15) 항일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태어남
흥사단 조직, 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 서리 역임
1899 (대한제국 광무 3)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 태어남
1923년 최초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 창간
1917 창덕궁에 불남
1919 항일독립운동단체 의열단, 만주 길림성서 결성(단장 김원봉)
1926 이청천, 만주에 고려혁명사관학교 설립
1966 경북선 개통
1968 1-6월간 연예인 소득 집계 발표
1위 신성일, 965만원, 세금 339만 3,362원
1971 위수령(10.15에 내렸던) 해제, 대학에 진주했던 군부대들 원상 복귀
1979 한국인 선원 20명 탄 일본화물선 일본 근해서 침몰, 18명 실종 사망
1987 민주당, 김영삼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
1990 영광 함평 보궐선거, 평민당 이수인 후보 당선
755 중국 당 나라에 '안록산의 난' 일어남
1799 나폴레옹, 쿠데타 성공
1818 러시아 소설가 뚜르게네프(1818-1883) 태어남
"만일 내가 저녁을 먹으로 집에 늦게 돌아오거나 말거나 탓하지
않는 여성이 있다면 나는 모든 명성과 예술을 버려도 탓하지 않으리라."
1965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
1970 프랑스 전 대통령 샤를르 드골 세상 떠남
1988 조지 부시, 미국 제41대 대통령에 당선
1989 동독, 베를린장벽을 포함한 전 국경을 전면 개방
1989 중국 최고실력자 등소평 사임
●1396(조선 태조 3) 한양성 착공 개기제(開基祭)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한양성을 쌓는 공사를 시작, 19만 7천여 명이 동원돼 길이 17km 높이 12m의 성곽을 완성
●1839년 프랑스의 화가 다게르, 사진 발명
1839.1.9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인류 역사의 새로운 마당을 여는 발표가 있었다. 다게레오 타입이라 불리는 새로운 사진 기술이 그것이었다. 이로써 다게르는 오늘날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사진술의 기초를 닦았다
●1874년 화폐속의 인물 포르투갈-에가스 모니스 태어남
에가스 모니스(Antonio Egas Moniz (Caetano de Abreu Freire)1874. 11. 9 ∼1955. 12. 13
포르투갈의 신경학자, 정치가, 현대 정신외과술(精神外科術)의 창시자.
몇몇 종류의 정신질환의 근치술로서 전두엽절제술(前頭葉切除術 prefrontal lobotomy)을 개발한 공로로 1949년 월터 헤스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리스본대학교의 첫 신경학교수가 되었으나(1911~44), 뇌혈관조영법(腦血管造影法 cerebral angiography)을 처음으로 소개하고 발전시켰다(1927~37). 이 방법은 목동맥에 X선 흡수물질을 주입하여 X선 사진을 통해 대뇌혈관의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이 기술은 뇌하수체 종양과 같은 두개골 안의 질병을 진단하는 데 상당히 유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에가스 모니스는 변질된 분열증·심한 편집증 같은 일부 정신병에서 정상적 정신과정을 억압하는 반복되는 사고(思考) 양태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낸 뒤 전두엽과 시상(視床)을 연결하는 신경섬유를 자르면 비정상 사고양태가 보다 정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전두엽은 심리적 반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시상은 뇌의 가운데에 있으며 감각신호를 중계함). 1936년 그와 그의 동료 알메이다 리마는 전두엽절제술을 시술했는데 정신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인간대뇌에 행한 첫 수술이었다. 이 수술은 심한 증상 몇 가지를 없애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에 에가스 모니스는 단지 여러 다른 치료방법들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후에만 쓰일 수 있는 극단적인 처치라고 주의시켰다. 신경안정제가 등장한 후 시술되지 않는 이 수술은 대뇌의 작용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모니스는 정치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했다. 1903~17년에 수차례에 걸쳐 포루투갈 하원의원으로 일했으며, 마드리드에서 포루투갈 공사관으로 일했고 파리평화회의(1918~19)에 포루투갈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하기도 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 출생(1878.11.09~1938.03.10)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이 1878년 오늘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났다.유학생신분이던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대일본제국이 빼앗자, 1907년 도산은 귀국하여 대한 사람은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하는 계몽활동 외에도, 1904년 의친왕, 정재관(鄭在寬) 등과의 공립협회(共立協會) 창립, 1909년 김좌진·이갑(李甲) 등과의 서북학회 창립등으로 민족운동을 하였다. 