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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년 한민족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웅(聖雄) 이 순신(李舜臣) 장군
-서 봉산 총재 창작판소리-
<70분 강의 자료 ⟶ 각종 단체에서 강의(講義)와 공연(公演)>
이는 ⌜한 성경 속편⌟ 40가지 종합교육목록에서 12번째 ⌜성웅 이 순신 장군⌟인데… 대표 장 대목으로 ‘임진왜란 대승’이다./ 명량대첩 승리를 기점으로 상승세를 얻은 이 순신은 결국 일본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고, 연전연승(連戰連勝)의 대승을 거둔 내용이다./ 이 전체에서 위대한 성웅(聖雄) 이 순신의 진면모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공연 순서(順序)는 해설⟹ 본문 한자⟹ 강의⟹ 퓨전 판소리
⌜한 성경 속편⌟ 종합교육 12
⌜단군 왕 검 팔리훈⌟ 제5장 화(禍)-1절 기(欺)
⌜참전성경 366사 중⌟ 제191사. 가장(假章)
1단계: 해설(解說)
<중모리 장단 -엄숙하게>
가장이란 거짓문장을 말함이니, 글을 거짓으로 꾸며 남을 속임이라/ 문장(文章)을 거짓으로 꾸며 속이는 자는, 붓을 잡아 글을 희롱(戱弄)하고 글씨를 바꾸어 어진 사람을 모함(謀陷)하며/ 옳지 못한 일을 권하여 선(善)과 악(惡)을 뒤바꾸며, 길(吉)과 흉(凶)의 자리를 바꾸어 놓느니라./ 한사람을 속이고 또 한 세상을 속인다면, 하느님께서 이를 전혀 용납(容納)하시지 않을 것이니, 하물며 이를 어찌 할 것인가.
‣문장(文章);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줄거리를 세워, 글자로 기록하여 나타낸 것// 종용(慫慂);잘 설명하고 달래서 권함.
2단계: 본문(本文): 한자
△假章者는 假托文章而欺也라 秉筆者는 弄文煥墨하고 捏陷賢良하며 慫慂凶擰하여 善
가장자 가탁문장이기야 병필자 농문환묵 날함현량 종용흉녕 선
惡을 顚倒하며 吉凶이 易地라 欺一人하고 欺一世하니 天必不容이니 況于斯哉아. 악 전도 길흉 역지 기일인 기일세 천필불용 황우사제
주(註)→ 가(假):거짓=거짓, 임시적, 빌다 ※임시적인 건물/ 탁(托):밀=밀다, 손으로 밀어서 열다/ 병(秉):잡을=잡다, 손으로 잡다/ 농(弄):희롱할=희롱하다, 가지고 놀다/ 날(捏):이길=이기다, 반죽하다/ 함(陷):빠질=빠지다, 떨어지다, 추락하다/ 종(慫):권할=권하다, 놀라다/ 용(慂):권할=권하다, 억지로 권유하다/ 녕(擰):어지러워질=어지러워지다, 어지럽다/ 황(況):하물며=하물며, 더구나, 이에.
3단계: 강의(講義)
1.근본 말씀
문장으로 윤색(潤色)하여 남을 속이는 죄는 말로 속이는 죄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대개 말이나 문장으로 남을 속이는 사람은 달콤한 감언이설(甘言利說)로써 꾸며지는 것이므로 인간됨이 허식(虛飾)과 기만(欺瞞)으로 가득 찬자들이다.
2.황 우석 교수의 거짓 논문
서울대학 수의대 황 우석(黃禹錫)교수가 2004~2005년에 영국 ‘사이언스 지(誌)’에 줄기세포가 발표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훌륭한 학자가 배출되어 세계가 놀랐다. 그는 세계의 생명과학계를 놀라게 했는데 가짜임이 드러나, 많은 국민들과 난치병 환자에게 실망을 안겨주웠다.// 서울 대 총장은 2006년 1월 11일 황 우석 교수 사태와 관련해 전 세계 과학 공동체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고 국민에게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이렇게 되어 논문도 게재가 취소되었고, 교수직도 파면과 함께 제1호 최고과학자 박탈 등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가져왔다. 그는 전 세계인을 속였으니, 하늘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본 참전성경 제191사 가장(假章)과 관련이 된다.
