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 샬롬 가톨릭] 평화방송
우리들의 봉부장님이
한 주 동안의 소식을 가득 안고
여러분 곁을 찾아갑니다!!
(원고는 페이스북에서 마주하시고,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더욱 깊게 즐겨주시기를!!!)
샬롬, 가톨릭 2018.7.28.(34회)
어느덧 7월말입니다. 일 년 중 가장 무덥다는 대서도 지났는데요. 8월에도 더위가 계속된다니 걱정입니다. 불볕더위에 한 주간 건강하게 지내셨는지요?
▶ 네. 낮엔 일하고 밤엔 벗들 만나 마시고, 햇빛보다 달빛에 많이 그을린 듯합니다.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 생각하면 덥다 소리가 쑥 들어가는데요. 페친 가운데 한 분이 일용직 노동자의 심경을 전하던데요.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근무하시는 분들께선, 저희같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몸 하나만으로 일을 하는 일용 근로자들의 마음을 아실려는지요.” 누구를 탓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운명이기에 순응하며 살아간다는 순박한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저 같은 사람은 죄스럽기까지 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 노동자들은 기도가 더욱 절절할 듯합니다.
▶ 네. 그분 글인데요. “일용 근로자들은 더위보다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이 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하루 일을 하면 가족이 행복해집니다. 그런 가족들 모습에 힘들었던 하루의 피로는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일을 할 수 있음은 행복입니다. 일은 점점 줄어들고, 나이는 먹어가 몸은 쇠약해져 갑니다. 거기다가 병이라도 생기면 자신을 위해 병원 한 번 찾지 못하다가 스러져 가는 게 우리 같은 일용 근로자들의 마지막 생입니다.” 서늘하게 다가오는 글인데요. 8월 7일이 입추, 머지않아 서늘한 가을이 오겠죠.
지난 월요일에는 정의당 원내대표였던 노회찬 의원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모두가 놀랐는요. 2012년 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을 떠오르게 하는군요.
▶ 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라는 연설이었죠.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들 같은 노동자들을 위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 하셨죠.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정말 명연설입니다.
근로자다 노동자다 하는 용어 문제로도 다툰 적이 있는데, 요즘은 지식인의 서늘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 2013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더 이상 노동자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 없다.”고 탄식한 적이 있는데요. 황지우 시인은 “아, 이게 뭐냐구요 - ‘전화 이야기’ 풍으로”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 이게 뭐냐구요.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죠. 나는 모든 급소마다 ‘노동자’는 ‘근로자’로, ‘계급’은 ‘계층’ 혹은 ‘사회구조’로, ‘폭력’은 ‘물리적 힘’으로, ‘투쟁’은 ‘대립’ 혹은 ‘갈등’으로 고쳐 번역하곤 해요. 이제 우리들, 절망의 뇌관을 다 제거했나요. 이게 뭔지 아직도 모르세요.”
언론 검열을 하던 군부독대 시절이 있었죠. 기자들도 주눅이 들어 먼저 자기 검열을 하며 내용을 순화하곤 했다던데, 수요일 저녁 쌍용차 해고 노동자 거리 미사는 다녀오셨나요?
▶ 아뇨. 그날 거리 미사 소식이 없어, 가톨릭 인터넷 대안언론이라고 할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창간 10주년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뒤풀이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염수정 추기경님이 서울시 구청장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천주교 서울 국제 순례길 조성 사업 이야기도 나왔던데, 고통 앞에 중립 없다고 주교님들의 대한문 쌍용차 희생자 빈소 방문 뉴스도 가톨릭 언론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위에 서울시장님이 옥탑방 생활 체험에 나섰던데, 성직자들도 앞장서 쪽방촌 같은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위로하는 일에 직접 나서보면 어떨까요. 케노시스, 자기비허,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며 말입니다.
이런 더위에는 어머니가 말아 주시던 국수 한 그릇이 그립죠. 고 노회찬 의원을 비아냥대며 잔치국수를 먹는 영상도 있던데요. 우리 사회도 교회도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서로 화합하는 행복한 길을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 네. 추모 글도 많지만 익명성에 기댄 악성 댓글도 넘치더군요. 추억 돋는 고영민 시인의 ‘황홀한 국수’라는, 동영상 같은 시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반죽을 누르면 국수틀에서 국수가 빠져나와/ 받쳐놓은 끓는 솥으로/ 가만히 들어가/ 국수가 익듯// 익은 국수를 커다란 소쿠리째 건져/ 철썩철썩,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듯// 손 큰 내 어머니가 한 손씩 국수를 동그랗게 말아/ 그릇에 얌전히 앉히고/ 뜨거운 국물을 붓듯/ 고명을 얹듯// 쫄깃쫄깃, 말랑말랑/ 그 매끄러운 국숫발을/ 허기진 누군가가/ 후루룩 빨아들이듯// 이마의 젖은 땀을 문지르고/ 허, 허 감탄사를 연발하며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은/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듯// 살다 갔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슬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듯합니다.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국수 한 그릇을 감사히 먹듯 인생을 만족하며 살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정말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슬퍼하지 마세요/ 세상은 슬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자살한 장국영을 기억하고 싶어/ 영화 ‘아비정전’을 돌려 보니/ 다들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이네요/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해요// 우수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살자들/ 살기엔 너무 지치고,/ 휴식이 그리웠을 거예요.” 신현림 시인의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라는 시인데요. 시인은 “되는 일 없으면 고래들도 자살하는데/ 이해해 볼게요 가끔 저도 죽고 싶으니까요.”라고 하면서, “그러나 죽지는 못해요/ 엄마는 아파서도 죽어서도 안 되죠/ 이 세상에 무얼 찾으러 왔는지도/ 아직 모르잖아요.”라며, “시를 쓰려는데 두 살배기 딸이/ 함께 있자며 제 다릴 붙잡고/ 사이렌처럼 울어댑니다.”라고 젊은 날의 한때를 그리더군요.