또한 1908년 대성학교를 평양에 설립하였는데, 당시 대성학교의 교육방침은 정직하게 살자는 것이었다. 1913년 흥사단을 창립하였으며, 이후 박용만, 정순만, 이승만과 함께 미국 한인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19년 4월 13일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23년에는 만주에서 이상촌 건립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으나, 일본의 만주 침략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그가 실력 양성과 인재 육성을 부르짖자 급진파는 당장 싸울 인력이 필요한데 무슨 말이냐며 반대하였으나, 안창호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우선 인재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인재육성과 실력양성을 강조하였다.1930년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을 결성하였다가 1932년 체포되어 5년간 옥살이를 하였는데, 출소후 고향에 머무르면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이듬해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현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60세를 일기로 간경화로 별세하였다. 1973년 오늘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완공된 도산공원 새 묘소에 안창호 선생의 유해가 부인의 유해와 함께 합장됐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도산 안창호 선생 출생(1878)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이 1878년 오늘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났다.미국에서 유학 하다가 1907년 귀국해 애국계몽운동을 펼친 안창호 선생!안창호 선생은 평양의 대성학교와 흥사단 등을 통해 무실역행 등 인격수양을 위한 4대 정신을 가르쳤다.1973년 오늘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완공된 도산공원 새 묘소에 안창호 선생의 유해가 부인의 유해와 함께 합장됐다.[녹취:대한뉴스]
"한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유해와 부인 이희은 여사의 유해가 이곳 도산공원 새 묘소에 옮겨져서 합장됐습니다. 도산 선생은 1938년 3월 61세를 일기로 순국했습니다. 당시 일제 압력으로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던 선생의 유해는 36년 만에 미국에서 환국한 부인 유해와 함께 이번에 도산공원 새 묘소에 모셔진 것입니다."
●1890년 체코의 극작가 카를 차펙 태어남
"만일 개가 지껄일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 인간은 인간끼리 사귀기 어려운 것만큼 개와 사귀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차펙은 로봇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다. 그가 쓴 <로섬의 로봇>이라는 희곡에서 이 말이 처음 쓰였다. 로섬이라는 괴팍한 과학자가 자기 공장에서 온순한 노예인 기계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기계인간에게 감정을 불어넣어 결국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죽이며 끝내는 세계를 정복한다는 줄거리이다. 로섬이 기계인간에게 붙여준 이름이 '로봇'인데, 체코말로 '일'을 뜻하는 '로보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기계인간, 인조인간으로 불린 로봇은 과학자들이 연구하기 훨씬 전부터 과학소설의 단골로 등장했다. 러시아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아시모프는 로봇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많이 썼고, 로봇을 연구하는 학문이란 뜻의 로봇공학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소파 방정환 태어남(1899.11.09~1931.07.23)
아동 문학가이자 어린이 문화 운동가인 소파 방정환 선생이 1899년 오늘 태어났다.서울서 태어나 보성전문 학교를 나온 선생은 3ㆍ1 운동 때 독립 신문과 독립 선언문을 집에서 등사하여 돌리다가 검거 되기도 했다.1922년 세계 명작동화를 엮은 '사랑의 선물'을 펴냈고, 이듬해 일본 동경에서 아동 문화 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 서울에서 첫 어린이날을 마련했다.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1923)의 창간을 비롯 《신청년(新靑年)》 《신여성(新女性)》 《학생(學生)》 등의 잡지를 편집 ·발간했다.한편 동화대회, 소년문제 강연회, 아동예술 강습회, 소년지도자대회 등을 주재하여 계몽운동과 아동문화운동에 앞장섰다. 창작동화뿐만 아니라 많은 번역 ·번안 동화와 수필과 평론을 통해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운동을 하였다. 1940년 《소파전집(小波全集)》을 박문출판사(博文出版社)가 간행하고, 광복 후 조선아동문화협회(朝鮮兒童文化協會)에서 《소파 동화독본》 전5권을 펴냈다. 한편 새싹회에서는 '소파상(小波賞)'을 제정하여 해마다 수여하고 있다.