3.도요또미의 정명가도(征明假道)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또미⌟는 우리의 국서(國書) 답 중에 ‘명나라를 침략하기 위함이니 조선은 길을 내어달라’ 즉, 정명가도(征明假道)라고 하여 일본(日本)의 국서(國書)가 거짓으로 꾸며졌으니, 속임수에 해당한다. 이 문서는 거짓이었음이 드러나는데… 도요또미가 1592년 4월 14일에 유끼나가를 선봉장으로 15만 대군으로써 조선을 침략해 7년간 전쟁을 한 것이 그 실상이다.// 왜군은 조명(朝明)연합군에 의해 패색이 짙어지자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도요또미는 전쟁 중에 죽었는데, 1598년 유언으로 철군하라고 명을 내리니 7년간에 임진왜란은 끝이 났다./ 도요또미의 행위는 국서를 속였으니 대죄(大罪)에 해당하여, 그 죄과로 인해 하늘에서 내리는 화(禍)를 만나 죽게 되었고, 그로인하여 왜군이 철군한 것이다. 이 또한 본 참전성경 가장(假章)과 관련이 된다고 하겠다.
⍟주(註): 윤색(潤色) -광택을 내고 색칠함. 또한 시문(詩文) 따위의 초고를 다듬어 좋게 꾸밈, 또는 그 일
4단계: 퓨전판소리
⁌성웅(聖雄) 이 순신 장군⁍
①개요(槪要) <아니리>
이 순신은 한민족(韓民族) 1만 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충신(忠臣)이다. 지혜(知慧)를 모두 동원하여 거북선을 만들고 대비를 하였으며… 그리고 조총을 맞고 죽어가면서도 나라의 안위를 위해, 죽음을 감추고 전쟁을 계속하라고 명하였다!
②명량대첩(鳴梁大捷) <중모리 장단 -엄숙하게>
명량대첩은 동기8778[서기1597.선조30]년 9월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이 순신이 왜선을 격파한 싸움이다. 정유(丁酉)년 7월에 이순신은 다시 통제사에 기용이 되어, 전선을 정비하고 전략을 연구하여 왜병과 싸움에 대비하였다.// 9월이 되니 또 다시 ‘어란 포’로 쳐들어오는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단 12척의 배로 대비하고, 전선으로 이 순신은 진지를 벽파 진(碧波津)에서 우수영으로 옮기고 적의 내습(來襲)을 기다렸다.// 그 후 처음으로 적에게 자신의 위치와 규모를 파악 당했지만 퇴각하지 않고, 9월 16일 새벽 초라한 선단으로 대적 하였다. 그는 이루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적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오히려 전진(前進)해 결전(決戰)을 벌이고자 했다.// 그러나 장병들은 시퍼렇게 질렸다! 그 당시 ‘배 설’은 아프다는 핑계로 허락을 받고 곧 바로 내륙으로 도망 가버렸다.// 그러나 하늘의 총명(聰明)을 받은 이 순신은 묘한 지략이 있었으니, 그는 우수영 건너편인 진도 ‘벽파 정(壁派亭)’ 아래 진지를 세워 “우수영과 진도 간 해협(海峽)의 급류(急流)를 이용하여” 왜군의 130척의 선단(船團)을 격파하였구나! 이로써 일본은 패하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③백의종군(白衣從軍) <중모리 장단 -처연하게>
이 순신은 일본(日本)의 ‘고니시’ 모략에 말려들어 감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원 균이 번번이 패하여 선단과 무기 그리고 병사를 거의 잃어 위기 상황이 되니, 도체찰사 류 성용의 주청으로 평민 처지로 전쟁을 지휘하게 되었다.// 모친(母親)이 작고(作故)하였을 때도 백의종군(白衣從軍)시기라 초상(初喪) 일에 가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 후에 아들이 전투에 나가서 싸우다가 죽는 기막힌 일이 또 벌어졌으나 내색은 안 하고 오직 왜적의 방어와 공격 연구에 전염하였으니,// 어찌 보면 인간의 탈을 벗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나라가 풍전등화(風前燈火)라! 가족의 생사는 뒤로 하였으니 청사에 빛날 대 충신(忠臣)이니라!
