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기자와 인테리어 코디네이터는 곧바로 식탁 앞에 앉혀졌다. 오후 4시. 점심도, 저녁도 아닌 시간의 이상한 새참. 그런데도 김원희는 밥을 권했고, 그녀의 어머니는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청국장 괜찮아요? 우리는 이런 거 먹는데… 묵은 김치에 장아찌, 쿰쿰한 청국장이 있는 식탁에는 반찬보다 더 맛있는 사람 냄새가 물씬했다.
따뜻한 가족. 마치 시트콤 한 편을 보는 듯하던 그 가족의 풍경. 후덕한 인심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는 게 많아 줄줄 외우는 것도 많던 터프 가이 스타일의 남동생, 그리고 십년지기 친구처럼 뒤집어지게 웃고 말하게 했던 그녀의 허물없음에… 우리의 첫 만남은 조금 산만했으나 폭발적으로 유쾌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잡지 마감을 위해서는 설렁설렁 공사해서 후다닥 촬영하는 게 딱 맞는 일이었지만 모처럼 큰 맘먹은 그 여자가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할까. 카페에 마주 앉아 공사 계획을 세우는데 김원희는 야심만만이었고, 코디네이터와 기자는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언제 다 하나? 목공에, 칠에, 도배와 바닥 공사에, 가구 맞추고, 패브릭 준비하고, 청소와 정리정돈까지… 보름 안에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하나?
“내 방은 야들야들하게 하자구요. 꽃무늬? 나, 그런 거 무지 좋아하잖아. 촌스럽다 싶은 거, 그런 게 사람 사는 냄새가 나거든. 내 방에는 타일 깔아야겠어요. 타일 깔았더니 겨울에는 찜질방이고, 여름에는 냉장고던데. 바닥에 얼굴 대고 딱 누우니까 소름 끼치게 시원하더라구. 음… 또 뭐 해야 되나? 하여튼 쉼 없이 합시다. 쉼 없이! 가열 차게!” 오므라이스 한 접시 시켜 놓고 앉아 있는 동안 예쁜 집에 대한 그녀의 거창한 꿈이 줄줄 쏟아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체할 뻔했다는 기억. 물론, 그 날의 밥도 역시 그 여자가 샀다.
공사가 시작되었다. 김원희의 가족이 사는 집은 뾰족 지붕이 있는 주택. 조금 낡기는 했어도 외관은 아직 위풍당당한 집이었다. 공사를 위해서는 있는 짐을 모두 이삿짐센터에 맡겨 놓아야 했으므로 난데없는 이사가 시작되었다. 아침 8시, 기자의 핸드폰에는 김원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담겼다. 우리 지금 이사하잖아. 꼭두새벽부터 난리 났잖아요. 하여튼 모두모두 파이팅!….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가족은 처음 보았다. 정작 당사자인 김원희만 빼고 온 가족이 공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인부들 끼니 거르지 않게 하는 물주 노릇에 열심이었고, 남동생은 시키지도 않은 작업반장이 되어 뛰어다녔다. 시집간 큰언니는 하루 한 번씩 방문해서 감탄사를 내뱉고 돌아갔으며 몸이 약한 어머니는 수고하시네요, 힘드시지요? 걱정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쏟아놓았다. 그렇게 보름. 예정된 시간이 지나고, 집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신한 뒤 그녀의 아버지는 기자에게 말했다. 공원을 석 달 동안 뛰어도 안 빠지던 살이 3㎏이나 빠져 버렸네…. 하지만 가족들 모두가 그렇게 땀 흘리는 동안 김원희는 예외 없는 스타 대접을 받으며 언니의 집으로 피신해 살고 있었다. 이사와 촬영… 만두와 피자를 먹으며 배부르게 마감하다
이사가 끝난 다음날, 곧바로 촬영이었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 한쪽에서는 도배 마무리를 하고, 한쪽에서는 청소를 하고, 아직 풀지 못한 살림은 방 안 가득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한쪽에서는 촬영. 카메라 렌즈 밖의 풍경은 지옥 같은 난장판인데 그래도 렌즈 속 풍경은 화사하고 눈부셨다.