●의열단 결성(1919.11.09)
1919년 11월 9일 중국과 만주 지방의 한국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항일독립단체인 의열단이 결성되었다.암살·파괴 등의 테러를 일으켜 민중폭동을 선동한다는 의도를 가진 소수 결사단체로서 제1차 행동으로 1920년 9월 '부산경찰서투탄의거', 11월 '밀양경찰서투탄의거', 1921년 9월 '조선총독부투탄의거', 1922년 3월 '상해황포탄저격의거' 등의 격렬한 암살·파괴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곧 개인적 테러 활동의 한계가 드러났고, 1924년 사회주의·무정부주의가 유입되면서 탈퇴자가 생겼다. 또한 의열단 내부에서도 그 동안의 성과에 비해 희생이 컸다는 반성이 일어났고, 국내의 대중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이에 맞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기되었다. 이에 1925년 소수에 의한 폐쇄적 비밀결사의 틀을 벗고, 대중 조직에 기반한 무장투쟁노선으로 전환했다.1926년 조선민족혁명당으로 확대·개편해 활동했으나, 1927년 의열단으로 환원되었다. 1932년 10월 조선정치군사간부혁명학교를 개교해 민족혁명의 간부 양성에 주력하다가 1935년 7월 5일 조선혁명당·의열단·신한독립당·한국독립당·재미대한독립당·뉴욕대한민단·미주국민회·하와이국민회·국민동지회 등 민족주의단체가 통합해 조선민족혁명당이 출범됨으로써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히틀러 '나치스친위대(SS)' 탄생(1925.11.09)
독일 나치스의 준 군사조직인 SS가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 경호를 위해 1925년 11월 9일 탄생했다. SS는 독일과 유럽을 정복하려는 히틀러의 계획에 일조했다. SS의 책임자는 광적인 인종주의자인 헤인리치 힘러였고, 대원들은 독특한 휘장을 단 검은 제복을 착용했다. 활동은 국내외 정보수집, 첩보활동, 경찰업무 등이었다.SS는 처음에는 300명의 대원으로 출발했으나 나치 집권당시에는 5만명이 넘는 규모로 확대됐다. 1939년에는 25만명으로 증가했다. SS는 그후 경찰과 인종 업무를 담당하는 일반SS와 일반 군대보다 강도높은 훈련으로 최신 무기와 전투 장비를 두루 갖춘 무장SS로 분리됐다.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고 타 인종을 증오하도록 세뇌받은 SS대원들은 2차대전에서 거리낌없이 유대인, 정치범, 집시, 소련 전쟁포로, 폴란드 지도자 등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2차대전 패배후, 전범을 재판하는 뉘른베르크재판에서 범죄단체로 낙인찍혔다.
●2대 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 별세(1925.11.09)
나라가 망했어도 죽지 못했으니 / 망명길을 떠나네 / 경술년 어느날 아침 /
서울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니 / 서글픈 마음 무어라 말할 수 없고나 /
고국을 떠나기가 섭섭하여 차마 갈 수가 없네. ― 백암 박은식 ―
망국 후, 중국으로 망명한 백암 박은식(白巖 朴殷植)은 상해 임시정부 2대 대통령에까지 추대된 독립운동가이며, 황성신문 주필을 지낸 언론인이다. 어디 그뿐이었던가,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한 민족사학자이었다.그는 1898년 장지연·유근·남궁억과 황성신문을 인수, 주필·사장을 지내면서 항일운동에 발을 디딘 후, 한성사범 교사와 광문회에서 최남선과 저술활동을 하다가 나라가 일제에 망한 후, 중국으로 망명했다. 특히 백암은 1925년 9월에는 임시정부가 가장 어려운 때에 대통령(2대)으로 추대된바 있었다.1925년 11월 9일 중국 상해에서 세상을 떠난 백암은 임종 때 유언을 통해 ①독립운동을 하려면 전민족이 통일되어야 하며, ②독립운동을 최고운동으로 하여 독립운동을 위해는 서 어떤 수단·방략을 쓸 수 있는 것이며 ③독립운동은 민족전체에 관한 공공사업이니 동지간에는 애증친소(愛憎親疎)의 구별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전 민족에게 단결을 호소했다. 백암의 나이 67세였다. 1950년대 전북지구 병사구 사령관 박시창(朴始昌)장군은 백암의 아들이다.