④임진왜란 대승(大勝) <중모리 장단 -참담한 심정으로>
고니시의 계략에 말려든 조선은 조작된 허위(虛僞) 유포된 내용인 →“가등청정이 벌써 상륙했는데, 조선의 이순신은 어째서 요격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참으로 다행이다!”라는 유언비어를 첩자를 통하여 은근히 퍼뜨려서, 우리 조정은 정말로 그런 줄 알고 이 순신을 의금부에 투옥을 시켰으니 참으로 통탄 할 일이다.// 그의 자리에 원균을 대신 통제사로 삼았다. 그러나 원균은 전투에 져서 군함과 장비 그리고 많은 병사를 잃고 전의가 상실(喪失)되어 위급하게 되었다. 도체찰사 영의정인 류성용이 주청(奏請)하여 이 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기용하게 하였다.// 백의종군 하게 된 이순신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서 고문까지 당한데다가… 모친(母親)을 잃는 슬픔과 전쟁에서 아들의 전사(戰死)가 더해지면서 그의 심신은 극도로 나빠졌다! 그런 몸으로 이 순신은 사방을 뛰어다니며 병력과 무기를 모아야 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이 순신은 많은 연구를 해놓고 왜병을 명량 해로 유인하여, 우수영과 진도간의 해협 급류를 이용하여 왜군선단을 수장시킨 명량대첩 후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 공격해 크게 쳐부수고, 또한 왜적 200여척을 불살랐으며, 적병을 죽인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곧 이어서 왜선(倭船)을 뒤좇아 남해의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는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몸소 힘껏 싸웠는데~~ 날아오는 탄환이 그의 가슴을 뚫고 등위로 나갔다. 곁에 있던 부하들이 부축해 장막 안으로 옮겼는데, 이 순신은 “싸움이 한 참 급하니 절대로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고 공격을 계속하라!” 라는 말을 마치자 곧 숨을 거두었다.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가족의 죽음을 뒤로하고 온힘을 다해 국가에 충성을 다하다가 전사 하였으니~~ 일만 년 한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성웅(聖雄)이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⑤난중일기(亂中日記) <중모리 장단 -담담하게>
이 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쓴 7년간의 진중일기.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달인 1592년 5월부터 전사하기 전달인 1598년 10월까지의 기록이다. 일기의 중요한 내용은 엄격한 진중생활과 국정(國政)에 관한 솔직한 감회. 그리고 전투 후의 비망록(備忘錄)과 가족, 친지, 부하, 장졸 및 내외 요인들의 내왕(來往). 또한 부하들에 대한 상벌과 전황의 보고 그리고 장계 및 서간문의 초록 등이다.// 제가 지금도 가끔 일기를 쓰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쓰신 것을 생각하면, 깊은 안목(眼目)으로 이 피비린내 나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실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이리라. 그런데, 그 일기내용에는 걱정도 하고 눈물도 있고 어려움이 있으니…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지극(至極)하여, 모든 것을 참아낸 것이리라!
⑥선조의 시기(猜忌) <중모리 장단 -노여움과 기쁨으로>
이 순신이 명량 해전에서 기적보다 더한 승리를 거두자, 명에서도 ‘양호’를 위시한 고위급 지휘관들이 저마다 예물을 보내 축하(祝賀)했으며, 황제(皇帝)가지도 그에게 귀한 선물과 조선(朝鮮)의 왕보다도 높은 관직을 내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지나친 황제의 칭찬은 간신들이 선조에게 전했을 것이고… 선조는 반갑지 않게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결국 선조는 이 순신과 류 성용을 미워했을 것이다.// 이 순신이 전사하고 나니 간신배들이 류 성용을 모략중상(謀略中傷)이 줄로 이어졌다. 명황제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 순신 장군과 도체찰사 류 성용의 공로가 일부에서 수군거리니…… // 선조는 처결하려 고민하던 중에 류 성용이 관직을 내놓고 낙향상소를 올렸다. 그리하여 평민(平民)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선조는 어떠한 치사(癡事)와 공신(功臣)도 내리지 않았으니 가슴이 터지는 일이라! 영의정(領議政)인 류 성용은 모든 상황을 인지(認知)하고 미리 선수를 쳐서 목숨을 구한 것이리라. 그 후에 임진왜란에 대한 징비 록(懲毖錄)을 남겼다.
