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의학 이야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감각 떨어지는 초기 증상 치료가 중요한 한센병
무뎌진 나의 감각을 깨우는… ‘여행’
나균에 의한 피부·신경계 등의 감염 질환인 한센병
조직의 손상이 일어나기 전 초기 치료가 중요
감각이 소실되는 증상이 있다면 지체 말고 병원 찾아야
여행을 통해 세련된 인생의 감각 유지하면 좋을 듯
나는 과연 잘살고 있는 걸까요? 내 생활의 프레임은 내가 만든 것이지만 언제부턴가 그 프레임 속에 나를 가두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만든 프레임이 시키는 대로 몸을 맡겨 의지 없는 생활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 그리고 먹고, 만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반복된 생활, 무뎌지는 감각은 내 존재마저 무뎌지게 합니다.
감각은중추신경계의이상, 즉뇌나척수에이상이생기거나말초신경계의이상으로소실된다. 또한흔하지는않지만한센병의증상초기로감각이 마비될 수도 있다. 사진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한 장면. UIP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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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나의 감각을 새파란 칼날처럼 세우는 것, 바로 여행입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자극들은 나의 감각을 일깨우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여행은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는, 내 삶의 비타민입니다.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해외여행을 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모르는 노선의 시내버스를 타고 한 바퀴를 도는 것도 여행이고 추억 어린 초등학교를 찾아내 꿈을 되새겨보는 것도 여행입니다. 쪽잠을 자듯 짬을 낸 찰나의 여행은 누구에게나 가능합니다.
틀에 박힌 일상들에 지치고 어렸을 적 꿈들이 아득해진다면 여행을 떠나야 할 때입니다. 소중한 친구와 모터사이클 한 대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들어가는 나의 감각을 일깨우는 풍경, 바람, 냄새,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삶에 대한 여행의 의미를 잘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체 게바라의 동명의 여행기를 영화화한 것으로 의대생이었던 체 게바라가 남미를 여행하면서 혁명가로 눈을 뜨는 과정을 차분히 보여줍니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보여 주듯 현실의 여행은 매번 낭만적이지는 않습니다. 떠나고 부대끼고 다시 돌아오는 우리의 삶처럼 힘들고 고된 여정이 되기도 합니다. 체 게바라는 그 여정을 통해 의사로서 자신의 모습을 조각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23세의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엉뚱하고 열정적인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남미 대륙을 횡단하는 야심 찬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이동 수단은 언제 고장 날지 모를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낡은 오토바이 한 대, 그리고 텐트와 침낭이 전부입니다. 무일푼으로 숙식의 대책도 없는 여행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안데스산맥을 가로질러 칠레 해안을 따라 사막을 건넌 후 아마존으로 뛰어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곳곳에서 해프닝으로 위기를 맞지만 게바라와 친구는 하나씩 극복해가며 남아메리카의 사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게바라는 의대 졸업을 앞둔 예비의사로서 열정에 차 있습니다. 그러나 여행 중에 만난 현실의 벽은 높았고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에 고민합니다. 특히 나병(한센병)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게바라는 산파블로 나환자촌에 잠시 머물게 되는데 그곳에서마저 환자의 인권이 침해받는 것을 봅니다. 게바라는 환자들의 고통을 줄여보고자 과감히 도전해 환자들을 감동하게 합니다.
게바라는 나병(한센병)은 피부를 통해 쉽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며 장갑 착용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한센 환자들을 격리하는 것에 반감을 품고 강을 헤엄쳐 건너는 퍼포먼스를 벌입니다. 남미는 아프리카와 함께 세계적으로 한센병이 많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로 환자들이 고통받는 것을 개혁하려고 했던 체 게바라, 그는 이미 혁명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센병은 나균에 의한 피부, 신경계 등의 감염 질환입니다. 감염 경로는 정확하지 않으나 상기도나 피부에 난 상처 등을 통해 전염될 수 있습니다. 그 경우도 전혀 치료하지 않은 심한 증상의 환자와 밀접한 접촉을 했을 경우이며 대부분의 사람은 면역력이 있어 발병하지 않습니다. 현재 치료를 받고 있거나 치료가 끝난 환자들에게서는 전혀 전염되지 않습니다. 나균은 매우 약해서 치료를 시작하면 전염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전에 병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을 때 잘못된 지식으로 많은 환자들이 격리되고 고통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조기에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은 손 발 등에 기형이 남는 후유증이 있었는데 단지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아픈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말초 신경계를 침범한 경우 감각이 소실돼 외상에 둔해집니다. 그래서 조직의 손상이 일어나기 전 즉 감각의 소실이 생기는 초기 치료가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감각의 소실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합니다. 중추신경계의 이상, 즉 뇌나 척수 이상으로 감각이 마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말초신경계 이상으로 오는 감각의 소실이 있는데 당뇨병의 합병증에 의한 신경병변이나 말초신경염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드물게 나균에 의한 한센병의 증상 초기로 감각의 마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감각은 고통을 수반할 수 있습니다. 통각도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픈 감각은 나를 지키는 소중한 방어 체계입니다. 위험에서 나를 보호하고 손상되는 것을 막는 감각, 이것이 무뎌지면 내 몸은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감각이 소실되는 증상이 있다면 지체 말고 병원을 찾아 그 원인을 찾고 조기에 치료해야 하겠습니다.
내 삶의 감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의 감각들은 삶의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상의 감각들이 무뎌진다면 내 삶은 메마르고 황폐해지기 쉽습니다. 인생을 풍요롭고 빛나게 만들려면 내 삶을 돌아보는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세련된 인생의 감각을 유지하는 것, 여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긴 여행도 있지만, 찰나의 짧은 여행도 소중한 인생의 단비가 될 수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돈,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입니다. 정말 여유가 없다면 영화를 통해 간접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습니다. 이번 주말 모터사이클을 타고 교외로 훌쩍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척추전문 나누리서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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