●일본군 상하이 점령(1937.11.09)
일본의 침략으로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7월7일) 다섯 달 째에 접어든 1937년 오늘, 일본은 중국의 상하이를 침공 79일 만에 점령한다.일본폭격기와 함선들은 항구도시 상하이에 집중폭격을 퍼부어 도시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폐허가 된 상하이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의 점령 아래 있게 된다.
1942년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태어남
호킹은 21살 되던 1963년 불치의 병으로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장애인이 됐으나 블랙홀 등 현대 우주론분야에서 중요한 활동을 하고 있다.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 사망(1970.11.09)
샤를르 드골 프랑스 전대통령이 1970년 오늘 일흔 아홉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드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에게 파리가 함락되자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 뒤 런던에서 프랑스 동포들을 향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독일에 대한 계속적인 항전을 호소했다. 드골은 1944년 8월 25일 파리가 해방돼 프랑스 국민의 영웅으로 파리에 입성했다. 드골은 1946년 연립내각 구성에 반대해 돌연히 주석직을 사퇴했다.
1958년 프랑스의 식민지인 알제리의 반란으로 프랑스가 내란의 위기에 빠지자 총리에 취임한 드골.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의 제 5공화국을 선포하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드골 대통령은 1969년까지 11년 동안 위대한 프랑스를 내세우며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폈다.
●[1970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사망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프랑스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샤를 드골이 1970년 11월 9일 사망했다. 1890년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드골은 1차 대전 때 일선 장교로 참전했다 부상당해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2차 대전때는 기갑사단장, 국방차관직을 수행하다 파리가 독일군에 함락되자 런던으로 망명, 그곳에서 대독항전을 독려하며 레지스탕스를 조직했다. 해방후에는 임시정부의 수반, 총리, 국방장관 등을 역임했다.1947년 조직한 프랑스 국민연합(RDF)이 1951년 총선에서 제1당으로 부상했으나 1953년 이를 해체하고 정계를 떠났다. 그러나 1958년 6월 다시 총리가 된 드골은 그 해 9월 28일 마침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시킨 제5공화국을 발족시켰다. 1958년과 1965년 연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드골은 NATO 탈퇴 등 `위대한 프랑스`를 기치로 내걸며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섰고, 캐나다에서는 퀘벡의 독립을 부추겼다.드골은 프랑스 지식인들이 싫어하는 우익 정치인이었고 다소 독재적인 정치 성향을 띠었지만 사망 후에는 좌우익을 막론하고 그의 `위대한 프랑스` 건설을 지지하고 있다.
▶ 튀니지 무혈쿠데타 성공(1987)
1987년 오늘!튀니지의 베날리 총리가 무혈쿠데타에 성공해 전임 부르기바 대통령을 해임하고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한다.31년 동안 장기 집권을 했던 여든 네 살의 부르기바 대통령이 치매현상을 보여 국정수행이 불가능했다.튀니지 국민들은 부르기바 대통령의 장기독재 종식과 베날리 총리의 민주개혁 약속을 크게 환영한다.베날리 총리는 복수 정당제와 대통령 직선제 등을 실현해 튀니지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독일 분단의 상징 '베를린장벽' 붕괴(1989.11.09)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1989년 11월 9일 붕괴되었다. 1949∼61년까지 250만명에 달하는 동독의 기술자 전문직업인 지식인들이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도주하자 동독의 경제력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1961년 8월 12일 밤 동독은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모든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한 장벽을 설치했다. 그러나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가는 발길을 막을 순 없었다.1989년 10월 동유럽의 민주화로 동독의 강경보수 지도부가 해체되면서 11월 9일 장벽의 문이 활짝 열려 상호방문이 가능해졌고, 1990년 10월 3일 분단 41년 만에 통일독일이 탄생했다.