⑦류 성용의 공적(功績) <중모리 장단 -무게 있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이 순신을 뒤에서 밀어준 고위직이 있으니 바로 도체찰사(都體察使) 영의정인 류 성용 이다.// 선조 때는 당파에 휘발리어 바른 충신도 사색당파 싸움에 자기의 파에 득이 안 되면, 온갖 모함을 하여 내 모는 지경 이었다! 그리고 충신과 애국자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깎아내려 자기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를 감추려 하였다.// 이 순신은 고니시의 계략으로 감옥에서 고문(拷問)으로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에… 원 균이 해전에서 군함과 무기 그리고 병사를 거의 잃고 패하게 되었다.// 이 때 류 성용이 선조에게 간청하여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다. 선조는 의인과 충신은 멀리하고 간신의 말만 듣는 어리석은 왕이지만, 정치적으로 비중이 큰 류 성용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하였다.// 또한 류 성용은 큰 국사(國事)를 결정하는데 당신의 목숨을 수십 번이나 내놓고 앞장섰으니 나라의 대들보였다. 명나라 고위직이나 사색당파의 반대파에서도 건드리지 못하였다!!// 그래서 조정(朝廷)이 중심을 잡고, 7년의 임진왜란을 슬기롭게 버티고 밀고 나가, 결국은 왜군을 몰아내어 승리를 하는데, 도체찰사 류 성용이 절반은 공헌했다고 보겠다!// 제가 민족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2015년도 70주년 8.1.5 광복절 행사에 공연할 판소리 준비로~~~ ⌜700년 전 고려 후기부터 중국의 사대주의가 시작되어, 근세조선에서는 유교를 국교로 제정하여 국조단군을 무시한 내용과 여러 난맥(亂脈)상 또한 류 성용이 임진왜란 때에 지극한 충정 내용을 포함 시켜 ‘징비가(懲毖歌)’란 판소리사설을 창작하였다.⌟ 이 자료(資料)로 광복절기념행사장인 현충사에서 공연을 하였다.”//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과 이 순신 장군의 동상(銅像)은 있는데… 류 성용의 공적(功績)으로 해놓은 곳은 서울특별시 어디에도 없다… 임진왜란의 승리는 밖으로의 전투는 이 순신의 공적이라면 내적 즉, 정치적인 공적으로 명(明)과 왜(倭)를 요리한 것은 도체찰사인 류 성용이다! // 그렇지 않았다면 이 순신도 해전에서 승리가 없었을 것이고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도체찰사 영의정인 류 성용이 없었다면… 일본에게 속국(屬國)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이라도 적당한 곳을 찾아서 류 성용의 전시관을 마련하여, 8천만 한민족(韓民族)에게 명확(明確)하게, 그가 나라를 위하는 지극(至極)한 충정(忠正)을 알게끔 해야 하리라 ~~~~~.