주교회의에서 최근에,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라는 책을 번역하여 펴냈던데, 우리 주변에는 우리에게 힘을 북돋워 주고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 성인들도 많이 있죠?
▶ 네. 26일은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 축일이었는데요. 25일 야고보 사도 축일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라는 권고에서, 성덕은 작은 몸짓으로 점점 자라난다고 하시면서 아주 쉬운 예를 드십니다. 어떤 부인이 장을 보러 시장에 갔다가 이웃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데, 남을 흉보는 이야기가 시작되자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죠. “아니야, 나는 누구에 대해서도 나쁘게 말하지 않을 거야.” 이것이 성덕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라고 교황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군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라는 권고에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거룩하게 살아가는 신앙인을 ‘옆집의 성인’이라고 부르셨지요. ▶ 네. 무한한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가정을 부양하고자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남녀, 병자들, 한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노 수도자에게서 ‘투쟁하는 교회의 성덕을 본다’(7항)고 하시며,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이들을 ‘옆집의 성인들’이라고 부르셨지요.
이번 주 가톨릭평화신문에서 보도한 대로 ‘옆집의 성인’ 같은 이탈리아 젊은이가 오는 10월 14일 바티칸에서 바오로 6세 교황,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등과 함께 성인품에 오른다고 하죠.
▶ 불우한 환경에서 주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다 19살에 숨진 복자 눈치오 술프리치오를 성인으로 선포해 젊은이들의 신앙 모범으로 제시하겠다는 거죠.
우리 한국 교회는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KYD라고 부르는 한국청년대회를 서울에서 여는데요. 열아홉의 나이로 성인품에 오르는 눈치오 술프리치오 같은 신심 깊은 젊은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더워서 신문 읽기도 귀찮은 분이 있을 테니, 가톨릭평화신문 기사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른 나이에 부모를 잃은 술프리치오는 삼촌 집에 얹혀사는 동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성질이 포악한 삼촌은 툭하면 불쌍한 조카를 때리고 학대했다. 급기야 심하게 매를 맞아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가 됐다. 그럼에는 그는 비관의 늪에 빠지지 않고 자신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에게 삶의 기쁨을 선사했다.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미약한 힘으로나마 늘 타인을 도우며 살았다. 그래서 별명이 ‘절름발이 꼬마 성인’이었다. 그는 골육종에 걸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병자성사를 주러 온 신부님에게 ‘기뻐하세요. 제가 하늘나라에 가면 거기서 신부님을 도울게요.’라고 말했다. 그가 눈을 감자 장미향이 나면서 뒤틀렸던 몸이 아름답게 펴졌다고 주위 사람들이 증언했다.”
‘그림 읽어 주는 여자’ 김현정 님, ‘신문 읽어 주는 남자’ 배봉한 님, 멋진데요. 술프리치오의 시복식을 주례하신 바오로 6세 교황님이 그와 한날한시에 성인 반열에 드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데요. 시성식이 예정된 10월 14일은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을 주제로 소집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회기 중이라고 하니 더욱 뜻깊습니다.
▶ 네. 1963년 바오로 6세 교황님은 그를 복자로 선포하시면서 “술프리치오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증언합니다. 젊음을 자유로운 열정과 퇴폐적 비관, 해로운 이기주의로 여기면 안 됩니다. 젊음은 은총이자 기회라고 그는 외칩니다.” 하고 말씀하셨다는데, ‘젊음은 은총이자 기회’라는 말이 아쉽게 들립니다.
요즘 냉방이 잘 된 커피숍서 피서하는 ‘커피서’, 쇼핑몰서 피서하는 ‘몰캉스’라는 신조어가 있던데요. 부장님은 특별한 피서법이 있으신가요?
▶ 네. “남보다 더 세련되고 더 고급스럽고 더 값비싼 휴식을 누리겠다는 욕망을 내려놓고 가지 않는 한 쉼은 없다.”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한 구절인데요. 저는 독서도 괜찮더군요. “백팔번뇌는 끝이 없구나. 세사 한 귀퉁이에 비루한 마음 걸어놓고 훨훨 껍데기 벗어던지며 떠나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럽다. 소멸의 시기는 눈앞으로 다가오는데 삶의 의미는 멀고도 멀어 너무나 아득하다.” 16권짜리 박경리 데레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 서문 한 구절이 나이 들수록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선생은 2008년 5월 5일 세상을 떠났고 소설만 남았죠.
지디의 축일과 생일로 인해 풍성했던 한 주,
우리 행복 가족들은 어떤 시간들을 보내셨는지
사진으로 모두 함께 만나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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