▶ 베를린 장벽 붕괴(1989)
1989년 오늘!동독의 동베를린 지역 책임자 귄터 샤보브스키는 베를린 장벽을 비롯해 동독의 모든 국경을 개방한다고 발표한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서냉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베를린 장벽!동독국민들이 계속 서독으로 탈출하고 민주화 개혁을 요구하면서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독일분단 44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지 28년 만에 분단의 현장 베를린 장벽은 개혁과 개방의 장으로 바뀌었다.국경이 개방되자 수백 만 명의 동독인들이 서독과 서베를린을 방문했다.베를린의 브란텐부르크문은 연일 역사의 현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동서냉전 완화에 크게 기여했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도 브란텐부르크문을 방문했다.베를린 장벽 개방과 함께 동독의 개혁은 더욱 가속화된다.동·서독은 결국 11개월 뒤인 1990년 10월 3일 역사적인 통일을 달성한다.
<참고> 도산 안창호 선생(1878~1938년)
http://kids.hankooki.com/lpage/study/200306/kd2003062317401727360.htm
<참고> 독일 나치 유대인 폭행-약탈(1938.11.09)
http://www.donga.com/fbin/moeum?n=dstory$c_134&a=v&l=0&id=200711090181
<참고> 불교학자 이기영 사망(1996.11.09)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9747&yy=2006
<참고> 냉전시대 상징물 베를린 장벽 붕괴(1989.11.09)
http://www.knnews.co.kr/news.asp?cmd=content&idx=659111이 게시물을..
오늘의 관심뉴스도 기부에 관한 기사입니다. 기부를 하기 위한 돈은 로또복권 당첨금이라 하여 다소 색안경을 쓰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복권 구매는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재원으로 사용된다는 목적을 생각하고 구입하는 분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천항씨는 2번 좋은 일을 한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복권을구매하고 당첨금은 이렇게 기부하는 문화 확산을 기원하며 아침을 엽니다.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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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이천항씨 로또 당첨금 기부 [대전일보 2007.11.08 22:10:45]
괴산군 문광면 문법리 이천항씨(50)는 지난 6일 로또 당첨금 1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탁 화제가 되고 있다
이씨는 우연한 기회에 구입하게 된 로또 복권이 3등에 당첨돼 세금을 제외한 전액 100만원을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문광면사무소에 전달했다평소 검소한 생활로 소문난 그는 항상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중 배움에 목말라 하는 고향 후배들을 위해 기탁 했으며 특히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문광면 조일순씨(여·행정7급) 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처럼 그의 선행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다”며 “그의 착한 마음이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괴산=오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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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日 (11. 09 日) |
1. 시 주요행사
❍ 제11회 정읍시장기 족구대회 개회식
- 11. 09(일) 10:00 / 국민체육센터, 체육공원
/ 25개팀 200여명(회장 이희섭)
❍ 제11회 정읍시장기 족구대회 폐회식
- 11. 09(일) 17:00 / 국민체육센터, 체육공원 / 25개팀 200여명(회장 이희섭)
2. 읍면동 주요행사
3. 유관기관 동향
4. 기타 동향
❍ 소년소녀가정 및 가정위탁 세대 아동체험행사
- 11. 09(일) 08:00 / 시청광장 ⇒ 에버랜드(경기도 용인)
/ 40여명(초등생 17, 중등생 23)
* 인솔 : 아동보육담당 외 직원 3명
❍ 수렵인협회 사냥대회 개최
- 11. 09(일) 09:00~17:00 / 정읍시 일원(집결 공설운동장)
/ 150여명(익산시 수렵인협회원)
❍ 베트남 참전유공전우회 정읍지회 월례회
- 11. 09(일) 18:30 / 유천회관 / 60여명(지회장 장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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