⍟주(註) •이전투구(泥田鬪狗): ‘볼썽사납게 서로 헐뜯거나 다투는 모양’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대들보: ‘한 집안이나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마치면서 한 마디⁍
이 공연 판소리사설(가사)은 ⟶ 한민족의 중심이신 ‘단군 왕 검’께서 고래(古來)로 내려오는(4866년 전) 전통사상과 예의범절(禮儀凡節:윤리도덕) 등을 정리하여 팔리훈으로 구분하고, 거기에 각각 중요한 내용을 모아서, 참전성경 366사로 완성시켜 놓은 것이다.// 공연 순서는 4단계로 해설과 본문 그리고 거기에 맞는 강의(講義)를 해 놓고, 성웅 이 순신 장군 판소리로 약400년 전을 되돌아본 것이다.// 지금 일본이 독도를 자기나라의 영토라고 우기고, 또한 일제징용문제로… 경제보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외세의 수없는 침략을 당하고서도… 아직도 기강(紀綱)이 무너져있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나라가 이 지경이니! 지금 우리는 제2의 임진왜란을 당하는 꼴이다.// 이 원인(原因)은 고려 중기 이후부터 시작된 중국의 사대주의가, 근세조선에서는 유교를 국교로 제정하여, 국조단군(國祖檀君)을 무시(無視)하고 난 이후에… 중국의 저급문화인 매관매직과 부정부패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이, 지금의 현실(現實)이다.// 제가 우리 한민족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정신(精神)을 실현시키기 위해⟶ 한민족의 사상(思想)과 윤리도덕(倫理道德)을 되돌리려고… ⌜한 성경(韓聖經) 상하권⌟을 저술(著述)하였다. 이 하권(속편)에는 종합교육 40가지 목록(目錄)을 해놓았는데… 이는 한민족 ‘남북 해외동포’ 8천만 에게 가르치게 하려고 한 것이다.~~~~~
•東紀9217년 陰6월 2일 乙巳/ 西紀2018년 7월 14일 草稿
•東紀9218. 陰 9.1 己巳/ 西紀2019년 9월 29일 수정.
한국연호 東紀 제정 회 서 봉산 總裁
☀후원성금: 신한은행: 110-353-828627
010-7766-5169/ E: ska90108@hamail.net
'성웅(聖雄) 이 순신장군' 의
⌼임진왜란(壬辰倭亂)대승(大勝)
⍟개천절 민족공동행사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
1.부 천재/ 2.부 기념식/ 3.부 민족화합축재: 공연자
<한국연호 東紀 제정 회 서 봉산 총재>
•행사일: 檀紀4352년(2019)10월 3일 개천절민족(남북. 해외)공동행사
•장소: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 평양 단군릉
•1~2부: 천재와 기념식 11:00~12;00/ 3부 민족화합축제 13:00 ~ 16:00
종합교육 12. 제5장 화(禍) 1절 기(欺)
⌜참전성경366사 중⌟ 제191사. 가장(假章)
1~2단계 해설에 이어 본문 한자
△가장이란 거짓문장을 말함이니, 글을 거짓으로 꾸며 남을 속임이라!
⟹ 假章者는 假托文章而欺也라
가장자 가탁문장이기야
3단계: 강의(講義) -도요또미의 정명가도(征明假道)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또미⌟는 우리의 국서(國書) 답 중에 ‘명나라를 침략하기 위함이니 조선은 길을 내어달라’ 즉, 정명가도(征明假道)라고 하여 일본의 국서가 거짓으로 꾸며졌으니, 속임수에 해당한다. 이 문서는 거짓이었음이 드러나는데… 도요또미가 1592년 4월 14일에 유끼나가를 선봉장으로 15만 대군으로써 조선을 침략해 7년간 전쟁을 한 것이 그 실상이다.// 왜군은 조명(朝明)연합군에 의해 패색이 짙어지자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도요또미는 전쟁 중에 죽었는데, 1598년 유언으로 철군하라고 명을 내리니 7년간에 임진왜란은 끝이 났다./ 도요또미의 행위는 국서를 속였으니 대죄(大罪)에 해당하여, 그 죄과로 인해 하늘에서 내리는 화(禍)를 만나 죽게 되었고, 그로인하여 왜군이 철군한 것이다. 이 또한 본 참전성경 가장(假章)과 관련이 된다고 하겠다.
