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의정부 문학’ 전국 공모전 시부문 심사평>
“시(詩)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사랑이 있다는 증거”
이 시대 시(詩)란 무엇인가요, 사람 향기가 더욱 고프고 그리운 때라서 응모작들을 기쁘고 아리게 읽었습니다. 예년보다 응모 편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주최 측의 홍보 부족 탓도 있겠지만 바쁘고 폭폭한 일상(日常) 생활 가운데 시 창작은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니지요. 그런 가운데 사람 냄새 물씬 풍기고 우리네 인생을 다시금 관조하게 하는 수작(秀作)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반부에서는 오랜 고심 끝에 김세정 님의 유년 시절의 철거촌을 배경으로 쓴 ‘개미 골목’을 금상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원숙한 시적 형상화, 탄탄한 구성력, 시상(詩想)을 밀고 가는 힘 등 오랫동안 시를 앓아온 흔적이 보입니다. ‘비 비린내 사이를 매돌던 / 어느 집 국간장 냄새’, ‘소박한 밥상 위로 / 어제와 다름없이 날이 저물면’ ‘골목을 벗어나 배신자처럼 / 웃던, 웃던 / 끝내는 울어버리던’ ‘자라지 못한 어제인양 지붕 낮은 집들’, ‘허기진 발목이 나보다 먼저 /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을 / 서성거린다’ 등이 이를 뒷받침해주며 참신하고 서민적인 발상, 감정의 절제와 상황과 정서의 객관화가 돋보입니다. 정월숙 님의 ‘공원에서’는 사유(思惟)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빈방의 어둠은 하루치의 바닥을 차고 올라 / 까칠한 보리수염으로 자라나고 있었다’같은 표현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인의 섬세한 눈과 연민에 마음이 갑니다. 하지만 무게가 있으나 표현이 다소 가볍습니다. 시 제목과 내용의 유기적 결합, 시어의 선택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그 외 입선한 모든 분들의 작품이 일정한 시적 자질과 기량을 갖추고 있어 훗날을 기약합니다.
고등부에서는 수원 영덕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양기훈 학생의 ‘과도기’와 ‘뿌리’를 금상에 선정했습니다. ‘흩어진 언어를 / 빗방울로 연재중’, ‘야윈 그믐달의 필사적인 날갯짓’(‘과도기’)이나 ‘침묵을 알기에 소음을 배운다’등 철학적이며 아포리즘적 의미 등 고등학생으로서는 높은 언어 구사력과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입니다. 하지만 자칫 난해함으로 흐를 수 있으니 시어(시구)의 유기적 결합과 행가름 및 연나눔에 유념하기 바랍니다. 의정부 경민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수아의 ‘밤하늘’ 역시 범상치 않은 탄탄한 실력을 갖춘 작품입니다. 각 4행씩 5연의 정갈한 형식과 ‘밤하늘 – 도화지 – 우주’로 펼쳐지는 화자의 꿈이 대견해 보입니다. 또한 ‘이제는 별을 볼 수 없다 슬퍼하시’는 ‘아버지, 어머니’를 그리며 ‘별’을 ‘뿌려보고 담아보는’ 화자의 마음이 곱고 이쁩니다. 고등부 입선에 든 대부분의 작품들이 설익었으나 풋풋하고 싱싱하고 깨끗하면서 생명력이 넘칩니다. 앞으로도 계속 한 땀 한 땀 이쁘게 수놓아 가기를 바랍니다.
중등부에서는 적은 응모 편수만큼 좋은 작품을 많이 선보이지 못하게 됨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 중 전남 목포 덕인중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전대산 학생의 ‘내가 만난 봄’을 은상에 올리는데 합의했습니다.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계절 ‘봄’에 어린 중학생으로서 이만한 사랑을 주고 관심을 갖고 소통하려하는 노력이 기특해 보입니다. 또한 ‘민들레 속에 몰래 숨겨진 너’를 볼 수 있고 ‘내 마음속 차지한 / 너의 향긋한 미소가 자꾸 커져’가는 화자의 깊고 넓은 눈과 마음에 높은 평가를 주었습니다.
시인 박목월 선생은 “문학을 좋아하고 시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사랑이 있다는 증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류가 살아가는 에너지원이 바로 사랑이 아닐는지요. 잘쓰고 못쓰고를 떠나 시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의정부 문학공모전에 응모한 모든 임들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며 꾸준한 정진을 당부드립니다.
<심사위원> 허은주 · 신성수 · 김선용
<심사평> 김선용
제15회 의정부 문학 전국 문학 공모전 시부문 입상작
일반부 금상 김세정(경기 의정부, ‘개미 골목’)
은상 정월숙(충북 음성, ‘공원에서’)
동상 전근옥(전남 목포, ‘강’)
장려 박영아(전남 목포, ‘홍어의 맛’)
장서영(경기 화성, ‘빈 둥지’)
이찬우(경기 의정부, ‘커피를 쫓아온 커피향’)
김영희(강원도 원주, ‘술에 취해’)
김헌기(전남 장흥, ‘내 어린 날의 친구 중대’)
신승민(한양대 한국언어문학과 2학년, ‘낙엽비’)
고등부 금상 양기훈(경기 수원 영덕고 3, ‘과도기’,‘뿌리’)
은상 김수아(경기 의정부 경민고 2, ‘밤하늘’)
동상 한주헌(경기 의정부 경민고 2, ‘숲’)
전대원(전남 목포 덕인고 2, ‘꿈길에서’)
장려 유홍권(경기 의정부 경민고 2, ‘그림자’)
손아름(경기 의정부 경민고 2, ‘할아버지’)
이설이(경기 의정부 경민고 2, ‘아버지’)
김민석(경기 의정부 경민고 2, ‘모래’)
이영주(경기 의정부 경민고 2, ‘그리움’)
이민주(경기 의정부 경민고 2, ‘떫은 감’)
권범준(경기 의정부 경민고 1, ‘비롯’)
중등부 은상 전대산(전남 목포 덕인중 1, ‘내가 만난 봄’)
첫댓글 심사하시고 심사평 쓰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심사를 마치고 김선용 샘이 '개미 골목'을 낭독해 주시던 때가 떠오릅니다. 철거촌 하늘을 반짝! 긋는 별똥별을 목격한 듯 반갑고 기뻤지요. 그 저녁이 문득 그리운 낮입니다.
제가 학교 일정을 앞세워 부탁드려 죄송하였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바쁘신 덕분에 우리는 김선용 선생님의 새로운 심사평을 읽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늘 좋은 일만 하시네요~~
김선용 선생님!
심사평과 수상자 명단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심사평을 쓰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지요. 심사평도 하나의 작품이라는 걸! 김선용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읽고 또 읽고 해오름을 보듯 가슴이 북받쳐오름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냉철함을 유지하려고 애썼지요. 좋은 작품 읽어 행복했고 감사합니다.