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이 부른다
함순자
보고 싶은 곳이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은 아직은 생명이 여상하여 살아 있다는 증거다. 어쩌다 시간에 여유가 생길 때 생각나는 곳이 내 고향 남강이다. 부르는 이도 없고 기다리는 이도 없지만 이른 새벽 첫차를 탄다.
이정표가 희끗희끗 지나간다. 낯설지 않은 지명들이 정답다. 드디어 남강이라는 표시가 나온다. 내 고향 진주라는 말보다 더 반가운 이름이 남강이다. 거기에 가면 잊어버린 친구의 이름도 기억나고 보고 싶은 어머니의 모습도 강물위에 어릴 것이다. 떠나버린 형제들의 얼굴도 떠오르리라. 남강이 부르는 듯 손짓을 한다. 첫나들이처럼 설렌다.
도시 한 가운데를 가르고 흐르는 남강은 진주의 기준이고 중심이다. 남쪽은 배 건너요 북쪽은 시내다. 철교다리(진주교) 난간에 서서 동으로 보면 도동 뒤벼리가 눈에 들어오고 서 쪽으로는 평거와 신안동 들판이 가물가물 하다. 바로 눈앞에는 촉석루가 마치 내 집 안채처럼 정답게 서 있다.
내가 태어난 곳은 평거의 샛터 이고 유년을 보낸 곳은 사시사철 포구(느티)나무에 그네가 매달려 있던 신안동 잿마당이다. 이렇게도 정겨운 지명들이 지금도 남아 있을까.
큰언니의 집은 장대동 둑 밑의 기와집이 즐비한 동네였다. 학교가 가깝다는 핑계로 언니 집에서 지낼 때가 많았다. 밤이면 가야금 가락에 맞춰 기녀들이 부르는 단가(短歌)나 판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는 풍악소리와 낭자머리에 귀태가 흐르는 여인들을 볼 수 있는 동네였다.
지금은 박물관이 자리 잡아 진주의 명소가 된 남성동은 내가 시집을 갈 때까지 살던 바로 친정이다. 우리 집은 진남루를 거쳐야 갈 수 있는 성안이었다. 뒤로는 북장대, 서녘으로 서장대, 동으로는 촉석루가 보이는 진양성 안이라 하여 안성안이었다. 옛날 경남도청이 있던 터라고 하여 도청마당이라 불리던 넓은 마당에서 남강을 바라보며 살았던 고향집은 없어졌지만 남강은 나의 요람이요 전쟁 중에는 피난처였다. 체육시간이면 선생님과 같이 손수건 돌리기를 하며 술래잡기 하던 백사장은 우리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내 고향은 세월이 하염없이 흘렀어도 잊혀 지지 않는 노래들이 많다. 남강과 촉석루에 얽힌 노래들을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어 가며 버스 안에서 소리 없이 흥얼거려본다. ‘진주라 천릿길을 내어이 왔던고, 촉석루에 달빛만…….남강 가에 외로이 피리소리를 들을 적에 ’ ‘진양성 감돌고 지리산 령을 잠들고 흐르는 남강아 얘기하라’ ‘남강 물 흐르는 진주 목메 우는 두 청춘이···’ ‘의곡사 우는 종은 가신님을 불러도...남강은 잠이 들고 꿈을 꾸는 촉석루...’ ‘비봉산 품에 안겨 남강이 꿈을 꾸는 내 고향 진주만을...’ ‘비봉산 허리에 아지랑이 기리고 의곡사 골짝에 풀국새가 울면은...’ 제목도 모르거니와 가사가 맞는지도 모른다.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절로 배워진 노래들이다. 언니 오빠들이 부르면 의미도 모르면서 따라 불렀다. 신기하게도 잘 외워졌던 고향 노래가 어찌 이 뿐일까. 고향 떠나 50년이 지났지만 고향은 가슴에서 별이 되어 흩어지기도 하고 달이 되어 뜨기도 한다.
고향에 가면 반드시 먹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부추전은 웬만한 한식당에서는 메뉴에 빠지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우리 진주의 고유 음식이다. 어머니의 냄새처럼 가슴에 서린 부추 전에는 반드시 방아잎(배초향)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 거기에 조갯살과 풋고추를 넣고 버무려서 구워낸 부추전의 맛, 바로 고향의 맛이다. 진주에 가면 어느 한식당을 가도달라는 대로 넉넉하게 여러 장을 준다. 방아 향은 어머니의 향기다.
어릴 적에 소풍가던 너우니와 굴바위는 진양호가 되고 신도시가 되었다. 나는 아침 시장에서 복숭아를 사서 들고 남강 가 카페에 앉아 옛날을 더듬으며 볼이 붉은 풋풋한 복숭아를 먹고 싶다. 하얀 모래밭은 간곳이 없어도 여름이면 엄마와 언니가 모래 뜸질 하던 곳이 어디쯤인지 눈을 감으면 떠오를까. 모래밭에 돌을 고이고 솥단지를 걸어 놓으면 멸치 한 움큼 넣고 감자와 풋고추를 넣은 수제비를 보약처럼 먹던 그날이 그립다.
나룻배를 타고 건너던 약수 암이 이제는 천수교를 건너면 바로 지척으로 가깝다. 일천 배를 드리러 가던 엄마를 따라 배 타고 건넜던 나루터도 없어졌다. 절 문전 까지 자동차가 들어간다. 나동면으로 가는 나룻배는 매일 오고 가지만 약수 암으로 건너는 배는 초파일이나 특별한 행사 때 외는 사공이 없었다. 초하루와 보름이면 엄마를 따라 배를 타고 망진산 자락을 휘돌아 칠봉산을 넘어 약수암으로 가는 길은 가까우면서도 멀었다
운동화가 신고 싶었다. 반구두 검정고무신을 살짝 가위로 흠집을 내고 운동화 사달라고 엄마한테 조르던 철부지 내 얼굴도 보인다. 군부대의 트럭을 빌려 타고 통영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흙먼지에 속 눈썹까지 뽀얗던 친구들, 서로 마주보고 네 눈썹이 하얗다고 소리치면서 신나게 노래 부르던 친구는 어디에 사는지,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군용터럭의 수학여행도 즐거웠었다.
고향 생각을 하다보니 버스가 진주의 톨게이트를 들어서고 있다. 남강이 보인다. 잃어버린 유년의 기억과 잊고 지낸 소중한 것들이 그리워 남강의 고운 여울을 찾아 천릿길을 오고 있다.

약력:2006년 에세이21등단
작품집: 산문집: 편지에 채워진 행복 이야기
수필집: 푸른 계절의 약속
첫댓글 노래 한 곡 보냅니다. <꿈에 본 내고향>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차마 못잊어.
참 그리운 옛날이여
고향을 보는듯
잘 그려주었네요
건강하셔요
안병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