‣주(註): 윤색(潤色) -광택을 내고 색칠함. 또한 시문(詩文) 따위의 초고를 다듬어 좋게 꾸밈, 또는 그 일
<중모리 장단 -참담한 심정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대승’
고니시의 계략에 말려든 조선은 조작된 허위(虛僞) 유포된 내용인 →“가등청정이 벌써 상륙했는데, 조선의 이 순신은 어째서 요격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참으로 다행이다!”라는 유언비어를 첩자를 통하여 은근히 퍼뜨려서, 우리 조정은 정말로 그런 줄 알고 이 순신을 의금부에 투옥을 시켰으니 참으로 통탄 할 일이다.// 그의 자리에 원 균을 대신 통제사로 삼았다. 그러나 원 균은 전투에 져서 군함과 장비 그리고 많은 병사를 잃고 전의가 상실(喪失)되어 위급하게 되었다. 도체찰사 영의정인 류 성용이 주청(奏請)하여 이 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기용하게 하였다.// 백의종군 하게 된 이 순신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서 고문까지 당한데다가… 모친(母親)을 잃는 슬픔과 전쟁에서 아들의 전사(戰死)가 더해지면서 그의 심신은 극도로 나빠졌다! 그런 몸으로 이 순신은 사방을 뛰어다니며 병력과 무기를 모아야 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 이 순신은 많은 연구를 해놓고 왜병을 명량 해로 유인하여, 우수영과 진도간의 해협 급류를 이용하여 왜군선단을 수장시킨 명량대첩 후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 공격해 크게 쳐부수고, 또한 왜적 200여척을 불살랐으며, 적병을 죽인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곧 이어서 왜선(倭船)을 뒤좇아 남해의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는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몸소 힘껏 싸웠는데~~ 날아오는 탄환이 그의 가슴을 뚫고 등위로 나갔다. 곁에 있던 부하들이 부축해 장막 안으로 옮겼는데, 이 순신은 “싸움이 한 참 급하니 절대로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고 공격을 계속하라!!” 라는 말을 마치자 곧 숨을 거두었다.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가족의 죽음을 뒤로하고 온힘을 다해 국가에 충성을 다하다가 전사 하였으니, 일만 년 한민족사(韓民族史)에 가장 위대한 성웅(聖雄)이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마치면서 한 마디⁍
이 공연 판소리사설(가사)은 ⟶ 한민족의 중심이신 ‘단군 왕 검’께서 고래(古來)로 내려오는(4866년 전) 전통사상과 예의범절(禮儀凡節:윤리도덕) 등을 정리하여 팔리훈으로 구분하고, 거기에 각각 중요한 내용을 모아서, 참전성경 366사로 완성시켜 놓은 것이다.// 공연 순서는 4단계로 해설과 본문 그리고 거기에 맞는 강의(講義)를 해 놓고, 성웅 이 순신 장군 판소리로 약400년 전을 되돌아본 것이다.// 지금 일본이 독도를 자기나라의 영토라고 우기고, 또한 일제징용문제로… 경제보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외세의 수없는 침략을 당하고서도… 아직도 기강(紀綱)이 무너져있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나라가 이 지경이니! 지금 우리는 제2의 임진왜란을 당하는 꼴이다.// 이 원인(原因)은 고려 중기 이후부터 시작된 중국의 사대주의가, 근세조선에서는 유교를 국교로 제정하여, 국조단군(國祖檀君)을 무시(無視)하고 난 이후에… 중국의 저급문화인 매관매직과 부정부패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이, 지금의 현실(現實)이다.// 제가 우리 한민족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정신(精神)을 실현시키기 위해⟶ 한민족의 사상(思想)과 윤리도덕(倫理道德)을 되돌리려고… ⌜한 성경(韓聖經) 상하권⌟을 저술(著述)하였다. 이 하권(속편)에는 종합교육 40가지 목록(目錄)을 해놓았는데… 이는 한민족 ‘남북 해외동포’ 8천만 에게 가르치게 하려고 한 것이다.~~~~~
東紀9217. 6. 2 乙巳/ 西紀2018. 7. 14 草稿
東紀9218. 9월 1일 甲子/ 西紀2019. 9.. 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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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력사항에서 첨부: '현대사의 주역' 인문사전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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