밥 먹을 겨를도 없어 점심에는 만두 시켜 먹고, 저녁에는 피자 먹으며 강행한 촬영. 짐을 다 풀지 못해 마치 모델 하우스 같은 세팅 공간으로 끝내야 하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김원희의 방을 촬영할 때, 예쁘다고 감탄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이 공간을 지금처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묻자 어머니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원희는 못해. 내가 치우지. 내가 지금이랑 똑같이 해 놓을 거니까 염려 말아요, 라고. 그 집. 몰라보게 예뻐진, 새집 같아진, 김원희 가족의 행복한 공간을 지금부터 하나씩 열어 본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 여자가 살고 있던 방은 조금 산만했다. 천장은 높고, 방은 복도식으로 긴 구조. 터널 같은 긴긴 공간 안에 수만 가지의 살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예쁜 여자가 살기에는 왠지 좀 어설프게만 보였다.
그 공간의 놀라운 변신. 길쭉한 구조를 커버하기 위해 가벽을 세우고, 텅 비어 있던 창가에는 키다리 가구와 수납 가구를 매치한 쉼터를 만들고, 침대며 화장대, 책상 등 모든 가구를 화이트로 새로 맞추고, 침구와 커튼까지 모두 완성되던 날, 이제 남자만 있으면 되겠다고 그녀와 우리는 입을 모았다.
1 김원희의 방 전경. 올 화이트로 마감한 공간에 화사한 꽃무늬 패브릭을 곁들였다. 방에 들어갈 때 선글라스 써야겠다고, 눈이 부시다고, 그녀가 말했다. 2 침대 한 옆에 놓은 화장대. 사이드 테이블로도 활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기능이 담겼다. 3 독특한 프레임의 키 높은 헤드보드를 세운 침대. 사각 홈에 예쁜 소품을 정리해 둘 수 있어 편리하다.
4 독특한 가구로 꾸민 창가. 양 옆으로 키다리 수납장을 세우고 가운데 쪽으로 의자로 쓸 수 있는 수납 박스를 놓아 이국풍의 쉼터를 만들었다.
5 이 책상이 특별한 것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서랍을 양 옆에서 열리도록 디자인했다는 것.
6 창가 쪽에서 바라본 풍경. 멋없이 길쭉하던 공간에 가벽을 세우고 가벽 안쪽에 수납장을 설치해 쓰임새 있게 단장했다. 가벽 안쪽에는 운동 기구를 놓고 헬스 공간으로 만들었다.
7 침대 발치에 슬림 사이즈의 컴퓨터 책상과 선반을 배치한 공간 활용 감각이 돋보인다.
김원희는 5남매 중 둘째.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날은 집 안의 모든 의자가 식탁 앞에 놓인다는 게 그녀의 말이었다. 그런 불편을 덜기 위해 시원스러운 크기의 식탁을 만들고, 벽 쪽으로 길게 붙박이 스타일의 의자를 플러스해 깜짝 놀랄 공간으로 완성했다.
반짝거리는 샹들리에와 예쁜 커튼, 기막힌 가구들이 모여 있는 곳. 이제 김원희는 근사한 카페나 최고급의 레스토랑 앞에서도 팽팽 코웃음을 칠 게 분명하다.
8 여기는 주방 한 옆의 가족 식당. 진한 월넛 프레임에 대리석 상판을 얹어 만든 식탁과 벽을 따라 길게 짜맞춘 붙박이 의자가 독특한 느낌. 블루 & 화이트 커튼이 격조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9 모던 앤티크 감각의 식탁과 두 개의 조명이 카페 같은 무드의 공간을 연출한다.
10 대리석 상판을 얹은 식탁은 독특한 프레임 덕분에 한결 고급스러운 느낌. 서랍을 달아 기능을 강조했다.
11 식탁 위에 설치한 두 개의 등. 단아한 갓에 크리스털 장식을 곁들여 고급스러운 느낌.
12 붙박이 의자 안쪽은 쓰임새 많은 수납장. 뚜껑을 열면 그 안쪽은 자잘한 살림들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다.
13 식탁 안쪽에는 일반적인 의자 대신 기능적인 붙박이 의자를 설치했다. 박스형의 의자를 ㄱ자형으로 배치한 뒤 방석과 쿠션으로 멋스럽게!
14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단장한 그녀가 멋스러운 식탁 앞에 앉았다. 혹시 숨겨 놓은 딸? 의심하게 만드는 예쁜 꼬마 숙녀는 그녀의 조카.
출처: 젤리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